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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16 03:17
[한국사] 조선조에도 자주사관과 사대사관의 대립이 있었다
 글쓴이 : 케이비
조회 : 669  

미수 허목 - 단군조선을 비롯, 기자·숙신·위만·부여·삼한·고구려·백제·가락·예맥·말갈 등으로 조선의 북방 역사 기술

우암 송시열 - '기자-신라-고려’를 정통역사로 김부식의 '사대사관' 이어받아

김탁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조선조 최고의 유학자로 명성을 떨친 해동(朱子) 주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선생의 역사관이 이렇습니다.

“만약 단군시대라면 아득한 태고시대라 증명할 수 없고, 기자가 처음 봉해지고 나서야 겨우 문자는 통했으나 삼국 이전은 대개 논할 만한 것이 없다.” <퇴계 이황, 대동야승(大東野乘)>

“단군이 맨 먼저 출현한 것은 문헌상 상고할 수가 없다. 삼가 생각건대, 기자께서 조선에 이르시어 우리 백성을 천한 오랑캐로 여기지 않으시고, 후하게 길러주시고 부지런히 가르쳐서……. 우리나라는 기자에게 한없는 은혜를 받았으니….” <율곡 이이, 기자실기(箕子實記)>

조선 유학의 두 거두가 은나라가 멸망하자 조선으로 망명갔다는 기자를 국조 단군 왕검보다 더 숭상했습니다. 진시황이 자행한 분서갱유에 의해서 멸실된 <상서>를 한나라 초기에 복생(伏生)이라는 유생이 구술하여 복원한 <상서대전>에 “기자가 조선으로 달아나자(走之朝鮮), 주무왕이 기자를 조선왕으로 봉했다.”는 한줄 기록이 기자동래설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어서 <사기> <한서>와 <삼국지>는 기자동래설을 재생산하고 미개한 조선에 팔조금법을 시행하고 중원문명을 전수한 문명 전파자의 지위로까지 격상시켰습니다. 
   
현재 한국 사학계에서 기자동래설이 부정되고 있지만 조선조 때만해도 기자조선 1천년이라는 가공의 역사를 사실로 믿었습니다. 진수가 쓴 <삼국지>에는 위만에게 찬탈당한 기자조선의 마지막 준왕을 기자의 40여세 후손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국 고대사의 국통맥에서 삼한관경과 부여사가 빠지고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이라는 삼조선과 한사군으로 잘못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기자조선의 실체는 연나라와의 전투에서 세력을 강화한 번조선의 지방장관격인 읍차 직위에 있던 기후(箕詡)라는 인물이 번조선의 대권을 접수하고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할 때까지 6대 130년간을 다스린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퇴계와 율곡의 역사관이 이런 형편이니 나머지 유학자들의 역사관이야 말해서 뭣하겠습니까?  주자학의 교과서격인 <서경>이 우리 고대사가 아닌 중국의 요, 순, 하상주 시절의 역사책이니 만큼 퇴계 율곡과 같은 대학자도 넘을 수 없었던 한계였습니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국호의 연원을 단군조선에서 찾지 않고 기자조선에서 찾았으니 조선왕조는 단군조선이 아닌 기자조선을 계승한 왕조이었습니다.

이처럼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역사관은 비단 조선왕조에서 시작된 것만도 아니고 고려왕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송나라에서 오는 사신마다 기자동래설을 들먹이며 기자를 어디에 모셨느냐고 힐문하니 고려 숙종 7년(1102년) 예부시랑 정문이 평양교외에 주인 없는 고총 하나를 발견하고 기자묘라고 꾸며놓고 제사까지 지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하남성 안양에 살았던 기자는 당시에 번조선 영역이었던 하북성 부근에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고 더구나 한반도 평양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고려 인종은 학자들이 국사를 모르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김부식으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케 하였으나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에서 “평양은 신인 왕검의 옛 터전이다”라는 기록으로 단군왕검에서 ‘단군’ 두자를 빼버리고 고조선사를 인멸시키고 말았습니다. 

조선 왕조 때에 주자학이 기승을 부렸다고 해도 모든 유학자가 우리 역사를 잊고 주나라를 적통으로 보는 중국 역사에 젖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시험에는 실패했지만 삼국 이전의 환웅, 단군 역사를 기술한 <규원사화>를 남긴 북애자 선생이 있었고, 과거를 거치지도 않고 숙종 때에 정승 반열에 오른 도학자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은 뛰어난 자주사관을 가지고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아닌 자주국가임을 주장했습니다.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
“허목은 문도들에게 조선은 방외별국(方外別國)임을 강조했다. 그는 단군 왕검을 민족의 시조라고 하였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동사(東事)>와 <단군세가(檀君世家)>를 지었다. 허목은 조선의 시조를 기자로 보는 견해와는 달리 조선의 시조를 단군 왕검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조선의 역사는 중화나 중국의 역사와는 무관한 독자적인 나라라고 하였다."

"허목은 자신의 저서 동사(東事)에서 신라 정통론 외에 숙신, 부여, 고구려, 예맥, 말갈도 한국사로 규정하였다. 그는 동사에서 우리의 역사를 단군을 비롯하여 기자·숙신·위만·부여·삼한·고구려·백제·가락·예맥·말갈 등으로 구분하여 북방의 역사 역시 조선의 역사로 기술하였다. 이는 ‘기자-신라-고려’를 정통으로 생각하던 기존의 사관(김부식 이후의 사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은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에 대한 숭모정신을 강조하고 임진왜란 때에 원군을 파견한 신종황제의 위패를 모신 만동묘를 지었는데, 이로 인해 허목 선생은 우암 송시열 선생과 대척점에 서서 격심한 반목과 당쟁을 치루었고 그 배경에는 자주사관과 사대존명 사상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우암 송시열은 서인 노론의 영수였고 미수 허목은 남인의 영수로서 두 사람이 벌인 예송논쟁은 역사시간에 배운 바도 있습니다. 우암은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를 치고자 하는 효종의 북벌정책을 지지한 반면에 미수는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우암은 당시 유학자들의 학풍인 주자학의 정통을 계승하여 송부자(宋夫子)라는 칭호를 듣고 동방 공자의 위상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나이로 보면 미수가 1596년생이니 우암보다 11년 연상이고, 우암이 사약을 받고 죽은데 비해 미수는 80여세까지 장수를 누렸습니다.

인조반정은 친명(親明) 사대파가 광해군을 중심으로 하는 친청(親淸) 자주파를 제거한 사건입니다. 광해군은 명나라의 요청으로 명·청이 맞붙은 만주 사르후 전투에 강홍립을 원수로 하는 지원군을 파견했지만 중립을 지키라고 밀지를 주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누루하치는 명군을 대파하고 만주에서 명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청제국 건설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토착왜구, 친일매국, 친미사대라며 서로 반목하면서 상대를 친미 반미, 친북 종북, 친일 반일 딱지를 붙여서 비난하는 것도 역사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 역시 자주와 사대로 구분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될까요?  

친중, 친미를 넘어서 극중(克中), 용미(用美)의 지혜를 발휘하는 자주파의 등장을 기대해봅니다.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www.dongp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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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비 20-11-16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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