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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9-27 20:57
[한국사] 청동기시대 시대구분 - 학계 동향
 글쓴이 : 흥무대왕a
조회 : 1,392  

청동기시대 토기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동기시대 시대구분에 대한 논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최근 3~4년간 관련 논문들이 여럿 나왔고, 아래와 같이 청동기 시대구분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있었네요. 
- 국립청주박물관-한국청동기학회 공동학술대회, 청동기시대의 설정과 분기 [2020년 05.22]
- 국립문화재연구원, "집중토론 한국고고학 시대 구분, 이대로 좋은가?", 2022년

​평소 관심있던 주제이기도 하고 동아게에 이런 내용의 글은 없는 듯 하여 학계의 최근 동향을 소개 드립니다. 

먼저 한반도에서도 남부와 북부, 한반도 이외의 공간이 요서,요동,연해주 각각에서 전개된 시기별 청동기문화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대상이 되는 시공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시대구분의 쟁점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대안은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순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1) 청동기시대 공간 범위

시대구분5_조진선.jpg

시대구분6_조진선.jpg


​(조진선 2020)

​청동기시대의 공간에 대해서 여러 연구자들이 정의를 내렸는데, 박순발(2016)의 '극동아세아 농렵구', 천선행(2018)의 4개의 무문토기문화권, 조진선(2020)의 한국고대문화권, 이후석(2022)의 단경식동검문화권 혹은 고조선문화권 등 모두 대략적인 범위가 일치합니다. 한반도-요서/요동-연해주. 따라서 공간적 범위는 합의되었다고 보입니다. 이 공간은 시기에 따라 포함되거나 이탈하는 지역이 있다는 것을 감안 해야겠습니다(ex. 요서). 
(저는 "한국고대문화권"이라는 용어가 한국과의 연계를 잘 나타내며 특정 물질문화에서 독립적이기에 청동기시대 공간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하기에 앞으로는 이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2) 청동기시대 시간 범위

시대구분1.jpg


위 그림은 천선행(2022) 논문에서 발췌했는데, 해방 이후의 수많은 연구사적 논의는 이 그림 한장으로 갈음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위의 각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시대구분의 대상 공간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 해야겠습니다. 위 그림에서 특징적인 점은 시간이 지날 수록 청동기시대의 상한이 올랐다는 점과 초기철기시대의 상한과 하한도 올랐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누적된 유물 발굴의 성과겠죠.

2000년대 들어와서는 청동기의 시작은 기원전 2000년경, 철기의 등장은 기원전 400~300년경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3) 시대구분의 쟁점과 대안

​시대구분에 있어서 쟁점은 크게 2가지입니다.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의 적절성과 시대구분에서 "고조선"을 언급하지 않는게 타당한가 하는 점입니다.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고 연구자들이 꼽은 이유는, 1. 점토대토기, 세형동검, 철기의 등장 시점이 서로 독립적이고 지역별로 상이한 점, 2. 단순히 새로운 물질문화가 등장했다고 사회문화가 변동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천선행 2022 외). 또한 기원전 9~8세기경, 기원전 6~5세기경, 기원전 4세기경 등의 시점에 획기적인 문화변동이 확인되는데, 이와 관련되어 있는 고조선이라는 정치체를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시대구분2_천선행.jpg

(천선행 2022)

시대구분3_이후석.jpg

(이후석 2022)

시대구분4_조진선.jpg

(조진선 2020)

위의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의 문화사회적 변동 양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대안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초기철기시대"를 폐지하고, 기원전 6세기 또는 기원전 4세기까지를 "청동기시대", 기원전 100년까지를 "고조선시대", 이후를 (원)삼국시대 또는 삼한시대로 정의 (이후석 2022, 조진선 2020 외)
2. "초기철기시대"를 폐지하고, 기원전 100년까지를 청동기시대, 이후를 (원)삼국시대 또는 삼한시대로 정의 (천선행 2022)

​천선행(2022)은 2안에서 청동기시대 전체를 "고조선시대"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2가지 안 모두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합니다. 

** 개인적 결론

"초기철기시대"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저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는데, 관련해서 학계에서 치열한 논의가 되고 있고, 논문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어서 기쁩니다. 

역사동호인인 제 생각에는 공간범위는 당연히 한국고대문화권으로, 시간축은 한국고대문화권 중 변화가 가장 빠른 지역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중국,일본은 하상주단대공정이나 죠몬시대/야요이시대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청동기시대"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데, 우리나라만 three-age system의 구분법을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보입니다. 아직도 "금석병용기"의 유령이 따라 다니는 걸까요? 

따라서 2안, 그 중에서도 고조선시대(기원전 2000년~100년)의 용어 채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조선이 한국고대문화권 전체를 장악한 것도  아니고, 부여/낙랑(진국?)/진번/임둔/한 등 다른 정치체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삼조선설까지 채용하면 좋으련만. ㅎㅎ)

앞으로 학계에서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참고문헌]
국립청주박물관-한국청동기학회 공동학술대회 청동기시대의 설정과 분기 [2020년 05월 발행]
박순발, 2016, 「제1장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2: 編年』, 서경문화사.
이후석, 2022, 「청동유물을 통해 본 고조선의 시공간성」, 『고조선사의 시공간과 그 주변, 연구사적 검토』, 2022년 제2회 예맥역사학회 4월 연구발표회, 예맥역사학회.
정인성, 2019, 「한국고고학에서 ‘초기철기시대’ 그리고 ‘고조선시대’」, 한국상고사학보106, 한국상고사학회. 
조진선, 2020,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시기구분 – 금속기의 출현과 정치체의 등장을 기준으로 -」, 한국청동기학보27, 한국청동기학회. 
천선행, 2018, 「한국 무문토기문화의 공간적 범위에 대하여.」, 한국청동기학보 22, 한국청동기학회.
천선행. 2022, 「무문토기문화권에서의 청동기시대 시작과 끝.」, 湖南考古學報 71, 호남고고학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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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22-09-28 17:29
   
잉카 아즈텍을 보면 신석기 문명인데 국가가 어느정도 형태를 가지고 있죠. 심지어는 제국으로 해석하기도 하구요.
     
흥무대왕a 22-09-28 22:53
   
지역과 상황에 따라 그럴수도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한국고대문화권에서 그런 유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런 유적이 발견 된다면 청동기 시대는 사회발전이 후퇴한 꼴이 되는거구요.

아무튼 이번 글은 사회발전 단계와는 상관없는 글입니다. ^^
          
구름위하늘 22-09-30 05:47
   
기초 지식: 청동은 자연상태에서 구하기 어려운 구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합금기술을 갖춘다고 해도 소량만 생산 가능합니다. 그래서, 청동기 시대에도 지도자나 전사 급을 제외하면 일반병사는 신석기 무기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해야 합니다. 상당 기간 신석기와 청동기가 혼재되어서 사용된 것은 거의 상식에 가깝습니다. 청동기 시대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후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기초 지식을 의심케 합니다. 역사 외의 무기나 금속기술에는 관심이 없으셨나 봅니다.

철기가 제조기술 자체는 청동기 때보다 어렵지만,
철 자체는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일반 병사도 무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초기 철기의 기술로 만든 철은 청동에 비하여 튼튼하지 않았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철을 청동 수준의 강도와 탄력을 가지도록 열처리하는 것은 고급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대포는 철기시대에서도 모두 청동으로 만들었고,
무수한 실패와 노력으로 철제대포를 만들려고 노력한 이유가 청동 소재의 부족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심지어 절의 종을 녹여서 대포로 만들고는 했죠.
               
흥무대왕a 22-09-30 11:49
   
제 의견에 오해가 있으시네요.

점퍼님이 "신석기시대에도 제국이 존재할 수 있지 않냐"는 취지로 질문하셔서 댓글을 남긴 겁니다.

구름님 댓글에는 동의합니다.
                    
위구르 22-10-01 19:34
   
''첫 댓글: 잉카 아즈텍을 보면 신석기 문명인데 국가가 어느정도 형태를 가지고 있죠. 심지어는 제국으로 해석하기도 하구요.

그에 대한 답: 지역과 상황에 따라 그럴수도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한국고대문화권에서 그런 유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런 유적이 발견 된다면 청동기 시대는 사회발전이 후퇴한 꼴이 되는거구요.

아무튼 이번 글은 사회발전 단계와는 상관없는 글입니다. ^^''

1. 지역과 상황에 따라 그럴수도 있다고 봅니다. <- 댓글에 사례(잉카, 아스텍)를 제시했는데 그에 대해서 '그럴수도'라고 둘러대고 넘어감

2. 문제는 한국고대문화권에서 그런 유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5천년 전에 방국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구체적인 홍산 문화 유적지는 모두 무시하고 우리나라의 문화 범위에서 제외하고 결국 중공의 동북공정에 부역하는 꼴

3. 그리고 만일 그런 유적이 발견 된다면 청동기 시대는 사회발전이 후퇴한 꼴이 되는거구요. <- 신석기 시대에 국가의 증거로서의 유적이 발견되면 청동기 시대에 사회발전이 후퇴하는 셈이라는 근거도 없는 소리로 끝을 맺음

결국 총체적으로 둘러대기와 무지함, 무식함으로 점철된 댓글을 써놓고서 구X미그린이란 사람이 길게 설명을 해주며 '신석기 유적이 함께 발견된다 해도 청동기 시대일 가능성은 충분하다'라는 점을 설명해줬는데 또 거기다 대고서 ''제 의견에 오해가 있으시네요.'' 이런 소리나 하는게 그 짝이 후안무치하다는 단편적 증거임
                    
위구르 22-10-01 19:40
   
XXX왕: 그리고 만일 그런 유적이 발견 된다면 청동기 시대는 사회발전이 후퇴한 꼴이 되는거구요(즉, 신석기 유적이 청동기 시대에 유적지에서 발견된다면 청동기 시대에 사회발전이 후퇴했다는 증거가 발견되는 일과 같다는 뜻)

구X미그린: 상당 기간 신석기와 청동기가 혼재되어서 사용된 것은 거의 상식에 가깝습니다. 청동기 시대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후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기초 지식을 의심케 합니다

흥XXX이 보여야 할 정상적인 반응 -> ''두 분 의견을 보니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청동기 유적이 발굴될 가능성과 신석기 시대에도 나라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흥XXX이 보인 실제 반응: 제 의견에 오해가 있으시네요.

점퍼님이 "신석기시대에도 제국이 존재할 수 있지 않냐"는 취지로 질문하셔서 댓글을 남긴 겁니다

구름님 댓글에는 동의합니다.''

ㄴ 애초에 무식함을 폭로해서 지적을 받은 마당에 결국 끝까지 자신의 무지를 인정을 안하고 대신 동의를 하는 척 하면서 ''제 의견에 오해가 있으시네요.''라며 상대방이 무언가 착각을 했거나 실수를 했다는 식의 분위기를 조성할려고 시도함

결론: 인정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허영심 환자. 옛 분탕꾼 수X리의 복제판

꼬라지가 이러니 뻔뻔하게 감방친구 박사님의 연구를 훔쳤지
     
하이시윤 22-10-02 12:52
   
잉카 제국의 기술력도 최근들어 재조명받고 있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유럽인들 이전의 아메리카에는 바퀴나 수레 같은 문명의 기초적인 발명품들이 등장하지 않았고, 심지어 철기 시대의 핵심이 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에 구리나 청동 같은 기본적인 금속들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잉카 제국은 로마 제국의 그것에 비견될만큼 길고 탄탄한 도로들을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깔았고, 끌과 망치같은 단순한 연장만으로 안데스의 험준한 산맥들에 길을 내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도 했다. 게다가 길을 낼 수 없는 절벽 등에는 줄로 다리를 꼬아 길을 잇는 등 여러모로 유라시아권의 문화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청동 구리도 사용했습니다
     
하이시윤 22-10-02 12:57
   
메소아메리카 지역은 전체적으로 야금술의 유입이 늦었다. 남아메리카나 북아메리카 지역의 원주 문명들, 특히 오대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기원전 5500년대 당시 사용된 유물이 출토될 정도였고, 남아메리카는 기원전 2150년대에 만들어진 금속 유물이 출토된 데에 비해,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최초로 출토된 금속 유물은 기원전 200년대에 출토된 유물이다. 초기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야금술이 퍼진 곳은 현대의 에콰도르 지방 문명들과 교류가 활발했던 서부 멕시코 지역으로, 10세기 초반에서는 서부 멕시코에서 메소아메리카 전역으로 널리 퍼졌다.

아즈텍에서 야금술의 주 재료로 사용된 것은 다른 메소아메리카 문명들과 유사하게 금, 은, 그리고 구리 등이었다. 이러한 금속들이 널리 쓰인 것은 유라시아 문명들도 그러하듯, 가공이 쉬웠기 때문이었고, 특히 청동을 통해 실생활에 쓰일만한 도끼나 농기구같은 여러 도구들까지 만들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금속 기술들의 발전이 곧장 무기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금속제 무기들보다는 흑요석 무기들이 더 널리 쓰였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에 부서지거나 하면 쓰기 어려운 금속 무기들과 달리 발전한 흑요석 가공 기술을 통해 흑요석 무기들을 쉽고 간편히 만들 수 있었고, 무뎌지면 부러트린 후 다시 쓰면 되었다. 또한 아즈텍의 금속 무기 유물로는 화살촉 등이 있었으며, 콩기스타도르들이 아즈텍을 침략할 즈음엔 아즈텍은 청동기들을 실험하면서 여러 성분을 가진 금속들을 만들고 있었다.

금 은 구리 등의 야금술도 있었습니다
위구르 22-09-29 18:35
   
''지역과 상황에 따라 그럴수도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한국고대문화권에서 그런 유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런 유적이 발견 된다면 청동기 시대는 사회발전이 후퇴한 꼴이 되는거구요.

아무튼 이번 글은 사회발전 단계와는 상관없는 글입니다. ^^''

글 대충 읽고 가려다 여기서 웃고 갑니다
비좀와라 22-09-30 11:40
   
청동이나 황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입니다.

구리도 희귀한 금속이기는 하나 주석은 정말 희귀한 금속이구요.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석이 나는 지역은 연해주 지역과 운남지역 입니다. 당연히 초기 청동기 문명은 이 지역 부근 이구요.

만일 주석이 나오지 않는 지역에서 청동이나 황동을 만들려 하면 주석이 나오는 지역과 교역을 하거나 점령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안성유기 같은 것은 황동으로 만들기에 주석을 수입하죠. 이미 연해주 지역과 운남지역의 주석은 고갈 되었고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 말레아시아 지역의 주석이 개발 되어서 지금은 말레아시아에서 주석을 수입하고 있고요.

청동과 황동을 만들려면 주석은 필수 입니다. 말레아시아 여행을 가면 주석을 이용한 컵등과 같은 제품을 지역 특산품으로 팔죠. 그런데 지금은 말레아시아 주석의 생산량이 줄어서 황동이 많이 들어가는 탄피의 가격이 많이 올라 갔다고 하죠.

이렇게 황동과 청동을 만들려면 주석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주석이 워낙 희귀해서 같은 양의 황금보다 4배에서 다섯배 가량 비쌌다고 하죠. 아즈텍 같은 경우 구리가 없어서 청동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석이 없습니다.

구리는 비중이 높은 금속으로 보통 금과 은이 있는 곳에 위치 할 가능성이 높죠. 당연히 멕시코 지역은 금과 은 그리고 구리가 있습니다. 주석이 없고요.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영국 콘웰지역의 주석을 사용 했고요. 이미 오래전 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콘웰지역은 교역을 했다고 하죠.

그리고 홍산문명 지역에서는 신기 하게도 청동기 유물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홍산지역에는 옥기가 많이 나오기에 석기나 청동기와 다르게 옥기문명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죠.

그런데 홍산문명 사람들은 백두산 지역 까지 와서 옥을 채취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청동기 문명의 사람들과 접촉과 더불어 교류가 시작 되었을 거라 보고요.

중국에서 청동기 문명은 주와 은 시대로 대표 되는데 이 들 청동기 유물은 몽골지역에서 발원된 청동기 문명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이들의 청동제기등의 그룻등의 물건은 빗살무늬토기의 변형으로 봅니다.

그리고 강남지역 등은 청동기 문물이 나오지 않고 석기의 문물은 많이 나오죠.

그럼 대충 청동기 문명의 개발자가 누군인지 짐작이 되죠?

몽골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발원한 종족은? 당연히 치우종족이고 이들이 신라를 건국하고 한반도에서 턴해서 장강으로 진입해서 다시 운남지역으로 가서 주석광산을 개발하고 다시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사천지역에서 뤼로 대표되는 황제족속을 만나죠.

여기서 뤼가 우리가 말하는 마고이면서 관세음 보살이고 직녀입니다. 뤼는 거미가 집을 짓는 것을 보고 비단을 처음 짠 신이면서 인물이라고 하죠. 당연히 치우는 견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고구려 벽화에는 견우와 직녀에 관한 내용이 그려져 있죠. 아마도 고구려는 자신들이 견우와 직녀의 후손이란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반면에 신라는 자신들을 치우의 후손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요.

이런 상황은 홍산문명의 영향이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 홍산문명에서 발견되는 옥기의 원산지가 에덴(한자로는 화전)으로 사천지역 이죠.

신라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남하 하면서 동쪽을 따라서 이동하다가 장강으로 진입한 치우족속이라고 하면 다른 족속들은 견우와 직녀의 후손이라고 봐야 한단 말이죠.

그런데 현대의 우리들의 풍습은 거의 모든 것이 신라의 풍습으로 현대의 한국인은 신라의 후손 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차이나라는 말의 어원 인데요. 차이나라는 말은 진秦을 말하는 시나에서 왔고 이것이 지금은 중국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진秦 / 신新 / 금金 / 청淸이 같은 말이란 것을 알고 있죠. 그리고 서라벌이 서울과 변했고 이중 서라는 새/샛 이란 말고 서라벌은 금성金星 / 금성金城과 같은 말이란 말입니다. 당연히 신라란 말은 서라란 말의 음차문자 이고요.

그리고 금성과 동성은 같은 말이라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다른 말로 동경이라고 부르는 것 이고요. 누가 봐도 시나란 말은 진秦을 부르는 말이라기 보단 신라를 부르는 말이란 것이 더 가깝지 않아요.

그리고 로마를 대진국大秦國이라고 한자로 표기 하는데 세상에 그당시 스페인은 로마의 속지로 사실상 로마인데 자신의 나라이름을 모를리가 없잖아요. 당연히 시나라는 말은 진秦을 부르는 말이기 보단 신라를 부르는 말이 맞단 말이죠.

더군다나 로마와 신라는 문화도 비슷하죠.

한가지 의문점은 누가 봐도 현대의 한국인은 신라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고 봐야 하는 데 이상하게 신라를 폄하하고 축소 할려고 한단 말이죠.
     
흥무대왕a 22-09-30 11:55
   
너무 많은 의견을 주셔서 어떤 답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글에만 의견을 드린다면, 저도 한국인은 신라인의 후예라고 봅니다.
          
위구르 22-10-01 19:46
   
정상적으로 댓글을 읽었다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석이 나는 지역은 연해주 지역과 운남지역 입니다. 당연히 초기 청동기 문명은 이 지역 부근 이구요.''라는 부분을 집어다가 연해주 지역에 상고시대 국가의 증거가 발견됐냐고 본 글에 관련된 질문을 했어야죠

근데 그러지는 않고 ''마지막 글에만 의견을 드린다면'' 이런 식으로 끝내고 말았으니 언제까지 꼬리 자르는 습관을 부여잡고 살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하이시윤 22-10-02 12:00
   
황동(黃銅, brass)은 구리(Cu)에 아연(Zn)을 첨가하여 만든 황금빛을 띠는 합금을 일컫는 말이다. 실용되고 있는 합금은 보통 아연 30∼40%가 들어 있는 것으로서, 아연 30%의 것은 칠삼황동, 아연 40%의 것은 육사황동이라고 한다.

기초지식은 확인합시다
     
하이시윤 22-10-02 12:04
   
청동기 시대에는 구리는 비교적 널리 분포해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이었지만 주석은 산지가 한정되어 있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예를 들어 지중해의 중요 동광은 키프로스나 시실리아 등이어서 중동지방 주변에서 많이 거래되었지만 주석은 멀고먼 중앙아시아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수입해야 하는 중요한 국제적인 교역 품목이었으며, 한반도 역시 주석이 거의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구리는 국내 광산에서 채광하더라도 주석은 외부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는 중국 북쪽 내몽골 지역과 양쯔강 이남 지역에 주석 광산이 발달해 있어 고대 한국사 국가들은 이런 곳에서 주석을 수입해 청동을 만들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일대는 질 좋은 주석 산지로 유명하다. 애초에 주석을 캐러 온 중국인 노동자들의 캠프에서 시작되어 수도까지 올라간 케이스. 그러한 주석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기업 중 가장 큰 기업이 로열 슬랑오르로 창업자가 화교 출신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도 실제로 주석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주석의 질감을 표현했다고 하며, 실제로 햇빛 쨍한 날에 여기 가 보면 번쩍이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처럼 보이고, 평범하게 유리로 벽을 세우는 커튼 월 건물에 비해 육중하게 느껴진다.
중동 지방에서는 주석이 나지 않아서 페니키아인들이 이걸 찾아 영국의 콘월지방까지 진출하여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주석을 조달했다. 구리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방 근처에서 비교적 쉽게 채굴할 수 있었지만 주석은 없어서 브리튼 섬까지 갔던 것. 훗날 바다 민족의 대규모 침입으로 무역로가 단절되자 주석의 공급로가 끊어져버려서 청동기 이전의 시대로 쇠퇴했던 원인이기도 했다.
하이시윤 22-10-02 12:11
   
靑銅器時代
Bronze Age

일반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 사이에 있었던 시대로, 인간이 청동으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시기를 말한다.

단 '청동기를 주로 사용했던 시대'는 아니다. 청동은 청동기 시대에도 귀한 물건이어서 한정된 특권층들의 도구나 무기로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특권층의 물건 중에서도 일상용품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농기구 같은 생활 전반에는 대부분 토기와 석기를 사용했다. 일상용품도 본격적으로 금속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다음 철기 시대부터다. 다만 신석기 시대보다 진보한 사회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는 같은 석기라도 좀 더 퀄리티가 높다.

신석기와 청동기 사이에는 구리만 쓰던 동기 시대(copper age)도 있었지만, 매우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생략된다.

청동의 용도가 석기나 철기처럼 모든 범위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고 도구의 목적에 따라 석기/철기와 시대적으로 혼용되었으며, 어떤 사회는 청동기 없이 바로 철기 시대로 넘어갔기 때문에 '석기-청동기-철기'의 이른바 세 시대 체계에 논란이 있다. 현대 학계에서는 지양하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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