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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4 08:55
[북한] (일제)..독립운동이여..!! 02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315  

***  초기 만주 공산주의운동과 유격대 창건을 주도한 조선인들

 
만주에서 일본군과 가장 먼저 싸움을 시작한 것은 조선인들이었다. 1910년 국권을 침탈당한 뒤 애국지사들은 만주와 연해주로 망명해 독립군을 양성해 국내로 진공작전을 펴 독립을 실현하고자 했다. 1919년 3.1운동 후 독립투쟁 열기가 고조되자 1920년 독립군들은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들어가 공격하는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일본군은 독립군을 공격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만주에 대규모 부대를 투입했고, 그 과정에서 올해 100주년이 되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가 벌어져 일본군이 큰 타격을 입었다. 독립군에 참패한 일본군은 대규모 부대를 동원해 토벌작전을 전개하였으나 독립군은 잡지 못하였고, 그 대신 조선인 사회를 초토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인한 경신참변(1920〜21)으로 만주의 조선인 사회가 초토화되었으며, 일본군의 공격을 피해 러시아로 이동했던 독립군은 분파들의 군권 분쟁과 러시아 혁명 후 적군·백군의 내전 과정에서 한국독립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고자 했던 러시아 적위군의 개입으로 자유시 참변(1921.6)이 벌어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일본군은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국경 수비대를 강화하고 동만주(북간도)와 남만주(서간도) 등 조선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영사관경찰서와 분소를 세우는 한편, 동북 군벌 장쭤린(장작림)을 압박해 미쓰야협정(三矢協定, 1925.6)을 체결함으로써 독립군에 대한 통제를 공동으로 벌였다.

 
1920년대 중반 이후 독립군과 민족주의계열의 독립운동은 일본군과 중국군벌의 탄압이 강화되고 내부의 노선 갈등과 분파투쟁으로 분열이 심화되면서 점차 세력을 잃어갔다. 민족주의계열의 공백을 차고 들어온 것은 사회주의운동이었다. 반일투쟁이 그랬듯이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운동 또한 중국인보다 조선인들이 먼저 시작했다.

 

조선인들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참여와 관심은 일제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민족해방운동과 밀접한 연관 위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 관내에서 이제 막 공산당이 활동을 시작하고 있던 1923년 9월 박윤서와 주청룡 등은 연길현에 있는 동흥중학교를 중심으로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지부를 조직해 활동하기 시작하는 등 동북지역에서 공산주의 사상의 전파는 192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코민테른(국제공산당) 산하 꼬르뷰로(고려국) 내 조선인 조직에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는데, 러시아와 가까웠던 만주에서 공산주의운동이 조선 국내보다도 실질적으로 더 빨리 시작되었던 것이다.

 

1926년 5월에는 국내 공산당의 해외 파견조직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북만주 영고탑에 조직되면서 만주지역 공산주의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조선공산당의 승인을 위해 코민테른에 파견되었다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만주로 온 조봉암이 초대 책임비서, 최원택이 조직부장, 윤자영이 선전부장을 맡았으며, 당 외곽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 책임자는 김동명이었다.

 
▲ ‘제1차 간도공산당 사건’(1927.10.)으로 체포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간부들. 조직부장 최원택(앞줄 오른쪽), 동만구역국 책임비서 안기성(앞줄 중앙), 동만 선전부장 현칠종(앞줄 왼쪽), 위원 이주화(뒷줄 좌), 김지종(뒷줄 우)(사진=길림신문)


반면 중국공산당의 경우는 1927년 10월에야 ‘중국공산당 만주임시성위원회’가 봉천(심양)에 조직될 정도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비해 상당히 늦었다. 그해 가을 중공당 만주성위 산하로 ‘중공당 동변도특별위원회’(동만특위)를 조직하고, 1928년 2월에는 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용정에 중공당 용정촌 지부가 조직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만주지역 공산주의운동은 조선인들이 주도했고, 특히 동만지역의 경우는 조선인들이 전체 주민의 80%를 넘을 정도로 다수였다. 그 때문에 중공 만주성위는 성립 초기부터 조선인 농민과의 연계 및 토지개혁, 조선공산당과의 조직적 연대 강화 등을 주요 전술로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간도공산당 사건 재판 소식(동아일보, 1928.11.25.)


그런데 1928년 12월 코민테른 제6회 대회에서 조선공산당의 승인이 취소(해소)되면서 만주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공산당 재건운동을 진행하였으나 일제의 탄압과 운동역량의 미숙 등으로 번번히 실패하면서 만주 공산주의자들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만주총국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으나 그 상급조직인 조선공산당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코민테른 6회 대회에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모든 분파조직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들 속에서 새롭게 당을 건설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의 지도조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코민테른과 중국공산당은 ‘일국일당원칙’을 내세우며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에게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중국혁명에 동참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만주의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두고 많은 논의를 했으나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해산하고 중국공산당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부정할 경우 당조직 없이 활동하거나 조선 국내로 들어가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인 공산주의자의 중국공산당 입당은 단지 일국일당 원칙의 고수라는 측면 외에도 다른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가 만주에도 미치면서 농민의 삶과 생활조건이 파산 상태로 되면서 계급적·민족적 대립이 더욱 격화된 상황이었다.

 

중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 농민으로 상징되는 모순관계가 심화하고 있었지만 장쉐량(장학량)으로 대변되는 중국 군벌 체제하에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은 지도력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은 만주에서도 서울상해파, 화요파, ML파 등 파벌 대립을 계속하였고, 대중적 열기를 조직적으로 지도하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표출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은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고 투쟁 경험이 있으며 동만지역의 경우처럼 조선인 대중과 밀접한 연계를 갖고 있는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을 중국공산당에 끌어들여 투쟁 역량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었다. 1931년 9.18만주사변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인 1927년 12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만주 목전공작계획 결의안」을 통해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조선인 농민과 연계 및 토지소유권 부여, 조선공산당 만주조직과의 연대 강화 등을 지시함으로써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을 포섭할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제의 만주침략을 목전에 두고 있고 농민을 비롯한 대중들의 투쟁의지가 고조되고 있던 1930년부터 중공당 만주성위는 조중 양민족의 공동투쟁과 일국일당원칙을 내세워 조선공산당 만주지부 조직과 그 구성원들을 본격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공당은 ‘간도 5.30폭동’과 같은 대중봉기 전술을 구사해 조선인들의 충성도를 확인하고자 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이 중공당에 가입하면서 중공당 만주성위의 세력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1930년 ‘간도 5.30폭동’을 전후해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해체되었고,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개별적으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심사를 거쳐 입당하기 시작했다. 입당 과정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충성도를 보여주기 위한 급진적 투쟁으로 적지 않은 희생과 피해를 입었으나 중공당 만주조직은 크게 확대되었다.

 

만주성위의 통계에 의하면 조선공산당원이 중공당에 가입하기 전 만주지역 중공당원은 100여명에 불과했으나 조공당원이 가입하면서 2,000여 명으로 증가했고, 지방조직 또한 12개에서 55개로 확대되었는데 당원의 85%가 조선인이었다.

 

9.18사변 직후인 1931년 10월부터 1933년까지 중국공산당 만주조직에 입당한 조선인들의 주도 아래 연길·화룡·왕청·훈춘의 연변 4개현에서 항일유격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연변지역에서는 소비에트와 인민정부, 항일유격대가 당·정·군의 형식으로 정립하며 동만주 중국 공산당의 무장투쟁을 주도했다.

 

동만주뿐만 아니라 서간도로 불리던 남만주에서도 조선인 이홍광이 이끄는 적위대를 기반으로 유격대를 창건하여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1군 독립사가, 이듬해 3월에는 2군 독립사가 세워졌는데, 여기에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와 함께 북만주와 길림동부(길동)지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다양한 형태의 반일무장조직들도 통합하여 1936년 초부터 동북항일연군 제1군부터 제11군까지 조직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 <지도> 중국공산당의 만주조직과 유격대 창건 상황(1931-35)(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1945)』, 아세아문화사, 1999, 335쪽)


          0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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