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혜제(惠帝) 원강(元康) 원년이다.- 응신천황 22년(291, 유례왕8)에 신라의 군사가 일본을 공격하여 명석포(明石浦) 안으로 깊이 들어왔는데, 대판(大坂)과의 거리가 100리였다. 일본 사람들이 강화를 요청하여 백마(白馬)를 잡아 적관(赤關)의 동쪽에서 맹서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백마총(白馬塚)이 남아 있다.-상동
음..
다른 의미로 걍 당시 고구려는 섬나라(나라라고 불리기도 머한)에 관심 자체가 없었어요.
나중에 훨 나중에는 그나마 나라로서 그나마 모양새라도 꾸며지고 중간에 딴나라땜시 쬐끔 관심을 가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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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으로 인해 섬나라는 걍 백제꺼예요.
(광개토대왕땜시 아신왕이 한일들을 보면 아실듯 - 머 돌려 말하면 광개토대왕이 없었다면 혹은 아신왕이 비빌수 있는 수준였다면 아마도 섬나라에 국가라고 불리수 있는 체재를 가진 국가의 등장은 훨 나중였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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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랑 섬나라는 연결시도 자체가 걍 .. 환빠든 머든 어거지임..
머 이후 발해는 신라땜시 섬나라랑 연결고리가 생기니 그러려니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