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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04 13:12
[한국사] 수(隋) 임유관(臨渝關, 臨榆關)과 평주(북평군) 연혁 1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180  

수(隋) 임유관(臨渝關, 臨榆關) 추적 05 - 평주 북평군 연혁 외


가. 한서 지리지 유주(幽州) 우북평군

ㅡ 아래에 평주 북평군 연혁과 위치 추적에 필요한 속현만 발췌, 제시한다


1) 석양현(夕陽縣)

철관(鐵官)이 있다. 망(莽)은 석음(夕陰)이라 했다.


2) 려성현(驪成縣), 대게석산(大揭石山)이 려성현의 서남쪽에 있다. 왕망은 게석(揭石)으로 고쳤다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揭의 음은 걸(桀)이라고 했다




나. 한서 지리지 유주(幽州) 요서군(遼西郡)


진(秦)에서 설치하였다.

작은 강들이 48개이고 모두 합쳐 3,416리를 흘러간다. 유주(幽州)에 속한다.

가구수는 72,654이고 인구수는 352,325명이다. 현은 14개이다.


1) 차려현(且慮縣)

ㅡ 고묘(高廟)가 있다. 왕망은 서려(鉏慮)라고 하였다.
2) 해양현(海陽縣)

룡선수(龍鮮水)가 동쪽으로 봉대수(封大水)로 들어간다.

봉대수(封大水)와 완허수(緩虚水)는 모두 남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염관(鹽官)이 있다.
3) 신안평(新安平)

ㅡ 이수(夷水)가 동쪽으로 새(塞) 밖으로 들어간다.
4) 유성현(栁城縣)

ㅡ 마수산(馬首山)이 현의 서남쪽에 있다.

ㅡ 참류수(參栁水)가 북쪽으로 海로 들어간다.

ㅡ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린다.
5) 영지현(令支縣)

ㅡ 고죽성(孤竹城)이 있다

ㅡ 망(莽)은 령씨정(令氏亭)이라고 하였다.

ㅡ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옛 백이국(伯夷國)인데 지금 고죽성(孤竹城)이 있으며 令의 음은 령(鈴)이라 했다.
6) 비여현(肥如縣)

현수(玄水)가 동쪽으로 유수(濡水)로 들어간다.

ㅡ 유수(濡水)는 남쪽으로 해양현(海陽縣)으로 들어간다.

ㅡ 또한 로수(盧水)가 있어 남쪽으로 현수(玄水)로 들어간다.

ㅡ 왕망은 비이(肥而)라고 하였다.

ㅡ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비자(肥子)가 연(燕)으로 달아나니 연(燕)이 이곳에 봉하였다고 했다.
7) 빈종현(賔從縣)

ㅡ 망(莽)은 면무(勉武)라고 하였다.
8) 교려현(交黎縣)

ㅡ 유수(渝水)가 상류에서 새(塞) 밖에서 만나서 남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ㅡ 동부도위(東部都尉)가 다스린다. 왕망은 금로(禽虜)라고 하였다.

ㅡ 應劭(응초)가 말하기를 지금 昌黎(창려)라고 했다.

ㅡ 師古(사고)는 말하기를 渝의 음은 유(喻)라고 했다. 그 아래는 모두 같다.
9) 양락현(陽樂縣)
10) 호소현(狐蘇縣)

ㅡ 당취수(唐就水)가 도하현(徒河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11) 도하현(徒河縣)

ㅡ 망(莽)은 하복(河福)이라 하였다.
12) 문성현(文成縣)

ㅡ 망(莽)은 언로(言虜)라 하였다.
13) 임유현(臨渝縣)

ㅡ 유수(渝水)가 상류에서 백랑수(白狼水)를 받고 동쪽으로 새(塞) 밖으로 들어간다.

ㅡ 또한 후수(侯水)가 있는데 북쪽으로 유수(渝水)로 들어간다.

ㅡ 왕망은 풍덕(馮徳)이라 했다.
14) 류현(絫縣)

ㅡ 하관수(下官水)는 남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ㅡ 또한 갈석수(揭石水)와 빈수(賔水)가 있는데 모두 남쪽으로 하관수(官)로 들어간다.

ㅡ 망(莽)은 선무(選武)라 했다.


# 1 한서 지리지는 유수(渝水)가 임유현과 교려현(交黎縣)을 지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교려현은 동부도위에서 다스린다고 했다. 따라서 한나라(전한) 당시 임유현은 요서군의 동부 지역에 위치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역사지도집에서는 유성현(한서 지리지에서 분명히 유성현은 서부도위에서 다스린다고 기술하고 있음에도 유성현은 현 조양시에 붙박이 하고자 요서군의 동쪽 끝 지역인 조양시에 유성현을 비정하고 있다) 동쪽 인근에 임유현을, 임유현 동쪽 인근에 교려현을 비정해 표시했다. 이러한 비정은 한국 사학계 역시 그대로 따르는, 이른 바 통설이다.  


# 2 한서 지리지에서 갈석산에 언급된 곳은 우북평군 려성현과 요서군 루현이다. 한중 사학계 통설에서는 갈석산을 현 진황도시 창려현-무령현-노룡현 사이의 산으로 고정하여 보고 있다. 그런데 이는 다음의 이유에서 문제가 된다. 만약에 현 창려현의 갈석산이 한나라 당시 우북평군 려성현의 갈석산이자 요서군 루현의 갈석이라 하면 한나라 우북평군이 현 난하, 즉 수경주의 유수(濡水)를 건너 현 창려현 지역까지 영역을 뻗치고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분명히 현 난하를 동서하여 존재한 한나라 요서군 소속의 영지현, 비여현, 해양현 등이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위 시대인 6세기 초의 저술인 수경주의 “유수는 다시 동남쪽으로 류현의 갈석산에 이른다. 류현은 임유현에 흡수됐다 (濡水又東南至絫縣碣石山,文穎曰:碣石在遼西絫縣,王莽之選武也。絫縣並屬臨渝,王莽更臨渝為馮德。)”하는 기술을 무위요 허사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다. 후한서 군국지 요서군


진(秦)에서 설치하였다. 낙양(雒陽)에서 동북쪽으로 3300리 떨어져 있다. 성은 5개이고, 가구수는 14,150이며, 인구수는 81,714명이다.


1) 양락현(陽樂縣)
2) 해양현(海陽縣)
3) 영지현(令支縣)

ㅡ 고죽성(孤竹城)이 있다.

ㅡ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본국이다
4) 비여현(肥如縣)
5) 임유현(臨渝縣)

갈석산(碣石山)이 있는데 편수(編水), 망수(網水), 승수(繩水)가 나오며, 갈석산 위에는 옥이 많고 갈석산 아래에는 푸른 벽(碧)이 많다’고 했다.

ㅡ 수경주(북위, 역도원 편찬, 515년 경 추정)에서 말하기를 ‘(갈석산은) 현(임유현) 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ㅡ 곽박(郭璞, 晋나라, 시인, 276~324년)이 말하기를 ‘혹 우북평군 려성현(驪城縣) 해변에 산(갈석산)이 있다고 한다’고 했다.


# 3 역도원의 주가 아니라 수경에 수록된 <우공택수산지소재>의 기술(碣石山在遼西臨渝縣南水中也)이다. 이 기술에 달린 수경주, 즉 주석은

大禹鑿其石,夾右而納河。秦始皇、漢武帝皆嘗登之,海水西侵,歲月逾甚,而苞其山,故言水中矣。이다


# 4 주석이 없는 원본 《수경》은 전한(前漢) 시대에 상흠(桑欽)이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수서 경적지》(隋書經籍志)에는 작자 미상이라고 하였고,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진(晉)나라의 학자 곽박(郭璞)이 저자라고 하였다. 《통전》(通典)에는 지명의 명칭을 고증한 결과로 후한 순제 이후에 등장한 서적이라고 하였다. 청나라 말기 학자인 양수경(楊守敬)은 수경은 3국 시대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ㅡ 출처 : 위키백과(https://ko.m.wikipedia.org/wiki/%EC%88%98%EA%B2%BD%EC%A3%BC)


# 5 한나라(전한) 때에 요서군의 속현이 14 개에 인구가 352,325명이었는데 불과 1~2세기여 만인 후한 시대에는 소속현이 겨우 5개에 인구가  81,714명으로 확연히 줄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오환을 정벌한 기사에서 “광무제 건무(建武, 서기 25~56년) 년간 이래 북평군 노룡새에서 요서군 유성현으로 가는 길이 끊겨서 오직 작은 산길로 통할 뿐이다”하는 기술이 나온다. (이 대목은 이번 영주와 고구려 서계 추적에서 더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 신나라가 오환에게 장성 밖 경비를 맡기면서 장성 밖이 난장판이 되었고 결국 장성 밖은 오환, 선비 등이 들끓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지경에서 후한은 전한의 영토를 잃고, 요서군의 경우 속현을 줄이거나 교치, 통합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 6 보는 바와 같이 한서 지리지에서는 임유현 조에서 갈석의 언급이 없었던 반면 후한서 군국지에서는 임유현 조에서 갈석을 언급하고 있다. 즉, 갈석산이 있던 루현 옆, 또는 루현 안으로 임유현이 교치된 후에 루현을 임유현이 흡수, 통폐합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요사 지리지와 독사방여기요에서는 각각 우북평군 려성현에 임유현이 흡수됐다거나 임유현에 려성현이 흡수됐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실제 후한서 군국지를 보면 요서군에 임유현은 존재하는 반면 우북평군에는 려성현이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우북평군의 경우 후한서 군국지에는 속현이 4 개에 인구가 53,475 명으로 한서 지리지 상에서 속현이 16 개, 320,780 명이었던 것에서 무지막지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7 또 후한서 군국지 우북평군 속현을 보면 토은현, 서무현, 준미현, 무종현으로 현 하북성 당산시 북서쪽 일대에 해당한다. 즉 후한 시대에 우북평군이 급격히 쪼글아들었고 본래의 우북평군 동부 지역을 요서군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8 이상으로 갈석산이 두 곳이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후한 시대에 요서군과 북평군이 쪼글아들면서 요서군이 북평군의 동부지역을 파고들었다는 것을 또한 확인하였다. 이는 려성현이 임유현으로 통합된 정황에 대한 정황 근거로서 성립한다.


라. 진서 지리지 요서군(遼西郡)


진(秦)에서 설치하였다. 관할하는 현은 3개이고 가구수는 2800이다.


1) 양락현(陽樂縣)
2) 비여현(肥如縣)
3) 해양현(海陽縣)


# 9 한나라(전한) 때에 요서군의 속현이 14 개에 인구가 352,325명이었고 후한 시대에는 속현이 5개에 인구가  81,714명으로 확연히 줄었는데 진(晉)나라 때가 되면 더욱 확연히 줄어서 현은 3 개로, 인구는 가구수 대비 2,800 호로 후한 14,150 호, 전한 72,654 호로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10 후한 요서군에 대비하여 영지는 비여에, 임유는 양락과 해양현에 각각 흡수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흡수, 교치 등의 과정에서 각 현의 치소가 이리저리 움직였음을 역시 짐작할 수 있다.




마. 위서 지형지


평주(平州)

진(晉)에서 설치하였고 비여성(肥如城)에서 다스린다. 다스리는 군은 2개이고 다스리는 현은 5개이다. 가구수는 973이며 인구수는 3,741명이다.


# 11 북위 태무제가 북연을 정벌하면서 수십 만의 백성들을 끌고와서 유주의 여러곳에 배치하였고 평주 지역에도 신창현과 조선현을 설치하여 인구를 증여했음에도 진(晉)나라 시대에 비하여 오히려 줄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개의 군이 설치된 북위 평주 지역의 영역은 현재 대한민국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과 비슷한데 그 거주 인구가 973 가구에 3,741 명이 다이다. 이 말은 북위가 이 넓은 지역을 실질적으로, 제대로 경영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1. 요서군(遼西郡)


진(秦)에서 설치하였다.
다스리는 현은 3개이고 가구수는 537이며 인구수는 1,905명이다.


1) 비여현(肥如縣)

ㅡ 두 한(漢)과 진(晉)에 속했다.

ㅡ 고죽산사(孤竹山祠), 갈석(褐石), 무왕사(武王祠), 영지성(令支城), 황산(黄山), 유하(濡河)가 있다.


2) 양락현(陽樂縣)

ㅡ 두 한(漢)과 진(晉)에 속했다.

ㅡ 진군(真君) 7년(북위 태무제, 446년)에 영지(令支)와 영자(令資)를 병합하여 속하게 하였다.

ㅡ 무력산(武歴山), 복주산(覆舟山), 임유산(林榆山), 태진산(太真山)이 있다.


3) 해양현(海陽縣)

ㅡ 두 한(漢)과 진(晉)에 속했다.

ㅡ 횡산(横山), 신부산(新婦山), 청수(清水)가 있다.

# 12 방위를 기준으로 비여, 양락, 해양현이 서북으로부터 남동으로 3층위를 이루고 있는 형국인데 해양현과 비여현 사이에 양락현이 끼어 있다. 양락현에는 기존 임유현 지역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술에서는 비여현 조에서만 갈석산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한서 지리지 기술 지리 정보와 대조하면 해양현이 동쪽 내륙 지역으로 옮겨졌거나 쫄아붙은 형국을 띤다. 북위 시대 저술인 수경주의 기록을 보면 “위 토지기에 따르면 해양성 서남쪽에 양락성이 있다 《魏土地記》曰:海陽城西南有陽樂城。”, “위 토지기에 따르면 영지성 남쪽 60리에 해양성이 있다 《魏土地記》曰:令支城南六十里有海陽城者也。”고 적고 있다.


# 13 북위 시대, 6세기 초의 기술인 수경주에서는 현 난하에 해당하는 유수(濡水)가 “동남쪽으로 해양현 서쪽을 지나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又東南過海陽縣西,南入于海。)”고 적고 있다. 한서 지리지에서는 해양현 조에서 유수(濡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유수는 그 하류가 전한 시대 대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100여 리 이동하였다. 즉, 진에서 북위에 이르는 시기에 해양현이 난하 하류 동쪽으로 흡수와 통폐합 과정을 거치면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한서 지리지 요서군 비여현 조에서 유수가 남쪽으로 해양현으로 들어간다고 기술하고 있기는 하다. 해양현의 위치가 진나라, 또는 북위 시대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2. 북평군(北平郡)


진(秦)에서 설치하였다.
다스리는 현은 2개이고 가구수는 130이며 인구수는 1,836명이다.


# 14 북위 북평군 기존 요서군의 비여현 지역(북쪽과 북서쪽)에 빌붙어 설치한 것이다. 즉 비여현의 땅을 쪼개서 북평군을 설피하고 북평군 속현으로 신창현과 조선현을 설치했다. 북제에 이르면 조선현과 비여현이 신창현으로 통폐합 되고, 또 비여현 남부 지역으로 해양현을 흡수한다. 특정 현을 없애고 다른 현에 통합시켰다는 것은 그 현이 사라졌다는 의미이자 동시에 지배력을 상실, 영토를 잃었기 때문이다.


1) 조선현(朝鮮縣)

ㅡ 두 한(漢)과 진(晉)에서는 낙랑(樂浪)에 속했으며 후에 폐하였다.

ㅡ 연화(延和) 원년(북위 태무제, 432년)에 조선(朝鮮) 사람을 비여(肥如)로 옮겨 다시 설치하여 속하게 하였다.


2) 신창현(新昌縣)

ㅡ 전한(前漢)에서 탁군(涿郡)에 속하였고 후한(後漢)과 진(晉)에서는 요동군(遼東郡)에 속하였다가 후에 속하였다.

ㅡ 노룡산(盧龍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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