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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6 14:32
[한국사] 남선사관(임나)에 대한 한국학계의 흐름 정리
 글쓴이 : history2
조회 : 520  

스에마쓰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립된 임나일본부설은 오랫동안 일본고대사 연구자들 사이에 정설로 인식되

어 왔. 그러나 김석형의 일본고대사 자체에 대한 반론이 1960년대에 발표되자, 그 충격에 의해 1970

대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재검토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국내학자들의 경우 임나일본부에 대한 의견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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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관우(千寬宇)의 이론

일본서기의 임나관계 기록들을 재해석, 기록의 주어를 왜왕이 아닌 백제왕으로 봄으로써 왜의 임나 지배가 아닌 백제의 가야 지배라는 시각으로 가야사를 복원하고자 하였다.(특히 이 방법은 광개토태왕비를 해석하는데 유용하다)  그는 근초고왕이 369년에 가야지역을 정벌해 백제권에 편입시킨 후, 가야 지배를 위해 설치한 파견군사령부가 이른바 임나일본부라는 것이다.

 그리고 5세기부터 6세기 초에는 군사령부가 김천·달성 등의 낙동강 중·상류방면에 있었고, 530년대 이후에는 진주·함안 등의 낙동강 하류방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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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현구(金鉉球)의 이론


보다 신중하게 긴메이기의 기록만을 이용해,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가야 통치를 위해 설치한 기관이었다는 천관우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6, 7세기 백제와 야마토 사이의 외교관계의 특징을 용병관계(傭兵關係)로 파악하였다.

, 4세기 후반 이후 백제는 임나에 직할령을 두고 군령(郡令성주(城主)를 파견해 다스렸는데, 6세기 전반에는 일본인 계통의 백제 관료와 야마토 정권으로부터의 용병을 배치시켰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한국 내 많은 전방후원분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3. 이근우(李根雨)의 이론

게이타이기 이전의 4, 5세기의 상황에 대해서는, 천관우의 이론을 수용하면서, 일본열도 내의 세력주체가 6세기 초에 구주(九州)의 왜왕조에서, 기나이의 야마토 세력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임나일본부는 a)원래 구주의 왜왕조와 관련이 있는 문물 수용의 통로였고, b)야마토 세력과는 무관한 것이었는데, c)6세기 전반에 야마토 세력이 가야 문제에 말려들어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고권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 본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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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의 국내학자들에 의한 임나관계 연구경향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a)백제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인식을 보이고 있다

b)540년대 이후로 가야지역이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지적한 연구성과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며

c)임나일본부를 구주의 왜왕조 와 관련시킨 것도 주목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가야가 백제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었다고 추정한 점도 모순이 있다고 하겠다., 사료상으로는, 임나일본부는 백제로부터 명령을 받거나 백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고 반백제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이를 백제 군사령부로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에 소속된 일본인 계통의 관인을 백제의 군령·성주로 동일시하기도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그러므로 문헌에 나오는 임나일본부는 가야 문화의 독자성(백제나 왜의 영향력을 최소화 시키켜야 한다는 )을 배경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광개토왕릉비문의 신묘년 기사는 매우 불분명한 것이어서, 왜의 임나 지배에 대한 증빙 자료로 활용될 수는 없다. 또한 고구려의 한자해석은 중국의 방법과 다르기에, 여러 가지 해석의 방법이 나타날 수 밖에는 없다.

또한 한일 간에 근래의 연구 동향에서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관련 기사를 모두 조작된 전설로 처리해 이를 토대로 임나의 성립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다만 백제본기가 인용된 일본서기의 기사들을 통해, 6세기 전반에 이른바 임나일본부라는 기구가 어떤 형태였든(a.가야,왜 군사협의체, b.왜의 가야외교담당 관청) 가야연맹의 강국 중 하나였던 안라국(安羅國: 지금 경상남도 함안)에 있었다는 것은 인정된다.


530년대는 가야연맹이 신라와 백제의 복속 압력을 받아 맹주국인 대가야의 영도력이 흔들리던 시기였다. 당시 임나일본부를 안라국에 설치한 것은 백제였고, 관리들은 친 백제계 왜인들로 구성되었다. 성립 초기의 안라왜신관은 백제·왜 사이의 교역 대행기관의 성격을 가지며, 백제는 이를 통해 안라국(함안탁순국(창원)을 거쳐 왜국으로 향하는 교역로를 확보하려고 한 듯하다. 또한 안라 역시 일본부의 존재를 이용해 대왜 교역 중개무역을 통하여, 가야연맹 내에서 북부의 대가야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중심세력으로 대두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안라는 530년대 후반 국제관계의 혼란을 틈타 백제의 의사와 관계없이 임나일본부의 왜인 관리들을 재편성함으로써 기구를 장악하였다. 그러므로 540년대 이후의 사료상에 나타나는 임나일본부는 안라왕의 통제를 받는 대왜(對倭) 외무관서로 성격이 변질된 것이며, 그곳의 관리들은 친 안라계 왜인 또는 그들과 가야인 사이의 혼혈계의 인물들로서 안라를 비롯한 가야연맹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가야연맹의 제2인자였던 안라국은 왜와의 교역에서 유리한 입지 조건을 차지하고 있는 이점을 살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체제를 도모하기 위해 이를 운영했던 것이다.그런 과정에서 이 외무관서는 실제와 달리 왜국 사절들의 주재관처럼 표방되어, 가야연맹을 병합하려고 도모하는 백제·신라의 외교적 공세로부터 가야의 독립성을 연장시키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550년을 전후해 안라의 왜인 관료 기구가 백제의 압력으로 해체되고 다시 백제의 교역 대행기관으로 변모되었다. 이에 가야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560년경 안라국이 신라에 병합되면서 결국 이른바 임나일본부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런데 일본(日本)’이라는 국명은 7세기 중엽 이후에 성립된 것이므로 6세기 전반에 일본부(日本府)’라는 명칭은 있을 수도 없다그러므로 왜의 임나 지배라는 선입견이 들어있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폐기하고, 앞으로는 안라에 있던 안라의 왜인 신하들이 일을 보던 곳이라는 관점에서 안라왜신관(安羅倭臣館)’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4. 남선사관 결론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스에마쓰에 의해 정립된 임나일본부설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비판되고 수정되어, 이제는 학설로서의 생명을 거의 잃었다.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임나관계의 연구들은 서로 근접된 인식들을 보여주고 있다.

, 임나일본부의 문제를 6세기 전반에 한정해 취급한다든가

    ② 임나일본부의 성격을 지배가 아닌 외교의 측면에서 이해한다든가

    ③ 임나문제에 대해 백제와 가야의 역할을 중시한다든가 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

당시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대해서는 가야사 및 일본고대사의 체계적 연구 이후에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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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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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8-03-26 18:12
   
북한사학자 김석형의 "분국설"도 임나일본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학설을 시작으로 뒤 따라 임나일본부와 <일본서기>의 재해석이 활발해졌지요.

적어도 고대사에 관해서는 북한사학계가 한국사학계보다 훨씬 발전되어 있습니다.
 
고조선사를 이야기한다면 리지린을, 임나일본부를 이야기한다면 김석형을 생략할 수 없을 것입니다.
     
history2 18-03-26 19:49
   
네 맞습니다....김석형님은 쓰애마스 이론을 붕괴시킨 입지적인 분이시죠...!
history2 18-03-26 19:25
   
김석형의 쓰에마스의 연구비판

1) 기나이[畿內]의 야마토세력[大和勢力]이 주변의 일본열도를 통합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가능했다고 하며, 이러한 견해는 일본학계에서도 이제 통설화되어 있다.그렇다면 야마토국가가 멀리 떨어진 한반도 남부를 4세기부터 경영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며, 이는 내부 성장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대외관계를 우선적으로 언급한 일본고대사 자체의 맹점이다.

2) 또한, 왜가 임나를 200년 동안이나 군사적으로 지배했다면 그 지역에 일본 문화유물의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가야지역 고분 발굴자료들에 의하면 4세기 이전의 유물문화가 5, 6세기까지도 연속적으로 계승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3) 쓰에마스 연구의 한계.

 즉, 일본에 의해 지배당했다는 증거가 문화유물에 반영된 바 없으므로, 임나일본부설에서의 문헌사료 해석이 크게 잘못되었음이 입증되는 것이다.

스에마쓰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립된 임나일본부설은 오랫동안 일본고대사 연구자들 사이에 정설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김석형의 일본고대사 자체에 대한 반론이 1960년대에 발표되자, 그 충격에 의해 1970년대 이후 일본사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재검토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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