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기록에 험천, 쌍령, 강도 전사자들 모두 합친게 2천 6백 정도라고 적고 있습니다.]]........???
.
.
전사자 2,600명이라는 언급은 아마도 아래 인용 부분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충청 감사 정태화(鄭太和)가 치계하기를....
"남한 산성과 금화(金化)에서 전사한 군사들에게는 모두 급복(給復)하고 모조(耗租)를
주었습니다. 본도의 험천(險川)·쌍령(雙嶺)·강도(江都)에서 전사한 자들이 도합 2천 6백여 명이니, 똑같이 휼전을 시행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또한 전사한 군사 중에 부모가 있는 자는 마땅히 조정의 분부에 따라 모조를 지급해야 하는데, 수량이 부족합니다. 원곡(元穀)을 첨가해 각각 2석씩 지급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상이 따랐다.
다시 말해 충청도 출신으로 험천, 쌍령, 강화도에서 전사한 이들이 2,600여 명이라는 표현입니다.
충청감사가 남한산성(한양-경기출신들), 금화전투(평안도출신들)에서 전사한 한양-경기-평안도 출신들은
국가유공자 취급해주면서... 험천,쌍령,강화도에서 전사한 충청도 출신 전사자들에게는 왜 국가유공자
취급 안해 주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쌍령전투 전사자를 4만이라고 언급한 이는 저를 비롯해서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학계에서는 쌍령전투 전사자 숫자는 일반적으로 2만 가량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