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선사람들이 만주로 유입되기 전까지는 만주에는 벼농사라는 거 자체가 없었죠.
그전까지는 압록강 이남 평안북도까지가 벼농사 한계선이였음.
만주의 조선족 농부들
까레이스키(고려인)들은 만주보다 더 멀리 더 고위도로 벼농사 한계선을 끌어올렸고,
흑해연안의 칼미크 공화국에까지 벼농사를 확산시켰음.
위 역사는 명확한 실존이고 진실인데,
신석기 시대에 만주를 거처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고위도에서 저위도로 거꾸로 이동했다고라고라?
잠자는 볍씨를 정상적인 발아온도보다 일찍 깨워서 이른봄에 싹을 틔우는 기술이 없으면,
한반도나 만주같은 4계절 기후가 있는 북위도에서는 벼농사를 지을 수 없읍니다.
신석기 시대에 인도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이동된 경로는 인도에서 동남아를 거처서
중국동부 해안에서 한반도 변산반도로 흐르는 서해 해류를 타고 한반도까지 왔다는 게 옳다고 봄.
신석기 시대에는 지구가 거꾸로 돌아서 서해 해류방향이 거꾸로였다면 모를까....
그 신석기 농부들은 중국인 조상이 아니라,
그들보다 일찍 벼농사 기술을 갖춘 인디아 드라비아인들이 주축으로 이동했기에,
우리의 벼농사 용어들이 드라비다어와 닮은 이유죠.
조선족과 고려인들의 예로 보듯이,
신석기 시대에도 볍씨가 이동한 게 아니라, 수천년에 걸처서 농부가 이동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