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3-27 12:49
[한국사] 남.북한의 1차 내각의 구성과 어려움(친일파 배제의지)
 글쓴이 : history2
조회 : 647  

1948년 8월에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이어서 9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이 선포됨에 따라, 한반도는 정통성을 둘러싼 본격적인 대립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특히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직후의 남북한의 대립은, 양쪽 모두에게 친일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겨주었기에, 내각에 친일인사의 합류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친일청산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수립 사진.png
대한민국 정부수립

김일성 내각1.jpg
                                                  김일성 1차 내각 인사 사진 


이승만과 김일성이 이 과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기 위해서는, 초대내각 구성을 살펴보아야 이를 구성한 사람(이승만과 김일성)의 생각을 잘 드러내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1. 이승만의 1차 내각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의 수장(首長)을 지냈으며, 나라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에 평생을 헌신하였다거 평가받는다(이에 대해서는 찬성과 비난 두가지가 공존하지만 일단은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글을 적는다) 

해방 후 좌우를 막론하고 자신들이 설립한 임시정부나 기구에 이승만을 수장으로 올려놓은 것은 그의 명망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말해준다. 당시 그는 최고의 명망을 지닌 독립운동가요 정치인이었다(그러나 그의 임시정부의 행적은 이러한 명망에 흠집을 준다)

1.부통령 이시영: 사재(私財)를 털어 만주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상해임시정부에
서 법무총장, 재무총장,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국무총리 이범석: 상해임시정부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하였으며, 평생 항일무장투쟁에 헌신하였다. 그는 국방장관을 겸직하였다. 

3.무임소장관 이윤영: 기독교 목사로서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4.무임소장관 지청천(일명 이청천): 상해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5.내무장관 윤치영: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하였으며, 미국에서 이승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였다. 1935년에 귀국하여 항일비밀결사인 흥업구락부 간사로 활동하던 중 1938년 5월에 체포되었다. 1938년 9월에 전향(친일)한 후, 일제가 주도하는 임전대책협의회의 대좌담회에 참석하고 국민동원총진회의 중앙지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6.외무장관 장택상: 영국에 유학한 후 미국으로 가서 상해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회에서 이승만과 함께 활동하였다. 귀국 후 항일운동을 하다가 1938년에 청구회구락부사건으로 투옥되었다. 

7.법무장관 이인: 1923년에 일본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주로 항일운동가들을 변호하였다. 그는 1942년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8.재무장관: 김도연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19년에 동경에서 2.8 독립선언을 주도하여 투옥되었다. 그는 1932년 7월에 귀국하여 교육과 실업을 통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2년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9.농림장관 조봉암: 공산당 간부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상해에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7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10.상공장관 임영신: 미국 유학 중 이승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귀국 후 1935년부터 중앙보육학교를 경영하였다. 그녀는 1941년에 전향하여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에 참여하였으며, 1942년부터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의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11.문교장관 안호상: 독일과 일본에 유학한 후 1933년에 보성전문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조선어학회사건 등으로 수배를 당해 피해다니다가 해방을 맞았다. 

12.사회장관 전진한: 일본에 유학한 후 항일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13.체신장관 윤석구: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자금책으로 활동하였다. 

14.교통장관 민희식: 중국과 미국에서 유학한 후 1925년 5월부터 3년 동안 총독부 철도국에서 근무했는데, 이러한 경력 때문인지 취임 2개월 만에 사임하였다. 

15.총무처장 김병연: 항일비밀결사인 철혈청년단을 조직하고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16.기획처장 이순탁: 일본에 유학한 경제전문가로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33년에 연전상과사건으로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7.공보처장 김동성: 미국에 유학한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합동통신사 등을 거친 언론인이다.

이승만의 초대내각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노동운동가와 공산주의자까지 포함되어 있어 이념적 스팩트럼이 상당히 넓다. 

친일성향으로 문제되는 사람은 a)윤치영, b)임영신, c)민희식 세 사람이다. 윤치영과 임영신은 미국에서 이승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1940년 이후 전쟁 수행을 위한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전향하였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한 공(功)과 친일행각을 벌인 과(過)가 공존하고 있으므로 전형적인 친일파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민희식은 총독부 철도국에서 3년간 근무한 것이 친일로 분류된 원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전문직이었기 때문에 등용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 운영을 위해 필요한 인재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이승만의 초대내각은, 일부 친일행각을 벌인 인물들이 등용되었음을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독립운동가들을 주축으로 한 내각으로 평가된다. 

우남.jpg



namu_wiki_20150813_092442.jpg
                 조갑제닷컴의 자료(북한은 내각구성원이 아닌자들이 많다, 남한의 윤치영, 임영신, 
                  민회식은 분명한 친일행적을 보였고, 친일전향자들이다)
      
2. 김일성의 1차 내각 

북한의 수상 김일성은 1930년대 중반에 만주지역에서 항일투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무렵에는 이미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그 지역의 항일투쟁세력을 토벌하고 있었으므로 김일성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1940년을 전후하여 소련군의 관할지역으로 후퇴하였다. 따라서 항일투쟁의 경력이나 명망에 있어서 김일성은 이승만에게 훨씬 못미친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세우면서 그에 대한 신화를 조작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를 입증한다.

1.제1부수상 박현영: 조선공산당을 창당하는 등 국내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경력으로 보아 당연히 북한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반이 남한에 있었고, 스탈린이 소련과 보다 우호적인 김일성을 지도자로 낙점함으로써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외무상을 겸직하였다. 

2.제2부수상 홍명희: 언론인, 소설가로서 신간회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임전대책협의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3.제3부수상 김책: 만주에서 항일유격대를 이끌고 무장투쟁을 주도하였다. 그는 산업상을 겸직하였다.

4.국가계획위원장 정준택: 일제의 화학공장 기사로 근무하다가 1943년부터 광산업을 경영하였다. 당시 광산업은 일제의 전쟁수행에 협조하고 강제징집된 한국인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한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그는 해방 후 북조선행정10국 산업국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친일경력으로 인해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나,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김일성에 의해 다시 중용되었다. 

5.민족보위상 최용건: 동북항일연합군 제7군단장 및 제2로군 참모장으로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였다. 

6.국가검열위원장 김원봉: 일본 요인의 암살을 목적으로 하는 의열단을 조직하여 운영하였으며, 상해임시정부 광복군 부사령관 및 국무위원을 역임하였다.

7.내무상 박일우: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조선의용군 부사령관을 역임하였다. 농림상 박문규는 농업경제학자로서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에 근대적 토지사유제도가 확립되었다는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비밀결사인 건국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8.상업상 장시우: 1919년에 간도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조선공산당 및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소작인조합을 결성하는 등 농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제3차 간도공산당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9.교통상 주영하: 적색노동조합 함흥위원회의 책임을 맡아 적색노동조합운동에 종사하였으며, 1935년에 평양적색노조사건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0.재정상 최창익: 일본 유학 후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42년에 조선독립연맹 부주석에 취임하여 항일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귀국하였다. 

11.교육상 백남운: 일본에 유학한 경제학자로서 연구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2.체신상 김정주: 일명 고명자라고도 하는데, 주세죽, 허정숙과 함께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로 불렸다. 고려여성동우회와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다가 1930년에 체포되었다. 그 후 전향하여 친일잡지 <동양지광(東洋之光)>의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39년에 내선일체부인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13.사법상 이승엽: 일찍부터 공산당에 가입하여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1940년에 전향서(친일)를 쓰고 공산주의 운동에서 이탈하여 일제의 식량수탈기관인 식량배급조합의 이사로 일했다. 

14.노동상 허성택: 1920년대 후반부터 적색농민조합운동에 가담하였으며, 1936년에 성진농민조합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보건상 이병남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의사이다. 이강국 등과 교류하면서 좌파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문화선전상 허정숙: 사회주의 여성단체 조직을 주도한 대표적인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1936년부터 조선독립동맹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였다. 도시건설상 이용은 상해임시정부 동로군 사령관, 한국의용군사회 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6.무임소상 이극로: 한글학자로서 1942년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김일성의 초대내각은 공산주의 이념에 충실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공산주의자 내각이라고 할 수 있다. 친일성향으로 문제되는 사람은 a)홍명희, b)정준택, c)김정주, d)이승엽 등 네 사람이다. 홍명희, 김정주, 이승엽은 모두 항일운동을 하다가 전향하여 친일행각을 벌인 인물들로서 전형적인 친일파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준택은 광산을 경영한 것이 친일로 분류된 원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전문직이었기 때문에 등용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또한 인재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정부 운영에 필요한 인재를 기용하기 위해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김일성의 초대내각은, 일부 친일성향의 인물이 등용되었음을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친일파 내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제에 의한 36년 간의 식민지생활, 그리고 이데올로기 대립과 남북분단은 새로 출범하는 남북한 정부에 심각한 인재부족 현상을 초래하였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친일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까지 부과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과 김일성은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도 친일파들을 배제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주축으로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친일경력이 문제되는 사람들도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으며, 전쟁수행을 위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면서 전향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친일행각을 벌인 사람들과는 다르다. 

따라서 남북한의 초대내각을 친일파 일색의 내각이라고 비방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이승만 정권이나 김일성 정권 모두, 과거보다는 자신들의 독재체제 강화를 위한 거수기 역할을 할 인물들로 점차 내각이 채워져 나갔다는 점은 사실이다. 

 ps)김일성 정권비판(1948년)   

"김일성패는 국내에서의 시민 생활의 경험이 없으니 인민 대중과으 혈연적, 정신적 연결이 없다. 그들은 조국을 모르고 일찍이 만주 땅으로 넘어갔거나 또는 그곳에서 출세한 자들이다. 그들은 만주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땀을 흘리고 노동은 하지 않고 떼를 지어 다니며 약탈, 살인, 그리고 아편 장사까지 하고 다니던 패들이다.

그런 짓을 자랑삼아 '항일 유격 투장'이라고 하나 우리가 국내에서 한 '항일 독립 투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김일성패는 이렇게 하여 무고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강탈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며 불을 질렀던 것이다. 아무리 독립이 좋다 해도 이렇게 강도질한는 데까지 독립의 이름을 붙여서야 그 독립이 무슨 독립이 되겠는가. 이런 자들이 북한의 정권을 쥔 데서 해방 후 우리나라의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김일성 패의 정체를 잘 모르고 그들이 정말로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한 애국자이며 양심적인 사람들인 줄 알았다..."


『박갑동(朴甲東)의 논평 中』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history2 18-03-28 11:43
   
남북한 내각에 대해, 남한은 독립운동가 출신, 북한은 친일파 일색이라는, 뉴라이트 기사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북한을 절대로 지지 하지는 않지만, 1)북한의 내각인사가 아닌, 김일성 대학교수나 군대의 인사에 친일파가 많이 들어간 점은 인정하지만, 이는 남한도 비슷한 상황 입니다 2)상기 위 표에 있는, 남한의 1차 내각 명단 중 임영신, 윤치영 등 3인은 친일인사가 분명하고, 북한도 4인의 친일인사가 포진했으니, 친일이라는 측면은 남북한이 더의 대동소이 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history2 18-03-28 11:44
   
아쉬운 점은, 고대사에 비해 다소 재미없는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너무 떨어지는 듯 해서요,,,,사실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근,현대사인데 너무 역사가, 흥미를 주지 못하는 내용으로 얼룩져 있어서, 약간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고대 문명에 우리는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Total 17,59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16 [기타]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잡설 (2) 관심병자 12-04 672
615 [한국사] [토크멘터리 전쟁史] 46부 삼국시대2 - 신라의 삼국통… (1) 바람의노래 04-25 671
614 [한국사] 소소한 역사탐방......세검정에서 백석동천을 지나 환… 히스토리2 04-21 671
613 [한국사] 순종의 즉위와 논란(양위인가 대리청정인가?) 히스토리2 05-12 671
612 [기타] 한국 주류 실증 사학의 오류 (1) 관심병자 06-20 670
611 [한국사] 만민공동회와 촛불집회 (2) 탄돌이 06-01 669
610 [한국사] 도종환 후보의 역사인식 보도 관련 언론과 학계는 답… (4) 마누시아 06-05 669
609 [한국사] 고려 서북계에 대해 반응이 없으니 이상하군요 (4) 감방친구 11-09 669
608 [한국사] 여러분, 진짜 미치겠네요 (2) 감방친구 03-11 669
607 [세계사] 그레이트 게임과 러일전쟁 1 보스턴2 09-04 669
606 [한국사] 삼국시대 가뭄과 흉년의 기록 (3) 도배시러 02-07 668
605 [한국사] 백제의 대륙진출설 긍정론과 부정론 (10) 남북통일 03-01 668
604 [한국사] 고대사 연구자들이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상식 몇 … 독산 06-03 668
603 [한국사] 강단놈들이 얼마나 사기를 잘 치는지 알수 있는 사건 (3) 징기스 06-13 666
602 [한국사] 패수(浿水)의 위치에 대한 여러 학설소개 징기스 07-26 666
601 [북한] 제 3편 (비화발굴)..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김일성 빨치… 돌통 08-15 666
600 [한국사] 한사군 낙랑의 위치는 정확히 어디쯤일까 (5) 징기스 06-15 665
599 [한국사] 곰 토템, 새(태양 숭배) 토템 (2) 하시바 06-18 665
598 [한국사] 강동 6주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데요 (11) 화톳불 11-04 665
597 [한국사] 임나와 가야는 같은 용어인가? 1 두가지 입장 정리(통… (3) history2 04-10 665
596 [한국사] 구도장원공과 광산노비 (3) 하시바 12-24 664
595 [중국] 김올출이니 김함보? 그럼 황함보도 된다. (8) 하응하치 02-18 663
594 [중국] ‘동북의 왕’ 장쭤린(張作霖)[중국근현대인물사] 2 (1) 히스토리2 05-13 663
593 [한국사] ‘요동의 장통이 낙랑 백성 이끌고 모용씨 귀속설’ … (1) 히스토리2 05-28 663
592 [한국사] 험독현의 위치? 과연 대륙 요서 요동일까? (26) 고이왕 06-11 662
591 [한국사] 강단 독재의 둑이 무너지다 (3) 징기스 06-11 661
590 [한국사]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강역은 다르다 도배시러 07-27 661
 <  621  622  623  624  625  626  627  628  629  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