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중국 사천사범대학에서 특강하는 도올 김용옥. [사진 통나무]
- 질의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펴낸 역사지도집을 보면 만리장성이 북한의 평양 지역까지 그려져 있다.
- 응답 :“기본적으로 중국이 어떻게 뭐를 하느냐는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미국 사람이 미국 역사 쓰는데 딴 나라 눈치보고 안 쓴다. 더군다나 하버드 학자가 로마사 쓰는데 이태리 사람 눈치보고 쓰는가. 이거 말이 안 되잖아. 지나간 역사는 오직 해석이 있을 뿐이고 그 사실을 구성하는 방식에선 우리 마음대로다. 그러니까 이병도(전 서울대 사학과 교수·전 문교부 장관·전 학술원 회장)가 역사를 어떻게 구성했든, 이덕일(역사학자)이 어떻게 구성했든 똑같이 자격이 있다. 이병도가 더 엄밀하다는 근거는 없다. 우리 학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최소한 중국이나 일본 눈치 보지 말고 우리 역사를 써야한다.”
- 질의 :만리장성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응답 :“중국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평양성까지 그려놓았으면 우리는 연개소문이 베이징까지 쳐들어갔다고 주장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증명이 된다.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든지 설득력이 있다. 우리 민족의 강역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중국 하북성 산해관 옆 난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윤내현(단국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주장도 당대의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그럴 수밖에 없다. 윤내현의 난하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은 동북의 역사에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이는 본래 북방 민족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규명하는 문제다. 고조선이란 거대한 영역을 설치해야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것은 정당한 지적인데, 이런 것이 스칼라십이 저열한 일부 종교인들의 국수주의와 연결되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 문제다. 이런 역사는 종교의 문제도 아니고 국수주의도 아니다. 호적(胡適ㆍ중국 학자)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소심하게 증거를 구하고,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라. 우리 고대 문명에 대해 우리는 대담한 가설을 가져가야 한다. 만리장성 문제만 해도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전에는 뚝뚝 끊어진 토성 같은 것이었다. 그거 연결해서 평양성까지 온다고 하면, 거꾸로 우리가 연결해서 서안까지 간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만리장성은 고조선 사람이 다 쌓았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역사를 얘기하는 데도 너무 여야 정치판처럼 대립이 심하다. 이병도 사학이 100년 독재를 하고 있는 것, 이거는 학문의 정도가 아니다. 학문이란 도전받고 수정되지 않으면 학문이 아니다. 일제 관변 사학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 질의 :『도올의 중국 일기』에 보면 고구려성 답사 기록이 있는데 실제 가보니 어느 정도인가.
- 응답 :“동북 일대에 흑룡강성까지 발견되는 고구려성이 200개가 넘게 남아 있는데 그 규모를 생각하건대, 그 이전에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없으면 그런 고구려성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고대사 논란은 역사 논쟁이 아니라 이념 논쟁일 뿐이다.”
- 질의 :한ㆍ중ㆍ일 3국 간에 역사 문제와 현실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 응답 :“중국이 일본을 가르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에 붙어 중국을 폄하해선 안 된다. 한ㆍ미ㆍ일 공조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ㆍ미ㆍ일 공조는 중국과 미ㆍ일의 중간자로서 한국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세계 평화가 올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중국 사람들을 정의로운 자세로써 격려하고, 우리 고대사 문제에 대해선 우리가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 정치계에서는 문화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명백한 언급을 피한다. 정치가 뭔지를 아는 거다. 역사를 어떻게 쓰냐는 문제를 가지고 외교적으로 문제를 삼지는 않는 것이다. 어차피 서로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국제간에 보다 개방된 논의가 있어야 한다.”
- 질의 :『도올의 중국 일기』에 ‘고구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어떤 의미인가.
- 응답 :“고구려 패러다임이란 고구려를 고구려 자체의 역사로 봐야지, 8ㆍ15해방 이후에 성립한 대한민국의 과거사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백제만 해도 저쪽 중국 산동성과 요녕성을 거쳐 왜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해양세력으로 봐야지, 한반도 내에 갇혀있는 백제로 봐선 안 된다. 백제는 환황해(環黃海) 해양대제국이다. 일본 천황이 다 백제 계열이고, '일본'(日本:해뿌리의 뜻)이라는 국호 자체가 백제 사람들이 나당연합군에 패하여 대거 이주한 후에 새로운 자기 본거지로서 선포한 이름이다.
고구려 패러다임에서 보자면, 고대사는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단일 민족국가 개념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광대한 영역의 성(구려·句麗:석성의 뜻)들의 연합체계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 역사를 동북아의 거대한 문화사로 보지 않고, 좁은 민족 국가 개념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한반도지역 내에 우구려 넣은 것이다. 이게 맞지 않는 것이다. 중국동부해안, 만주, 연해주, 북한 지역과 큐슈까지 모두 고구려 패러다임에 들어간다. 일본의 고대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써야 한다. 야요이 문화 이후로 우리 역사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일본사는 근원적으로 기록이 될 수 없다. 『일본서기』는 백제의 역사서들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된다. 그러니까 시각을 넓혀야 한다. 한국의 역사가 세계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이리 속 좁은가! 대한민국 사람들이 중국에도 살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도 살고, 그렇게 코리아 타운이 넓게 펼쳐 있는데 왜 이리 좁은 생각만 하고 사는가. 미국 선거에 코리아 문제를 바르게 인식시키는 로비도 안 하고 있다. 한국 통일의 좋은 방안은 로비 전략 아닌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방대한 고구려 네트워크를 운영했다. 너무 상식적인 것을 우리 민족이 모르고 있다. 지금 만주가 우리 땅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가 어떻게 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역사인가. 알렉산더가 전 세계 제국을 건설했는데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일만 역사로 기록한다는 게 말이 되나. 고구려는 하나의 우주였다.”
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magnolia96&list_id=14261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