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가 기가막혀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유행가가사이다.
백이숙제??
위키백과에따르면.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가 망한 뒤에도 상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으며, 고죽군 영주로 받는 녹봉 역시 받을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었다. 이때 왕미자라는 사람이 수양산에 찾아와 백이와 숙제를 탓하며,
" 그대들은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주나라의 고사리를 먹는 일은 어찌된 일인가."
여기까지만 보면 이상할것이 없다.
문제는 조선의 기록과 지명이다.
성삼문은 단종폐위를 한탄하며 황해도 해주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숙제를 한한다는 시를 남겼다.
반도의 황해도 해주에도 수양산이 있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역시 해주 수양산인 이곳에서 백이숙제가 죽었다고 나온다??
에잉 백이숙제는 주나라땅인 수양산에서 죽었다는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걸까?
이성계는 전주이씨며. 계자는 계수나무계(桂)자이다. 대륙에는 계림시(桂林)가있으며 전주도있다.
그전주에 완산,금산사도 있다. 반도의 지명과 동일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조선말 문신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 전주가 계림부(桂林)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이처럼 반도의 지명은 전고와 고금지명을 대조해보면 대륙과 유사한 지명이 넘쳐난다.
마치 영국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영국요크지방 지명을 따서 뉴욕이라 부르는듯한 지명이동일까?
우리의 고전,사서에는 대륙의 지명,인물,사상,산물이 넘쳐난다.
신라김함보가 세운 금나라는 송을 치기위해 고려에게 길을 빌려달라한다. 거란은 동북여진을 친다며 역시 길을 빌려달라한다 반도고려라면 있을수없는일이다.
조선의 팔도는 도읍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뻗은 형상이다. 반도와는 맞지않다. 억지로 끼워맞추다 보니 강원이 정동 황해도가 정서라는 어처구없는 형상이된것이다. 반도의 정서는 바다일뿐이다.
마땅한 호수도없음에도 호남이되고 동서가좁은 반도에 삼경을 끼워맞추다보니 평양,경주등이 서경,동경이라는 어처구니없는일을 사실로 가르치고 있다.
반도의 개경을 중심으로 서경이 평양이고 동경이 어찌 경주가 될수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남경이 현서울?? 개경바로밑에 또 도읍을둔다?? 거리가 얼마된다고??
그리고 그게 남경이고 더남쪽엔 동경을 두고 북쪽엔 서경을 두고 가지가지한다.
사서에 기록된 조선황궁의 해자와 성곽이 현반도의 조선황궁에는 존재하지않는다.
북경자금성,일본,인도,베트남왕궁,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도 있는 해자가 500년왕조를 이어간 조선에는 없다는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않는다.
덕수궁현판이 본래 대한문이아닌 대안문이며 광화문현판의 색상도 현재와 다르며 일제이전 반도의 지명은 한자지명보다 순우리말천지였으며 옛덕수궁자리는 별로 인적도 없는곳이였다고한다.
도대체 뭐가 어찌된 노릇인지??
더 놀라운 것은 조선궁궐이 옛일제의 신사가 있던 남산을 향해있다는것이다.
정궁이라는 경복궁은 임진왜란끝난지 무려267년만에 중건한단다 그동안 뭐하고 서세동점과 제국주의 일제가 활개친 구한말 대원군때말이다.
우리의 뇌리속에 장안의화제니 뭐니 해가면서 장안,낙양은 도읍이라고 깊숙히 박혀있음에도 이것이 우리의 도읍이아니라 중국의 도읍이며 도읍의 대명사란다.
중국이란 말조차 본래 도읍,중심,중앙조정,경사를 뜻한다고 기록되어있음에도 현중공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를 비롯한 동북아는 역사사건을 볼때 세계최초일정도의 기막힌 우연 사건이 난무한다.
동시대의 동명이인의 왕건이 대륙과 반도에 동시에 존재하며 둘다 나라를 창업한 왕이며 재위까지 유사하다.
전촉왕 왕건(王建 847년~918년, 재위: 907년~918년)
태조 왕건(王建 877년~943년, 재위: 918년~943년)
중공은 문화대혁명으로 대륙의 문화유산,유물,사서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지식인을 학살했다. 유물유적까지 이렇게 마구 파괴한 국가는 중공이 전세계에서 유일하다. 왜 그랬을까 왜그렇게 자신들의 역사문화를 모조리 파괴하고 살육했을까?
그것은 그것이 그들의 문화가 아니기때문이다. 대륙에서 있었던 지난역사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신중국의 한족중심의 사관 공산주의 사상 숙청이 모두 그안에 포함되어있는것이다.
세계최대라는 삼협댐건설에도 수많은 이민족의 유적,유물,흔적이 수장되었다. 6.25때는 많은 조선인을 중공군으로 참전시키고 위구르에서는 핵실험을 수없이 실시하였다. 이것이 중공의 실체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여 조선사를 전부 자신들의 의도(식민반도사관)되로 교열하고 폐기하였다. 우리가 알고있는 사서는 거의 전부 일제의 교열을 거쳤다. 식민통치의도에맞게 뜯어고쳤다는얘기다.
식민지에 그런기관을 설치한예는 내 짧은지식으론 전세계에 단하나도 없다.
역설적이게 세종때의 정음을 찾아내어 한글보급에 일조한것도 사실이다.
왜 그러했을까 역사가 한미한 반도의 나라 식민지일뿐이라면 그런 심혈을 기울일 까닭이 전혀없다.
일제가 주력한것은 식민반도사관이다.
식민지조선의 선조들은 대륙과 무관하며 한자의 종주국도 아니며 위대하지도 못하며 사대만 일삼던 반도의 소국이니 당연히 망해야하며 선진일제의 신민이 되야한다는 사관의 주입이 주목적인것이다.
주원장과 이성계는 둘다 나라를 개국한 창업자이며 정확히 똑같은 연도에 재위에서 물러났다.
주원장은 명을 세우기전부터 말도안통하는 고려인 아내들과 측근을 열라많이 두었으며 한국설화에서는 고려인이라하며 명초기의 복식은 고려양이다.
고려와 원은 둘다 홍건적에게 침략을 당했단다. 아니 고려가 대체 어디길래 대륙에서 날뛰던 정규군도 아닌 홍건적이 제나라도 아닌 말도안통하는 반도고려까지 침범한다는 말인가.
만리장성넘어 산넘고 물건너 산악지형이70%가 넘는 반도의 개경까지 침범한다?? 대륙도 널널할텐데 도적떼가 산만많은 반도의 소국까지 뭐하러 납시었을까?
고려가 약세로 바뀌었다해도 고려는 고구려정통성을두고 전쟁을 한 거란의 대병까지 물리쳤던 나라아닌가. 세계를 제패했다는 몽골에게도 수십년 항전한 나라가 아닌가?
고려가 대륙에 있어야만 모든 의문이 풀린다.
그래야 금나라,송,거란이 서로 상대나라를 친다며 고려에게 길을 빌려달라한게 부합한다는 얘기다.
현반도사관은 기록,지명,산물,고전,판소리등을 모두 종합해보면 완전히 모순과 의문의 결정체라고 볼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