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5-13 15:21
[한국사] 한국의 읍성 : 낙안읍성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936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z2_cp02081088000.jpg

조선 태조 6년(1397)에 처음 쌓았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이다.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낙안 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낙안(樂安)은 백제(百濟)때부터 읍치(邑治)가 있었다고 하며, 고려말(高麗末)에는 왜구(倭寇)의 피해로부터 주민(住民)을 입보(入保)시키기 위하여 토축(土築)의 읍성(邑城)이 축조(築造)되었다. 1397년(태조(太祖) 6)에 김O길(金O吉)이 백성을 동원하여 토성(土城)을 쌓은 것이 현재 낙안읍성(樂安邑城)의 전신(前身)이 되며, 세종대(世宗代)에는 둘레 592보(步)의 석축(石築)으로 읍성(邑城)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운로드 (5).jpg



토축성(土築城)의 석축화(石築化)는 조선초기(朝鮮初期)의 전반적(全般的)인 추세였으며, 왜구(倭寇)가 예상되는 남해안지역의 읍성(邑城)이 맨 먼저 석축화(石築化)되었다. 이어서 세종(世宗)·문종대(文宗代)에 이르러 읍성(邑城)의 방어력(防禦力)을 높이는 국가적(國家的) 규모(規模)의 계획이 실천에 옮겨지게 되었는데, 문종원년(文宗元年) 8월(八月)의 기록에 낙안읍성(樂安邑城)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둘레가 2,865척(尺)이고 성벽의 높이는 평지(平地)에서는 9척(尺)5촌(寸)이었고, 지형이 높은 곳에서는 8척(尺)5촌(寸)이었다. 그 위에 여장(女墻)의 높이가 2척(尺)5촌(寸)이 더하였고, 적대(敵臺)(치성(雉城))는 12개가 계획되어 4개만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성문은 3군데인데 옹성(擁城)이 없었으며 성안에는 우물 두 곳과 작은 못 2개가 있고, 성벽 둘레의 해자(垓字)는 아직 시설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 고을의 진산(鎭山)인 금전산(金錢山)의 남쪽으로 낮아진 구릉에 동(東)·서(西)로 길다란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을 이루고 있는 성벽은 성돌의 축조방법이 전형적(典型的)인 조선초기의 읍성형식(邑城形式)을 취하고 있다. 

성밖에는 동천(東川)과 서천(西川)이 자연해자(自然垓字)를 형성하고 있으며, 성벽은 높이 4m 쯤이고 두께 3∼4m인데 아랫부분의 폭은 7∼8m이다. 성벽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오르면서 석재(石材)가 차츰 작아지고 기울기를 주어 쌓았고, 안쪽에서 성벽 위로 오르는 계단 모양의 좁은 통로도 만들어져 있어 세종대(世宗代)에 새로 규정한 「축성신도(築城新圖)」의 규식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이 성에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임경업장군(林慶業將軍)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오고 있다. 당초 성문은 남문에 쌍청루(雙淸樓)가 있고, 동(東)·서문(西門)에도 문루(門樓)가 있었으나 19세기(世紀)에 이르러 남문(南門)은 진남루(鎭南樓)라 하고 동문루(東門樓)는 낙풍루(樂豊樓), 서문루(西門樓)는 낙추문(樂秋門)이라 하였는데, 남(南)·동문루(東門樓)는 이층(二層)이었다.

이밖에 적대(敵臺)(치성(雉城))는 6개가 있었다고 하며 주로 동문방향(東門方向)에 배치되고, 문(門)에는 옹성(擁城)이 있었다. 남문 서쪽에 수구(水口)가 남아있고 치성(雉城)은 7m 크기의 방형(方形)이어서 조선시대 읍성연구(邑城硏究)의 귀중한 자료(資料)가 된다. 

성내(城內)에는 객사(客舍)·임경업장군비각(林慶業將軍碑閣)과 중요민속자료(重要民俗資料)로 지정된 민가(民家) 9동(棟)이 있고, 또한 전통적(傳統的)인 가옥과 옛 건물터가 남아있어 고풍(古風)을 간직한 가장 전형적인 고장으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운로드 (4).jpg

다운로드 (3).jpg

c0302000036005.jpg

다운로드 (6).jpg

다운로드.jpg

c0302000036004.jpg

10.jpg
임경업 장군 추모비각 
3.jpg

다운로드 (2).jp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6시내고환 18-05-13 18:09
   
해미읍성, 낙안읍성이 대표적인 읍성이죠 ㅎㅎ 두 곳다 가봤는데 보존이 잘되어있어 좋았습니다
 
 
Total 19,99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7190
1145 [북한] 북한에서 성매매를 없앴다고.? 05편.. 돌통 07-07 935
1144 [북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존재 진실.. 돌통 09-20 935
1143 [한국사] 고려, 조선의 북방강역이 어디인가? (1) 스리랑 08-09 935
1142 [중국] [습유장초]상고한어를 재구한 영상. Ichbin타냐 11-22 934
1141 [기타] 왠지 우리나라에도 (1) 인류제국 03-13 934
1140 [한국사] 제가 생각하는 낙랑, 요동군의 위치 (7) 도수류 12-09 934
1139 [한국사] 왜(倭) 2 - 《산해경》의 倭 (2/6) (13) 감방친구 08-17 934
1138 [중국] ‘동북의 왕’ 장쭤린(張作霖)[중국근현대인물사] 2 (1) 히스토리2 05-13 933
1137 [북한] 악의신. 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의 최고봉. 20편.. (1) 돌통 12-28 933
1136 [한국사] 올리기도 숨이차네요. (3) 스리랑 09-12 933
1135 [한국사] 조선이 중국의 속국 (2) knb14 08-15 932
1134 [한국사] 독립운동가 후손이 바라 본 동북아 역사재단 (2) 풍림화산투 04-27 932
1133 [북한] 북한은 광복을 '쟁취'했다고 하는 이유가.? 03… 돌통 06-04 932
1132 [한국사] 삼국사기 이해 (1)신라사 (7) 홈사피엔스 03-16 932
1131 [한국사] 대한민국은 고대사와 근대사가 다 같이 왜곡되었다. (3) 스리랑 08-10 931
1130 [한국사] 야요이의 볍씨와 수전에 대한 질문과 답(?) (13) 밑져야본전 12-11 931
1129 [한국사] 진개전쟁의 진실2/1ㅡ연국이 복속시킨 조선의 실체 하이시윤 10-02 931
1128 [한국사] 조양(영주)의 이동경로 (15) 히스토리2 04-18 930
1127 [기타] 개천절의 주인공은 단군보다 환웅이다 관심병자 03-09 930
1126 [한국사] 우리 역사관의 현주소 마누시아 07-06 929
1125 [세계사] 논란될만한 글을 올리거나 수정하지않겠습니다.사과… 성물세라핌 10-27 929
1124 [한국사] 광개토 대왕비 전문해석(4) history2 03-21 929
1123 [세계사] 역사왜곡 처벌법의 룰모델이 되는 외국의 여러 법안… mymiky 06-03 929
1122 [한국사] 진주성 북장대 지붕에서 고종 1년 상량문 발견 mymiky 06-23 929
1121 [한국사] 한족이 한반도로 유입되기는 쉽지않습니다. (2) 녹내장 09-25 929
1120 [한국사] 단군사(檀君祠)ㅡ어촌 심언광 하시바 11-06 929
1119 [한국사] 발해 5경의 위치(추측),(반박 환영) (3) 남북통일 03-31 928
 <  691  692  693  694  695  696  697  698  699  7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