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태평환우기 太平寰宇記 979 》 卷70 河北道 十九 平州
盧龍縣。五鄉。本漢肥如縣也,屬遼西郡。應劭曰:「肥子奔燕,封於此。」
唐武德三年省臨渝,移平州置此,仍改肥如縣為盧龍縣,複隋開皇之舊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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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洛城,殷諸侯之國。
令支城,漢縣,屬遼西郡,廢城在今縣界。
孤竹城,在今縣東,殷之諸侯,即伯夷、叔齊之國,又按《縣道記》云:「孤竹城,在肥如縣南十二里。」
《史記》謂:「齊桓公伐山戎,北至孤竹。」
又《隋圖經》云:「孤竹城,漢靈帝時,遼西太守廉翻夢人曰:『孤竹君之子,伯夷之弟,遼海漂吾棺,聞君仁善,願見蔵覆。』
明日,水際見浮棺於津,收之,乃為改葬,吏人嗤笑者,皆無疾而死。」 今改葬所尚存,祠在山下極岩。
朝鮮城,即殷箕子受封之地,今有廢城。
遼西城,漢為都 於此,廢城在今郡東。
秦長城,秦使蒙恬輔其子扶蘇之所築,東西長萬里。杞梁妻哭,城崩,得夫骨,即此城也。
노룡현. 오향五鄉이다. 본래 한나라 요서군 비여현이다. 응소가 말하길 “비자가 연나라로 도주하여 여기서 봉함을 받았다.“
당나라唐 무덕3년(620) 임유臨渝를 없애고 평주平州로 옮겨 설치하였다.
이때 비여현을 노룡현으로 개명하였는데, 수나라隋 개황때의 옛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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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락성黃洛城, 은/상나라 제후국이다.
-.영지성令支城, 한나라 요서군 속현이다. 폐성이 (노룡)현 경계에 있다.
-.고죽성, 노룡현의 동쪽에 있다. 은나라 제후국이다. 즉, 백이숙제의 나라이다.
현도기《縣道記》를 보면 “고죽성은 비여현 남쪽 12리에 있다.” 하였다.
사기《史記》에서 “제환공齊桓公이 산융山戎을 토벌하고 북으로 향하여 고죽孤竹에 이르렀다.”
또 수도경《隋圖經》에서 “고죽성, 한(漢) 령제(靈帝) 때(168-189)에 요서태수 렴번(亷翻) 꿈속에 사람이 나타나
‘나는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백이(伯夷)의 동생이다. 요해(遼海)에 나의 관(棺)이 표류하고 있다. 듣기로 임금이 어질고
선하다하니 감추인 것을 들춰내어 보고자 한다. ' 다음날 나루터에 표류하는 관이 보였는데 수거하여 다시 장례를 치뤘다.
관리들중에 비웃는 자들은 질병이 없었는데도 모두 죽었다.
지금도 장례를 치룬 곳이 상존하며, 제단祠은 산 아래의 극암極岩에 있다.
-.조선성, 즉 은나라 기자가 봉함을 받은 영지이다. 지금은 폐성廢城 이 있다.
-.요서성, 이곳에 한나라의 도성이 있었다. 폐성廢城 이 군의 동쪽에 있다.
-.진장성, 진나라 관리 몽염과 부소가 축성했으며 동서 만리이다.
기량杞梁의 처妻가 곡哭을 하니 성이 붕괴되고 남편의 유골을 얻었다는 그곳이 여기 (진장)성이다.
『청나라 독사방여기요 讀史方輿紀要 1678』 권17, 北直8, 永平府
永平府,盧龍縣:
新昌城,〈即今府治。漢置新昌縣,屬遼東郡。後漢因之。晉屬遼東國,在今遼東海州衛境。後魏僑置於此,屬北平郡。
後齊爲郡治。隋改曰盧龍縣。又朝鮮城,在府北四十里,漢樂浪郡屬縣也,在今朝鮮境內。
後魏主燾延和初,徙朝鮮民於肥如,置朝鮮縣,並置北平郡治此。高齊移郡治新昌,並朝鮮縣入焉。〉
도림구관 桃林口關,府北六十里,桃林山口也。영평부 북쪽 60리에 도림구관이 있다
=> 상기 지도의 도림구관 桃林口關 ~ 영평부 永平府 사이에 조선성이 있었다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