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의문은 던질 수는 있는데 말 자체로 보자면 이것 참 바보 같은 말입니다
'우리 민족'이라는 말 자체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서 감정론을 끌어안고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우리 민족'이 무엇이냐? 이걸 정의를 하고 또 그 정의로서의 전제가 논리에 맞아 떨어져야 일, 즉 문리를 펼쳐 갈 수 있습니다
이게 한자는 누가 만들었느냐를 따지는 일만큼 번거롭고 고생스러운 일인데 보통 이 일을 건너 뛰면서 말이 아니라 똥이, 그것도 똥무더기가 되고야 말죠
게다가 저 스스로가 '한자는 누가 만들었느냐'를 풀어볼 깜냥이 없어요
이걸 고찰하기 위해서는 뭐가 뭐가 필요하고 어디서 뭘 찾고 어쩌고 하는 것은 가늠을 할 수 있는데 당장의 지식도 시간도 없습니다
제가 책을 잡다하게 참 많이 읽은 사람인데 사람이 말이죠 읽은 책이 만 권 단위로 넘어가면요 남는 게 없어요 나중에는 내용은 커녕 책 제목도 저자 이름도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독서는 방대하게 넓게 많이 읽는 거보다는 한 분야, 적은 량의 책이라도 깊이 있게, 또 정리해 가면서 읽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좋은 점은 남들보다 밑그림은 잘 그린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코끼리를 그리자 해놓고 다리 한 짝만 그려놓고 마는데 저는 코끼리의 형체 윤곽은 얼추 그린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그려 놓으면 이게 코끼리인지 쥐인지 이게 코인지 꼬린지 똥자루인지 몰라보게
되는 낭패를 보게 됩니다
어찌 됐든간에 사람이 대가리속에 아는 게 많은 것보다는 있는 사실자료를 얼마나 활달하고 기민하고 정교하게
끌어다 쓸 수 있느냐가 더 훌륭하고 쓸모있다고 봅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 얼마나 좋습니까
예전에는 노래 하나 영화 한 편 구하려 해도 참 고생을 해서
남들이 못 들은 노래, 남들이 못 본 영화를 본 게 자랑이었는데 요즘은 치면 다 나와요
90 년대 초에 TV를 보는데 한 다큐에서 집 가(家)를 예로 들면서 이게 한국인이 한자를 만든 증거다 우와~~~ 이러고 말하는 걸 우연히 봤는데 제주도 통시를 문화사적 근거로 들더군요 그거 보고 코웃음이 났습니다
宀 + 豕 = 家
왜 그러냐 하면 전통적으로 고상주택은 동남아에 더 많고 거기서는 그 집 아래에 돼지를 풀어놓고 키워요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란 말이죠 동남아 출신의 쭝궈린들도 그랬구요 쭝궈린들도 동남아인들이랑 다를 바 없이 남자도 치마 입고 살면서 집에서 돼지 치며 농사 지어 먹고 살았죠 더구나 고대에는 기후도 동남아 같았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진태하 박사라는 분이 그런 주장의 선두주자더군요 권위 있는 한학자인데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분의 주장이 아주 터무니 없느냐? 아니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한문학자이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있는 분인데 이 분보다 한자를 더 안다 말할 사람이 대한민국 땅에 몇이나 있겠어요? 학식과 그 권위를 보자면 이 분 말을 신뢰할 만한데 말하는 근거를 보면 쫌 이상하고 아귀가 안 맞고 께름직하다는 말이죠
이게 왜 그러냐 하면 이런 분들이 문화사나 역사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한자 형성과 우리 민족은 아예 관계가 없느냐 하면 또 꼭 그렇지가 않아요
한자는 중국 청동기인들이 낳은 것인데 중국 청동기 문화가 어떻냐 하면 그 자리에서 청동기 문화를 기초부터 다져 발전상을 일구어 간 이들이 아니라
외부에서 완성된 청동기 기술을 가지고 그 자리로 이주해서 이질적인 결과물들(디자인)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새를 토템으로 하고 청동기 기술을 지닌 대단위의 집단이 오늘의 오르도스와 하북성을 통해 이주해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일구어 낸 게 한자요 이들 집단이 바로 은, 즉 상나라인들입니다
한자에는 그 당시의 문화사가 녹아들어 있어요 중원에서 만들어진 건데 이들이 지금의 요서에서 이주한 이들이기 때문에 당시에 지금의 요서를 중심한 지역에 살고 있던, 즉 우리 민족의 조상들의 정신문화, 문화적 형질을 재구해볼 단서가 한자의 곳곳에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상나라인들이 나라가 망하자 마치 유대인들이 출애굽하 듯이 고조선 땅으로 망명을 합니다 일부는 또 다 들어오지 못 하고 지금의 산동, 하북 등지에 정착을 하며 그 일대의 역사를 써내려 가죠
이런 정황사실을 볼 때에
'한자 만든 민족 = 우리 민족'은 나물 씻다가 똥방귀 뀌는 소리지만
"한자에는 고대 우리 조상들의 문화상과 문화사, 문화적 형질을 재구할 단서가 산재하고 또 한자를 만든 주도세력의 일부는 우리 민족 형성의 한 지류가 되었다"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역사연구라는 게 말할 수 있는 것부터 말하고자 과학방법론을 적용하여 탐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