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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0 16:11
[한국사] 고구려 영토 추측-패려의 위치는 어디일까?
 글쓴이 : 남북통일
조회 : 1,333  

永樂五年歲在乙未王以碑麗不息,□人躬率往討過富山負山至鹽水上破其丘部洛六七百當牛馬群羊不可稱數-광개토대왕릉비

번역-영락 5년은 을미년이다. 패려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주지 않으므로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과 부산을 지나 염수에 이르러 세 개 부락 600~700영을 격파하고  셀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여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 북풍을 거쳐 돌아왔다.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경치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며 돌아왔다.

일단 패려의 위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몇가지 힌트는

1. 염수가 있음. 즉 내몽골~몽골 안팎 지역.

2. 소, 말 ,양떼가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즉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곳.

이렇게 2가지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패려의 위치는 대략 내몽골~몽골 동부~중부 지역으로 한정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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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S 18-03-10 16:35
   
패려는 아마 거란의 일족을 말하는 것이고, 염수는 머 시라무렌강 정도 되겠죠.

일단 유목민에게는 생명줄인 엄청난 양의 가축을 포획해서 돌아왔다는 걸로 그들을 복속시킨다는 개념 아니라 그냥 몰살했다고 봐야겠죠.

어차피 유목민들은 고구려 입장에서 통제가 불가능하고, 다스릴 곳도 아니니깐요.
     
남북통일 18-03-10 16:40
   
토벌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그리고 비문의 내용을 보면 마치 대원정길이라도 간 것처럼 서술하고 있습니다.
대원정은 아니겠지면 상당히 장거리에 있는 곳을 습격한 거겠죠.
염수라는 뜻이, 소금기가 많은 호수를 의미합니다. 현 염호 같은 개념이죠.
시라무렌강이 호수이며, 소금기가 있습니까?
          
6시내고환 18-03-11 10:21
   
시라무렌강은 염분기가 있는 강이 맞아요 그 상류로 올라가면 소금호수도 있죠
     
촐라롱콘 18-03-10 17:02
   
[[1. 염수가 있음. 즉 내몽골~몽골 안팎 지역]]..............???
.
.
칼리S님 말씀대로 패려는 거란8부의 일부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염수 또한 요하와 시라무렌강의 합류지점 인근에 있는 염호인 광제호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패려정벌의 범위를 아무리 넓게 잡아도 오늘날의 내몽골의 범위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2. 세 개 부락 600~700영을 격파하고....]]
.
.
3개 부락은 아무리 범위를 넓게 잡아도 거란 8부 가운데 3개 부 정도를 의미하고

유목사회에서 1영의 규모가 대략 천막집 10호 정도가 모인 군락을 의미할때

비문의 내용대로 600~700영 그대로를 반영한다고 해도(과장이 섞이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총 호수로는 6,000~7,000호의 범위이고 1호당 인구를 5~10명으로 잡더라도

최소 3만~3만5천명에서.... 최대 6만~7만 인구의 범위일 것입니다.
          
남북통일 18-03-10 17:08
   
셀 수 없을 정도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봐선,
유목지역, 즉 내몽골~동몽골로 인식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님 말대로 그곳에 염호가 있다 해도 염호는 주로 사막에서 나며,
내몽골~동몽골이 사막이니 내몽골~동몽골에 패려가 있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 비문을 보면 장거리 원정을 갔다 오기라도 한 묘사입니다.
즉, 내몽골로 인식하는 건데 왜 그러시는지??
광개토태왕 시절에 내몽골, 동몽골에 진출하고 장수태왕시절 지두우분할로 동몽골~중부몽골
지역을 더 얻었다고 보면 쉽습니다.
               
칼리S 18-03-10 17:20
   
영토 넓이 집착하는 분이니 답이 없네 ㅋㅋㅋ.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은 고구려가 거란의 일족으로 여겨지는 패려에 대한 보복응징을 말한것이지, 그들을 통치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유목민들에게서 그 많은 가축을 가져간다는 거 자체가 그들을 다스리겠다는 게 아니란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란은 시라무렌강을 기점으로 흥기한 집단을 일컫는 것이고, 요태조만 봐도 소금을 잘 이용했다고 합니다.

광개토왕대에 가장 중요한 곳은 요동과 요서를 다투던 후연이었고, 패려는 단지 응징차원에서 원정을 갔던 겁니다. 이걸 영토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유목민족들도 엄청 먼 거리를 이동해서 노략질을 하는데, 그렇다고 그 지역까지 그들의 영토라고 하지 않죠.

애당초 광개토대왕이 패려를 복속시키고 다스릴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많은 가축을 노획해서 돌아오지 않았겠죠.
                    
남북통일 18-03-10 17:23
   
설마 님은 고구려가 내몽골까지 직접통치를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내몽고 지역을 간접통치, 영향권으로 두지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패려가 고구려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지, 직접통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접통치구역으로 고구려 영토를 따지면 현 주류사학계 고구려 영토랑 비슷하거나 좀 더 크겠죠.
그리고 후에 광개토태왕에 의해서 거란, 말갈이 고구려에 복속됩니다.
후연이 사라진 이후부터는 고구려는 동네깡패기 때문에, 못할 것도 없죠.
                    
남북통일 18-03-10 17:26
   
요태조만 봐도 소금을 잘 이용했다고 합니다
----------------------------------------------------
님 요나라 영토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모릅니까?
-----------------------------------------------------------
그리고 거란관련 서술은 님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란이 단순 시라무렌강만 기점을 두었느냐?
아닙니다. 내몽골 동부까지도 엄연히 세력을 미쳤습니다.
                         
촐라롱콘 18-03-10 17:59
   
1.[[셀 수 없을 정도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봐선,
유목지역, 즉 내몽골~동몽골로 인식되는 게 당연합니다.]]......???
.
.
600~700영 , 다시말해 6천~7천호의 범위라고 가정하고......
당시 유목민 1호당(인구수 5인~10인) 키우는 말,소,양의 숫자가
토탈 수 십마리 정도는 되어야 생계유지가 어느정도 가능할 겁니다.

편하게 인구당 3~5마리 정도만 잡더라도 1호당 5~10인이라면
총인구 3만~7만 인구 규모.... 그냥 편하게 퉁쳐서 고구려가 정벌한 패려의 인구를
3만~7만의 가운데쯤인 5만으로 잡는다면.....
그들 관할의 가축숫자만 15만~25만 마리라는 계산이 산술적으로 나옵니다.

그 중에서 그냥 절반만 탈취했다 하더라도 대략 7만~12만 마리의 가축을
탈취한 셈인데... 이 정도만 하더라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규모 아닌가요...???

 
2. [[하지만 거란이 단순 시라무렌강만 기점을 두었느냐?
아닙니다. 내몽골 동부까지도 엄연히 세력을 미쳤습니다.]]
.
.
적어도 당나라 말기인 10세기를 전후하여 거란이 흥기하기 이전시기에
더구나 거란이 역사에 나타나는 4세기부터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의 거란이
오늘날의 동몽골이던 중부몽골이던지간에 내몽골의 범위를 벗어난
대흥안령 산맥의 이서 지역으로 진출했던 사례가 있었던가요....???

1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거란이 흥기하던 시기에 야율아보기가
몽골고원으로 진출한 것이 적어도 거란이 주도한 능동적인 관점에서의 진출에서는
첫 진출 같은데요?

몽골고원과 그 주변지역을 아울렀던 시기를 두고 차례로 나타난 유연,돌궐,위그르에
의해 수동적으로 동원되었다면 모를까....!!!
                    
남북통일 18-03-10 17:28
   
영토 넓이 집착하는 분이니 답이 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
-------------------------------------------------------------
고구려가 패려를 토벌함으로써 패려에 강력한 세력권, 영향권을 두었다.
과거 영토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패려를 고구려 영역으로 봐도 될 것 같다.
----------------------------------------------------------------------------------
이게 왜 영토 집착인지 좀 알려주십소서
                         
칼리S 18-03-10 17:38
   
도돌이표의 반복이네.

생각을 좀 해 보세요. 유목민족의 밥줄인 가축들을 죄다 가져왔다는건 그들을 죽이고 가져온거죠. 어차피 가축 없이 유목민은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죠.

애당초 유목민족은 같은 유목민족이 아니면 통치하기가 힘들고해서 간접지배를 하는데, 저딴식으로 가축을 죄다 끌고오는 짓은 안합니다. 오히려 다른 부족장을 회유하고 그들에게 주면 모를까요.

고구려의 패려 원정은 그들이 고구려를 침범했던 것에 대한 보복차원입니다. 다스릴려고 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요나라는 처음부터 거대했던 게 아니라, 시라무렌강을 기점으로 유목민족들을 복속시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농경지역을 침공한 것이죠. 무슨 요나라 영토가 다 고구려겁니까? ㅋㅋㅋ
                         
남북통일 18-03-10 17:41
   
후아....................
이보세요, 제가 언제 패려습격이 보복차원이라는 걸 부정했수?
고구려가 패려를 쳐부숨으로써 패려에 강력한 영향권을 두었다고요.
이게 이해가 안 가세요?
그리고 제가 언제 고구려가 요나라 영토를 다 차지했다고 했는지?
요나라가 내몽골~몽골동부 지역을 차지한 걸 모르슈?
시라무렌 강을 기점으로 만든 건 고구려때였습니다. 그리고 시라무렌강만 차지한게
아닌 내몽골 동부지역까지 그들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소리를 이해 못합니까?
                         
촐라롱콘 18-03-10 18:05
   
요나라가 건국된 것은 광개토대왕 시기보다 근 500년 이후인 10세기 초의 일인데요!

그리고 거란족은 10세기 전후 흥기하는 시기 이전에는 대흥안령산맥 이서 지역인

다시말해 오늘날의 외몽골 지역에는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야율아보기가 10세기 초 몽골고원에 진출한 것이 시초입니다.

더구나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내몽골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남북통일 18-03-10 18:03
   
일단 거란에 대해서는 잘못 인식한것 같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소말양 노획 사건에 대한 님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네요.
님의 소말양떼에 관한 견해는
유목민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가축 수를 구한 후, 그 가축 수의 절반을 고구려가
탈취하였다 이내용인데, 저랑 견해가 같으신데요??
반박을 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내몽골 일부를 거란이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인데요,
저는 거란이 내몽골 일부를 영유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칼리S 18-03-10 18:30
   
1. 광개토대왕비문의 패려는 우리가 잘 아는 거란의 일부이고, 염수는 시라무렌강으로 추정됩니다.

2. 그리고 고구려는 패려를 통치하거나 지배권에 두려는게 아니라, 보복차원에서 응징한 걸로 봅니다. 즉 영토나 영향권과는 무관함. 전연의 모용황이 고구려 환도성을 유린하고 미천왕의 시체까지 가져갔는데, 그럼 환도성까지 전연의 세력권으로 봐야할까요?

3. 패려조의 기사를 보면 아직 거란으로 흥기하지 못한 상태의 유목집단을 각개격파하고, 그들의 생명줄인 가축들을 가져옵니다만 포로를 언급하지도 않는걸로 봐서 학살했다고 봐야죠. 애당초 유목민족에게 가축들을 빼앗는건 목숨을 빼앗는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남겨줬다는 말도 없을뿐더러 고구려를 침공했던 야만족들에 대한 응징차원에서 그랬을거라고 봅니다. 영락8년조의 백신 토곡관련해서만 봐도 그후에 조공과 명을 받았음을 적시한것에서 패려는 응징차원의 원정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남북통일 18-03-10 22:20
   
이제 답글 확인하였습니다
토벌은 국어사전을 참조하면 무력으로 쳐 없애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고구려는 패려에 대한 보복으로 패려로부터 가축 등의 재산을 약탈하고
무력을 동원하여 패려를 아예 멸망시켰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전연은 결과적으로 고구려에 참혹한 패배를 안겨주었지만
고구려를 무력으로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남북통일 18-03-10 18:06
   
그리고 지금 이 패려 위치를 가지고 왜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패려를 쳐부숨으로써 패려에 고구려가 강력한 영향력, 세력권을 형성하고 행사하였다.
이 주장이 무슨 문제가 있나요?
 위치비정 문제라면 몰라도
     
촐라롱콘 18-03-10 18:10
   
[[그러면 패려의 위치는 대략 내몽골~몽골 동부~중부 지역으로 한정할 수 있습니다.]].
.
.
내몽골지역에 한정한다면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외몽골에 해당하는

몽골동부~중부까지 진출했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비약이기 때문입니다.
          
남북통일 18-03-10 18:13
   
패려에 대한 위치비정 문제는 비약이 맞군요.
감사하고 주말 잘 보내세요~
남북통일 18-03-10 18:09
   
광개토태왕~장수왕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내몽골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당장에 지두우 분할사건만으로도 고구려가 몽골에 진출했던 적이 있었던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촐라롱콘께서도 인정하는 사실 아니던가요.
그리고 그렇다면 다리강가 유적과 몽골에 있는 고구려 성터는 어찌 설명하실 건가요?
     
촐라롱콘 18-03-10 18:18
   
[[광개토태왕~장수왕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내몽골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표현을 한 것은 제 불찰인데... 윗 글에서의 제 의도는 주체가
고구려가 아니라 거란입니다.

거란이 역사에 등장하는 4세기부터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인 4세기말~5세기에도
내몽골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표현입니다.

물론 4~5세기 뿐만 아니라 수 백년 이후인 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거란이 외몽골 지역에 진출했다는 근거는 찾기 힘듭니다!
남북통일 18-03-10 18:10
   
거란에 대한 인식은 제가 잘못 인식한게 맞던것 같네요.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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