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사진들이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네요.
http://www.museum.go.kr/dryplate/main.do여기의 조선총독부 당시 촬영된 사진들을 보던 중에, '낙랑' 관련해서...
평남 대동 석암리 194호분에서 출토된 버선 유물이 보이는데요.
* 소장품 번호 : 건판010212
* 촬영 연도 : 1931
* 조사자/촬영자 : 오바 쓰네키치(小場恒吉)
이렇게 되어 있네요.
이 고분에서는 각종 중국계 칠기 그릇류, 옥패식, 동경 등이 함께 나왔고 목관묘 입니다.
일단 주류학계 통설인 '낙랑재평양설' 및 해당 유물이 진품이라고 전제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만 이 버선이 여전히 남아서 보존되고 있는지는 확인이 안되네요. (지금은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어딘가에 쳐박혀서 썪고 있을수도...)
이 버선을 가만히 보면 직물로 만들었고, 형태를 보면 끝 부분이 들려올라간 버선코 모양입니다.
궁금해서 한나라 시대 양말(襪子) 유물을 좀 검색해 봤는데, 한국식으로 버선코가 들려 올라간 것은 하나도 없더군요.
한나라때 신발은 신발 끝단이 각진 사각형태라서, 버선코가 들려 올라간 버선을 신으면 한나라식 신발 자체를 신을 수가 없을 것 같더군요.
https://i2.kknews.cc/SIG=3v4aqfa/ctp-vzntr/1521469966105n2r9p80559.jpg
- 한나라 여성용 버선 유물 (끝 부분이 들려 올라간 형태가 아님)
- 위 한나라 여성용 버선과, 함께 나온 신발 유물이 전시된 사천성 성도박물관 전시 사진
https://i1.kknews.cc/SIG=3bugqfd/ctp-vzntr/1521469966147p5sr655706.jpg중국에서는 이런 형태가 당나라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금나라 것도 있고요.
https://kknews.cc/history/28qly2z.html여기 설명을 보면...
주나라에서는 버선이 나온게 없고, 중국에서는 아마 춘추전국시대까지 직물로 버선을 만들어서 신지 않았다고 설명되고 있네요. 대신 가죽으로 만든 것을 신었을 확률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 맨발에 직접 신발을 신었을 거라더군요. 실내에 들어와서 신발을 벗으면 맨발 상태.
아마 춘추전국시대 중국은, 에도시대 일본 사무라이가 맨발로 집안에 들어설 때 같은 느낌의 비주얼 아니었을까 싶네요. (물론 조나라 무령왕의 경우처럼 기마대 육성을 위해 호복을 과감하게 도입했던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함)
그 이후, 직물로 버선을 만들어 신기 시작한게 한나라때 부터라고.
한나라때는 '족의(足衣)'라고 불렀다는 것 같네요.
즉 위의 '평남 대동 석암리 194호분 버선'은 일단 엄청나게 희귀한 유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유물의 형태는, 일반적인 한나라 것이 아니고, 버선코가 들려 올라가서 뾰족한 형태라는 것이고요.
저런 형태는 기마민족들이 승마용 가죽신 모양과 거의 같으므로 아마 그 안에 받쳐서 신기 위해 나온 형태 아닐까 합니다.
즉 호복(胡服) 일습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다시말해서, 저 무덤의 부장품들은 전부 한나라 물건들이고, 또 목곽묘인데...
무덤의 주인공은 한나라 옷이 아니고 호복(胡服)을 입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조선계 사람이라면 당연히 호복(胡服)을 입었겠죠.)
아니면 소수의견처럼, 한군현이 평양일대에 있었던 게 아니라 요동/요서에 있었다면 저 무덤은 북한 주장처럼 최리의 낙랑국 사람일 수도 있고요. (저는 학계 통설인 낙랑재평양설을 더 신빙성이 높다고 보지만, 최종 결론은 아직 안 났다고 보기 때문에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아무튼 저 사람이 고조선계이든, 아니면 중국 한족이던 간에 그당시 최첨단 의복을 입었던 것은 확실하네요.
개발된지 얼마 안 된, 직물로 만든 버선을 신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