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禁府提調卞季良等詣壽康宮啓: “昨承命, 鞫朴實敗軍之罪, 實供稱: ‘李從茂初令三軍三節制使皆下陸而戰, 後變令三軍節制使各一下陸。 實執籌乃下, 賊强我弱, 再報請救, 從茂不聽, 柳濕、朴礎等亦不下救, 故見敗。’ 臣等謂非特朴實之罪, 從茂、濕、礎皆亦有罪, 請竝鞫之。” 上王曰: “朴實敗軍之罪, 固所知也。 若以法論, 則廷顯爲都統使, 不卽收實請罪, 是亦有罪。 今罪張蘊以誣告, 而賞諸將, 又下廷顯、從茂於(嶽)〔獄〕, 無乃有愧於國人乎? 況東征勝多敗少乎? 後日之事, 亦不可不慮也。 若爲大擧之計, 亦宜用權, 然吾豈以此終不治其罪乎? 今實當以功臣之子免之。”
세종 5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8월 16일(무자)
의금부에서 박실의 패군 원인이 이종무 등에게도 있음을 아뢰니 무난히 처리케 하다
의금부 제조 변계량 등이 수강궁에 가서 아뢰기를,
“어제 명령을 듣고 박실의 패군한 죄를 국문하오니, 실이 공술하기를, ‘이종무가 처음에는 삼군 삼절제사에게 명령하여, 다 육지에 내려서 싸우라고 하더니, 뒤에 명령을 변경하여, 삼군 절제사 각 한 사람만이 육지에 내리라고 하여서, 실이 제비를 뽑게 되어서 내렸던 바, 적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여서, 두 번이나 보고하여 구원하기를 청하였으나, 종무가 들어 주지 아니하고, 유습과 박초 등도 역시 내려와 구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패전하게 되었다.’ 하오니, 신들의 생각에는 특별히 박실의 죄뿐이 아니고, 종무와 습과 초도 다 유죄하오니, 모두 국문함이 옳은가 합니다.”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박실의 패군한 죄는 모두 다 아는 바이지만, 만약 법대로 논한다면, 유정현이 도통사가 되어서 즉시로 실을 구속하고 벌을 줄 것을 청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은 역시 죄되는 일이므로, 이제 장온을 무고죄로 벌주고, 여러 장수들을 상주었다가, 또 다시 정현과 종무를 옥에 하옥한다면, 나라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있지 않겠는가. 하물며 동정할 때에는 승리가 많았고 패전은 적지 않았는가. 뒷날의 일도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대거(大擧)할 계획을 한다면, 또한 권도(權道)를 써야 할 것이나, 내 어찌 그런 일로 하여, 끝까지 그 죄를 치죄하지 않을 수야 있겠는가. 이제 실은 공신의 자식이라 하여, 면죄시키게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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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싸우려 가지 않으려 해서 제비뽑기를 해서 보냈지만 대마도인은 강하고 조선군은 약해서 두번이나
원군을 요청했지만 이종무는 무시하고 배로 도망치는 조선군을 배에 있던 아군은 구경만 하였음,,
패한것을 조선 조정은 나중에 알게 되어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왕이 쉬쉬 하고 덮어버림,,,
○左議政朴?啓: “左軍節制使朴實對馬島敗軍時所(護)〔獲〕漢人宋官童等十一名, 備知我師見敗之狀, 不可解送中國, 以見我國之弱。” 右議政李原及卞季良、許稠等皆曰: “宜解送, 以全事大之禮。” 上遣通事, 往見官童等于中路, 探問其所見。
세종 4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22일(을축)
박실이 대마도에서 패군할 때의 상황을 알고 있는 중국인을 보내는 데 대한 의논
좌의정 박은이 계하기를,
“좌군 절제사 박실이 대마도에서 패군할 때 호위하던 한인(漢人) 송관동(宋官童) 등 11명이 우리 군사가 패하게 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으므로, 중국에 돌려보내서 우리 나라의 약점을 보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니, 우의정 이원과 변계량·허조 등은 다 이르기를,
“마땅히 풀어 보내어 사대(事大)의 예를 완전히 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통사를 보내어, 관동 등을 중로(中路)에서 보고 그 소견을 탐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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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이 패하는것을 중국인들이 보아버려서 중국에 그냥 돌려 보낼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사대의 예로 돌려보냄,,
대마도 정벌의 전개 과정
○ 대마도 왜구들이 조선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요동을 털어먹음
○ 발끈한 명나라가 대마도 토벌을 위해 명나라군을 조선에 파병하는 계획을 수립함
○ 명군이 조선에 주둔할 상황이 벌어지자 조선 조정은 차라리 조선이 나서서 대마도 토벌하는게 낫다는 계산으로 대마도 정벌을 추진함
○ 대마도 왜구들이 또다시 요동을 털어먹으러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사이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군이 대마도 빈집털이를 시도함
○ 대마도 정벌군을 본 대마도인들은 약탈나간 왜구가 돌아오는 줄 알고 환영 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조선군임을 알고 섬 안쪽으로 도주함
○ 대마도인들이 해안 마을을 버리고 대마도주와 함께 섬 안쪽으로 도망치자 텅빈 해안가에 조선군이 장악함. 그 와중에 미처 도망못간 대마도인 몇을 사살하고 포로로 억류중이던 명나라 사람들을 구출함
○ 해안 마을을 장악한 조선군이 해안 마을과 선박들을 불살라 초토화시킴
○ 섬 안쪽으로 도망친 대마도주를 쫓아가기 위해 제비뽑기로 부대를 선발해 선발된 부대를 섬 안쪽으로 진격시켰다가 대마도인들의 매복에 걸려 해당 부대가 전멸함
○ 패전이후 조선군은 다시 섬 안쪽으로 진격할 엄두는 못내고 해안가에서 한동안 진을 친체 대치 상황이 지속됨
○ 슬슬 요동으로 약탈간 왜구들이 돌아올 시기가 다가오자 대마도에서 철군하고 조정에는 구출한 포로 및 대마도 초토화 전공을 보고하며 대마도 정벌이 성공적이라 보고함
○ 요동에서 돌아오던 왜구들이 충청도에서 공물을 싣고 가던 세운선들을 나포함
○ 이에 상왕 태종이 이종무에게 다시 출격해서 세운선을 나포해간 왜구를 요격할 것을 주장했으나 신료들이 막 귀한한 부대를 다시 전장으로 보내면 사기가 떨어져 승산이 낮다고 만류해 왜구 요격은 포기하고 그대로 대마도로 돌아가도록 냅둠
○ 어찌했건 승전으로 인정되어 이종무 등이 포상 받음
○ 가로늦게 섬 안쪽으로 쫓아가다 매복에 패전한 상황이 조정에 발각됨. 이종무 등은 패전 책임을 물어 결국 유배감
○ 대마도주가 사신을 보내 조선과 협상 시도. 대마도에 조선과 무역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왜구와 손을 끊는 것으로 교섭이 진행됨.
○ 어찌되었건간에 조선은 명에 대마도 정벌을 실행해 대마도주가 이에 항복했다고 보고함. 마침 요동을 털던 왜구들은 잔뜩 벼르고 있던 명군에게 제대로 걸려서 크게 패하여 세력이 꺾였었음. 그리하여 명나라의 대마도 정벌 계획은 취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