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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6 12:46
[한국사] 실록을 보니, 근대 조선인들도 '소중화' 개념을 로마에 비유하기도 했네요(펌)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983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9월 26일 양력 4번째기사 유기환이 황제로 칭할 것을 주청하다 외부 협판(外部協辦) 유기환(兪箕煥)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오제(五帝) 때에는 ‘황(皇)’보다 더 높은 칭호가 없었고 하, 은, 주 삼대(三代) 때에는 ‘왕(王)’보다 더 높은 칭호가 없었습니다. 황제는 역시 왕이고 왕은 곧 황제입니다. 한(漢) 나라, 당(唐) 나라, 송(宋) 나라, 명(明) 나라에서 왕의 칭호를 한결같이 황제로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신하된 사람치고 누가 자신의 왕으로 하여금 가장 높은 자리에 있게 하려고 하지 않겠으며 극존의 칭호를 정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구라파에서 황제라고 부른 것은 로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후 게르만과 오스트리아는 로마의 옛 땅으로서 황제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독일은 게르만 계통을 이어 마침내 황제로 칭호를 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의관과 문물은 모두 명나라의 제도를 따랐으니 그 계통을 이어서 칭호를 정한들 안 될 것이 없습니다.(歐洲皇帝之稱, 始自羅馬, 而其後日耳曼、奧地利, 以羅馬古地, 稱皇帝。 德國繼日耳曼之統, 遂定大號。 我國家衣冠文物, 悉遵明制。 繼其統而正位號, 無所不可。) 또한 청나라와 우리나라는 다같이 동양에 있으므로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로마의 계통을 이어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且淸與我國, 均處東洋, 則與德、奧之接統羅馬, 無異也。) 폐하는 유신(維新)의 명에 응하여 독립의 권리를 마련하였고 연호(年號)를 세우는 등 여러 가지 업적이 다 빛나니 급히 칭호를 정함으로써 조종(祖宗)의 큰 위업을 빛내고 만백성의 소원에 부합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그대의 말이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부당한 일이니 굳이 이처럼 번거롭게 청하지 말라." 하였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9월 29일 陽曆 2번째기사김재현 등 716명이 황제로 칭할 것을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리다 치사(致仕)한 봉조하(奉朝賀) 김재현(金在顯) 등 관원 716명이 올린 연명 상소(聯名上疏)의 대략에, "신 등이 생각하건대, ‘우리 폐하(陛下)께서는 뛰어난 성인의 자질과 중흥(中興)의 운수를 타고 왕위에 오른 이후 34년 동안 총명한 지혜로 정사에 임하였고 신무(神武)를 발휘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밤낮으로 정력을 기울여 나랏일이 잘되게 하려고 애썼으며 변란을 평정하는 데 있어서는 형벌을 쓰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 크나큰 공렬은 천고(千古)에 으뜸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주권을 잡고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여 드디어 연호(年號)를 세우고 조칙(詔勅)을 시행하며 모든 제도가 눈부시게 바뀌었으니 이는 참으로 천명(天命)이나 인심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어찌 지혜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주(周) 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오히려 새롭다.’는 것이니 아! 거룩하고 훌륭합니다. 그런데 미처 하지 못한 것으로는 오직 황제의 큰 칭호를 정하지 못한 일입니다. 신들이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로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은 ‘황(皇)’이라고 불렀고 요(堯)나 순(舜)은 ‘제(帝)’라고 불렀으며 하우(夏禹)나 성탕(成湯), 주 문왕(周文王)이나 무왕(武王)은 ‘왕(王)’이라고 불렀습니다. 역대의 변천은 비록 다르지만 가장 높인 것은 한결같았습니다. 진(秦) 나라와 한(漢) 나라 이후로 ‘황’과 ‘제’를 합쳐 ‘황제(皇帝)’로 불렀으며 ‘왕’의 지위는 드디어 오작(五爵)의 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구라파의 각 나라는 우리와 문화나 제도가 같지 않지만 ‘황’과 ‘왕’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로마가 처음으로 황제의 칭호를 썼는데 게르만이 로마의 계통을 이어 그 칭호를 답습하여 썼고 오스트리아〔奧國〕는 로마의 옛 땅에 들기 때문에 역시 황제라고 불렀습니다. 독일〔德國〕은 게르만의 계통을 이었으므로 극존의 칭호를 받았으며 러시아〔俄國〕, 터키〔土耳其〕는 모두 자주의 나라이므로 다 가장 높은 칭호를 썼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역 경계가 중국과 잇닿아 있고 나라가 나누어지고 통합된 것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세 나라는 각각 그 땅의 주인으로 다같이 왕의 칭호가 있었으며 심지어 송양(松讓), 가야(伽倻), 예맥(濊貊), 여진(女眞), 탐라(耽羅) 등의 작은 나라들도 각기 왕으로 불렀습니다. 고려 때 통합하여 다만 묘호(廟號)만 썼으며 본조(本朝)에서는 옛 관습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은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 이후 그 나라들이 멀리서 존호(尊號)를 견제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폐하(陛下)께서는 성덕(聖德)이 날로 새로워져 문교(文敎)가 멀리 미치고 머나먼 외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어 만국(萬國)과 같은 반열에 놓이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옛 칭호를 그대로 쓰고 있으니 실로 천심(天心)을 받들고 백성들의 표준이 되는 도리가 아닙니다. 적이 살펴보건대, 구라파와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다 평등하게 왕래하고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는데 아시아의 풍속은 그렇지 않으므로 그 칭호를 보고 혹 불평등하게 대우한다면 교류함에 있어서 지장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충신(忠臣)과 의사(義士)들이 밤낮으로 분개하는 것입니다. 이제 빨리 황제의 칭호를 올려 여러 나라에 공포한다면 시기하고 의심하는 것이 날로 없어지고 우의(友誼)가 더욱 돈독해져 앞으로 길이 천하 만대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강토는 한 나라와 당(唐) 나라의 옛 땅에 붙어있고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은 다 송 나라나 명(明) 나라의 옛 제도를 따르고 있으니, 그 계통을 잇고 그 칭호를 그대로 쓴들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다같이 로마의 계통을 이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립과 자주는 이미 여러 나라가 공인하였으니 당당한 존호(尊號)에 거하는 것은 응당 실행해야 할 큰 법도인데 폐하께서는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는 것입니까? 신 등이 《공법(公法)》을 가져다 상고하여 보니, 거기에 쓰여 있기를, ‘나라의 임금이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가져야만 칭제(稱帝)하는 나라들과 평등하게 외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는데 신들은 이 말이 황제를 칭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갑오 경장(甲午更張) 이후로 독립하였다는 명분은 있으나 자주(自主)의 실체는 없으며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으니 백성들의 의혹이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을 위한 계책으로는 마땅히 위의를 바로세우고 존호를 높임으로써 백성들 마음이 추향(趨向)하는 방향이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또 그 공법의 주석(註釋)에 ‘러시아의 임금이 칭호를 고쳐 황제로 하였는데 각 나라들에서 좋아하지 않다가 20년을 지나서야 인정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이에서 보건대 우리가 우리나라의 일을 행하고 우리가 우리나라의 예(禮)를 쓰는 것은 우리 스스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인을 빨리 받는가 늦게 받는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미리 예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논의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왕」이나 「군(君)」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 임금의 칭호이며 「황제」라는 것은 여러 나라를 통틀어 관할하는 임금의 칭호이므로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들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통합하지 못하였다면 황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한(三韓)의 땅을 통합하여 영토는 사천리를 뻗어있고 인구는 2천만을 밑돌지 않으니 폐하의 신민(臣民)된 사람치고 누군들 우리 폐하가 지존(至尊)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지존의 칭호를 받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옛 것을 인용하여 오늘에 증명하고 여정(輿情)을 참작하고 형세를 헤아려 보아도 실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는 여정(輿情)을 굽어 살피셔서 높은 칭호를 받아들여 만국에 공표하여 천하에 다시 새로운 관계를 세우신다면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위하여 더없이 다행하고 신민에게 더없이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짐에게 무슨 일인들 권하지 못하겠는가마는 전연 당치 않는 칭호로 부르자고 말하는 것은 실로 경들에게서 기대하던 바가 아니니, 시국을 바로잡을 계책이나 강구하고 다시는 이에 대하여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과연 동국(東國, 외스터라이히).... [출처] 실록을 보니, 근대 조선인들도 '소중화' 개념을 로마에 비유하기도 했네요 (『역개루』 네이버 역사 커뮤니티) |작성자 지브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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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8-02-26 12:53
   
일이만日耳曼 = 게르만
덕德 = 독일
오奧 = 오스트리아
나마羅馬 =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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