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수나라/당나라 시대의 정주定州가
이전의 한나라나 후한, 삼국지, 5호 16국 시대 어느 지명에서 정주가 되었는지 추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신당서' 등에 의하면 645년 1월, 당태종은
1) 육군 총사령관 이적(李勣)으로 하여금 보·기병 6만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유주에서 요동으로 진격하고,
2) 또 수군 총사령관 장량(張亮)으로 하여금 500여 척의 전함과 4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산동반도 동래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을 향하게 명령하고,
3) 3월에는 자신(당태종)도 정주를 출발하였습니다
4) 당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했고, 마수산에 군영을 설치했다.
태종이 (요동)성 밑에 이르러...
■ 여기서(제가 사마천 사기와 한서지리지를 고찰해서 얻은 결과임)
1) 이적이 출발한 유주는 한나라 탁군(涿郡)으로 형태시(邢台市) 동쪽 부근이며
(연나라 도성 계薊가 거록현巨鹿縣이니 탁군은 계의 남쪽과 한단邯鄲의 북쪽에 있습니다)
2) 당태종이 출발한 정주(定州)는 한나라 발해군의 정현(定縣)으로
지금의 산동성 덕주시(德州市) 서쪽 부근으로 봅니다(형태시 탁군의 동북 방향)
3) 어양이 거록현 서북쪽에 있는 대륙택 부근이니 요동군은 형수시 안평현(衡水市 安平縣)이고요
(형수시 안평현이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오는 하평양下平壤이며 장수왕의 평양으로 보고 있습니다)
4) 당나라 수군이 향한 평양은 고구려 마지막 평양인 산해관이 있는 진황도시(秦皇島市)로 보이고요
(하북성 북동쪽의 진황도시 평양인 장안성을 중심으로 하북성도 고구려 영토였습니다)
5) 마지막으로
당나라와 수나라 군사가 건너간 요수(遼水)는
거록현(巨鹿縣) 북쪽에서 형수시(衡水市)로 흐르는 부양하(滏阳河)로 봅니다
※주)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었다는 문헌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요동 요서를 구분하는 기준은 요수가 아닙니다.
■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 공격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