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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7 03:04
[한국사] 몽고와 가장 잘 싸운 국가는 남송이 아니라 고려입니다
 글쓴이 : 국산아몬드
조회 : 3,856  

몽고가 가장 고전한 국가는 고려입니다.

40년동안 침공했어도 결국 정복에 실패하고 아까운 몽고 장수와 군인들이 자꾸 고려땅에서 죽어가니 몽고가 할 수 없이 조약을 맺은거죠. 조약도 고려왕이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몽고에 고개를 숙인겁니다. 결코 몽고가 고려와의 전쟁에서 무력으로 이긴것이 아닙니다. 몽고는 고려가 이뻐서 국가를 보존시킨 것이 아닙니다. 무력으로 점령에 실패한 걸 인정한 거죠. 그래서 세조 구제가 나온겁니다.


쿠빌라이가 가장 사랑했던 막내딸을 고려왕에게 시집보낸 걸로 봐서도 쿠빌라이가 제발로 찾아온 고려 태자를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죠. 막내딸을 고려왕에게 시집보냈다는 것은 고려왕을 황금씨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쿠빌라이가 고려태자를 그토록 반가워한 이유는 고려정벌이 몽골입장에서도 숙원이었고 30년간 저항한 국가의 태자가 찾아왔다는 것은 쿠빌라이가 황제가 되는데 대단한 명분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오고데이시절부터 몽골의 주요 정복대상은 3 지역으로 중국, 유럽, 고려였습니다. 항상 동시에 군대가 출격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에 3만 원정군을 보낸 건 유럽에 10만 원정군을 보낸것과 비교하면 결코 작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고려와의 전쟁을 끝낸 몽고는 남송과의 전쟁에 전력을 투입할 수 있었고 남송을 정복합니다. 만약에 고려의 왕과 신하들이 정권다툼을  벌이지 않았다면 고려가 이겼을 수도 있고 남송이 정복안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남송은 40년을 버티기는 했지만 결국 영토전체가 정복을 당했고 국가는 없어졌고 전 국민들은

가장 천한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남송이 몽고와 전쟁에서 40년을 버텼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단 세차례 침공만에 나라가 무너집니다

1 차 1235년 ~ 1241년

2차  1258년 ~ 1259년

3차  1268년 ~ 1273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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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녀 18-01-07 03:24
   
헐.. 남송과 고려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것도 우스운데 게다가 고려가 더 잘 싸웠다라.. 남송 침공은 몽골의 역대 황제들과 모든 장수진들이 제국의 모든 국력을 기울인 침공이엇고, 고려는 몽골의 듣보잡 장수들에 의한 수천~3만 정도의 나들이 수준 아니었요? - 헐.. 아몬드님. 국뽕 기질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뭐.. 저는 그것도 그리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애교 정도로 넘어가면 되니까..) 이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해외에 있는 분들 다들 웃습니다.
     
국산아몬드 18-01-07 03:29
   
고려가 우스워 보입니까?
고려는 거란과의 3차례 전쟁에서 승리했고 특히  3차전쟁에서는 10만 정예기병을 몰살시켜
요나라의 전성시대를 끝장낸 나라였습니다
불과 100년전에 말이죠

그리고 요나라와 남송에 갑질하던 고려였습니다.
반면에 송나라는 요나라에 연운16주까지 빼앗기고 고려에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고려의 국력과 위상은 결코 남송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럽대륙 원정군 10만에 비교해서 2~3만명의 원정군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고려 정복은  몽고입장에서도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중국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고려정복은 반드시 필요한데 30년동안 해결을 못했으니까요

당신은 쿠빌라이가 고려의 태자를 그토록 반가워한 이유를 모르시는 것 같군요

전 팩트를 말하고 있는겁니다. 팩트를 말하는데 국뽕, 국까가 중요한가요?
          
Tenchu 18-01-07 08:58
   
거란때의 고려랑 몽골때의 고려랑 많이 다릅니다.
특히 북방수비 담당하던 서경이 김부식 이쓰레기때문에 초토화된뒤에다가.. 김부식 자식시키들때매 무인정권이 되버리죠.  외세에 대항할 구심점이 없어졌단겁니다.

근거하나 대주죠.
몽골의 침입전에.. 여진족에 개발린 거란인들이 요동에서 살다가 몽골이 금나라칠때 후요를 일으켰다가 그뒤 몽골때매 그냥 고려로 밀려내려왔는데.. 고려에서 얘네들 상대를 제대로 못했슴.
군대가 아니라 그냥 여자 아이에 가축들까지 거느린 대략 8만의 거란족들이었는데.. 고려군이 개박살남.. 3년여뒤 이거란군을 격퇴시킨게 충북 제천에 있는 박달재 전투였슴.. -_-..
그뒤 몽고랑 연합군만들어서 강동성에서 거란족들 항복받아냄.. (그떄 몽고장수랑 의형제맺은 고려장수의 자식시키가 북방수비맡다가.. 몽고의 침입이 있을때 싸우지도않고 그대로 항복해버림)
               
촐라롱콘 18-01-07 11:50
   
몽골-원의 입장에서 바라본 남송과 고려 정벌전은 규모 자체가 차원부터 다른데....^^

남송정벌전은 참가병력이 수 십만 단위(물론 몽골족들 뿐만 아니라 몽골에 투항한

여러 민족, 게다가 한족출신 투항병력까지 포함되기는 했지만....)

고려정벌전에 동원된 몽골군은 평균적으로 3만 규모 정도였고, 계속 누적된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본토의 방어선이 와해된 5~6차 침입에는 불과 5천의 병력으로 전국을

휩쓸고 다녔는데.....^^

그리고 앞서 Tenchu님이 언급했듯이 거란-여진과 대치하던 11~12세기의 고려의

군사력과 무신정권 이후 13세기의 고려의 군사력은 거의 천지차이입니다.

몽골 침략 이전에 고려에 침입한 늙은이, 부녀자, 어린아이들까지 포함된

9만여명의 거란유민들조차 자력으로 온전히 이땅에서 몰아내지 못해서

몽골-동진의 3만병력의 조력으로 몰아내는 바람에... 훗날 몽골침략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을 정도로... 무신정권 이후의 고려군사력은 바닥을 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차웽 18-01-07 07:37
   
지난글을 보니 댁의 성향이 보이는 군요 일뽕기질이 있으시네 ㅋㅋㅋㅋ
독도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는게 좋다굽쇼? 한국사람이기는 한거요? 어처구니없는 분이네
     
신수무량 18-01-07 13:39
   
고려를 지금의 주류(사견으로는 가짜사학자들)사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려라 생각하신가봅니다. 고려와 몽골이 화친한 후 10년이 안되서 허약한 송이 망합니다..
조선에 의해 황제국인 고려의 황제들이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 고려가 우리가 배웠던 고려죠...
     
위구르 18-01-18 13:26
   
한족들은 인구도 많고 국력도 우리보다 훨씬 강했는데 그에 비하면 변변한 저항도 못한 셈이죠
도나201 18-01-07 03:37
   
당시 무신정권의 정권야욕에 의한 방관자적처사는 고려시대의 최대의 역사적오류로 남겠죠..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면 전쟁전, 전쟁후를 볼 필요가 있읍니다.

국방tv의 토크다큐멘터리.. 전쟁사.. 라는 프로그램에서.. 몽고항쟁에 관한 내용을 다룬적이 있는데..
한번 찾아 보심...이 좋을 싶네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한 몇몇의 이기심이 얼마나 위험한 처사인지...
처절히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엿읍니다.

역사적사건에 의한 풀이로서 이야기해야하는데...
누가더세네.. 하는 술집이야기 주제는 .. 좀 자제하는것이 나을듯이 보이네요.
     
국산아몬드 18-01-07 03:40
   
이런 논의가 술집이야기 주제라고요?
          
도나201 18-01-07 22:19
   
술집이야기주제란 이야기에 대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리플답니다.
기네스북을 비하하는 단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네스북의 시초가 술집에서 오가느느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라는 이야기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제시한 주제의식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약간은 실망감이 든것도 사실입니다.
누가 더써었나보다는 .. 당시 상황의 개연성에 대해서촛점을 맞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서 적어봅니다.

글쓴이께서.. 어느수준의 역사의식이 있으셔서 현 주제를 내보이신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좀더... 개연성있는 주제가 더 중요하기에 .. 이글을 적읍니다.

만약오해의 소지의 글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신수무량 18-01-07 13:42
   
고려를 깎아내리는 소설들이 그리 나오죠..고려관련 사서가 얼마나 남아 있는줄은 아시나요? 한두줄 남은거로 과장..
여름비 18-01-07 03:41
   
몽골군은 남송의 양양성을 중동에서 가져온 공성 병기까지 투입하면서 집중 공격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간 함락을 못 시켰습니다. 성주 여문환이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항복해서 양양성이 몽골군에게 넘어갔죠. 이후 몽골군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남송을 대대적으로 휩쓸었고 그제서야 몽골군이 확실한 우위를 점했습니다. 중동과 동유럽, 그리고 고려가 모두 정리된 이후에도 남송은 몽골과 싸우는 중이었어요.

고려가 몽골에 패배하고 20년이 지나서야 남송이 망합니다. 44년을 버틴 겁니다. 남송은 몽골과 가장 가까운 전선이자 몽골의 대칸이 직접 최정예 군대를 이끌고 공격했던 나라인데 너무 남송을 폄하하시는 게 아닌가 싶네요. 고려는 절대 못 싸우지 않았습니다. 고려도 잘 싸웠죠. 그렇다고 고려는 잘 싸우고 남송은 허무하게 멸망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국산아몬드 18-01-07 03:56
   
남송이 잘 싸운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양양성이 6년간 버틴 이유는 남송 군사들이 잘 싸운 것도 있지만 갯벌,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등의 잇점도 많이 작용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양양성하나 무너졌다고 나라 전체가 거덜난 건  허무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성들은 허수아비였을까요?

고려만 해도 많은 성들이 점령을 당해도 나머지 성들로 끝까지 버텼습니다
          
여름비 18-01-07 04:26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고려는 이점이 없었나요? 남송에 투입된 몽골군보다 훨씬 적은 수의 군대가, 그것도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한반도에서 공성전을 하면 죽을 맛이었겠죠? 남송에 투입됐던 몽골군의 규모와 남송이 버텼던 기간을 고려해보세요. 남송은 단지 양양성 하나로만 버틴 게 아닙니다.

1236년 강릉 전투에서는 몽골군이 남송군에 박살이 나고 연전연패를 거듭하다가 양양 일대를 남송에 도로 빼앗깁니다. 심지어 남송군은 사천까지 가서 몽골군을 깨부수고 다시 영토 수복을 하죠. 그 후 남송은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이때부터 몽골군은 지옥을 맛보게 됩니다. 몽케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사천을 공격했다가 맹공의 방어를 격파하지 못하고 전염병까지 걸려서 죽습니다.

몽케가 죽고 쿠빌라이가 대칸에 오른 후 양양 공성전이 시작됩니다. 그냥 처음부터 남송이 양양성으로만 버티다가 갑자기 멸망한 게 아닙니다. 남송군과 몽골군 사이에 수많은 전투가 있었고 몽골군이 패배한 전투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건 다 무시하시고 고려는 잘만 싸웠고 남송은 성 하나로 버티다가 허무하게 쓸려나갔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국산아몬드 18-01-07 18:37
   
양양성이 함락된지 2년만에 남송은 멸망했습니다
                    
여름비 18-01-07 21:45
   
.... -ㅁ-;;

당황스럽네요. 위에 다른 분에겐 고려가 우스워 보이냐고 화를 내시는 모습이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남송을 양양성 하나로 겨우 버티다가 쉽게 멸망한 나라 취급하시네요. 몽골이 남송과 전쟁에 돌입하자마자 양양성을 공격해서 함락시키고 2년 만에 남송을 먹은 것도 아니고 양양성 공방전을 포함하여 수많은 전투가 있었고 남송을 함락시키기까지 44년이 걸렸는데 왜 보고 싶은 것만 보시고 고려는 찬양에 가깝게 추켜세우시면서 남송은 허무하게 망했던 나라 취급하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요;;
도나201 18-01-07 03:42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전쟁이후의 상황이였읍니다.
그후 삼별초항쟁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오히려 삼별초의 재평가가 논해야 되지 않을까 봅니다.

참고로 .. 남한산성의 척화파 와 친화파... 나뉘어서 누가 충신이였는가...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전 둘다 죽일놈들입니다.
사대부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놈들이 나라를 유지했다라는것이 제... 개인적인 결론입니다.

첫째로 그상황을 만들지 않은 것이 충신입니다.

그렇게 될때까지 방관하던 자들을 충신이라고 이야기 하지 맙시다.
길로이 18-01-07 07:52
   
우리나라 역사 인식이 이상한 부분이 대외항쟁에 대한 부분들인데.
"잘 버텨서 대단한거고 거짐 이긴거다" 이런건 솔직히 자위성 역사관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전쟁에는 그 전쟁을 수행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목적성이 없이 그냥 자국 인구와 물자 낭비하려고 침략하는 침략을 위한 침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침략을 하는 쪽의 목적은 단순하고 뚜렷하지만, 반대로 막는 쪽의 목적은 단순히 그저 상대의 침략목표를 훼방 놓는게 전부가 아니라 국민과 영토를 수호하는게 진짜 목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외적이 "우린 너희 재물을 약탈 할거다" 라고 할 때.  방어군의 목적이 멍청하게 "재물만 지키자" 가 돼서 외적들이 재물 뺏으려다 안 되니까 그냥 주민들 학살하고 노예로 납치하는 것을 방치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몽골군이 무서워서 정부가 섬에 숨어있을 정도면 몽골군 영향이 미치는 곳에서는 사는 꼴이 끔찍했을텐데.
백성은 어육이 돼서 죽어나가는 시기를 두고 귀족이나 양반들이 살아남았으니 이긴셈 치는 이상한 인식들이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이승만과 그 부하놈들이 큰소리만 치다가 북한군 못 막으니까 국민들 죽으라고 다리 끊고 도망가더니.  한술 더떠서 나중에는 뇌물과 세금만 빼돌리고 국방대비는 쥐뿔도 안 한게 문제가 아니라 쳐들어 온 북한만 문제고, 그래도 전쟁 멈추고 국가가 유지 됬으니 그게 잘한 짓이라고 미친소리 하는 것과 자위성 역사관이 연결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정치적으로 오염 된거 같은 역사관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남겨봅니다.
     
촐라롱콘 18-01-07 11:39
   
어느정도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그나마 인조가 한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다가 항복했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전란의 피해가 곡창지대인 삼남지역에는 거의 미치지 못했습니다.

만약 인조가 남한산성이나 강화도가 아니라, 호남이나 영남지역으로 몽진했다면 그야말로

전국 대부분이 전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Banff 18-01-07 08:35
   
이미 위 여러 댓글분들이 잘 지적하셨네요.  강화도 빼고 다 유린당했던 점을 생각하면 그리 의미없는 분석.
그리고 가장 잘 싸운 국가의 기준이 뭔지를 모르겠네요. 예루살렘근처 아인잘루크 전투 승리로 몽골의 홍해연안과 북아프리카 진출을 막은 맘루크왕조가 들으면 섭하겠어요.
툴카스 18-01-07 16:18
   
베트남은 견딘 수준을 넘어 아예 몽골을 이겨버렸죠.  쩐흥다오가 원나라의 50만대군을 격퇴했습니다.
     
도나201 18-01-07 22:28
   
전 베트남의 항쟁사건과 여몽항쟁의 차이는..............

제대로 준비한자 와  그렇지 못한자 로 봅니다...

당시 ㅇ국력과 정보 모든것이 조금 달랐읍니다.

첫째로 남송의 몰락이후.  .. 남송의 패망세력의 유입에 의한 정보력에 대해서 상당히 유리한 점이 있었읍니다.

둘째로 남송몰락후 몽고의 세력의 분할시점
칸의 사망이후 각형제의 세력권분할을 한 이후 그에 따른 세력권역의 침탈물의 축소.
결국.. 남송의 침탈물자의 원의 건국에 대부분사용

셋째 보급이송의 장기화.. 다른 북방계국가와는 다른게 밀림에 의한 물자이송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군사적이동역시 그어느때보다.. 힘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음
특히ㅏ 전염병의 창궐은 결국 베트남에게 손을떼게한 결정적인 이유였음.
마치 일본의 태풍처럼..

그렇다고.. 베트남을 비하거나 그럴생각은 없음. 그들은 이겼고,,
우리는 그에대해서 철저한 준비조차 못하고 내부분열에 의한 분쟁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베트남에게.. 오히려 경의를 표하는게.. 도리아닐까싶네요.
          
뚜리뚜바 18-01-08 12:24
   
저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졌었는데;; 기마민족이 굳이 적도 지방의 밀림을 얻기위해 전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나 싶음... 일본역시 마찬가지... 섬하나얻자고 배만들고 할필요가...
대월과 일본의 상황이 조금 비슷했던게 방파제 역할의 나라들이 있었다는 거죠. 준비기간은 송이 침공당한다 고려가 침공당한다... 그걸 40년이나 막아줬는데 준비를 거져할 수가... 일본은 태풍으로 겨우 몰아냈지만 그전까지만해도 거의 학살수준 
참고로 베트남역시 몽골을 몰아내기까지 월남2차까지만 해도 하노이가 2차례나 점령당하고 숫한 참패로 몰아낸거
베트남은 송나라 덕을 톡톡히 본게 크게 작용한거 같음.
               
장진동 18-01-13 10:09
   
윗분들 뭔가 잘못 알고 계신데 ㅋㅋㅋㅋㅋㅋ어떻게 이겼는지 인터넷 검색하면 나와요 ㅋㅋㅋㅋ쪽국이랑 비교하시는거 자체게 모순이고요 ㅋㅋㅋㅋ1차때는 굶어 죽이고요 2차때는  싸그리 수장 시키죠  ㅋㅋㅋㅋ
장진동 18-01-08 11:55
   
아닙니다 몽고전쟁에서 가장 잘싸운 나라는 고려,조송도 아닙니다 바로 다이비엣입니다  지대루 알고 글올려 주세요 ㅋㅋㅋㅋㅋㅋ
     
세뇨르 18-01-10 19:36
   
다이비엣은 대월국 즉, 베트남.. 베트남=비엣남.
          
장진동 18-01-13 10:05
   
다이비엣=대월국이란 뜻이에요 그런데 짱께가 땡깡핌 왜 '대"자를 쓰느냐고 ㅋㅋㅋ
위구르 18-01-18 13:27
   
거란의 침략을 받던 때처럼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기강을 잡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싶습니다... 무신정권이 역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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