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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6 21:03
[한국사] 고조선 영토와 춘추시대 지도로 알아보는 주나라 영토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998  

 춘추시대 연燕 제濟 진秦 등 제후국의 봉지는 100리(40km)를 넘지 않았다

※주)기원전 134년에 주부 언 (主父偃, ? ~ 기원전 125년?)이 황제(한漢무제)에게 권유하여 말했다.

        “옛날(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은 봉지가 1백리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강약의 형세로 통제하기 수월했습니다"

         [출처] 112-6/7[史記列傳(사기열전)]권112.平津侯·主父列傳(평진후주보열전)(6/7)②主父偃(주보언)

 

■ 춘추시대 주나라 영토는 황하와 양쯔강 중간의 땅이다

    ① 진晉나라(산서성) : 임분시(臨汾市)와 운성시(運城市) 중심이었다(진중시 태원시 제외)

    ② 제齊나라(산동성) : 북쪽으로 제수를 넘지 못했고, 동쪽으로 산동반도를 차지하지 못했다

    ③ 위衛나라(하남성) : 북쪽으로 한단을 넘지 못했고, 산서성 중부를 차지하지 못했다

    ④ 북경부근 연(燕)나라는 허구이니 위衛나라 부근인 황하 근처에서 찾아야 한다


[출처]지도원본 : 신申. 신나라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 춘추시대 지도 이해

    1. 주나라 영토를 제외한 북쪽과 동쪽은 동이의 땅이니 고조선 영토로 추정된다

         1-1 섬서성 : 섬서성 중북부는 융적의 땅이다

         1-2 산서성 : 산서성 서남부를 제외한 산서성 전체는 산융의 땅이다

         1-3 하북성 : 하북성 전체는 동호와 조선의 땅이다

         1-4 산동성,강소성 : 산동반도와 강소성은 동이의 땅이다

         ※주) 적狄(오랑캐)은 적翟(새 깃털)이니 조우관鳥羽冠을 쓰는 고조선古朝鮮이다

 

     2. 북경부근에 연나라와 산융이 있지 않았다

        2-2. 연나라 위치는 북경근처가 아니라 하남성의 위衛나라 근처여야 한다

               1) 연나라 시조인 소공석은 주무왕의 동생이고. 주 성왕때 섬 서쪽을 다스리는 3공의 한사람이었다

                   동생인 소공을 귀양보내거나 죽일 생각이 없기에 북경을 봉지로 줄리가 없고, 비어 있는 하내땅인

                  위衛나라 서쪽이 북연의 봉지로 추정된다

               2) 기원전 675년 연燕나라와  위衛나라가 주 혜왕(周 惠王)의 동생 희퇴(姬頹)와 함께 혜왕을 정벌하자

                  혜왕은 온(溫)나라로 달아났고, 동생 희퇴를 왕으로 옹립했으니 연燕나라는 위衛나라 근처에 있었다

               3) 산융이 연나라를 공격했을 때 제나라가 도와 주려 갔는데 북경 근처라면 가능하지도 않다

            

        2-1. 산융 : 춘추전국시대 산은 태행산이고 산융은 태행산의 융적이니 산융의 위치는 산서성 중부다 

                1) 산융 또는 적狄이 산서성 동남부에 있던 위衛,  연燕나라를 침략하여 멸망 직전까지 갔다

                2) 산동성에 있던 제齊나라가 위衛, 연燕나라를 도와 주었다

                3) 산융이나 적狄은 수천리 떨어진 북경이 아니라 제齊나라, 위衛, 연燕나라 부근에 있다고 봐야 한다

 

■  사마천 사기 관련 문헌 내용

 

소공(召公) 석(奭)은 주(周)나라와 같은 성(姓)인 희씨(姬氏)이다.

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키고 소공을 북연(北燕)에 봉했다.

성왕(成王) 재위 때 소공은 3공의 한 사람이 되었다.

섬(陝) 땅 서쪽 지역은 소공이 다스리고, 섬 땅 동쪽 지역은 주공(周公)이 다스렸다.

[출처] 34-01[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연세가) (01/06) <소공 석(召公 奭)>

 

鄭여공 후5년(기원전 675년)에 연나라와 위(衛)나라가 주 혜왕(周 惠王)의 동생 희퇴(姬頹)와 함께 혜왕을 정벌하자 혜왕은 온(溫)나라로 달아났고, 동생 희퇴를 왕으로 옹립했다.여공 후6년(기원전 674년)에 주 혜왕이 정나라에 급하게 알리자, 여공은 군사를 보내 주나라 왕자 퇴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주 혜왕과 함께 돌아왔고, 주 혜왕은 역읍에 거주했다.

여공 후7년(기원전 673년) 봄에 정 여공이 괵숙(虢叔)과 함께 왕자 퇴를 습격하여 죽이고, 혜왕을 주나라로 되돌아가게 했다.

[출처] 42-03/10[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2. 정세가(鄭世家) (03/10) <정여공(鄭 厲公), 정 소공(鄭 昭公), 정 자미(鄭 子亹)>

 

환공 23년(기원전 663년), 산융(山戎)이 연(燕)나라를 공격하자 연나라는 제나라에 급히 알려왔다. 제 환공이 연나라를 구하러 나서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孤竹)에 이르러 회군했다. 연 장공(莊公)이 환공을 전송하다가 제나라의 국경 안으로 들어왔다.

제 환공이 말했다.

“천자가 아닌 제후끼리는 국경을 벗어나 전송할 수 없으니, 내가 연나라에게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소.”

이에 연나라의 군주가 밟은 땅에 도랑을 파서 경계로 삼아 연나라에 떼어주고,

[출처] 32-06[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2.齊太公世家(제태공세가) (6/14) <제 환공(齊 桓公)>

 

의공(懿公)이 즉위한 후 학을 좋아하며, 음란하고 사치스러웠다.

의공 9년(기원전 660년), 적(翟)나라가 위(衛)나라를 침공하자 의공이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군사 중에 배반하는 자도 있었다.

대신들이 말했다. “군주께서 학을 좋아하시니 학에게 적나라를 공격하라고 명령하시오.”

적나라가 마침내 침입해 의공을 죽였다

[출처] 37-04[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7.衛康叔世家(위강숙세가) (04/08) <의공(懿公), 대공(戴公), 문공(文公)>.

대공 신은 즉위 원년(기원전 660년)에 죽었다.

제나라 환공(桓公)은 위나라가 여러 차례 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제후들을 거느리고 적(翟)을 토벌하여

위나라를 위해 초구(楚丘)에 성을 쌓고,

대공의 동생 훼(燬)를 위나라의 군주로 세우니 그가 문공(文公)이다.

문공은 환란 때문에 제나라로 달아났었는데 제나라 사람이 돌려보낸 것이다.

[출처] 37-04[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7.衛康叔世家(위강숙세가) (04/08) <의공(懿公), 대공(戴公), 문공(文公)>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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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근진 21-07-27 05:19
   
산동성과 강소성에서 고조선 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출토 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구리 21-07-27 05:26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지 않았더라도
산동성, 강소성은 동이족의 나라였으니 고조선의 영토였습니다

(출토되었더라도 중국이 발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요
학창시절에 산서성 강소성에 고인돌이 있다고 배웠는데
지금은 산동성, 강소성의 고인돌은 대부분 회손하거나 파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인돌이 있었으면 비파형 동검도 당연히 출토되었겠지요)
     
엄근진 21-07-27 05:59
   
윤내현 교수님은 난하를 고조선의 서쪽 경계로 분석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구리 21-07-27 06:03
   
난하가 고조선의 서쪽 경계? 몸을 많이 사리시는 것 같습니다(너무 좁습니다)

단제 신채호 선생의 난하설을
 검증없이 고증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반도 평양설이 통설인 상황에서
강단 사학자로써 난하설을 주장하여 고조선 서쪽 경계를 넓히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공로는 창찬 받아야 하고, 저도 공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수구리 21-07-27 06:15
   
단제 신채호 선생의 난하설은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에 있는데...

'단군조선과 한사군 란하(灤河)설이 조선 말의 지식인에게 통설이었다'
--> https://blog.naver.com/tnrnfle/222319333538

글을 읽어 보시면 됩니다
          
위구르 21-07-27 08:19
   
단군조선과 그 일파인 위만조선의 서쪽 경계가 북경 부근을 흐르는 영정하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구리 21-07-27 08:58
   
위만 조선은 연나라 강도도적 위만이 세운 짝퉁 고조선이기에
저는 위만 조선을 고조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수구리 21-07-27 09:09
   
그럼 고조선을 어떻게 보는가 하면
단군조선--> 해모수의 북부여 --> 동명제의 졸본부여 --> 졸본부여를 이어 받은 주몽태왕의 고구려,

고구려에서 분리된 동명제 후손의 백제, 동명제 후손 박혁거세의 신라,
그리고 동이족인 김수로왕의 가야를 우리 선조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위구르 21-07-27 13:27
   
저도 위만조가 적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하북성에 위치한, 조선 렬국의 일원일 뿐이었고 당시는 조선이 분렬된 상태였는데도 조선이란 국명을 고수한 것은 조선의 일원임을 명백히 하고 국인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찬탈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봅니다
     
엄근진 21-07-27 06:25
   
단제 신채호 선생의 난하설을
 검증없이 고증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윤내현 교수님 책은 읽어 보셨나요?
          
수구리 21-07-27 06:28
   
읽어 보진 않았지만 동영상을 통해
윤내현 교수가 주장하는 내용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수구리 21-07-27 06:31
   
중원을 제폐한 원나라, 요나라, 청나라등  고조선 계열의 북방민족 수도가
북경인 것은 고조선의 수도가 북경 근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마천 사기의 내용으로 보면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는 북경 근처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중원 계열로 알려진 명나라 수도가 북경인 이유도 명나라 주원장이 동이계열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위구르 21-07-27 13:33
   
위만조선의 위치가 하북성이고 해안가에 수도가 있었으니 당시 해안가에 있었던 북경 지방에 위치했다는게 일리가 있는데 사서 기록에는 나옵니까?
                    
수구리 21-07-27 14:32
   
위만 조선이 해안가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여러가지 정황상 해안가라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해안가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요
               
구름위하늘 21-07-28 17:36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 초기 수도는 남경이었기 때문에
주체가 쿠데타로 승리한 후 영락제가 되서 변경한 수도인 북경로
말씀하시는 주원장 동이설은 근거가 없습니다.
     
엄근진 21-07-27 06:37
   
교수님 책을 꼭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고조선 연구, 한국 고대사 신론)
수구리님은 사서도 읽을 수준이니 교수님 책은 어렵지 않을겁니다. 책을 보시면 사서를 어떻게 비교분석해야 하는지도 배우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답습이 아니라 사서의 엄밀한 분석을 통해 대고조선설을 세우신 거에요. '오컴의 면도날'을 아시죠? 추정은 최소화 할 수록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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