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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12 17:30
[북한] 6,25 관련 새로운 김일성 명령서..
 글쓴이 : 돌통
조회 : 853  

6.25전쟁중 작성된 북한내부의 군사명령서 전모가 처음 밝혀지게 됐다.최근 소련및 중국 자료의 공개로 6.25전쟁에 관한새로운 사실들이 상당 부분 드러났지만,그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번 中央日報 현대사연구소가 단독 입수한 김일성(日成)명령서와 인민군명령서는 이런 역사적 공백을 메워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이들 자료는 박명림(朴明林.고려대강사)박사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를 本社에 단독 제공한 것이다.

 

이들 내용을 중심으로 6.25전쟁을 새로 조명하려한다.  최근 공개된 소련및 중국 자료들을 통해 스탈린.모택동.김일성 사이에 이루어진 6.25전쟁의 주요 결정내용은 거의 알려졌다.

 

그러나 50년 5월과 6월 북한이 어떻게 전쟁준비를 했는지는 아직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바로 김일성명령서인민군명령서는 이 부분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6.25 남침준비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착실히 진행됐다.김일성이 50년 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스탈린을,

 

그리고 5월13일부터 같은 달 16일까지 모택동을 방문해 전쟁에 관한 최종동의를 얻은 후 북한내부는 긴박하게 돌아갔다.김 일성이 스탈린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인 49년5월17일 「조선인민공화국 내각결정 제52호」가 공포됐다.
 

 

상륙대책 9월15일까지 끝내라

 

『군사와 차량등록제 실시에 관한 결정』을 통해 북한주민은 물론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일체의 우마차(牛馬)를 등록케 했다.본격적인 동원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또 각종 내부명령을 통해 49년 말까지 38선 부근의 도로와 교량을 수리하거 나 신설케했다. 50년 봄 들어서는 38선 부근의 주민들을 전부 북쪽으로 이동케 해 군사이동과 배치,그리고 훈련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50년 4월28일 민족보위상 최용건(崔庸健)은 「명령 제0285」를 통해 『조선인민은 새 전쟁도발을 꾀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육.해.공군 전체군무자들은 동기훈련의 승리적 성과 위에 닥쳐오는 하기 전투정치 훈련기간에 반드시 새로운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총동원하라.

 

전체 군무자들은 조국과 인민이 부를 시에는 언제나 반동세력을 격파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라』고 명령했다.



이어 5월 들어서는 각부대에 대한 각종 장비와 무기,전투소모품 배분을 지시하는 명령들이 집중됐다.6월에 접어들자 명령서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6월1일 조선인민군 포병부사령관 무정(武亭)은 『보병의 적 진지방어 돌파시의 문제를 해결 케 하라』는내용의 포병명령서를 하달했다.즉 보병이 공격할 때 포병이 해야할 일을 지시한 것이다.



6월 중순까지의 명령서들은 전부 전쟁준비와 장비의 최종배분및수령에 관계되는 것들이다.6월 중순에 내려진 명령서에는 인민군부대들을 38선 부근으로 전면 이동시키라는 지시가 들어 있다.



6월15일 466부대에서는 『금번 보위성에서 실시하는 하기 대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철도수송을 실시한다』며 부대를 이동 했다. 이동하면서는 민간인과의 대화가 금지됐으며 야간 이동시에는 기차에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또 위장을 위해 기차에실은 모든 무기에는 위장포가 씌워졌다.



38선으로 대거 이동한 인민군은 집결지에 도착해 마지막 전쟁준비를 했다.명령서에 따르면 집결지의 인민군에게 가장 엄격하게요구된 것이 비밀 엄수였다.그것은 주둔지를 벗어나 민간인 거주지역으로 들어왔고 남한의 군대가 가까이 있기 때 문이었다.



『외부로부터 침해하는 암해분자.간첩분자에 대한 엄격한 경계와 군사 신호를 반드시 암기해 준수할 것.

 

군중들과의 접촉은 무조건엄금하며 군중들의 물건을 빌리지 말고 사지 말며 곡식밭을 밟지말며 조직적 수속을 거치지 않고 군중들과 접촉 한 자에 대해서는 처벌한다.문건 취급주의,특히 야간불빛대책에 철저를 기할 것』이란 명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남한 국군의 독극물 투입에 대비해 물을 끓여 마시고 산채와 외래음식을 먹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졌다.병사들의 사상동향을 보고하라는 명령도 하달됐다.이는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최종 확인하는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취침하라고 했으나 자지 않고 속은속은(소근소근)하는 동무들이 많았다.이는 적이 전방에 있다고 해서도 아니고 무서워서도 아니며 우리의 소원이 달성된다는 기쁨에서 나오는 긴장 때문』이라는 기록도 있다.



스탈린.모택동.김일성간 비밀리에 합의된 위장평화 통일방안의 제의와 이를 남한측이 거부한 소식도 신속히 집결지 인민군들 사이에 알려졌다.



「평화통일방안을 거부한 이승만(李承晩)괴뢰도당을 타도하자」는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공격을 개시하기 직전까지 말은 천리를 간다며 일절 아는 것도 말하지 말라』는 경고명령이 계속 내려졌다.

 

즉 남한이 이를 『사전에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명령서 내용중 흥미를 끄는 대목은 장비를 가볍게 하라는 것이었다.이는 진격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조처였다.장비를 가볍게 하지 않은 자는 처벌받았다.

 

6월23일 명령서에 따르면「매전투원은 모포 1개,분대 1장,식기 3인 1개,비상 용식량.노동화 1개,세면도구.예비발싸개를 갖추라」고 돼있다.마치 가까운곳에 행군하듯이 전쟁을 시작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북한이 빨리 전쟁을 끝내려 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실제로 북한은 전쟁을 총 22일에서 27일이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50년8월과 9월의 김일성 명령중 백미는 인천상륙작전 관한것이었다.지금까지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완벽한 기습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 공개된 소련 및 중국자료들도 스탈린과 모택동이 인천상륙작전을 예상하고 김일성에게 대비하라고 권고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낙동강 전선에만 모든 힘을 집중시킨 것이 패인이라고 적고있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 공개된 인민군명령서에는 김일성 역시 인천상륙작전을 정확히 예상하고 이에 대한 군사적 대비까지 철저하게 했음이 새로 밝혀졌다.



북한은 이미 전선지구경비사령관 박훈일(朴勳一.당시 내무성 부상)이 내린 「전투명령 72호」를 통해 8월14일 107연대를신설해 경기도 일대와 충남해안지구를 담당토록 했다.

 

8월26일에는 『적의 패잔병이 해안에 상륙을 기도하고 있다 』면서 전선지구경비사령부는 예하부대에 『8월28일까지 각각 부평.영종도.강화도.남양만 등에 위치하면서 섬들과 해안선에 적의 상륙을 허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18일前부터 방어 드디어 8월28일 김일성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에 대비한 방어작전의 개시를 명령했다.실제로 상륙작전이있기 정확히 18일 전이었다.같은 날 전선지구경비사령부는 즉각인천방어지구사령부로 바뀌었다.

 

인천방어지구사령관 박훈일은 바로 그날 「 전투명령 1호」를 통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근거해 50년8월28일로서 인천방어지구의 지휘는 개시됐다』고 명령했다.



북한은 적어도 8월28일 무렵에는 인천상륙작전을 거의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놀랍게도 실제로 상륙이 이루어진 9월15일까지방어설비를 완료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아마도 이는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나 북한이 도쿄(東京)의 맥아더사령부 움직임을 알고 이에 대비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이런 대비로 인해 인천상륙작전이 실제로 시도됐을 때 유엔군이 서울까지 진격하는데 13일간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13일이라는 유엔군의 진격속도는 북한 인민군이 최초 남침시 만 하루만에 인천에 도달했던 시간을 고려할 때 매우 느린 것이었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인천방어지구사령관을 맡았던 박훈일은 다시 내무상으로 돌아가고,김일성의 명령으로 민족보위상 최용건(崔庸健)이 방어총사령관,제1사단장 최광(崔洸)이 서울방어사령관이 되어 방어를 담당했으나 역부족이었다 .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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