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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27 17:03
[한국사] 한사군은 발해만 일대의 작은 지역이었다(이덕일 교수 연구)
 글쓴이 : 국산아몬드
조회 : 1,128  

중국 사료가 말하는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

기자조선의 도읍지 조선현은 낙랑군에 있고 위만조선의 도읍지는 요동군에 있다

 『한서』 「지리지(地理志)」에서  기자 조선의 도읍지에 세웠다는 조선현은 낙랑군 소속으로, 위만 조선의 도읍지에 세웠다는 험독현은 요동군 소속으로 서술하고 있다. 
 즉 조선현은 낙랑군 소속이고 험독현은 요동군 소속이다

  『한서』 「지리지」는 낙랑군의 첫 번째 현으로 조선현(朝鮮縣)을 실으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낙랑군, 한 무제 원봉 3년에 열었다. 왕망(王莽)은 낙선(樂鮮)군 이라고 불렀는데, 유주(幽州)에 속해 있다.
    (주석:응소(應邵)는 조선현에서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라고 했다. 즉 기자조선의 도읍지라는 뜻이다)

낙랑군은 요동군과 지척인 발해만 일대에 있었다

 『독사방여기요』 17권 북직(北直) 8의 영평부(永平府)조에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가 나온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는 청나라 고조우(顧祖禹)가 편찬한 중국 지리지로 『사기』부터 『요사(遼史)』, 『금사(金史)』,『원사(元史)』까지 21사의 지리지를 포괄해서 서술했다는 특징이 있다.)

  “조선성이 영평부 북쪽 40리에 있는데, 한나라 낙랑군의 속현이다. 지금은 조선 경내에 있다 (『독사방여기요』권 17 영평부)”49)
  즉 ‘한나라 낙랑군 속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곧 낙랑군 조선현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평부는 현재의 하북성 노룡(盧龍)현 일대다. 노룡현은 발해만에 있는 난하강 지역이다

낙랑군과 요동군은 지척이었음을 말해준다

  청나라 때의 영평부는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 옛 신창현으로서 한나라 때는 요동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영평부의 북쪽 40리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건 낙랑군,요동군의 거리가 10km 안팍이란 뜻이다
  이는 『후한서』군국지」및『진서』「지리지」도 이 군들이 서로 인접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 산하의 영지성(令支城)에 대해서 영평부 동북쪽에 있다면서 “한나라 때는 영지현을 설치하고 요서군에 소속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요서군도 이 부근에 붙어 있었다는 뜻이다. 

한사군은 발해만 일대에 속해있는 작은 지역일 뿐이다

 즉 한나라는 고조선 서쪽에 있던 위만 조선을 무너뜨리고 그 일대에 낙랑·현도·임둔·진번군을 설치했지만 상징적 승리일 뿐 영토 확장의 의미는 크지 않았다. 
 임둔·진번군을 곧 철폐한 것으로도 이는 명확해진다

관변사학이 낙랑군을 평양일대라고 비정한 근거가 빈약하다

한국 사학계는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를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土城洞) 토성으로 보고 있다. 먼저 동북아역사재단은 2009년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게재하고 있었다.
[위만조선은 그 왕성인 왕험성(王險城)이 현재의 평양시 대동강 북안에 있었는데, 이는 위만조선과 한의 경계 역할을 한 패수(浿水)가 지금의 압록강이라는 점,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는 점, 왕험성 및 조선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열수(列水)가 지금의 대동강으로 비정되고 있다든지하는 점을 통해서 입증된다]

여기서 핵심 주장은 “위만조선은 그 왕성인 왕험성(王險城)이 현재의 평양시 대동강 북안에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는것이다.

왕험성은 ‘대동강 북안’, 낙랑군 조선현은 ‘대동강 남안’이라는 거다
왜 왕험성과 낙랑군 조선현을 분리헀을까?

『사기』「조선 열전」은 ‘연나라 사람 위만이 동쪽으로 새외를 나와서 패수를 건너 왕험성에 도읍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이른바 실증주의에 의한 문헌비판을 하다 보니 왕험성이 패수 건너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나바 이와기치는 패수를 대동강으로 비정하다보니 대동강 북쪽에 있는 평양을 위만 조선의 수도인 왕험성으로 비정하기 곤란했다. 그래서 대동강 너머에 있는 남쪽에서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를 찾기 시작했고 토성동에서 토성 흔적과 와당과 벽돌 몇 편이 나오자조선현 치소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즉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라는 아무런 문헌적 근거가 없다보니 고고학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특정할만한 문헌사료나 고고학적 사료가 뒷받침되고 있을까?

하지만 토성동은 ‘토성이 협소한 구릉에 얕게 쌓여져 있기 때문에 천험(天險)이 없으므로 적의 공격을 받게 되면 방수(防守)가 지극히 곤란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등 치소로서의 위치로는 부적절하다

그러나 총독부의방침에 따라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을 ‘낙랑군치’, 즉 ‘낙랑군 조선현’ 자리로결정했다. 대동강을 패수로 보고 『사기』 「조선열전」의 ‘연나라 사람 위만이 동쪽으로 새외를 나와서 패수를 건너 왕험성에 도읍했다’는 구절에 꿰어 맞춘 위치비정이었다

다시말하면 평양이 위만조선의 도읍지라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나 무조건 평양이라고 우겼고 낙랑군의 치소인 조선현이나마 평양부근으로 상정하기 위해 대동강 남안을 조선현으로 무리하게 정한것이다. 

그것조차도 문헌도 없이 근거도 없는 몇쪼가리의 고고학적 근거로 말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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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S 20-12-27 21:07
   
ㅋㅋㅋ

아무 근거가 없는게,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이 쓰신 역사서들이나 역사인식이 다 현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하신다. 무슨 현 사관이 식민사관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렇게 따지면 우리 조상님들 다 식민사관 추종자들 되신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도 현 평양 일대가 니가 말한 지역보다 더 낙랑 관련 유물이 나와서 신빙성이 있는겨.

니가 점 찍은 곳에서 낙랑 유물 좀 많이 발굴하든가 ㅋㅋㅋ. 구경 좀 해보고 싶다.
     
지누짱 20-12-28 11:23
   
1. 조선시대에나 그랬다
2. 낙랑유물중 대다수가 동한시대꺼다
3. 낙랑유적중 모두가 동한시대꺼다
4. 동한 광무제가 평양지역을 공격해 점유한건 기원후 44년이다.
5. 일개 군 주제에 무슨 유물유적이냐
     
신수무량 20-12-28 22:12
   
우리역사에 토왜 역사매국노자석개들이 좀 사라져줬으면 좋겠네..
     
위구르 20-12-30 15:25
   
아무 근거가 없는게,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이 쓰신 역사서들이나 역사인식이 다 현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하신다. <- 여기서 웃고간다. 연암 박지원의 렬하일기는 장식품이냐 멍청아
     
신서로77 21-01-04 00:30
   
낙랑유물?...낙랑이 몇백년 지속한 나라도 아닐진데 무슨유물이 그렇게도 많다는건 그자체로 조작되었단 증거지...
칼리S 20-12-27 21:21
   
그리고 고대국가 시대(한나라 시대만 해도)랑 지금의 영토개념이나 행정체계를 생각해서는 금물이다.

아니 조선시대와 같은 군현제와도 비교 불가다. 조선을 우습게 보는 인간들이 좀 있는데, 오히려 그 이전 고려때보다 훨씬 다 행정국가적으로 발달된 국가였다.

낙랑군이나 요동군 이런 새외에 있는 군현들은 사실상 한나라 중앙에서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지역들이지. 이건 이쪽만 그런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 변방 군현들이 다 마찬가지였어.

고조선이라는 강한 세력이 망했다고, 거기 살던 사람들이 바뀐거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당연히 현지토착세력들이 주인만 바꾼 경우지. 고조선의 멸망도 한나라가 침략군으로서 승리한게 아니라, 내부에서 위만 세력을 버리고 한에 투항한 결과였지.

평양 일대가 요동지역보다 오히려 북방 민족의 침입에도 부담이 적고, 중국과의 해양교류도 편해서 낙랑이라는 세력이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었다고 보는게 타당하지. 무슨 낙랑군이라고 해서 중국의 직접통치를 받았다기보다 그 일대의 세력들이 스스로 중국황실의 권위를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권위를 높였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지누짱 20-12-28 11:28
   
1. 군현제를 무시하는 개소리. 한나라시대에 군현제는 중앙집권적이었고 중앙이 흔들릴때 방귀뀌는 수준이었다.
2. 고조선은 당시에 망하지 않았다. 원래 근거지로 돌아갔을뿐
3. 현지토착세력과 연합해서 중앙과 대립했다는 소리는 짜증나는 합리화일뿐이다.
4.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대체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기준의 영지를 빼앗아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다 한에 망했을뿐이다.

좀읽고 공부좀해라. 앵무새처럼 떠들지말고
보리스진 20-12-28 11:20
   
한서 지리지의 기록을 보면 현재의 요동반도에 한사군이 있었다는 듯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경주의 기록을 보면 동쪽에서 물이 출발해서, 서북쪽으로 물이 이동하며  바다로 가게 됩니다.
그런 강은 요동반도나 한반도에 없습니다.
비슷한 강은 금강입니다.
금강이 동쪽에서 물이 출발해서 서북쪽으로 물이 이동하다가 서남쪽으로 바다로 갑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현재 요서 지방 또는 현재 요동반도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고구려 초기 도읍지 졸본의 위치에 대해서, 의무려산 또는 성주,화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의무려산은 현재 요서지방이고, 성주, 화주는 현재 요동반도입니다.

설문해자, 수경 등의 기록은 현재의 요서지방 서쪽 지역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이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끝났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출동류의 전형입니다.
중국의 강은 거의 서출동류가 됩니다.
한반도는 대부분 동출서류입니다.

풍수 서적에서 서출동류가 좋은 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한양은 서출동류의 전형적인 땅입니다.
한양은 강이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끝나는 청계천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버섹 20-12-28 12:23
   
백제가 차지했던 대륙의 영토에 대해선 배우지 않으면서, 한사군은 왜 배우는지 어처구니 없네...
일제의 잔재인 한사군 교육을 아직도 하고 있는 걸보면 참 역사학자들 문제 많아.
KilLoB 20-12-28 19:30
   
뭐 모용선비의 1대황제. 전연의 건국자인 모용황이 애초 진으로 부터 조선공에 봉해졌었죠.

그거만 봐도.. 가능성 있는소리

-------
첫째 송나라 때 편찬된 ‘무경총요’와 ‘왕기공행정록’에서 오늘날 하북성 동쪽에 있는 조하(潮河)가 송나라시대에는 조선하(朝鮮河)로 불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둘째 송나라 사람 나필(羅泌)이 쓴 ‘노사(路史)’에서 ‘산해경’에 포함되어 있는 ‘해내경’이 ‘고조선사기(古朝鮮史記)’라고 말한 기록을 찾아냈다.

셋째 송나라 사람 낙사(樂史, 930~1007)의 ‘태평환우기’에서 오늘날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에 조선성(朝鮮城)이 있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넷째 중국 최초의 정사인 ‘진서(晉書)’에서 전연(前燕)을 건국한 선비족 모용황을 조선공(朝鮮公)에 봉했던 기록을 찾았다.

다섯째 1500년 전 남북조시대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유신(庾信)이 쓴 두로영은(豆盧永恩)의 비문에서 선비족의 발상지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기록한 내용을 찾아냈다.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중국 청(淸)나라 건륭제 때 편집된 총서로 그안에 있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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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역사는 반쪽, 다시 써야
심백강 박사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 중
봉대리 21-01-02 12:14
   
이덕일 이분 환단고기를 인용하는 사람아닌가요?
singularian 21-01-02 21:29
   
한사군이던 두사군이던
그때 거기서 살다가 온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뭔 헛소리...
지금 내가 아무리 말해도 그때 주민등록이 말소되어서...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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