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형동검=고조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의 '청동기'라는 제품의 속성을 이해하면 되는데요.
청동기시대의 청동기는 굉장히 고급제품으로 경제적인 능력이 있던 수장들만 가질 수 있던 물품이었죠.
이를 고고학에서는 고급진 용어로 '위세품'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위세품은 그 제작지 뿐만 아니라 인근의 수장들도 탐을 냈기 때문에
대체로 교역을 통해 인근 지역으로 수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남해군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비파형동검도 그렇고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발견되는 비파형동검들이 그러한 교역을 통해서 얻어진 물건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죠.
비파형동검시대에는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뚜렷한 정치체가 존재하였다는 기록이 없어 위의 말이 무슨 소리인 지 잘 안 와닿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세형동검시대를 예로 들겠습니다.
비파형동검이 기원전 1000년경부터 대략 기원전 400년경까지 사용되었다면
이것이 발전한 세형동검 등의 청동갖춤새들은
기원전 4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경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세형동검시대의 청동갖춤새 중 꺽창이
중국 전국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연나라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고조선이 진출했다고 하지 않고
당연히 당시 연나라와 고조선이 교역을 했다고 증거로 보겠죠?
이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고조선인이 제작하고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요령식세형동검 또한 전국시대 연나라 영역에서 몇 점 출토된 적이 있습니다.
이 역시 고조선인이 연나라 지역으로 진출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상호 간의 교역을 통해 입수된 물건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이를 통해 보면 청동기시대의 비파형동검 역시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고학에서 최소 그 문화권이라고 하려면
해당 지역에서 비파형동검만이 아닌
유물갖춤새라고 볼 만한 세트유물들이 나와야하고
또한 그것이 한 유적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소 몇 개 유적에서 반복되서 나와야 그렇게 볼 수 있는 겁니다.
정리해보면 비파형동검은 고조선인이 만들었겠지만
최소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은 고조선 외에 다른 집단들도 사용했다는 것이죠.
관련해서 도면이나 사진 자료를 구해보려 했는데 구할 수가 없어 아쉽지만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