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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5 21:02
[한국사] 무경총요(武經總要)의 요하(遼河)와 요수(遼水) 기록 종합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496  

※ 이 작업의 취지와 목적


지난 며칠 요사와 무경총요에 나타난 요하와 요수 관련 기록을 종합하여 해석하는 작업을 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분석과 고찰 역시 함께 하였다. 본인의 이 작업은 2017년 12월과 2018년 4월 사이의 연구 과정에서 최초 행하여졌으나 기록 자체를 국역하여 종합적으로 조감하고 분석하는 것은 비로소 처음이다.


분석 및 고찰과 함께 글을 올리지 않고 먼저 있는 그대로의 사서 원문과 해석문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첫째, 글의 분량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게시가 되지 않는다. 둘째, 동반 탐문자들께서 있는 그대로 보시고 파악하고 판단하여 보시라는 뜻이다.


이 작업은 요수, 또는 요하 자체가 아니라 거란 동경에 타깃 포인트가 있다. 거란 동경이 과연 현 요양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치(移置)되었는가 하는 것을 요하 및 요수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선 무경총요 전집 북번지리에서 요하와 요수의 위치를 어디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가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요사로 옮겨가 실시하고, 또 이렇게 무경총요와 요사를 교차하여 요나라 당시 요하, 또는 요수를 어디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에 거란 동경의 이치(移置)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져보고자 한다.


사서원문과 해석을 올리고, 그 뒤에 분석고찰문을 올리는 방식으로 게재하겠다.


이 작업은 한마디로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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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총요 전집 변방 1하, 북번지리 《武經總要前集 邊防一下 北蕃地理》


ㅡ 참고 #1 : 무경총요 북번지리 거란 관련하여 요주(遼州)는 총 3 곳의 다른 곳으로 나타난다. 즉 현 진황도시 산해관 일대에 있었던 천주(遷州), 현 대릉하 동쪽, 의무려산 남서쪽 지역에 있었던 요서주(遼西州), 그리고 본래 발해 동평부 지역으로 거란이 동평군을 설치한 요주(遼州)이다. 거란 동경은 본래 남경이었으며, 남경은 동단국이 928년에 요주 동평군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거란 태종이 요주 동평군의 해당지역을 남경으로 승격시킴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ㅡ




A. 요하(遼河)를 키워드로



1. 거란의 영역


ㅡ 참고 #2 : 무경총요에서 기술하는 ‘동서 3,000 리’라는  거란의 영역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해당하는 시대의 영역으로 연운 16주의 일부와 발해의 영토를 제한 영역이다. 이 영역에 해당하는 지역은 무경총요 상에서 거란구지(契丹舊地) 등식으로 표현돼 있으며 이는 동쪽으로는 현 서요하~요하, 서쪽으로는 현 장가구시 염산 일대를 포함한 지역이다. ㅡ


거란


契丹,其先與奚異種同類,俱為慕容氏所破,竄於松漠之地,後居黃龍之北遼澤間。遼澤去榆關一千一百里,榆關去幽州七百里,其地南接海,東際遼河,西包泠陘,北界松陘,山川東西三千里。唐置契丹王兼松漠府都督。光啟中,中原多故,北邊無備,其王欽德稍蠶食,達靼、奚、室韋之屬咸被驅役,族帳寢盛。


거란은 그 선조가 해와 더불어 이류동종으로서 함께 모용씨에게 격파되어 송막에 숨었다가 훗날 황룡의 북쪽 요택 사이에 거주하였다.


(거란이 거주한) 요택은 유관까지 1,100 리 거리이고, 유관에서 유주까지는 700 리 거리이며 그 땅(당나라 말에서 오대 초 기준)은 남쪽으로는 바다와 접하고, 동쪽으로 요하에 닿으며 서쪽은 냉형산이 감싸고 북쪽 경계에는 송형산이 있는데 산천의 동서(가로 넓이)가 3,000 리이다.


당나라가 거란에 거란왕 겸 송막도독을 설치하였다. 광계(당 희종, 862~888) 년간에 중원이 혼란스러워(변고가 많아) 북쪽 변경의 방비가 없었더니 그들의 왕 흠덕이 점점 달단, 해, 실위를 잠식하여 모두 핍박하여서 영역이 성대해졌다.



상경


上京,潢水之北,東際遼河,西包冷陘,南與奚人部落相接,距幽州一千七百里。本鮮卑之地,君長姓大賀氏,有八部,唐貞觀中,諸部咸請內屬,乃置松漠府以居之,賜姓李氏,兼松漠都督。至阿保機,始私立年號,稱大遼國,建所居部落為西樓,有樓數間而巳。後燕人所教,乃為城郭宮室之制,邑屋門皆東向,如軍帳之法。至德光,建為上京,置臨潢府。東至潢水二百一十里,西南至饒州三百里,西至鹽泊八百里。


상경, 황수(현 시라무렌강)의 북쪽, 동쪽으로 요하에 닿으며, 서쪽으로는 냉형이 감싸고 ㅡ 생략 ㅡ



2. 흥중부


興中府,營州地,漢末烏桓鮮卑所居,唐平盧軍節度使泊所,今號興中府。

東至遼河三百里,西至中京三百里,西南至建州六十里,北至湟水四百里舊契丹界,西北至松陘嶺百里,東南至安東都護府二百七十里,號平壤城,東北至白川州七十里。


흥중부는 영주 땅으로 후한 말기에 오환과 선비가 살던 곳이며, 당나라 평로군절도사가 머물던 곳으로 현 명칭은 흥중부이다.


동쪽으로 요하까지 300 리, 서쪽으로 중경까지 300 리, 서남쪽으로 건주까지 60 리, 북쪽으로 거란의 옛 경계(거주지)인 황수(현 시라무렌강)까지 400 리, 서북쪽으로 송형령까지 100 리, 동남쪽으로 평양성인 안동도호부까지 270 리, 동북쪽으로 백천주까지 70 리이다.  


ㅡ 참고 #3 : 흥중부는 본래 패주(霸州)이다. 아래 C항을 참고하라.



3. 해북주


海北州,古城也,在遼河之西,滄海之北,阿保機建為州。東至錦州八十里,南至海百二十里,西北至中京五百三十里。


해북주는 요하 서쪽, 창해 북쪽에 있는 옛 성으로 아보기가 주를 만들었다.

동쪽으로 금주까지 80 리, 남쪽으로 바다까지 120 리, 서북쪽으로 중경까지 530 리이다.



4. 동경 1


宜州,按《皇華四達記》:營州東北八十里,凡九遞至燕郡城,自燕郡東經汝羅守捉,渡遼州十七驛,至安東都護府,約五百里。今以契丹地圖校,至東京五百二十里。


의주, (가탐의) 황화사달기에 따르면, “영주 동북쪽 80 리, 모두 9 개의 역참을 지나면 연군성에 이른다. 연군성에서 동쪽으로 여라수착성을 경유하여 요주의 17 개 역을 건너면(지나면) 안동도호부에 이르는데 약 500 리이다.”라고 했다. 지금 거란지도와 비교해 보니 동경까지 520 리이다.


東京,即安東都護治所,州城即古之燕郡城是也。本遼之西地,漢魏間烏桓鮮卑所據,在營州之東,契丹置崇儀軍節度。舊有江南水軍,號通吳軍,置營居之。東至醫巫閭山,西至霸州二百里,南至錦州九十里。


동경은 즉 안동도호부의 치소로 주성은 즉 옛 연군성이다. 본래 요(요수로 판단됨)의 서쪽 땅이다. 후한과 조위 사이에 오환과 선비가 거처한 곳으로 영주 동쪽에 있으며 거란이 숭의군 절도를 설치했다. 옛날에 강남수군이 있었는데 통오군이라 했고 영주를 설치하여 거주하게 했다. 동쪽으로 의무려산이 있고, 서쪽으로 패주까지 200 리, 남쪽을 금주까지 90 리이다.


5. 동경 2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秦屬遼東郡,漢屬幽州,唐太宗平高麗,因名所幸山為駐蹕山,山在東北。後為渤海國,契丹建為遼州,得其地為東京。巖州在其東,即李所平白巖州也。《皇華四達記》曰:自安東府東南至平壤城八百里,西南至都里海口約六百里,西北至建安城約三百里,正南微東至鴨綠江北泊約七百里。今以契丹地形圖參校,惟達安城不知處所,其他地形遠近率同也。東至熟女真界約五百里,西至遼河百五十里,又八百八十里至中京,西六十里至鶴柱館,又九十里至遼水館,又七十里至閭山館,在醫巫閭山中,又九十里至獨山館,又六十里至唐葉館,又五十里至乾州;微北六十里至楊家寨館,又五十里至遼州;北六十里至宜州,又百里至牛心山館,在牛心山北中,又六十里至霸州,又七十里至建安館,又五十里至富水、會安至中京三驛程,各去七十里;南至平州五十里,自平州至幽州五百五十里;北至沈州百二十里;東南至鴨綠水九百里;西南至錦州四百里;東北至黃龍府七百里;西北至顯州三百里。


동경은 요동의 안시성이다. 성의 동쪽에는 즉 대요하가 있고, 성의 서쪽에는 즉 소요하가 있다. 진나라 때에는 요동군에 속했고, 전한 때에는 유주에 속했으며 당 태종이 고구려를 평정할 때에 산에 가서 머무른(駐蹕) 것에서 말미암아 이름을 얻은 주필산이 있는데 (그)산은 (동경의) 동북쪽에 있다. 후에 발해국이 되었고(발해 땅이 되었고), 거란을 요주로 두었는데 그(요주) 땅을 얻어 동경으로 삼았다. 암주가 그(동경) 종쪽에 있는데 즉 이세적이 (백암성을) 평정한(하여 만든) 백암주이다.


(가탐의) 황화사달기에서 말하길 “안동도호부 동남쪽으로 평양성까지 800 리이고, (안동도호부) 서남쪽으로 도리해구까지 600 리이며 (안동도호부) 서북쪽으로 건안성까지 약 300 리, (안동도호부) 정남향에서 살짝 동쪽으로 치우친 방향으로 압록강 북쪽 박작성(박작구)까지 700 리”라 했다. 지금 거란지형도를 참고하여 (가탐의 황화사달기와) 비교해 보니 성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장소는 알기 어려우나 그 지형의 멀고 가까움을 겹쳐보니 대략 동일하다.


(동경에서) 동쪽으로 숙여진 경계까지 약 500 리이며, 서쪽으로 요하까지 150 리, 다시 880 리를 가면 중경에 이르는데ㅡ


(동경에서) 서쪽으로 60 리에 학주관, 다시 90 리에 요수관, 다시 70 리에 의무려 산중에 있는 여산관, 다시 90 리에 독산관, 다시 다시 60 리에 당여관, 다시 50 리에 건주,


(건주에서) 북쪽으로 살짝 치우친 방향(서서북)으로 60 리에 양가새관, 다시 50 리에 요(서)주,


(요서주에서) 북쪽으로 60 리에 의주, 다시 100 리에 우심산 북쪽 산중에 있는 우심관, 다시 60 리에 패주, 다시 70 리에 건안관, 다시 50 리에 부수, (부수가) 중경에 이르는 3 개의 역참을 감싸 흐르는데 (그 역참은) 각각 거리가 70 리,


(부수에서) 남쪽으로 평주까지 50 리, 평주에서 유주까지 550 리,


(동경에서) 북쪽으로 심주까지 120 리,


(동경에서) 동남쪽으로 압록수까지 900 리,


(동경에서) 서남쪽으로 금주까지 400 리,


(동경에서) 동북쪽으로 황룡부까지 900 리,


(동경에서) 서북쪽으로 현주까지 400 리이다.



6. 한주


韓州,在三韓之地,本州海西北邊之邑,舊有三州,契丹並為韓州。東北至生女真界,西北至惠州九十里,西至遼河六十里,南至通八十里。


한주는 삼한의 땅에 있는데 본래의 주는 해(정확히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 하겠다) 서북변의 마을로  옛날에는 3 개의 주가 있었는데 거란이 병합하여 한주로 삼았다. 동북쪽으로 생여진계가 있고, 서북쪽으로 혜주까지 90 리, 서쪽으로 요하까지 60 리, 남쪽으로 통(통주로 보인다)까지 80 리이다.


新州,本契丹國之地,東至微州二百里,北至永州三百七十里,西至惠州百三十里,南至霸州三百里。


신주는 본래 거란국의 땅으로 동쪽으로 미주까지 200 리, 북쪽으로 영주까지 370 리, 서쪽으로 혜주까지 130 리, 남쪽으로 패주까지 300 리이다.


惠州,阿保機所建,在鮮卑之地。宋景德中,初契丹入寇河北,德清軍失守,俘虜人民於此,置城居之。城方二里,至低小,城內有瓦舍倉廩,人多漢服。東至新州百三十里,西南至中京百二十里,南至建州二百三十里,北至漢水石橋,至高州百五十里。


혜주는 아보기가 만들었는데 선비의 땅에 있다. 송 경덕 년간(진종, 1004~1007) 초에 거란이 하북지역에 침입하여 덕청군이 둔영을 잃었는데 (그 때 거란이) 사로잡은 포로를 이곳에 민호로 삼고 성을 설치하여 그곳에 살게 하였다. 땅 둘레가 2 리(약 800 미터) 로 지극히 낮고 협소하며 성내에 기와집과 곳간이 있고 사람들은 (겨우? 많이?) 중국인 차림새를 하고 있다. 동쪽으로 신주까지 130 리, 서남쪽으로 중경까지 120 리, 남쪽으로 건주까지 230 리, 북쪽으로 황수석교에 이르고, 고주까지 150 리이다.


通州,夫餘國,在高勾麗北,本貊之地,其國長城之北,西與鮮卑接,地方二千里,後為渤海國。阿保機平之,為東丹王國,今改為通州,仍名曰夫餘府。


통주, 부여국으로 고구려 북쪽에 있으며 본래 맥족의 땅이며 그 나라(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었)고 서쪽으로 선비와 접했으며 지방 2,000 리였는데 훗날 발해 땅이 되었다. 아보기가 발해를 평정하고 동단왕국을 세웠는데 지금은 통주로 고치고 부여부에 속하게 했다.



7. 강성주


降聖州,契丹國舊地,東至遼河,西至野狐山,東南至暉州三十里,南至平頂山,北至龍化州五十里。

강성주, 거란국의 옛땅으로, 동쪽을 요하에 이르고, 서쪽으로 야호산에 이르며, 동남쪽으로 휘주가 30 리, 남쪽으로 평정산에 이르고, 북쪽으로 용화주가 50 리이다.


龍化州,州在木葉山東千里,阿保機始置四樓,此即東樓也。會病卒,葬於西南山,即今祖州也。以所卒之地置州,曰龍化,即此州也。東至泉州二十里,西至降聖州五十里,西南至新州四十里,南至遂州二百里,北至夢送河五十里。


용화주, 목엽산 동쪽 천리에 있으며 야율아보기가 처음으로 4 개의 루를 설치하였으나 (그 가운데에) 이곳은 곧 동쪽 루이다. 병을 얻어 죽었는데 서남산(조산)에서 장사 지냈으니 지금의 조주이다. (태조가) 죽은 곳인 까닭에 주를 설치하고 이름을 용화(야율아보기는 죽어서 용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동명왕 신화를 본받아 신격화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쪽으로 천주가 20 리, 서쪽으로 강성주까지 50 리, 서남쪽으로 신주까지 40 리, 남쪽으로 수주(대주)까지 200 리, 북쪽으로 몽송하까지 50 리이다.


暉州,胡中呼為暉州、祿州、穆州,並曰於越王城。耶律遜寧者,虜中大將也,蕃語謂之越王,不知創立之因。東至宗州,西至紫蒙川,南至酒糟河,北至潢水。


휘주는 오랑캐(거란을 가리킴) 사이에서 부르기를, 휘주, 녹주, 목주를 아울러 일컫는 것으로 월왕성에 종속되어 있다.  야율손령(야율휴가, ?~998, 거란의 명장)라는 자는 오랑캐(거란) 가운데에 대장으로, 오랑캐(거란) 말로 이르기를 월왕이라 하는데 (월왕성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창립)졌는지 알지 못 한다. 동쪽으로 종주, 서쪽으로 자몽주, 남쪽으로 주조하, 북쪽으로 황수(현 시라무렌강)에 이른다.




B. 요수(遼水)를 키워드로



1. 동경 2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秦屬遼東郡,漢屬幽州,唐太宗平高麗,因名所幸山為駐蹕山,山在東北。後為渤海國,契丹建為遼州,得其地為東京。巖州在其東,即李所平白巖州也。《皇華四達記》曰:自安東府東南至平壤城八百里,西南至都里海口約六百里,西北至建安城約三百里,正南微東至鴨綠江北泊約七百里。今以契丹地形圖參校,惟達安城不知處所,其他地形遠近率同也。東至熟女真界約五百里,西至遼河百五十里,又八百八十里至中京,西六十里至鶴柱館,又九十里至遼水館,又七十里至閭山館,在醫巫閭山中,又九十里至獨山館,又六十里至唐葉館,又五十里至乾州;微北六十里至楊家寨館,又五十里至遼州;北六十里至宜州,又百里至牛心山館,在牛心山北中,又六十里至霸州,又七十里至建安館,又五十里至富水、會安至中京三驛程,各去七十里;南至平州五十里,自平州至幽州五百五十里;北至沈州百二十里;東南至鴨綠水九百里;西南至錦州四百里;東北至黃龍府七百里;西北至顯州三百里。


동경은 요동의 안시성이다. 성의 동쪽에는 즉 대요하가 있고, 성의 서쪽에는 즉 소요하가 있다. ㅡ 생략 ㅡ (동경에서) 서쪽으로 요하까지 150 리이다. ㅡ 생략 ㅡ (동경에서) 서쪽으로 학주관까지 60 리, 다시 요수관까지 90 리 ㅡ 하략.



2. 심주


沈州,德光所建,仍曰昭德軍,契丹舊地也。東至大遼水,水東即女真界,西南至東京百三十里,北至雙州八十里。


심주는 야율덕광(거란 태종)이 건립한 것으로 소덕군을 두었으며 거란의 옛땅이다. 동쪽으로 대요수에 이르고, 대요수의 동쪽은 즉 여진계(구역)이며, (심주에서) 서남쪽으로 동경까지 130 리에 이르고, (심주에서) 북쪽으로 쌍주까지 80 리에 이른다.


雙州,契丹號保安軍,有通吳軍營壘。東至逆流河二里,入生女真界,西至遼州七十里,南至沈州七十里,北至渝州百二十里。


쌍주는 거란이 보안군을 두었고 통오군의 보루가 있다. 동쪽으로 역류하까지 2 리이고 (역류하는) 생여진계로 들어가며 (쌍주에서) 서쪽으로 요주까지 70 리, (쌍주에서) 남쪽으로 심주까지 70 리, (쌍주에서) 북쪽으로 유주까지 120 리이다.

銀州,阿保機所建,女真國舊地。東至逆流河五里,入生女真界,西至雙州七十里,南至東京三百里,北至渤海州六十里。


은주는 야율아보기가 건립했는데 여진국의 옛땅이다. 동쪽으로 역류하까지 5 리인데 (역류하는) 생여진계로 들어가며 (은주에서) 서쪽으로 쌍주까지 70 리, 남쪽으로 동경까지 300 리, 북쪽으로 발해주까지 60 리이다.


同州,阿保機所建,仍曰鎮安軍,契丹舊地。東至生女真界,西南至東京二百里,西北至雙州七十里,東北至集州七十里。


동주는 야율아보기가 건립했는데 진안군을 두었고 거란의 옛땅이다. 동쪽으로 생여진계에 이르고, 서남쪽으로 동경까지 200 리, 서북쪽으로 쌍주까지 70 리, 동북쪽으로 집주까지 70 리이다.



3. 종주


宗州,在石熊山之陽,管熊山一縣,古遼東之地。東至遼水,南至顯州一百里,北至潢水。


종주는 석웅산 남쪽에 있는데 관할현이 웅산현 하나이고, 옛 요동의 땅이다. 동쪽으로 요수에 이르고, 남쪽으로 현주까지 100 리, 북쪽으로 황수에 이른다.



4. 십삼산


十三山,北醫巫閭山,南距大海,東至東京,西小遼水。


십삼산, 북쪽으로 의무려산이 있고, 남쪽으로 큰 바다가 떨어져 있고, 동쪽으로 동경, 서쪽으로 소요수가 있다.



5. 요수


遼水,在漢樂浪玄荒之地,東西四百八十里。《水經》云:大遼水源出靺鞨國西南山,南流會白槍水,至安市城。今號東京小遼水,源出遼山西南。流與天梁水會,在國西也。


요수는 동서 480 리 전한 낙랑군의 거친 땅에 있다. 수경에서 이르기를, 대요수가 말갈국 서남산/말갈국의 서남쪽 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백창수(백추수)와 모여 안시성에 이른다고 했다. 지금의 이름은 동경 소요수로 ① 요산의 서남쪽에서 발원한다. 천량수와 더불어 흘러 그 땅(동경)의 서쪽에서 모인다.  ② 요산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천량수와 더불어 모이는데 (요수는) 그 땅(동경)의 서쪽에 있다.


ㅡ 참고 #4 : “今號東京小遼水,源出遼山西南。流與天梁水會,在國西也。”은 현대 중국인들이 2 개의 문장으로 끊어 놓은 것인데 본래는 1 문장이어야 문맥에 맞다. 따라서 ①  해석이 합당하다.




C. 패주(霸州)를 키워드로



1. 리주


利州,虜承天后所建,東至建州百二十里,東北至建州百一十里,西南至蘭州六十里,南小凌河路至平州五十里,西北至中京百五十里。


리주는 오랑캐(거란)의 승천황후(성종의 어머니, 953~1009)가 건립하였는데 동쪽으로 건주까지 120 리, 동북쪽으로 건주까지 110 리, 서남쪽으로 난주까지 60 리, 남쪽 소릉하로를 통해(/남쪽의 소릉하로에서) 평주까지 50 리, 서북쪽으로 중경까지 150 리이다.



2. 건주


建州,胡中地,今號保靜軍節度,本遼西之地,德光立為州。嗣王即位契丹號穆宗三關之地復為周世宗所取,時江南諸國欲牽制中原,遣使齎金幣泛海至契丹國,乞出師南牧,卒不能用其謀,入蕃人使舟楫水師悉留之,建州、雙州、霸州並置營居之,號通吳軍。東南至器仗山三十里,東北至霸州九十里,南至渝州五十里,西南至小凌河十里。


건주는 오랑캐 가운데 땅으로 지금은 보정군 절도를 두었고, 본래 요서(군)의 땅으로 야율덕광(거란 태종)이 건립했다. ㅡ 해석 생략 ㅡ 동남쪽으로 기장산까지 30 리, 동북쪽으로 패주까지 90 리, 남쪽으로 유주까지 50 리, 서남쪽으로 소릉하까지 10 리이다.



3. 신주


新州,本契丹國之地,東至微州二百里,北至永州三百七十里,西至惠州百三十里,南至霸州三百里。


신주는 본래 거란국의 땅으로 동쪽으로 미주까지 200 리, 북쪽으로 영주까지 370 리, 서쪽으로 혜주까지 130 리, 남쪽으로 패주까지 300 리이다.



4. 백천주


白川州,築城在遼澤之中,東距醫巫閭山,西至營州地。宜桑柘,民知織之利,歲奉中國幣帛,多書白川州稅戶所輸雲。東至黔州七十里,西至中京四百三十里,東南至宜州百里,西南至霸州七十里。


백천주는 요택 가운데에 성을 쌓았는데 동쪽으로는 의무려산이 떨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영주(흥중부를 가리킴) 땅이다.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마땅함이 있고, 백성들이 옷감 짜는 이로움을 알아서 매해 중국에 비단을 바쳤으며 많은 책을 백천주의 집집마다 세금으로 보내게 했다(의역, 비단과 책을 생산하였다는 의미). 동쪽으로 검주까지 70 리이고, 서쪽으로 중경까지 430 리, 동남쪽으로 의주까지 100 리, 서남쪽으로 패주까지 70 리이다.


黔州,虜王耶律德光初置,東北至望海峰五十里,東至顯州五十里,東南至梁家務六十里,北至閭山縣六十里。


검주는 오랑캐(거란) 왕 야율덕광(거란 태종)이 처음 설치했는데 동북쪽으로 망해봉까지 50 리, 동쪽으로 현주까지 50 리, 동남쪽으로 양가무까지 60 리, 북쪽으로 여산현까지 60 리이다.



5. 의주와 동경 1


宜州,按《皇華四達記》:營州東北八十里,凡九遞至燕郡城,自燕郡東經汝羅守捉,渡遼州十七驛,至安東都護府,約五百里。今以契丹地圖校,至東京五百二十里。


의주, (가탐의) 황화사달기에 따르면, “영주 동북쪽 80 리, 모두 9 개의 역참을 지나면 연군성에 이른다. 연군성에서 동쪽으로 여라수착성을 경유하여 요주의 17 개 역을 건너면(지나면) 안동도호부에 이르는데 약 500 리이다.”라고 했다. 지금 거란지도와 비교해 보니 동경까지 520 리이다.


東京,即安東都護治所,州城即古之燕郡城是也。本遼之西地,漢魏間烏桓鮮卑所據,在營州之東,契丹置崇儀軍節度。舊有江南水軍,號通吳軍,置營居之。東至醫巫閭山,西至霸州二百里,南至錦州九十里。


동경(동경 1)은 즉 안동도호부의 치소로 주성은 즉 옛 연군성이다. 본래 요(요수로 판단됨)의 서쪽 땅이다. 후한과 조위 사이에 오환과 선비가 거처한 곳으로 영주 동쪽에 있으며 거란이 숭의군 절도를 설치했다. 옛날에 강남수군이 있었는데 통오군이라 했고 영주를 설치하여 거주하게 했다. 동쪽으로 의무려산이 있고, 서쪽으로 패주까지 200 리, 남쪽을 금주까지 90 리이다.



6. 동경 2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秦屬遼東郡,漢屬幽州,唐太宗平高麗,因名所幸山為駐蹕山,山在東北。後為渤海國,契丹建為遼州,得其地為東京。巖州在其東,即李所平白巖州也。《皇華四達記》曰:自安東府東南至平壤城八百里,西南至都里海口約六百里,西北至建安城約三百里,正南微東至鴨綠江北泊約七百里。今以契丹地形圖參校,惟達安城不知處所,其他地形遠近率同也。東至熟女真界約五百里,西至遼河百五十里,又八百八十里至中京,西六十里至鶴柱館,又九十里至遼水館,又七十里至閭山館,在醫巫閭山中,又九十里至獨山館,又六十里至唐葉館,又五十里至乾州;微北六十里至楊家寨館,又五十里至遼州;北六十里至宜州,又百里至牛心山館,在牛心山北中,又六十里至霸州,又七十里至建安館,又五十里至富水、會安至中京三驛程,各去七十里;南至平州五十里,自平州至幽州五百五十里;北至沈州百二十里;東南至鴨綠水九百里;西南至錦州四百里;東北至黃龍府七百里;西北至顯州三百里。


(요주, 즉 요서주에서) 북쪽으로 의주까지 60 리, 다시 우심산 가운데에 있는 우심산관까지 100 리, 다시 패주까지 60리



7. 엄주


嚴州,柳城之南,古遼西之地,阿保機建為州。東至錦州百七十里,南至海四十里,北至霸州二十里。


엄주는 유성의 남쪽으로 옛 요서(군)의 땅이며 야율아보기가 주를 건립했다. 동쪽으로 금주까지 170 리, 남쪽으로 바다까지 40 리, 북쪽으로 패주까지 20 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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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9-03-25 21:06
   
감방친구 19-03-25 21:55
   
우선적으로 요약하여 말하면, 무경총요 북번지리에서 말하는 거란의 요하와 요수는 다음 2 곳이다.

① 현 대릉하 하류
ㅡ 금주시 의현과 금주시 현급시인 릉해시를 지나 바다로 들어가는 물줄기

② 서요하~요하

위 2 개의 강을 요수, 요하, 소요수, 대요수, 소요하, 대요하 등으로 가리키고 있다.
감방친구 19-03-26 00:16
   
거란 동경도와 동경의 연혁에 대하여 요사와 무경총요, 금사, 고려사에 기록된 사실만으로써 그 전말을 요약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① 거란은 처음 발해의 동평부를 공격해 차지하여 요주 동평군을 두었다.
② 발해는 이 요주 동평군을 습격하여 다시 되찾고자 했다.
③ 거란은 926년 현 장춘시와 사평시 일대에 있었던 발해의 부여부를 공략하고 이어 발해의 왕성인 홀한성을 쳐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단국을 세웠으며, 발해의 홀한성을 천복성이라 고쳐 이름하였다.
④ 발해 각지의 반란이 계속되고 발해인들이 고려와 여진으로 달아나 나라를 유지하기 어려워 동단국의 수도를 요나라 동평군 지역으로 옮겼고, 그밖의 발해인들을 현재의 태자하인 량수 일대로 사민하였다.
⑤ 이어 동단국의 호적에 등재되어 있는 여진은 숙여진이라 하고, 등재되어 있지 않은 여진을 생여진으로 구분하였다.
⑥ 숙여진과 생여진의 거주지는 크게 동요하와 남송화강을 경계로 하였다.
⑦ 숙여진 지역에는 모두 18 주를 설치했는데 요주(耀州), □빈주(□賓州), 해주(海州), 동주(銅州)., 교주(教州), 숭주(崇州), 흥주(興州), 형주(荊州), 하주(荷州), 조주(朝州), 로주(盧州), 빈주(賓州), 우주(郵州), 철주(鐵州), 정리주(定理州), 회북주(懷北州), 록주(麓州), 광주(廣州) 등이다.
⑧ 이들 주는 모두 현 사평시 일대에서 그 남쪽으로 현 요동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위치하였다.
⑨ 고려는 왕건 시대부터 꾸준히 발해인을 받아들이며 북진을 하여서 광종 때에는 거랑 동경 남쪽 근처까지 진출하였고 성종 때에는 압록강 안팎의 여진족들을 모두 소개시켜 정지작업을 완료하였다.
⑩ 승천황태후가 섭정한, 당시 거란 성종은 993년 고려를 침략하여 강화협정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고려가 거란에 입조하는 것과 압록강 동쪽 수백 리의 소위 강동 6주를 고려에 할양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거란이 고려에 할양한 이 지역은 실제로는 거란이 차지하고 있던 땅이 아니라 거란의 986년 여진(실제로는 정안국) 정벌 이후에도 잔존해 있던 여진족들이 활거하던 곳이다.
⑪ 거란은 1010년에 2차 침략을 하여 오는데 이 때의 침략 목적은 실질적으로 강동6주를 빼앗는 것이었다.
⑫ 그 이후 거란이 멸망하기까지 100여 년을 넘게 거란과 고려를 크고 작은 군사 행동과 외교 방면으로서 대치하는데 그 이유는, 고려 측의 이유는 "승천황태후가 약속한 고려의 땅인 학야현(동경 서쪽 60리)의 강 동쪽부터 고려의 땅으로 보장해주겠다 했고, 강동 6주는 고려에 할양한 것인데 학야현 방면의 땅은 왜 빼앗아 가서 돌려주지 않으며 강동 6주는 왜 계속 돌려달라 요구하느냐"이고, 거란 측의 요구는 "강동 6주를 돌려달라"이다
감방친구 19-03-26 00:23
   
본인이 거듭하여 온 주장은 이러하다.

① 요사 지리지 동경도가 기술하고 있는 거란 동경도의 실질 영역은 동요하와 현 태자하 안팎이 동한계이며 이 지역을 경계로 남쪽으로 고려, 북쪽으로는 여진과 접했다. (이는 중국역사지도집을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역사지도집에서는 거란 동경도의 영역을 기존 발해영역으로 크게 잡아놓고서 실제 행정구역은 현 압록강과 현 동요하 사이가 다이다. 나와의 차이점은 그 남한계가 현 압록강이 아니라 현 태자하 안팎이라는 것이다.)

② 고려의 강동 6주는 현 동요하의 중상류, 혼하의 상류, 태자하의 상류 일대이다.

③ 거란의 동경은 993년 이후에 현 요양시 일대로 이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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