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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9 15:12
[한국사]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3) ㅡ 요와 고려의 접경은 현 철령시ㆍ범하 근방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567  

이 과정적 고찰은 다음 문장에서 비롯하였습니다

聖宗 以地隣髙麗、開泰 初 置州 以所俘漢民實之。

저는 홀로

ㆍ고려 서경이 지금의 북한 평양인가
ㆍ고려 서경이 고구려 평양인가
ㆍ고려와 요의 경계로서의 압록강이 지금의 압록강인가
ㆍ수당 침략기의 고구려 압록강이 지금의 압록강인가
ㆍ수당 침략기의 고구려 평양이 지금의 북한 평양인가
ㆍ한의 낙랑군 치소가 지금의 북한 평양에 있었는가

등의 여러 역사 쟁점을 사서 직접 분석을 통하여 고찰해 오던 차에 최근에 이르러 당시 요하 일대를 직접 지배한 요나라의 지리 정보서인 요사 지리서의 내용을 간과하며 읽은 것을 반성하며

요사 지리지를 다시 붙들고 정밀하게 읽어 나아갔습니다

고려와 국경을 직접 맞댄 나라로서 993 년 1차 고려 침략으로부터 고려에게 보주ㆍ내원성을 내주고 금의 여진에게 그것을 빼앗기고 나라가 망하기(1125)까지 근 130 년을 국경문제(고려는 보주ㆍ정주를 돌려줄 것을, 요는 강동 6주를 돌려줄 것을 각기 요구)로 외교전, 대규모전,국지전을 계속하셔 벌인 만큼

고려의 서북계에 대한 단서 정보를 그 지리서에 남겼을 것이 분명하다 여겨진 까닭입니다

聖宗 以地隣髙麗、開泰 初 置州 以所俘漢民實之。

1) 요 성종이 땅이 고려와 인접했다고 하여
2) 개태(1012~1020) 초에 주를 설치하고 한민(漢民) 포로들로 채웠다

고려와 인접했다고 한 이 지역의 위치를 찾는다면 고려의 서북계의 윤곽이 더욱 뚜렷해질 것은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요 성종의 개태 연간은 고려의 강동 6주를 빼앗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침략을 감행한 때로 고려는 이를 모두 물리치고 동북아 3강 체제를 이룩합니다

고려와 인접한 땅인데 비어 있으니 빼앗길 것을 우려해 주를 설치하고 쭝궈 포로로 그 땅의 호구를 채워 지키고자 한 것이죠

해당 기록이 들어 있는 요사 지리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信州 彰聖軍 下 節度, 本 越喜故城, 渤海 置 懐逺府, 今廢。聖宗 以地隣髙麗、開泰 初 置州 以所俘漢民實之。兵事屬 黄龍府都部署司、統州三未詳 縣二。武昌縣 本 渤海 懐福縣地、析 平州提轄司 及 豹山縣一千户、隸之。定武縣 本 渤海 豹山縣地、析 平州提轄司 併 乳水縣人户置、初名定功縣。


<요사 지리지>

1) 신주(信州) 창성군(彰聖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2) 본래 월희(越喜)의 옛 성이 있던 곳으로 발해가 회원부(懷遠府)를 설치하였는데 지금은 폐지되었다.
3) 성종이 이 지역이 고려와 인접하고 있다고 하여 개태 초반에 주를 설치하고, 쭝궈 포로로 채웠다.
4) 군사와 관련된 일은 황룡부(黃龍府) 도부서사에 소속시켰다.
5) 3주(미상) 2현을 관할하였다.

6) 무창현(武昌縣)은 본래 발해 회복현(懷福縣) 지역으로 평주의 제할사 및 표산현(豹山縣) 1,000호를 예속시켰다


7) 정무현(定武縣) 본래 발해 표산현(豹山縣) 지역으로 평주 제할사 및 유수현(乳水縣)의 민호로 설치하였다. 처음 이름은 정공현(定功縣)이다.

군사와 관련된 일을 황룡부에 소속시켰다 했는데 황룡부는 옛 부여가 있던 곳으로 발해 부여부 자리입니다 위치가 요양에서 먼 동북쪽입니다

설치된 3주가 미상이라 한 점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고려와 접경지대라 하면 강동 6주와 필시 관련이 있는 지역일 것이고 이 신주를 설치한 때가 고려를 두 차례에 걸쳐 침략한 때와 같기 때문에 더욱 의심스러웠습니다

실제 요는 고려의 두 차례의 침략에서 고려의 동주(銅州)·곽주(霍州)·귀주(貴州)·영주(寧州) 등을 공략하여 일시 점유한 바 있으며 실제 요사 지리지에는 해당 지명이 일부 존재합니다. 또한 귀주의 경우 요사에서 명칭을 귀덕주와 혼용(요사에서는 이 때의 귀주를 귀덕주라고 표기함)하고 있습니다. 아래 요사 지리지의 해당 내용을 보겠습니다

寧州觀察, 統和二十九年 伐髙麗 以渤海降户置, 兵事 隸 東京統軍司, 統縣一新安縣.

歸州觀察, 太祖 平 渤海, 以降户置, 後廢.  統和二十九年 伐髙麗 以所俘渤海户復置, 兵事屬南女直湯河司, 統縣一歸勝縣.

東州以渤海户置.

同州以渤海户置

銅州 廣利軍 刺史 渤海置, 兵事 隸 北兵馬司, 統縣一.  析木縣 本 漢 望平縣地, 渤海 為 花山縣, 初隸 東京, 後來屬

同州 鎮逺軍 下 節度, 本漢襄平縣地, 渤海為東平寨, 太祖置州, 軍曰鎮東, 後更名, 隸彰愍宫, 兵事屬北女直兵馬司, 統州一未詳縣二.  東平縣 本 漢襄平縣地, 産鐵, 撥户三百, 採錬隨征賦輸.  永昌縣本 髙麗 永寧縣地.

貴徳州 寧逺軍 下 節度, 本 漢 襄平縣地, 漢公孫度所據.  太宗時 察克 以所俘漢民置, 後以弑逆誅没入焉.  聖宗 建 貴徳軍, 後更名.  有 沱河 大寳山.  隸崇徳宫, 兵事 屬 東京都部署司, 統縣二.  貴徳縣 本 漢 襄平縣, 渤海 為 崇山縣.  奉徳縣 本 渤海 緑城縣地, 嘗置 奉徳州.

<요사 지리지>

1) 영주(寧州), 관찰을 두었다. 통화 29년 고려를 정벌할 때 발해의 항복 민호로 설치하였다.

2) 귀주(歸州), 관찰을 두었다. 태조가 발해를 평정하고 항복한 민호로 설치하였다가 나중에 폐지하였다. 통화 29년 고려를 정벌할 때 사로잡은 발해 민호로 다시 설치하였다.

3) 동주(東州), 발해 민호로 설치하였다.

4) 상주(同州) 발해 민호로 설치하였다.

5) 동주(銅州), 광리군(廣利軍)이 설치되었으며 자사를 두었다. 발해 때 설치되었다.
6) 석목현(析木縣), 본래 한나라 망평현(望平縣) 지역이고 발해 때는 화산현(花山縣)이다. 처음 동경(東京)에 예속되었다가 나중에 (이곳으로) 소속되었다.

7) 동주(同州), 진안군(鎭安軍, 鎭逺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양평현(襄平縣) 지역이며 발해 때는 동평채(東平寨)이다.
8) 동평현(東平縣), 본래 한나라 양평현 지역이다. 철 산지라 300호를 징발하여 채취와 단련 작업을 시켰고 그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였다.
9) 영창현(永昌縣), 본래 고구려 영녕현(永寧縣) 지역이다.

10) 귀덕주(貴德州), 영원군(寧遠軍)이 설치되었고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양평현(襄平縣)이 있던 곳으로 공손탁(公孫度)이 점거하였다.
11) 태종 때에 찰할(察割)이 노략한 한인(漢人)으로 설치하였다. 나중에 반역죄로 죽임을 당하고 몰수되었다.
12) 성종이 귀덕군(貴德軍)을 세우고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타하(陀河)와 대보산(大寶山)이 있다.
13) 귀덕현(貴德縣), 본래 한나라 양평현(襄平縣)이며 발해 때는 숭산현(崇山縣)이다.
14) 봉덕현(奉德縣), 본래 발해 연성현(緣城縣, 록성현緑城縣)으로 일찍이 봉덕주(奉德州)를 설치하였다.


통화(統和)는 요 성종의 연호로 983년부터 1011 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통화 29 년은 거란의 2차 침입 때에 해당합니다

상기 1) 영주와 2) 귀주가 신주의 미상으로 전하는 속주였을 것이 매우 의심됩니다 그밖에도 상기한 바와 같이 이름이 같거나 흡사한 지명이 다수입니다

타 국가에서 약탈한 민호로 행정지역을 설치하는 경우 그 약탈한 민호의 출처가 되는 지명을 가져다 쓰기도 하고
타 국가의 어느 지역을 일시 점유했을 뿐이더라도 마치 계속 점유한 것처럼 주장하거나 그 지역 명을 국내로 가져와서 속주, 속군, 속현으로 설치하기도 하며
타 국가에게 빼앗긴 행정지역을 교치하기도 하는 등 여러 사정이 혼재하므로 이러한 것을 고려해 봐야 하겠습니다

고려와 인접하다 한 신주의 연혁을 고찰하기 위해 다른 경로를 강구해야 했습니다. 일단 越喜를 중심으로 사서를 찾아봤습니다.

銀州 富國軍 下 刺史, 本 渤海 富州.  太祖 以銀冶 更名, 隸弘義宫, 兵事屬北女直兵馬司, 統縣三.  延津縣 本 渤海 富壽縣, 境 有 延津故城, 更名.  新興縣 本 故 越喜國地, 渤海 置 銀冶, 嘗置銀州.  永平縣 本 渤海 優富縣地, 太祖 以俘户置, 舊有永平寨.

<요사 지리지>

1) 은주(銀州), 부국군(富國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2) 본래 발해의 부주(富州)로 태조가 은을 야금하는 곳이라 하여 이름을 바꾸었다.
3) 연진현(延津縣)은 본래 발해 부수현(富壽縣)으로 변경에 연진(延津)의 옛 성이 있어서 이름을 바꾸었다.
4) 신흥현(新興縣)은 본래 옛 월희국(越喜國)의 땅이다. 발해가 은 야금지를 설치하였으므로 일찍이 은주(銀州)를 두었다.
5) 영평현(永平縣) 본래 발해 우부현(優富縣) 지역으로 태조가 포로로 설치하였다. 오래전부터 영평채(永平寨)가 있었다.


요나라 신주와 은주는 모두 옛 월희국의 땅이었다 했으므로 서로 인근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므로 다른 사서를 더 살펴 보겠습니다.


新興城即衛治。本勃海富壽縣,為富州治,境有延津。遼更名延津縣,銀州治焉。金皇統三年,州廢,更置新興縣,屬咸平府。金末廢。元因之。明洪武二十一年,在衛治東南五百里故鐵嶺城,置鐵嶺衛,與高麗接境。二十六年,徙治於此,因故城修築,周五里有奇。又有故新興城,在今衛東。《遼志》云:故越喜國地,勃海置銀冶於此,因置銀州。遼改富州為銀州,以故銀州置新興縣屬焉。是也。金並入延津縣,又改延津為新興縣。

<독사방여기요 산동8>

1) 신흥성은 철령위(鐵嶺衛, 요양 북쪽 240리)의 치소이다
2) 본래 발해 부수현으로 부주의 치소였다
3) 요가 연진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은주의 치소로 삼았다
4) 금 황통 3년(1143년)에 은주를 폐지하고 신흥현을 두어 함평부에 속하게 했다

5) 명 홍무 21년(1388년) 현 철령위 동남쪽 500리에 있는 옛 철령성에 철령위를 설치했는데 고려와 국경을 접했다
6) 명 홍무 26년(1393년) 지금의 위치(요양 북쪽 240리, 신흥성)로 철령위를 옮겼다

7) 요사 지리지에 의하면 옛 월희국 땅이다

비록 요나라 신주에 대한 여타 기록은 더 찾지 못 했으나
신주의 군사권이 옛 부여를 관할하는 황룡부에 속했다는 점,
은주와 더불어 옛 월희국 땅이었다는 점,
은주(의 치소)가 지금의 철령시 자리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할 때에

고려와 요나라의 접경은 현 중국 요녕성 철령시와 범하 근방으로 비정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정리하면

1) 요나라와 고려의 접경지대는 현 철령시와 범하 일대이며
2) 명과 고려의 접경지대는 독사방여기요 산동8에 근거하여 현 철령시 동남쪽 500리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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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2-19 15:38
   
독사방여기요의 다른 기록에서 신주 관련 기록을 더 찾았으나 일단 상기 소고에는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신주의 위치가 개원성 (삼만위 치소, 요양 북쪽 330리, 철령위 북쪽 90리) 동북쪽 400리라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을 소고에 반영 할 시에 통설과 견주어 지나친 비약이 될 수 있으므로 제반 사실을 더 고찰하여 차후에 채택하기로 하였습니다

三萬衛司北三百三十里。南至鐵嶺衛九十里,西至廢懿州三百七十里,東北至三衛境廢信州三百十里。開元城即衛治。廢信州在衛東北四百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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