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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 프랑스 가톨릭 교단인 예수회 소속 출판인인 장 밥티스트 뒤알드(Jean-Baptiste Du Halde: 1674~1743)는 『Description géographique, historique, chronologique, politique et physique de l’Empire de la Chine et de la Tartarie chinoise』라는 책을 펴낸다. 이 책은 원래 『Lettres édifiantes et curieuses(1711~1743)』이라는 제목으로 세계각지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를 엮은 책의 내용 중 중국과 인근지역에 대한 기사만을 따로 추려낸 모음집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3년 만에 영어 번역본이 나왔고, 이후 19세기까지 유럽 각지에서 재판이 인쇄되었다. 그만큼 중국에 대한 당대 유럽인들의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중국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찬 이 책에 중국의 이웃나라 중 하나였던 조선(朝鮮)에 대한 기록이 섞여 있다. 그 저자는 장 밥티스트 레지(Jean-Baptiste Régis: 1663~1738)로 프랑스 프로방스 출신 예수회 선교사였다. 본래 유럽에서 지리학과 수학 등 과학을 주로 연구했던 그는 35살 무렵이던 1698년 경 중국에 도착하여 가톨릭 포교에 동참한다. 강희제(康熙帝)로부터 청(淸)나라 와 그 인접지역의 지도인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의 제작을 명받아 수행하던 시기, 레지는 조선에 대한 지리조사와 더불어 조선의 풍속과 역사에 대한 기록도 남기게 된다. 그리고 그가 보고서의 형식으로 전한 ‘조선의 역사’는 지구반대편 유럽으로 전달되어 유럽인들에게 ‘은자의 나라’ 조선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던 것.
놀라운 것은 그가 적은 내용 중에 현대의 한국인들도 전혀 알지 못했던 고조선(古朝鮮)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桓雄)의 전설도,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신화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고조선이 한반도와 만주의 강국으로 중국 최초의 나라인 하왕조(夏王朝) 이전 요(堯) 임금 때에 존재하였으며, 때때로 중국과 맞섰던 마치 고구려와 같이 강한 나라였다는 정치·군사적 기록이 남겨져 있는 것이었다. 한국사에 공식적으로 ‘역사’가 아닌 ‘신화’로만 남아있는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재(實在)를 말하는 이 기록은 근대 이전에 작성된 단군조선 관련 사료 중에 사실상 유일한 것이다. 레지 신부의 이 글은 그 동안 몇몇 역사학자들에 의해 읽혀졌으나 그 가치를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하여 어둠 속에 묻 혀있던 이 사료가 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상세한 해제와 함께 이제 독자들 앞에 그 이야기를 전할 준비를 마쳤다.
이렇듯 중요한 사료가 이렇듯 늦게 대중에게 공개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레지 신부의 글을 번역하고 해제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동양사·서양사에 대한 지식을 두루 다룰 수 있는 전문 역사가의 손길이 필요했던 이유가 가장 컸다. 또 한 가지는 이 책의 고조선 관련 기록이 현재 한국고대사학계 주류견해와 완전히 배치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다소간의 관심을 보인 소수 연구자들 역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를 주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역사적 사실일까? 그 대답으로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레지 신부의 글과 20세기 초에 당시 우리 측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와의 비교, 대조(교차검증)를 시도하고 있다. 김교헌(金敎獻), 유근(柳瑾) 등에 의해 출간된 『신단민사(神檀民史)』, 『신단실기(神檀實記)』, 『단조사고(檀祖事攷)』등의 역사서에는 놀랍게도 레지 신부의 기술과 골자를 공유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있다. 그렇다 면 20세기 초 유학을 공부한 한학자 출신 역사학자들이 자신 들이 살던 시대에서 200년 전에 작성된 레지 신부의 프랑스어를 읽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억측일 것이다. 그보다는 레지 신부의 기록이 아주 오랫동안 동아시아 역사학 연구에 통용되어오던 상식이자 큰 거부감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였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