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이덕일소장님의 글 요약
서양 민족주의와 일본 민족주의
서양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중세 코스모폴리탄 사회에서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서구의 민족국가는 곧 제국주의화가 되므로 서구 민족주의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이른바 메이지(明治)유신 이래 서구 민족국가가 걸었던 ‘못된 길’을 걸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민족을 ‘1등·2등·3등민족’ 등으로 분류해 차별했다.
한국 민족주의는 이런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저항의 민족주의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는 의열단선언문인 「조선혁명선언」 첫머리에서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고 우리의 정권을 빼앗고……”라고 비판하고,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라고 선언했다. 단재에게는 ‘한국 민족=민중’이 일치했다. 모두 억압받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라고 갈파했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과 김구의 「나의 소원」이 한국 민족주의의 기본 이념을 담고 있는 글이다. 민족 단위의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 싸웠고, 민족 내에서는 절대적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것이 한국 민족주의이다.
박노자는 「한겨레 21」에 연재한 내용을 묶은 『거꾸로 보는 고대사』에서,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대해 “1929년에 「단군고(檀君考)」라는 논문을 발표한 경성제국대학 겸임교수 이마니시 류와 같은 ‘과학적 근대 사학자’(한겨레출판, 2010)”라고 극찬했다.
이마니시 류의 「단군고」는 단군이 12세기부터 13세기에 창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박노자의 눈에 ‘과학적 근대사학자’로 보이는 것이다.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는 『조선총독부의 눈으로 본 고대사』라고 하면 역시 명실이 상부한다고 내가 이미 썼다.
박노자가 『한겨레 21』 인터뷰에서 훌륭한 학자로 칭송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피해자와 그 자손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길 꺼려하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중앙일보』 2017.5.24.)”이라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비난했다.
오늘 세상을 떠날지 내일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 가족들이 ‘도덕적·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누구 편에서 이 문제를 보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위안부들과 일본군이 ‘동지’였다는 박유하는 노골적으로 독도를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영유하자고 주장한다.
임종국 선생은 『실록 친일파』 서문에서 “‘민족’과 ‘국가’와 ‘철학’을 몽땅 거세할 때 문학에서 무엇이 남는가?”라고 일갈했다. 그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학자들 여러 명이 박유하 지지 선언을 했다.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 구한말과 비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