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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19 23:30
[세계사] 수세기 동안 찬란하게 빛났던 베네치아 공화국.JPG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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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제국이 망하고 사방에서 야만족들이 몰려왔고 

로마인들 중 일부는 이탈리아 본토를 떠나 야만족들로부터 그나마 안전한 이탈리아 북동부의 

석호 지대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기점이 됩니다.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로마의 행정구역 명인 '베네티아'에서 유래했습니다. 

지금은 찬란한 위용을 뽐내지만 당시 로마인들이 막 정착하기 시작했을 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환경이 너무 안 좋아 정착했다가도 다시 이탈리아 본토로 

돌아가버리는 로마인들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100여 년 이상 사람들이 정착하고 개간하며 점점 도시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고 어족 자원도 풍부한 데다가 

염전 산업에도 조건이 좋아 소금을 수출하며 점점 더 경제가 성장하였고 양질의 물고기는 베네치아 인들의 중요한 

식량이 되었습니다. 

베네치아는 지리적 이점도 잘 살려 여러 차례의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병사들을 수송하여 뱃삯을 받고 수송선이나 군량을 제공하며 

막대한 이득을 취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지중해의 교역을 독점하다시피 하여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고 십자군 원정대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맺으며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취하기도 하는 등 매우 활발히 성장을 했습니다.

특히 기독교 문화권, 즉 유럽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에 아주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 군사력의 핵심은 해군이었는데, 지중해 전역을 커버하는 거대한 비지니스망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선 대규모의 해군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15세기까지 유럽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해군력으로 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동로마 제국 정도밖에는 없었습니다.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 연합해군의 승리를 이끈 주역도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군이었는데, 기독교 연합군 함대 208척 중 무려 106척이 베네치아 공화국 해군의 함정이었으며

베네치아의 해군은 오스만 제국 함대를 철저히 유린하여 기독교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일 강점은 경제력이었습니다. 유럽의 경제패권을 잡고 있을 땐 베네치아의 화폐였던 두카토는

유럽의 기축통화 역할을 했으며 거의 모든 유럽 대륙의 도시에서 통용되었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 희망봉을 넘어 인도까지 다달았던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에서 베네치아의 두카토 화폐가 통용되고 있던 걸 목격할 정도였습니다.

초기 베네치아 공화국을 일으켜 세웠던 제염업도 매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삼국시대일 때 베네치아에서는 아주 획기적인 생산 메커님즘을 고안했는데, 여러 개의 염전을 만들고, 펌프와 수문으로 각 염전을 연결한 후

각 염전에서 물이 증발되어감에 따라 바닷물의 염도가 높아지면 다음 단계의 염전으로 보내 단계적으로 제염을 하는 기술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연료 소모가 없어서 생산비용도 다른 생산법들에 비해 훨씬 낮았습니다.

또한 베네치아는 언론의 자유가 높은 곳이었습니다. 여러 장르의 책들이 출판되었으며 16세기 중반 베네치아 공화국은 전 세계에서 출판된 책의 1/3 이상을 찍어냈을 정도죠.

세미콜론, 어퍼스트로피, 악센트 같은 부호 등도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고안된 부호들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시리즈물 개념의 컨텐츠도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최초로 생겼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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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6-12-19 23:53
   
중세 시대를 기점으로 베네치아는 서유럽 경제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는데
사실 같은 시기..... 고려와 조선의 개성의 규모가 베네치아보다 2배가량 컸습니다.
유럽 경제의 중심지라고 해도.. 당시 서양은 동양과의 무역을 장악한 사람이 부와 권력을 차지했던 시절이었고 베네치아는 이 무역의 거점지 중 하나일 뿐 같은 시기 동양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베네치아처럼 동양과의 무역으로 번성해진 대표적인 도시로 피렌체와 밀라노가 있겠군
     
흑요석 16-12-19 23:56
   
단지 나라 규모가 베네치아보다 컸지

고려와 조선의 무역 규모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비할 바가 아니지 않았나요..?

그리고 1600년 경 베네치아 공화국의 인구가 약 200만 정도였는데 개성의 규모가 베네치아보다 2배 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베네치아가 말만 도시 국가지 당시 규모면에선 이미 북유럽 국가들이나 네덜란드, 포르투갈보다 더 컸는데. 물론 고려나 조선보다는 인구면에서 훨씬 적었죠.

우선 베네치아는 화폐부터가 넘사인데..

제가 알기론 고려와 조선의 화폐가 한 지역의 기축통화 역할을 한 적은 없다고 알아요.

더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화폐와는 거리가 멀어지지 않나요?
          
꼬마러브 16-12-20 00:16
   
글세요
당시 고려 개성의 인구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지봉유설에서 전하길 10만호 혹은 13만호라고 하였습니다. 1호당 5명이라고 쳐도 50만명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당시 베네치아의 인구는 10만명으로 추정되니..
위의 기록이 과장되었다고 쳐도 베네치아보다 규모가 최소한 곱배기 이상은 컸다는 겁니다.
당시의 무역은 무엇보다 물량이 뒷받침하는 시대였고 무역상권도 개성이 베네치아보다 2세기 가량 앞선 것으로 보아
베네치아가 개성보다 경제규모가 컸다는 의견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흑요석 16-12-20 00:17
   
1570년 오스만 제국이 키프로스 섬을 침략했을 때

베네치아 공화국은 단 2개월만에 함선 100척을 찍어낼 정도로 경제력이 대단한 나라였어요.

이미 12세기에 '아르세날레'라고 하는 거대산업단지가 설립되는데 아르세날레는 산업혁명 이전의 가장 거대한 복합 산업단지였습니다.
선박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이나 자재, 대포, 석궁, 총기류 같은 무기류 그리고 항해하는 데 필요하는 식량도 만들었어요.

영어로 Arsenal은 집합적 의미로 '무기' 또는 '무기류'를 뜻하죠. 무기 공장이라는 뜻도 되고요.

그리고 세계 최초로 정교한 분업체계를 구축했고 아르세날레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인 공정이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앙리 3세가 베네치아에 방문했을 때

연회가 진행되는 1시간 만에 갤리선 한 척을 만들어서 앙리 3세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요.

동시대 고려 초기와 베네치아 공화국의 무역/경제 규모만을 비교하면 몰라고

다른 시기면 흠..

특히 조선은 더더욱이..
                    
꼬마러브 16-12-20 00:28
   
당시 서양은 동아시아보다 배 기술이 300년 가량 퇴보해있었습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넜던 산타마리아호가 150톤가량인데.. 고려시기 무역선의 규모는 대선이  250톤에서 300톤 가량이였습니다.
베네치아의 무역선 중에 300톤이 넘는 게 있나요? 저는 들어본적이 없군요.
애초에 규모가 다르다는 겁니다.
http://news.donga.com/3/all/20060829/8344760/1
같은시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만 봐도 그렇지요

----- 추가

정확하게 말하여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인구는 200만여명이고 베네치아시의 인구는 15만명 가량입니다. 당시 고려 개성의 인구가 50만.
                         
흑요석 16-12-20 01:11
   
15세기 후반 대항해시대에 들어서면 서양이 대포/선박 기술은 동양을 이미 넘어섭니다. 17세기에 들어서면 그냥 서양이 넘사가 되구요.

이때쯤 되면 서양은 대양을 건너 다른 대륙으로 거대 선박들을 굴리고 다니던 시기이고 동시기 동아시아 어떤 국가도 서양의 선박 기술에 못 미칩니다.

중국을 기준으로 명나라 때 이미 서양에 배 기술은 뒤진다고 봅니다.

15세기 초 정화의 원정에 쓰였던 배랑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 당시 탔던 배랑 배의 크기만 비교하면 중국 배가 넘사죠. 정화의 배는 길이만 120미터로 콜럼버스 배보다 5배가량 컸는데요 (물론 과장됐다는 말도 많지만). 정화의 원정 당시 척당 450명 정도가 승선했는데 목조범선으로는 엄청난 8천여톤으로 어마어마하긴 했죠.

단순히 규모 비교만 하면 중국이 더 컸겠지만. 선박의 회전력, 스피드 그리고 항해 기술 모두 이때쯤 되면 서양이 넘어서요.

저도 여기저기서 조사를 해봤는데 14세기 말, 즉 고려 말까지는 중국와 한국 (고려)의 선박 제조 능력은 서양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더군요.

몇세기까지 동서양 배 기술이 어쨌니 저쨌니 하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이 고려나 조선보다 무역과 경제가 훨씬 더 활발하고 광범휘했던 건 팩트죠. 베네치아의 화폐가 인도에서까지 쓰였으면 말 다한 거 아닌가요 ㅋㅋ

고려가 배 잘 만들고 아랍 상인들과 무역을 했다지만, 고려가 중국이나 일본을 제외하고 동아시아를 벗어나서 다른 나라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한 적은 없잖아요???

단순히 인구 규모만 따질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나, 화폐 가치는 어땠나, 산업의 발전도는 어땠나를 따지면

베네치아 공화국 > 고려 or 조선이 맞는 것 같은데..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 조그만 덩치로 동로마 제국이랑 해군으로 홀로 맞짱뜨고 오스만 제국 해군도 관광 보내던 나라인데 흠..

이미 말했지만 12세기에 이미 산업혁명 전 가장 거대했던 복합산업단지도 구축하고요.
                    
꼬마러브 16-12-20 01:17
   
흐음..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동양은 유럽처럼 이리저리 움직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동양에 비해 도태되고 낙후된 지역이였고
동양은 부에 있어 유럽을 훨씬 능가했던 시기입니다.

즉 다시말해 당시 동양은 이미 풍요로웠기 때문에 이리저리 움직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럽같은 경우는 낙후되어 있어 당시 동양의 발전된 문물들을 필요로했지요
애초에 대향해시대의 시작이 오스만이 워낙 통행료를 비싸게 받으니까 향신료 찾겠다고 빡구친 것 아닙니까

뭐 이러한 낙후된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들(대향해시대)들이 훗날 서양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지요
                         
흑요석 16-12-20 01:23
   
님 말씀대로 애초에 이리저리 움직일 필요도 의지도 없었죠. 안 그래도 상대적으로 풍요로웠고 동아시아만의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결국엔 서양에게 뒤쳐지는 참사가;;;

무슬림 애들이 길막하고 통행료 받아먹거나 허락을 아예 안 해주니 꼬마러브님 말대로 다른 루트를 찾아야 했고

뭐 어쨌든 서양 애들은 모험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엔 기술 발전으로 간 거죠.

그래서 동양을 넘어서게 된 거고요.

전 고려도 좋아하고 (고려 후기 제외;;) 조선도 좋아하고

베네치아 공화국도 좋아합니다. 네덜란드도 좋아하고요.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네덜란드 둘이 쬐끄만 나라들이 야무지게 잘 살아갔잖아요 ㅋㅋ 그래서 좋아합니다 ㅎㅎ
타샤 16-12-20 03:04
   
고려/조선은 대체로 자급자족 사회였습니다.
아라비아 상인이 들어온것은 보통 고려의 상류층(특히 몽골 지배하에서)에게 필요한 사치품 조달을 위해서 였기 때문에 물량 자체는 무척 작았습니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중계무역을 했죠. 겨우 몇십만 될까 말까 하는 베네치아 인구를 위한 무역을 한게 아닙니다.
배의 규모도 지리적인 특성을 감안하면 베네치아가 작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고려의 배들은 가까운 산동 반도까지만 간다고 해도 크기가 커야 했어요.
왜냐하면 탁 트인 바다 거든요.

베네치아의 선박들은 클 이유가 없었어요. 어차피 노젓는 배들이고, 노젓는 배의 특성상 노예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지중해 라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거의 호수에 가까운 바다에 떠도는 배이기 때문에 작아도 충분히 안정적이죠.

황해만 해도 베네치아의 배들이 돌아다녔다면, 아마 뒤집어 질 가능성이 더 높을 겁니다.
너무 작으니까요.


그리고 베네치아는 자체 생산품도 있지만(주류 유리 공예) 대부분은 중계 무역입니다.

홍콩의 무역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거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모에요. 겨우 1천만 도시 하나가...

베네치아는 홍콩같은 도십니다.
개경하고는 교역량에서 상대가 안될정도로 엄청난 도시라는 뜻이에요.
     
그노스 16-12-20 07:36
   
적은 인구의 베네치아가 동지중해를 지배하며 동방 무역을 연결, 서구 무역을 주도한 것에는 저도 찬탄을 금치 못해왔습니다.
그러나 고려-조선과 베네치아를 비교해서...음

일단 Bairoch 의 Economics and World History 에 따르면 서양은 세계경제의 23%에 불과 했으나 동양은 무려 77%를 차지했고, 1830년에는 동양이 서양의 2배를 차지했으며 1850년에 되어서야 서양이 동양을 추월했다고 합니다.

즉 고려-조선과 베네치아는 속된 말로 서로 노는 물이 달랐다는 것이지요.

이 분야만 놓고서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을 말한다면,

베네치아: 미들급에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최강자(legendary)

고려: 슈퍼헤비급에서 상위 소수 강자(very rare)

이런 풍요로운 동양에서 베네치아처럼 상업이 강했던 비슷한 고려를 논해본다면, 고려는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갖지 못했던 풍부한 인적 자원과 함께, 세계 최고로 부유했던 동아시아에서도 전성기에는 최고 수준 중의 하나였다는 벽란도라는 국제 무역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문화, 경제 분야에서 유럽 따위는 비교도 안될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군사력은 병자였던 중국 송나라가 동아시아의 동네 지갑 취급 받으며 금전외교를 행사하던 시기, 고려는 직접 사신들을 보내어 조공 무역만으로도 10배 이상의 이득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너무 지나쳐 '송사, 고종본기3'에 의하면 송나라가 고려의 조공을 잠시 거절한 적도 있습니다.

타샤님께서는 지중해 배들은 어차피 노젓는 배들이고 특성상 노예가 많이 필요한 것이므로 잔잔한 지중해에서는 베네치아 선박들이 클 이유가 없다고 하시는데, 베네치아 배들의 주요 동력도 역시 풍력이었습니다.
그들의 노의 개념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전투 중일 때, 그리고 배를 접안시킬 때 정도이지 대부분의 시간은 역시 풍력에 의존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잔잔했던 지중해에도 풍랑 때문에 침몰한 난파선들이 흔합니다.
참고로 지중해 난파선에서 발굴한 올리브유가 담긴 암포라 항아리 수와, 난파선의 수가 로마시대의 경제력을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로 여겨질 정도로 지중해에 난파선들이 많습니다.
일부 특수함을 제외하고는 로마시대 선박에서 베네치아 선박으로 크게 진보된 것이 없고, 베네치아 역시 지중해의 풍랑 혹은 해적 때문에 크게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에 '무다'라는 정기적인 항선로 제도를 마련, 거래처와의 무역에 좀 더 확실성을 담은 것이지요.
즉 상대적으로 잔잔한 지중해 풍랑 정도로도 난파선의 양이 많았다는 것은 그 당시 유럽의 기술적 한계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반면에 고려말 여몽 연합군에 관한 원나라측의 '원사' 기록을 보면, 일본 정벌시 만난 대규모 태풍으로 중국 전함들은 모두 깨졌으나 고려 전함들은 대부분 무사했다고 나옵니다.
이 해전에서 고려 대선은 250톤 정도였다는데, 300년 정도 더 후기인 지중해 최대 레판토 해전에서 베네치아의 최대 기함은 180톤 정도에 불과했다하고, 결정적으로 고려는 저런 250톤 대선을 300여척, 모두 합쳐 900여척의 함선을 불과 4개월 만에 건조해내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그것도 고려의 전성기가 아니라 쇠퇴기에...
경제력, 산업단지-기술력, 인력이 부족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더욱이 베네치아는 고려와는 다르게 해군, 육군 간의 불균형이 심합니다. 육군은 대부분 용병...
고려는 육군에 자원을 투자하면서도 동시에 해군에도 저만큼의 자원을 투자할 여력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물론 일본 원정은 경제적인 무리가 심하기는 했습니다만)

상업국가 베네치아에서 탄생한 회계 복식부기가 세계 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200년 더 앞섰다고 추정되는 고려 개성 상인들의 사개송도치부법이 근대에 와서도 사용된 실물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고려, 조선 초기를 베네치아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1000여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전성기 시기가 서로 다르기도 했고, 해상 거점형 도시국가와 영토형 국가를 비교하기는 무리라고 봅니다.
주변 지역에 영향을 끼친 순수 상업국가라는 개념으로는 베네치아의 색이 뚜렷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조선의 경우는 상인들의 국가라기 보다는 학자들의 국가였으므로 서로 주력 분야가 달랐는데 공정한 비교가 되려는지도 의문이고요.
          
꼬마러브 16-12-20 08:28
   
오오 잘 설명해 주셨네요 굿
후안무치 16-12-21 11:07
   
이건 어쩔 수 없죠 이미 서양과 동북아 경제 규모는 학자들 사이에 오래전에 결판난죠
20년전에 나온 어린이용 만화세계사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베네치아가 서양 쪽에서 부유했다고는 하지만 동북아 국가들의 한개 도시와도 경쟁하기에도 턱 없이 모자르죠
루리호 16-12-21 18:52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게 조선떄의 삶이나 자료만보고 그이전에는 더못살았을것이다라고 생각하는거죠
통일신라만해도 경주인구가 이미 100만을 넘었고(그당시 전세계적으로 100만넘는도시는 장안과 경주 둘뿐이였습니다) 고관들의 집에는 금이 많다못해 기와를 금으로 올리는게 유행했다고 합니다.물론 도금이 였을거라고 봅니다만...
그리고 고려때는 정말 부유했구요

 위그림이 화려해보이긴합니다만 함경도 관찰사인가 하는사람이 강에 배띄워놓고노는 장면 그린 우리나라 그림보면 그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군사력으로도 고려시대만 20만은 됐어요.... 당송은 모으면 100만이상 모으는건 일도아니였구요 

마지막 명만해도 정화의 원정이 7번있었는대 한번갈때마다 2만명 정도가 움직였습니다.   

한척에 400~500명씩탔다고 하는대 그럼 그냥 원정할떄마다 그 8000톤짜리함선이 40~50척씩 움직였다는 말이되죠

전에 대국굴기 다큐보니 용골이 나무하나로는 만들수없어서 특수기법을 사용했다고하더군요
페닐 16-12-21 22:36
   
조선의 경제 규모나 무역 규모 확인해보면
베네치아랑 비교하는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알텐데...

조선 정도의 상비군 유지하고도 나라가 박살 안나는 나라는 적어도 2~300년전까진 한손으로 꼽았음.
베네치아는 그안에 든적 없고
베네치아를 고려나 조선하고 비교하는건
홍콩이나 싱가폴이 일본 말아먹을수 있다는거랑 비슷한 소리임..
     
흑요석 16-12-22 23:47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가는데

저는 애초에 베네치아 공화국을 조선과 비교한 적이 없어요.

글 쭉 읽어보세요. 언제 조선과 비교를 했습니까? 본문 자체가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한 건데요 그냥.

뜬금 없이 조선과 고려를 언급한 건 다른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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