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마도 수나라 요서군, 임유관 ㅡ 이거부터 뒤로 거란, 고막해, 이런 거 거쳐서 쭈욱 이어지는 글들이 다 거기에 해당합니다
너무 힘들고 그래서 혼자 그냥 욕하면서 징징대면서 억지로 몇 달을 했네요
결론은 북위의 영주는 늦어도 494년 이후(아마도 제 기억이 맞다면 장수왕인가 문자명왕이 북위로부터 작위를 받은 해일 겁니다, 물론 북위 초기 태무제 시절에도 장수왕은 비슷한 작위를 받았습니다)에
현 장가구시(장자커우시)에 설치되었고
523년~526년 6진의 란과 영주자사의 란 때에 현 하북성 보정시로 교치해 남영주를 설치했다가
다시 장가구시(북위 연주 지역, 연주와 영주는 같이 있었음)로 올라갔다가
527년 두락주의 란 때에 두락주가 이 연주 지역을 장악하자 동쪽으로 후퇴해서 거용관과 군도관을 틀어막고 이 지역(북경시 창평구와 장가구시 엔칭현 일대)에 동연주를 설치
이 동연주가 소위 북영주
수나라가 고보녕의 반란을 제압한 후에 남영주를 북영주로 교치해서 영주 설치
수나라 요서군&영주는 현 북경시 창편구에서 밀운현 고북구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
598년에 고구려에 의해 영주 타격, 605년에 고구려의 사주를 받은 거란에 의해 영주 함락
ㅡ 영주 폐지
당나라 영주도 수나라와 같은 지역
그런데 고구려 멸망 후에 현 밀운 고북구에서 적봉시 라인으로 북상하여
그 동쪽의 로합하, 대릉하 지역까지 영주 관할에 두었고
실제 696년에 이진충, 손만영이 함락한 영주는 현 적봉시 서남부, 또는 서부 지역
역대 유성은 여러 지역
ㅡ 전한 유성(본인이 현 로합하 상류 영성현에 비정)
ㅡ 북연 화룡(적봉시와 영성현 사이로 추정)
ㅡ 북위 화룡(적봉시 지역일 가능성 높음 ㅡ 물길 을력지 방문 경로)
ㅡ 수나라 유성(현 창평구 일대, 또는 이 일대에서 시계방향을 경유하여 밀운현에 이르는 지역의 어느 곳)
ㅡ 수나라 유성 = 수나라 요서군 ㅡ 실제 유성현, 또는 요서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 이름만 같은 곳
ㅡ 수나라 유성2 = 전한 유성현(본인이 비정한 로합하 상류 영성현)
ㅡ 당나라 유성 = 영주가 있던 곳 모두, 696년 함락 이후로는 현 로합하 지역과 전한 비여현 지역인 현 노룡현 북서쪽 2~300 리 경(청룡하 서쪽)을 중심한 지역, 그리고 현 창려현 근방
두우의 통전(8세기 말~9세기 초) 이래
실제 영주는 현 창려현 일대에 있었으나
전대 사서의 기록을 날조, 왜곡하여 현 조양시 조양현에 비정
후대 사서들이 모두 그것을 비판 없이 받아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