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2-26 17:37
[기타] 제우스 = 인드라 = 제석천 = 상제 = 환인
 글쓴이 : 옐로우황
조회 : 1,846  

이집트 신 아문(아몬, 암몬, 아멘)과 제우스가 비슷한 신이라는 글 http://yellow.kr/blog/?p=1612 에서 간단하게 제우스, 인드라, 제석천帝釋天, 환인桓因과의 관계를 언급했었는데 여기에서는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겠다.

인드라(산스크리트어: इन्द्र, इंद्र, indra, Śakra, 팔리어: Sakka)는 인다라(因陀羅)로 음역되기도 하는 고대 인도신화(베다)의 천신(天神)이다. 불교에서는 수호신으로 수용되었고 자이나교(Jainism)에도 등장한다. 인드라의 신화와 그 권위는 제우스, 쥬피터, 페룬(Perun), 토르와 같은 인도-유럽 신들과 비슷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대 신들과 같이 그 기원은 불명확하다.

※ 인도종교 간단 정리 : http://yellow.kr/blog/?p=2560


두산백과에서 인드라의 내용을 찾아보았다.

※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인드라
산스크리트어로 '강력한', '강한'이라는 뜻이며, '인다라(因陀羅)'라고 음역된다.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이다. 인도에 침입해 원주민들을 정복한 아리아인들의 수호신으로서, 천둥과 번개를 지휘하고 비를 관장한다. 아그니(Agni) · 바유(Vayu)와 함께 베다시대의 최고 삼신(三神)을 형성한다. 특히 《리그베다》에서 그 어느 자연신보다 많은 250여 찬가가 인드라에게 바쳐지고 있어,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신들 중에서 가장 신성한 신이자 신들의 제왕으로 숭배된다.

천공(天空)의 신 디아우스와 대지(大地)의 여신 프리티비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다갈색의 건장한 체구로 우주를 제압하고 폭풍우의 신 마루트(Marut)를 수행원으로 거느린다. 천둥과 번개, 금강저(金剛杵)를 무기로 악마를 물리치며 천계(天界)를 수호한다. 또 싸움 전에는 제사 때 바치는 신주(神酒) 소마(Soma)를 즐겨 마시고, 어금니가 네 개인 흰색 코끼리 아이라바타(Airavata)를 탈 것으로 이용한다.

훗날 힌두교의 삼주신(三主神)인 비슈누 · 브라흐마 · 시바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힘을 잃었지만 무용신의 성격을 끝까지 간직하였다.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의 수호신으로 수용되어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한역되었다. 한편 뇌정신(雷霆神)의 성격이 뚜렷해서 고대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나 북유럽신화의 토르에 비견된다.

인드라가 제우스, 토르, 제석천과 관계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다음에 제석천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자.

※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제석천
불교의 수호신으로 고대 인도의 신 인드라(Indra)를 수용한 것이다. 석제환인다라(釋帝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 · 제석천이라 한다. 제(帝)는 인드라의 의역이고, 석(釋)은 샤크라의 음역이다. 경전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천제석(天帝釋) · 천주(天主)라고도 부른다.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제석은 환인이며, 도리천주이고 옥황상제로서 제석이라 일컫는다'는 말에 따른 것이다. 욕계 제2천인 도리천의 주인이며, 수미산(須彌山) 위의 선견성(善見城)에 살면서 중턱에 있는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인드라가 제석천이고 한국에서는 천주(天主), 하느님, 옥황상제,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과 연결된다.


제우스는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인드라는 고대 인도신화(베다)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최고의 신이며 신들의 왕이다. 그리스신화와 베다에 묘사된 두 신들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제우스와 인드라의 탄생, 외모, 로맨스, 모험 등에서 현저한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두 신은 모두 비, 천둥, 번개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다.

제우스와 인드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자 보호자이다. 그리고 두 신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면 인간과 닮았다(인드라의 머리카락, 아름다운 턱, 팔, 턱수염은 『리그 베다』 에서 묘사된다. 오래된 조각품에서 볼 수있는 제우스의 경우도 같다). 두 신은 모두 사랑, 질투, 분노의 감정을 보인다. 제우스와 인드라는 독실하고도 경건한 매력적인 여인들을 남편으로 가장하여 유혹하였다. 그리고 둘 다 많은 아내들이 있었다.

제우스의 어원이 다른 그리스 신들과는 달리 산스크리트란 점에서, 인도와 그리스 또 인드라와 제우스의 종교적, 문화적 연관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신으로서의 인드라는 고대 히타이트의 수도 근처인 터키 중북부 마을 보가즈쾨이(Boghazkoy) 점토판에 기록된 기원전 1400년경의 비문에 의해 증명된 바와 같이 아나톨리아 북동쪽 지역에서 나타난다. 이 점토판에는 조약(treaty)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 중요성은 Mi-it-ra, U-ru-w-na, In-da-ra 그리고 Na-sa-at-ti-ia 라는 4개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름들은 각각 미트라(Mitra), 바루나(Varuna), 인드라(Indra) 그리고 베다신화(Vedic pantheon)의 나사트야-아슈빈(Nasatya-Asvin)이다. 이것은 인드라와 그와 관련된 신들이 기원전 1500년경에 남아시아와 아나톨리아에서 유행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드라에 대한 신화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거대한 용인 브리트라와의 싸움인데, 제우스와 티폰과의 전쟁과 유사하다. 인드라는 번개로 브리트라를 죽였다. 트바슈트리(Tvashtri)가 인드라의 번개를 만들었는데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Hephaistos), 이집트 신화의 프타(Ptah), 가나안 신화의 코타르 와 하시스(Kothar-wa-Khasis)에 해당된다.

※ 여러 신화에서 대표적인 신들의 전쟁이 있다. 기원을 알기 어려운 오래된 신화의 구조적 변형으로 이해한다.
오시리스, 호루스 - 세트
라 - 아포피스
제우스 - 티폰
인드라 - 브리트라
제석천 - 아수라
바알 - 얌
마르두크 - 티아마트
야훼 - 레비아탄
......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는데, 인드라는 그 정상에 있는 도리천(산스크리트어로 도리는 33을 뜻한다)이라는 하늘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아함경』에서는 인도의 신으로 불교에 들어온 인드라에 대해 많은 것을 전하고 있는데, 『장아함경』에 의하면, 석가가 마가다국 왕사성 동쪽 암바라 동산에 있는 큰 바라문 촌락 북쪽의 제석암에 대중들과 함께 계실 때, 제석이 도리천의 권속들을 이끌고 와서 석가에게 법을 묻고는 해탈을 얻어 죽을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의 계를 지킬 것을 서원하였다고 한다. 인드라에서 수용된 제석천은 석가의 귀의하고 나서 불교 최고의 호법신이 되었으며,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 항상 도리천의 권속을 이끌고 와 호위하였다고 한다. 또한 베다의 33신은 불교로 편입되면서 33천(天)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장아함경』에서는 33개의 천을 자세히 설명하며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을 수위로 하였다. 따라서 다른 어떤 제천보다 신앙 시 되는 곳에 살고 있는 제석천은 그곳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권속을 이끌고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해마다 연말에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울릴 때에 33天에 고한다 하여 33번 타종하고, 기미 독립선언서에서도 33天에 맞추어서, 민족대표 33인을 선정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아함경』이 언급되어 있다. 불교가 공인 된 후 신라의 승려 원광은 중국에서 유학을 하며 4종의 아함을 섭렵하여 하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특히 제천들 가운데 호법신으로 신앙 시 되고 있는 제석천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 인식되고 있다. 진흥왕이 경전 속 전륜성왕의 이미지를 빌어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나타냈던 것에서 진흥왕 대부터 『아함경』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다고 보며 이것이 원광과 무관하지 않는다고 본다. 다른 어떤 경전도 수미산 세계와 제석에 대한 내용을 『아함경』보다 상세하고 극적으로 다룬 것은 없기 때문에 『아함경』에 대한 이해가 제석신앙의 기반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서 『환인은 곧 제석(桓因謂帝釋也)』이라고 말했다.
帝釋(제석)은 漢譯佛典(한역불전)에서 釋迦提婆因陀羅(석가제바인다라), 釋提桓因(석제환인), 桓因陀羅(환인다라), 天帝釋(천제석), 帝釋天(제석천), 天帝(천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한민족은 고대사회에서 각 나라별로 봄 · 가을에 크게 모여 천제(天祭)를 올렸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이 그런 것들이다. 여기서는 천신(天神)을 비롯하여 여러 신령이 모셔졌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천신도 인드라나 제우스와 같은 성격의 신으로 이해한다.

삼국시대 중엽 중국으로부터 유교 · 불교 · 도교가 들어와 수용되면서 이 천제의 전통은 분화와 변모를 겪게 된다. 유교의 영향으로 종래의 천제는 국가의 제례로 편입되고 의례형식은 유례화(儒禮化)하였다.

천신신앙은 이로써 국가제례로서 유례화한 것과 무당에 의해 주재되는 민간의 천신 신앙으로 분화하였다. 불교가 융성한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천신은 제석이라는 불교적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태조가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고 법왕사(法王寺) 내제석원(內帝釋院) 등 10대사찰을 건립하였다. 925년에도 외제석원(外帝釋院)을 건립하였으며, 928년에도 제석원을 설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제석천에 대한 호국진병(護國鎭兵)의 신앙의식이 많이 행하여졌다.

고려의 승려 일연(一然)이 ≪삼국유사 三國遺事≫에서 단군의 할아버지인 한민족의 천신을 환인제석이라 표기한 것은 그러한 배경을 갖는다. 한편 고려시대에도 민간에서 무당이 개인신당에 제석신을 모시고 굿을 벌였음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노무편(老巫篇)이 증언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천신(天神)신앙의 전통은 단절된다. 유신들은 유교의 예(禮)에 의거하여 중국의 천자만 천제를 지낼 수 있고 그 제후국인 조선의 왕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할 뿐이라고 주장하여 임금의 천제 거행을 저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신으로서의 제석에 대한 신앙은 조선왕조의 지속된 억누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지속되어온 굿과 무(巫)의 신도인 단골집안의 이른바 가신(家神)신앙 속에서 줄기차게 보존되어 왔다.



산이 신의 세계인 하늘과 인간들의 세계인 땅 사이에 자리잡아 그 두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 노릇을 할 때, 그것을 세계산 또는 우주산이라 부른다. 이 산은 동시에 세계의 중심에 솟아 있는 것으로 믿어지기도 한다.
이 때 세계(우주)산은 ‘우주(세계)배꼽’이라는 관념과 겹쳐진다. 배꼽이 사람의 몸 중심이자 그 생명력이 모인 곳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을 세계배꼽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제우스와 인드라의 동일시는 그리스신화의 올림프스(Olympus)산과 인도신화의 Meru산(수미산, 수메르)의 관련성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경주 첨성대가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라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말했다. 선덕여왕릉 밑에 사천왕사가 건립됨으로써 그녀의 유언은 이루어졌다.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다.

※ 다음글에서 발췌 : http://yellow.kr/blog/?p=2717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꼬마러브 18-02-26 18:04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천신(天神)신앙의 전통은 단절된다. 유신들은 유교의 예(禮)에 의거하여 중국의 천자만 천제를 지낼 수 있고 그 제후국인 조선의 왕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할 뿐이라고 주장하여 임금의 천제 거행을 저지하였기 때문이다.

-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조선의 왕들도 하늘과 천제에게 계속해서 제사를 올렸습니다. 이건 삼국시대 이전부터 행해진 우리의 전통이에요.

특히 기자와 단군에 대한 제사는, 거의 모든 조선의 왕들이 최소한 한 번씩은 해왔습니다.  여기에 환인-환웅 까지 포함하여 "삼성(三聖)"에 대한 제사도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나오는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조선의 왕이 천제를 지내지 않았다고 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서 환인(桓因)이라는 용어는 『삼국유사』에만 보인다

- 이것도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환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데요. 당장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승정원일기』와 『제왕운기』등에서 "환인"이라는 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삼국유사』에 분명 환인이 제석이라고 나와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제우스와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왜냐하면 환인-단군 등에 대한 신앙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삼국유사』의 기록들은 그 저자가 스님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불교적 색채를 비판하며 보아야 합니다.
     
옐로우황 18-02-27 10:29
   
관심에 감사합니다. ^^
댓글 입력이 안되어 고생했습니다. (URL을 직접 입력을 못하나...)

* 조선시대 하늘에 대한 제사
- 고종 때 황제가 되면서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여러가지 자료가 있지만 우리역사넷의 자료를 인용했습니다.
(구글에서 "우리역사넷 : 국가의 제사는 누구에게 지내나" 로 검색)

* 삼국유사에만 환인이 보인다
- 확인을 하지 않고 다음의 기사를 인용해버렸네요. 수정했습니다.
(구글에서 "하얀山의 신성한 나무 아래로 내려온 하늘의 神이 곰과 야합하여 아들을 낳으니" 로 검색)

* 환인에 대한 신앙
- 저는 청동기나 철기문명이 각지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주나 전래를 통해 확산되었다고 봅니다. 신들도 마찬가지로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이주나 전래를 통해 확산, 변형, 융합되었다고 믿습니다. 고대 한반도에서도 같은 상황이라고 판단하는데 물론 비약일 수도 있겠죠.^^
불교가 전래되었듯이 제우스나 인드라 등도 전래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참고로 중국의 복희, 여와도 저는 오시리스, 이시스의 변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꼬마러브 18-02-27 12:41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여러가지 도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원구단이나 참성단 같은 거죠.

태종실록 - 中 -

예조 우참의 허조(許稠)가 상서하였다. 상서의 대략은 이러하였다.

"신이 궐리(闕里) 에 들어가 선성(先聖)을 뵙고, 교수관 채평(蔡平)에게 묻기를, ‘지나는 주현(州縣)의 학교에 모두 동중서(董仲舒)가 있고, 양웅(楊雄) 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건문(建文) 연간에 예관이 헌의(獻議)하기를, ‘동중서로써 양웅(楊雄)을 대신하자.’고 하였으니, 양웅이 왕망(王莾)의 대부(大夫)인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허노재(許魯齋)를 종사(從仕)한 것은 어느 시대에 시작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원(元)나라 때에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빌건대, 중국의 제도를 따라서 동중서·허노재로 양무(兩廡)에 종사하게 하고, 양웅은 아울러 제사하게 하지 마소서. 또 동평주(東平州)의 관리에게 들으니, 말하기를, ‘고을에 요(堯)임금의 사당이 있는데, 조정에서 해마다 사람을 보내어 제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경사(京師)에 이르니, 이부 상서(吏部尙書) 건의(蹇義)가 신 등에게 묻기를, ‘기자(箕子)의 후손이 있는가? 또한 사시(四時)의 제사를 행하는 자가 있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후사(後嗣)는 없다. 그러나, 본국에서 소재지 고을의 수령에게 명하여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본국에서 기자가 있는 것이 중국에서 요임금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빌건대, 기자 사당은 조정에서 요임금을 제사하는 예에 의하여 제사하소서."

예조에 내리라고 명하였다. 하윤(河崙)이 또한 일찍이 건의하여 조선의 단군(檀君)을 제사하도록 청하였다. 예조에서 참상(參詳)하기를,

"기자의 제사는 마땅히 사전(祀典)에 싣고, 춘추(春秋)에 제사를 드리어 숭덕(崇德)의 의를 밝혀야 합니다. 또 단군(檀君)은 실로 우리 동방의 시조이니, 마땅히 기자와 더불어 함께 한 사당[廟]에 제사지내야 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예조에서 계청(啓請)하기를,

"춘추(春秋)로 사신을 보내어 단군(檀君)·기자(箕子)의 묘에 제사드리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 中 -

사온서 주부(司醞署注簿) 정척(鄭陟)이 글을 올리기를,

"지난 신축년 10월에 〈중국〉 조정이 〈북경으로〉 옮겼으니 〈의주에 있는〉 말을 점고(點考)하라는 명을 받들었습니다. 의주에 가서 말 점고하는 일을 마치고 다음해 2월에 돌아오다가 평양에 들러서 기자 사당(箕子祠堂)을 배알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자 신위는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있고, 단군(檀君) 신위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신이 평양부의 교수관(敎授官) 이간(李簡)에게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예전에 중국 사신이 평양에 와서 기자의 사당과 후손의 있고 없음을 묻고 기자의 묘소(墓所)에 가서 배알하였는데, 그 뒤에 나라에서 기자 사당을 문묘(文廟) 동편에 세우라고 명하였고, 또 단군으로 배향하라는 영이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이와 같이 하여 제향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단군은  요(堯) 임금과 같은 시대에 나라를 세워 스스로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신 분이고, 기자는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명을 받아 조선에 봉(封)하게 된 분이니, 역사의 햇수를 따지면 요임금에서 무왕까지가 무려 1천 2백 30여 년입니다. 그러니 기자의 신위를 북쪽에 모시고, 단군의 신위를 동쪽에 배향하게 한 것도, 실로 나라를 세워 후세에 전한 일의 선후에 어긋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위에 아뢰고자 하였으나, 마침 아비의 상을 만나 미처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삽더니, 이제 신을 사온서 주부로 제수하시고 이어 의례 상정 별감(儀禮詳定別監)으로 임명하시었기에, 신이 이에 공경히 삼가 본조의 여러 제사 의식을 상고하오니, 향단군 진설도(享檀君陳說圖)에 ‘신위는 방의 중앙에서 남쪽을 향한다. ’고 하였습니다. 신이 전일에 뵈온 서향 좌차(坐次)는 이 도식(圖式)과 합치되지 않사오니, 만약 단군과 기자가 같은 남향으로서, 단군이 위가 되고, 기자가 다음이 되게 한다면, 나라를 세운 선후가 어긋나지 않을 듯하오나, 기자는 무왕을 위해서 홍범(洪範)을 진술하고 조선에 와서 여덟 조목을 만들어서 정치와 교화가 성행하고 풍속이 아름다워져서 조선이라는 명칭이 천하 후세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태조 강헌 대왕(康獻大王)께서 명나라 태조 고황제에게 국호를 정하는 일을 청했을 때, 태조 고황제는 조선이라는 명칭을 이어받기를 명하였던 것이고, 그 뒤로 중국 사신으로서 평양을 지나는 자가 혹 사당에 가서 배알하게도 된 것이니, 그런즉 명칭은 기자 사당으로 되어 있는데, 단군 신위를 모시는 것은 진실로 미편한 일입니다. 신이 또 들으니, 기자 사당에는 제전(祭田)이 있고 단군을 위해서는 없기 때문에, 기자에게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제물을 올리되, 단군에게는 봄 가을에만 제사한다 하옵니다. 현재 단군 신위를 기자 사당에 배향하게 되어서 한 방에 함께 계신데 홀로 단군에게는 초하루·보름 제물을 올리지 아니한다는 것은 또한 미안하지 않을까 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단군의 사당을 별도로 세우고, 신위를 남향하도록 하여 제사를 받들면 거의 제사 의식에 합당할까 합니다."

하니, 이 글을 예조에 내리어 그대로 이행하도록 명하였다.

예조에 전지하기를,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묘제(廟制)를 다시 의논하고, 신라·고구려·백제의 시조(始祖)에게 묘를 세워 치제(致祭)하는 일을 모두 고제(古制)에 상고하여 상세하게 정하여 아뢰라."

하였다.

중종실록 - 中 -

보통원(普通院)에 올라 관대(冠帶)를 고쳐 입고 가다가 산대(山臺) 앞에 멈춰 서서 구경했습니다. 고을 관사에 들어가 대청 앞에 나와 앉아 동기(童妓)의 춤추는 모양을 보고 대문 밖에서 오랫동안 잡희(雜戲)를 구경한 뒤, 문묘(文廟)를 배알하여 네 번 절하고, 또 기자묘(箕子廟)를 배알하고 네 번 절하였으며, 또 단군묘(檀君廟)로 가서 읍(揖)을 한 다음 연광정(練光亭)에 가서 무예(武藝)를 관람하였다……중략
 
 
Total 19,99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7175
15158 [중국] 중국 왈)석가모니가 중국인라고 주장 ㅋㅋㅋ (3) 고이왕 03-01 1503
15157 [한국사] 한국이 일본보다 근대화 사회인 이유(켄델의 계량적 … (1) history2 03-01 1099
15156 [한국사] 백제의 대륙진출설 긍정론과 부정론 (10) 남북통일 03-01 796
15155 [다문화] 기본권의 내용에 따라 주체를 ‘국민’에서 '사… (3) 보리스진 03-01 985
15154 [한국사] 유관순 선고 판결 내용 BTSv 03-01 711
15153 [한국사] 6) 환단고기에서 밝혀주는 역사 (3) 스리랑 03-01 1645
15152 [한국사] 4세기 후반 신라갑옷 복원 (4) 고이왕 03-01 4359
15151 [한국사] 조선 초기시대의 토지 조세제도(펌) 고이왕 03-01 2688
15150 [한국사] 고건축 양식_주심포, 다포, 익공 양식 고이왕 03-01 2311
15149 [한국사] 백제와 낙랑을 혼동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5) 남북통일 03-01 672
15148 [한국사] 백제 동성왕의 요서공략설과 최근 가설의 흐름 2(강… (4) history2 03-01 786
15147 [한국사] 백제 동성왕의 요서공략설과 최근 가설의 흐름 1(강… (6) history2 03-01 849
15146 [한국사] 돈황 막고굴 61굴 오대산도에 나오는 고려인 복장 복… (3) 고이왕 03-01 1284
15145 [한국사] 고려왕조 의장기 조선왕조 왕가 의장기, 대한제국 독… (1) 고이왕 03-01 4427
15144 [한국사] 유사역사학자들이 언급하는 러시아학자 유 엠 뿌진… (1) 고이왕 03-01 658
15143 [한국사] 조선의 근대화 역량은 충분했습니다 (6) 국산아몬드 03-01 821
15142 [한국사] 백제무왕,,,,무왕의 아버지는 누구이고, 그는 진평왕… (1) history2 03-01 1811
15141 [기타] 아매씨왜국 또는 아매씨일본 (수정) (2) 행복찾기 03-01 924
15140 [한국사] 조선이 절대 근대화 못했던 이유 (10) 진주만 03-01 1802
15139 [일본] 왜국 따위가 조선을 씹으면 안되지 (9) 화난늑대 03-01 1514
15138 [일본] 1900년대 일본의 발전상 ㄷㄷㄷ (5) 화난늑대 03-01 2510
15137 [기타] 먹이를 주지 마세요 BTSv 02-28 752
15136 [한국사] 조선사 내용은 대폭 축소해서 가르쳐줘야 한다고 봅… (12) 진주만 02-28 889
15135 [일본] 고구려, 백제, 신라, 왜구 사신들 그림 ㅋㅋㅋㅋㅋ (12) 남북통일 02-28 2460
15134 [한국사] 근대화의 필수요소는 전차도입이나 전기보급 이런게… (7) 진주만 02-28 1114
15133 [일본] 일뽕들의 특징. (8) 남북통일 02-28 1068
15132 [한국사] 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인입니다. (11) 진주만 02-28 650
 <  171  172  173  174  175  176  177  178  179  1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