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가 가장 고전한 국가는 고려입니다.
40년동안 침공했어도 결국 정복에 실패하고 아까운 몽고 장수와 군인들이 자꾸 고려땅에서 죽어가니 몽고가 할 수 없이 조약을 맺은거죠. 조약도 고려왕이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몽고에 고개를 숙인겁니다. 결코 몽고가 고려와의 전쟁에서 무력으로 이긴것이 아닙니다. 몽고는 고려가 이뻐서 국가를 보존시킨 것이 아닙니다. 무력으로 점령에 실패한 걸 인정한 거죠. 그래서 세조 구제가 나온겁니다.
쿠빌라이가 가장 사랑했던 막내딸을 고려왕에게 시집보낸 걸로 봐서도 쿠빌라이가 제발로 찾아온 고려 태자를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죠. 막내딸을 고려왕에게 시집보냈다는 것은 고려왕을 황금씨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쿠빌라이가 고려태자를 그토록 반가워한 이유는 고려정벌이 몽골입장에서도 숙원이었고 30년간 저항한 국가의 태자가 찾아왔다는 것은 쿠빌라이가 황제가 되는데 대단한 명분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오고데이시절부터 몽골의 주요 정복대상은 3 지역으로 중국, 유럽, 고려였습니다. 항상 동시에 군대가 출격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에 3만 원정군을 보낸 건 유럽에 10만 원정군을 보낸것과 비교하면 결코 작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고려와의 전쟁을 끝낸 몽고는 남송과의 전쟁에 전력을 투입할 수 있었고 남송을 정복합니다. 만약에 고려의 왕과 신하들이 정권다툼을 벌이지 않았다면 고려가 이겼을 수도 있고 남송이 정복안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남송은 40년을 버티기는 했지만 결국 영토전체가 정복을 당했고 국가는 없어졌고 전 국민들은
가장 천한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남송이 몽고와 전쟁에서 40년을 버텼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단 세차례 침공만에 나라가 무너집니다
1 차 1235년 ~ 1241년
2차 1258년 ~ 1259년
3차 1268년 ~ 12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