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0-01-20 16:39
[북한] 북한의 역사를 지켜보면서..04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66  

03편에 이어서~~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토마토가 든 광주리를 들고 돌아섰는데, 그 어깨가 기억에 남을 만큼 축 처져 있었다. 그 순간에는 내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그게 어떤 암시였다는 걸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내가 북을 떠나기 보름 전쯤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나는 그동안 써두었던 두 트렁크 분의 원고를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때 아내가 가만히 다가와 물었다. “아끼던 원고를 왜 태워요?” “이젠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그때도 나는 그렇게 짤막하게 대답했지만, 아내는 왠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내도 내 스스로 자기 사상을 마음대로 발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아서는 안 되는 글을 많이 써둔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면서 여러 해에 걸친 내 정신적 생산물들이 한줌 재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챙겨온 카메라며 고급 만년필 따위 귀중품들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개중에는 우리 부부에게 아직 필요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역시 아무 말 없이 따라주었다. 더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내 속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나는 나대로 가족을 구할 계획을 세우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런데도 이렇게 훌훌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생각 못지않게 나를 몰아댄 내 마음속의 또 다른 목소리 때문이었다. ‘결국 구해낼 수도 없으면서 미련을 갖고 주저하면 너는 끝내 떠나지 못하고 만다. 그리되면 훗날 역사는, 그때 북에서는 그렇게도 엄청난 폭력과 불합리 속에 인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당당하게 나서서 비판하거나 저항한 지식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라는 그런 소리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무사히 서울에 당도하고 보니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가족이고 특히 아내이다. “잘 다녀오세요” 그날 아내는 늘 그랬듯이 그렇게 담담한 인사로 나를 보냈다. 나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랐지만 마음속으로는 피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나의 이 결단이 한낱 속된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민족적 양심의 부름에 순응하는 것이며, 분단 상황을 고착시키는데 기여했던 한 지식인이 조국통일의 제전에 바치는 마지막 헌신이라는 것이 과연 아내에게 위로가 될는지.

살아서 다시 만나 한지아비로서 자기 아내를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죄를 씻을 날이 올는지. 원래 내가 망명을 계획했던 곳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한 지 하루도 안 지나서 나는 불길한 예감 속에 그 결행을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조총련 쪽에서 나온 사람들이 호위라는 구실로 밤낮없이 내 주위를 겹겹이 둘러싸면서 도무지 몸을 뺄 틈을 주지 않았다. 낌새를 느낀 김정일의 특별지시가 있어서 밀착 집중감시에 들어간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다음 경유지인 중국에서 망명을 결행하게 되었다.
 

  

 

              이상..    05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Total 19,98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989
2081 [기타] 코리안이브 1편, 가덕도 7천 년의 수수께끼 (5) 관심병자 12-05 1139
2080 [한국사] [ 고조선제국(古朝鮮) ] 화북, 산동, 양쯔강까지 지배… (1) 아비바스 10-03 1139
2079 [한국사] 한국의 정원과 정자 (2) 히스토리2 05-09 1138
2078 [기타] 을불이 체포된 낙랑군 점선현은 산서성 남부 (3) 관심병자 05-07 1138
2077 [기타] 삼국 고대사의 해안선 기준은 ? (3) 도배시러 06-15 1138
2076 [한국사] 호머 헐버트의 진실 레스토랑스 08-29 1138
2075 [기타] 주류 사학에서 내놓았던 무리수 (5) 관심병자 12-24 1138
2074 [한국사] 건안성과 요동성의 비정 감방친구 04-26 1138
2073 [한국사] 가야에서 발견되는 북방 유물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2) 밑져야본전 09-13 1138
2072 [한국사] 중국과 한복 논쟁에서 아쉬운 점을 쓴 글!(필독) (9) mymiky 07-02 1138
2071 [한국사] 후한시절, 낙랑군은 요동군의 서쪽에 있었다. (3) 도배시러 09-07 1137
2070 [기타] 저의 글 올리기에 대해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3) 풍림화산투 05-18 1137
2069 [기타] 지단은 왜 프랑스 국가를 부르지 않았을까? 알제리 … (2) 관심병자 07-04 1137
2068 [세계사] 주몽이 아니라 주몽 (6) 잡은물고기 03-21 1137
2067 [기타] 어? 전길남 박사님 이메일주소도 있네요? (1) 만원사냥 06-03 1136
2066 [한국사] 역사 날조 중국 태호복희씨 09-05 1136
2065 [기타] 변발 잡생각 (3) 관심병자 04-01 1136
2064 [한국사] 강단사학계의 문제?? (7) 으으음 07-08 1136
2063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기초정보와 개인적인 생각 정… history2 04-03 1136
2062 [한국사] 인하대 복기대팀의 고려국경에 대한 신문기사 (아 기… (1) history2 04-15 1136
2061 [북한] (기밀)비밀문서들의공개로 이젠드러나는6.25비극.04편 돌통 01-21 1136
2060 [기타] 고구려의 서쪽 영역과 평양에 대한 또 다른 기록들 (2) 관심병자 03-07 1136
2059 [기타] 동아게에 감사 드려야겠네요. (18) 엄근진 06-19 1136
2058 [기타] [CBS]"위대한 발견" 피맛골 금속활자 발굴기 (ft. 신고 … 조지아나 07-01 1136
2057 [한국사] 환단고기, 고구려사의 진실을 밝히다, 고구려사의 비… (2) 하보나 05-09 1135
2056 [한국사]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강역은 다르다 도배시러 07-27 1135
2055 [일본] 태평양전쟁 종전 방송 엄빠주의 08-02 1135
 <  661  662  663  664  665  666  667  668  669  6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