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근거는 [ 조선시대의 쌀, 논 면적 계량 단위, 한 끼 식사량 (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8061 ) ] 이 글 참고하시고요.
1807 년 (순조 7 년) 당시 조선의 전답은 한전(밭) 927,602 결과 수전(논) 528,990 결이 있었고,
( 위의 결 표기는 논이든 밭이든 곡물 종류에 관계없이 1 결에 2 톤이 나온다고 보면 됨. )
인구는 1800 만명으로 가정하겠습니다. ( 이후 점점 줄어들어서 1900 년에는 1700 만명 수준 )
우선 쌀만 보면 논이 53 만결이 있으니 약 106 만톤의 쌀 생산이 가능했고요.
곡물까지 다 하면 약 291 만톤의 식량이 생산되는군요.
1 인당 쌀 생산량은 연간 58.9 kg, 하루 161 g 에 해당합니다.
밭에서 나오는 곡물까지 다 포함한 1 인당 생산량은 연간 161.8 kg 이고요.
1 인당 수요를 산출하기 위해 평균적인 가구가 노인 1 명, 부부, 아동 2 명으로 구성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한끼에 성인 남자와 여자의 평균인 305 g * 3 명 + 아동 152 g * 2 명하면 1 인당 243.8 g 이고, 허루 두끼를 가정하면 1 인당 하루 487.6 g 이 됩니다.
( 곡물만 먹을 경우 UN 의 하루 권장량이 600 g 임. 쌀로만 600 g 이라도 2232 kcal 밖에 안 되고 잡곡 섞이면 더 떨어짐 )
조선에서는 어른, 아이 다 해서 평균내면 1 년에 178 kg 을 먹은 것이고, 지금의 석 기준으로는 연간 1.19 석. 당시 조선 후기의 석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2.34 석이며, 1 결은 11.4 명이 1 년 먹을 식량을 생산한다는 얘기.
1800 만명 * 487.6 g / 하루 * 365.2425 일을 하면 1807 년의 조선의 연간 식량 수요는 321 만톤.
1807 년 조선의 생산은 291 만톤, 필요한 양은 321 만톤.
빠듯할 뿐만 아니라, 쌀 1 에 잡곡 2 정도를 넣은 식사를 해야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다만 위 통계는 조선 후기의 혼란 덕분에 숨겨진 생산량도 꽤 있었을 것이지만, 빠듯했던 것이 넉넉할 정도로 바뀌지는 못 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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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년 기준으로 보죠. 쌀의 생산량은 229.77 만톤, 곡물까지 전부 합치면 515.32 만톤이고요.
1918 년 한반도의 인구는 1700 만영으로 잡아보겠습니다.
1 인당 쌀 생산량은 연간 135.2 kg, 하루 370 g 에 해당합니다.
밭에서 나오는 곡물까지 다 포함한 1 인당 생산량은 연간 303.1 kg 이고요.
1700 만명 * 487.6 g / 하루 * 365.2425 일을 하면 1918 년의 한반도의 연간 식량 수요는 303 만톤.
1918 년 한반도의 생산은 515 만톤, 수요는 303 만톤.
쌀도 비교적 넉넉해졌기 때문에 쌀 3 에 잡곡 1 정도 넣어도 먹을 수 있게 되었고요.
물론 일본으로 판매하는 양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평균적으로 쌀 2 에 잡곡 1 정도였을 것으로 봅니다.
1918 년을 보면 소가 148 만마리, 돼지가 92 만마리, 닭이 491 만마리에 달하는 것을 보면 초과생산된 잡곡들이 사료로 쓰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막걸리 1200 ml 를 만드는데 쌀 200 g 이 들어간다죠. ( 옛날엔 모두 쌀막걸리였음 ) 막걸리 만들어먹고 난 술찌거기를 돼지 먹이는데 썼을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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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내내 150 만결 정도는 확보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그 150 만결 전부가 쌀일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네요. 잡곡까지 포함해서 그런 것이고, 쌀은 60 만결을 넘기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조선 후기내내 소빙하기로 인한 강수량 격감의 문제도 있지만, 쌀농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수지등 수리관개시설이 필요합니다. 논이 있어도 물이 없으면 못 하니까요.
쌀 수확량이 1807 년 106 만톤에서 1918 년에는 230 만톤으로 2 배 이상 늘어난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죠.
1918 년 쯤에 강수량 폭증으로 근 40 년만의 풍년이 든 탓도 있을 것이고, 저수지등의 확충과 논의 증가도 있겠고요. ( 물론 풍년 들었다고 2 배 수준 될리는 없고, 저수지/논의 증가로 2 배 정도에 풍년으로 좀 더 보탠 정도겠죠. )
마지막으로 어째 이글과 어울리지 않고, 계산도 조금 다른거 같지만 일제시대 당시 식량 흐름(?)에 대해 참고하시라고 링크겁니다. 숫자는 봐둬야죠. http://blog.daum.net/stonehinge/8727704
위 링크를 보면 1933 년이 되면 한반도의 1 인당 쌀 소비량이 1918 년의 2/3 수준으로 떨어지네요.
일본에 쌀 팔고 대신 만주등에서 조 같은 잡곡을 사다먹은 시기죠. 이 시기는 쌀 1 에 잡곡 1 을 섞어먹어야 했을 듯합니다. 한반도에서 쌀이 일본으로 많이 넘어가는 통에 일본 농민들이 어려워질 정도였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