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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14 22:18
[기타] 후한 요동속국 위치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390  

https://kahistory.blog.me/110083773626

후한서 공손찬전 지명분석                  


   [후한서] 공손찬전에는 都亭侯(도정후)이자 遼東屬國長史(요동속국장사) 공손찬이 오환들과 전투를 한 지명들이 다수 나오는데 이 지명들을 분석해 보았다. 


1.   [후한서] 공손찬전 『公孫瓚字伯珪 遼西令支人也. 家世二千石...(중략)...瓚還郡 舉孝廉 除遼東屬國長史. 嘗從數十騎出行塞下 卒逢鮮卑數百騎. 瓚乃退入空亭 約其從者曰 「今不奔之 則死盡矣」 乃自持兩刃矛 馳出衝賊 殺傷數十人 瓚左右亦亡其半 遂得免. 中平中 以瓚督烏桓突騎 車騎將軍張溫討涼州賊[1]. 會烏桓反畔 與賊張純等攻擊薊中 瓚率所領追討純等有功 遷騎都尉. 張純復與畔胡丘力居等寇漁陽河閒勃海 入平原 多所殺略. 瓚追擊戰於屬國石門[2] 虜遂大敗 棄妻子踰塞走 悉得其所略男女. 瓚深入無繼 反為丘力居等所圍於遼西管子城 二百餘日 糧盡食馬 馬盡煮弩楯 力戰不敵 乃與士卒辭訣 各分散還. 時多雨雪 隊阬死者十五六 虜亦飢困 遠走柳城. 詔拜瓚降虜校尉 封都亭侯 復兼領屬國長史. 職統戎馬 連接邊寇. 每聞有警 瓚輒厲色憤怒 如赴讎敵 望塵奔逐 或繼之以夜戰. 虜識瓚聲 憚其勇 莫敢抗犯. [1]賊即邊章等. [2]石門 山名 在今營州柳城縣西南』 


   요동속국 장사로 있으면서 반군 및 오환과 전투를 하는데 오환이 침입한 지역은 어양, 하간, 발해, 평원 등지이고, 공손찬과 전투를 한 전장지명으로는 薊中(계중), 석문(유성), 요서관자성, 적이 달아난 곳으로는 새외(장성바깥)와 유성이 있다.


   침입지 어양은 겉보기로 북경 동쪽이고, 하간은 천진 서남방이다. 발해는 천진 남방이고, 평원은 산동성 서북이다. 전장지명 계중은 탁주 계현이고, 석문은 유성의 산이름으로 하간의 북에 있다. 요서 관자성은 불명이다. 「遠走柳城」이라고 ‘遠’자를 쓴 것도 지금의 요하를 상정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2.  『瓚常與善射之士數十人 皆乘白馬 以為左右翼 自號 「白馬義從」. 烏桓更相告語 避白馬長史. 乃畫作瓚形 馳騎射之 中者咸稱萬歲. 虜自此之後 遂遠竄塞外. 瓚志埽滅烏桓 而劉虞欲以恩信招降 由是與虞相忤. 初平二年 青徐黃巾三十萬眾入勃海界 欲與黑山合. 瓚率步騎二萬人 逆擊於東光南 大破之[1] 斬首三萬餘級. 賊棄其車重數萬兩 奔走度河. 瓚因其半濟薄之 賊復大破 死者數萬 流血丹水 收得生口七萬餘人 車甲財物不可勝筭 威名大震. 拜奮武將軍 封薊侯. [1]東光 今滄州縣』


  서주와 청주의 황건적이 발해(천진남방) 界로 진입할 때 동광의 남에서 싸워 대승하여 薊侯(계후)에 봉해졌다 한다. 봉작된 지명 역시 계인데 임지가 계이기 때문이다. 즉 산동성 방면의 황건적이 황하 하류를 북으로 건너 발해 방면으로 침공할 때 발해군 동광의 남에서 싸워 이겼다는 뜻이다.


3.  『紹懼 乃以所佩勃海太守印綬授瓚從弟範 遣之郡 欲以相結. 而範遂背紹 領勃海兵以助瓚. 瓚乃自署其將帥為青冀兗三州刺史 又悉置郡縣守令 與紹大戰於界橋[1]. 瓚軍敗還薊. 紹遣將崔巨業將兵數萬攻圍故安不下 退軍南還. 瓚將步騎三萬人追擊於巨馬水[2] 大破其眾 死者七八千[人]. 乘勝而南 攻下郡縣 遂至平原 乃遣其青州刺史田揩據有齊地. 紹復遣兵數萬與揩連戰二年 糧食並盡 士卒疲困 互掠百姓 野無青草[3]. 紹乃遣子譚為青州刺史 揩與戰 敗退還. 是歲 瓚破禽劉虞 盡有幽州之地 猛志益盛. 前此有童謠曰 「燕南垂 趙北際 中央不合大如礪 唯有此中可避世」 瓚自以為易地當之 遂徙鎮焉[4]. 乃盛修營壘 樓觀數十 臨易河 通遼海. [1]橋名 解見獻帝紀. [2]水在幽州歸義縣界 自易州遒縣界流入. [3]左傳齊侯伐魯 語展喜曰 室如懸罄 野無青草 何恃而不恐? [4]前書易縣屬涿郡 續漢志曰屬河閒. 瓚所居易京故城在今幽州歸義縣南十八里』 주[1]헌제 초평3년 정월조 「袁紹及公孫瓚戰于界橋[1] 瓚軍大敗. [1]今貝州宗城縣東有古界城 近枯漳水 則界橋在此也」


     원소군과 界(계)의 다리에서 싸웠으나 져서 薊로 돌아갔다 하는데 임지가 薊이기 때문이다. 다시 고안과 거마수에서도 싸워 크게 이겼고 승세를 타고 평원까지 갔다 한다. 


    고안은 북경 남쪽이고, 거마수는 북경의 서남이며 평원은 산동성 서북방이다.


    그 해 찬은 유우를 깨뜨려 사로잡고 유주땅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한다. 북경 서남의 역으로 진을 옮겨 성을 튼튼히 하여 역경으로 불리고, 역하에 임하고 요해로 통했다 한다.


    역하도 북경 서남이고 요해는 천진앞바다 즉 지금의 발해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금의 요동만 정도로 보기 십상이다.


 4.  『劉虞從事漁陽鮮于輔等 合率州兵 欲共報瓚. 輔以燕國閻柔素有恩信 推為烏桓司馬. 柔招誘胡漢數萬人 與瓚所置漁陽太守鄒丹戰于潞北 斬丹等四千餘級. 烏桓峭王感虞恩德 率種人及鮮卑七千餘騎 共輔南迎虞子和 與袁紹將麴義合兵十萬 共攻瓚. 興平二年 破瓚於鮑丘[1] 斬首二萬餘級. 瓚遂保易京 開置屯田 稍得自支. 相持歲餘 麴義軍糧盡 士卒飢困 餘眾數千人退走. 瓚徼破之 盡得其車重. [1]鮑丘 水名也 又名路水 在今幽州漁陽縣』 


   그 후 원소와 오환의 연합군이 공손찬이 둔 어양태수와 북경 동쪽 어양군 노의 북에서 싸워 이기고 다시 북경 북 포구에서 공손찬과 싸워 대파하자 찬은 역경으로 달아나 지키다가 적의 군량이 다하는 틈을 타 격파하였다 한다.


   노는 북경 동쪽의 어양군 지명이고 포구는 북경 북쪽이다.    


   [후한서] 군국지 발해군조 『勃海郡高帝置 雒陽北千六百里 八城 戶十三萬二千三百八十九 口百一十萬六千五百 南皮 高城侯國 重合侯國 浮陽侯國 東光[1] 武 陽信延光元年復 脩故屬信都. [1]有胡蘇亭 胡蘇河之名見爾雅』  


   남피와 동광이 보인다.


   同 탁군조 『涿郡高帝置 雒陽東北千八百里 七城 戶十萬二千二百一十八 口六十三萬三千七百五十四 涿 迺侯國[1] 故安易水出 雹水出[2] 范陽侯國 良鄉 北新城有汾水門[3] 方城故屬廣陽 有臨鄉[4] 有督[亢]亭[5]. [1]史記漢武帝至鳴澤 服虔曰在縣北界 [2]案本紀 永元十五年復置縣鐵官 [3]史記曰 趙與燕汾門 [4]故縣 後省 惠文王與燕臨樂 [5]劉向別錄曰 督亢 膏腴之地 史記荊軻奉督亢圖入秦』 


   고안과 역수가 있다.


    同 광양군 『廣陽郡高帝置 為燕國 昭帝更名為郡 世祖省并上谷 永(平)[元]八年復 五城 戶四萬四千五百五十 口二十八萬六百 薊本燕國 刺史治[1] 廣陽 昌平故屬上谷 軍都故屬上谷 安次故屬勃海. [1]漢官曰 雒陽東北二千里』 


    낙양에서 2천 리 되는 계가 있는데 이곳은 천진시 북단 계현으로 공손찬의 임지 계와는 다르다. 공손찬이 주재하던 계는 낙양에서 1,800리라는 탁주의 계성으로 전국시대 연의 수도였다. 연국이라 하는데 전국시대 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요동속국 같은 군현이다.   


    同 어양군조 『漁陽郡秦置 雒陽東北二千里 九城 戶六萬八千四百五十六 口四十三萬五千七百四十 漁陽有鐵 狐奴 潞 雍奴 泉州有鐵 平谷 安樂 傂奚 獷平』 


    어양과 노가 있다. 북경시내 동쪽에 지금도 평곡이 있어 어양군은 대체로 북경의 동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양은 원래의 요동(북경)과 현도(북경동북200리)를 덮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옹노와 천주는 천진시 서북으로 자주 나타난다.

   공손찬의 근거지였던 요동속국은 [후한서] 군국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遼東屬國故邯鄉 西部都尉 安帝時以為屬國都尉 別領六城 雒陽東北三千二百六十里 昌遼故天遼 故屬遼西[1] 賓徒故屬遼西 徒河故屬遼西 無慮有醫無慮山 險瀆[2] 房. [1]何法盛晉書有青城山 [2]史記曰 王險 衛滿所都』


   요동속국은 전한 요서군 속현 셋과 요동군 속현 셋을 각각 떼어 만든 군현이다. 전한 요서군 속현은 ‘故屬遼西(고속요서)’라는 말이 있는데 나머지 셋은 ‘故屬遼東’이라는 뜻이다.


   [후한서] 군국지에 「昌遼故天遼 故屬遼西」라 하는데 [한서] 지리지의 요서군 교려현의 이름이 바뀐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상한 것은 바로 요동속국을 맡아보는 공손찬이 적대세력들과 싸웠다는 전장지명들은 [후한서] 군국지에 기술된 요동속국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군국지에 기술된 위치와 공손찬의 전장지명을 지도로 대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도1 [후한서] 군국지에 따른 요동속국의 위치 

1.jpg

@ 전한 요동군 무려현에 의무려산이 있다 하였고, 험독은 패수의 동쪽에 있다던 준왕과 위만의 도읍지인데 대동강을 패수로 보는 학계의 통설대로 그린 것이다. 창료(천료)는 今창려에 해당한다. 요동속국의 속현 중 세 현의 위치를 지도에서 보면 요동속국의 범위가 난하 하류 동편부터 대동강평양까지에 걸쳐지게 된다. 도대체 이런 군이 언제 있었단 말인가? 한마디로 황당무계한 것이다.


지도2 공손찬과 적대세력들의 활동영역 

2.jpg


@ 今조하가 [수경주] 권14에 나오는 古포구수이며 이 강과 장성의 동쪽 바로 바깥을 흐르는 흑하가 만드는 전복[鮑] 모양의 땅을 鮑丘라고 불렀다. 창주는 발해군의 중심지에 해당한다. 북경 동쪽 평곡은 어양군의 현으로 되어 있어 潞(노)현과 같은 군이다.


   이상하다는 것은 今요하 하류 정도에 있어야 할 공손찬이 하북성 북부에서 산동성까지 다니면서 적대세력들과 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한서] 군국지 주에 따르면 천진시 북단의 광양군 계가 2천 리로 되어 있고, 북경 남쪽 탁군이 1,800리로 되어 있고, 천진시 남방 발해군이 1,600리로 되어 있다. 요동속국은 낙양에서의 거리가 3,260리나 되어 요하의 동서에 걸친 6개 현으로 만들어진 군현이다. 이런 군현의 책임자가 어떻게 임지를 떠나 먼 데까지 와서 적들에 대응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원래 광양군, 탁군, 발해군을 맡고 있던 태수들은 다 어디 갔나? 그리고 공손찬은 어양태수를 직접 임명하기도 한 것 같다[與瓚所置漁陽太守鄒丹戰于潞北].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기록과 지금의 요서 창려, 의무려산 등의 지명은 본래의 요수 기준이 아니고 요하 기준으로 의도적으로 옮겨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창려 인근의 갈석산, 해양, 유관 등도 마찬가지로 옮겨진 것이다. 즉 古요수를 今요하라고 하는 것은 의도적인 위사라는 것이다. 요동에도 옮겨진 지명이 많다.


   실제로 공손찬이 맡고 있는 지역은 영정하 하류 남(전한 요서군 3현)과 북(전한 요동군 3현) 일대였고, 주재하고 있었던 곳이 북경 남쪽 탁주 계현이었기 때문에 계로 돌아갔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후에는 그보다 더 서쪽인 역경에 있었다는 것이다. 유우를 깨뜨리고 유주땅을 전부 차지했다고 할 때의 이 유주의 중심지가 원래 전국시대 연도 (탁주) 계성과 역주였다. 


   공손찬이 맡고 있는 지역이 今요하의 동서에 있었다면 어째서 북경 남이나 서남에 주재할 수 있었을까?


   古요수는 今요하가 아니고 今영정하이기 때문이다.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기록은 적어도 2천 리 이상 동으로 밀어내기하여 기술한 것임을 알고도 남는다. 요동요서와 관련한 모든 사건이 전부 이런 식이다.


   그런데 전공학자들은 왜 이런 간단한 근거와 논리도 모른다는 말인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위의 글은 아래 주소에 있던 것임.


후한 요동속국 위치


2010년 1월 21일 오전 3:15공개조회수 20 1


< http://kr.blog.yahoo.com/kahistory@ymail.com/37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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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이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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