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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2 05:29
[한국사]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의 모습을 본 일본군 장수
 글쓴이 : eo987
조회 : 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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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_00000.jpg




임진왜란전 경회루모습 복원

3.jpg

그나마 조선말에 광해군이랑 흥선대원군 때문에 복원된 모습
1.png




임진왜란 끝나고 토지면적이 150만결->30만결으로 감소했다고 하고
그냥 생각이지만 그때 피해를 너무 작게 잡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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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섹 16-10-22 06:12
   
선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가운데 가장 내용이 부실한 실록입니다.
그 이유는 선조가 의주로 도망갈 때 네 명의 사관이 함께 따라가는데,
의주 가까이 이르러서 정말 나라를 버리고 도망갈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사관들은 이 나라는 끝났다고 판단 사초들을 모두 불태우고 도망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합니다.
전쟁 후, 도망간 사관들을 다시 불러 기억을 더듬어 쓰게 한 것이 선조실록입니다.
그러다보니 누락된 내용이 태반이죠...
수정실록은 인조반정 후에 서인들이 일부 내용을 고쳐쓴 것이고요...
비좀와라 16-10-22 06:18
   
임진왜란 초전 때에 조선이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경상도를 기반으로 지배층의 오판으로 밀린 것이죠. 이런 면에서 유성룡도 임진왜란시의 조선의 무력감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세계 1차 대전 시에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쟁에 대비해서 보불전쟁 때의 경험을 살려서 아주 정밀한 전쟁계획을 수립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계획에 따라서 진행된 초기의 전황은 독일에 유리하게 전개 되죠. 하지만 저 계획에 따르면 프러시아 지역은 러시아의 공격에 취약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계획은 프러시아에서 러시아의 공격을 방어하고 대부분의 전력을 프랑스로 집결해서 프랑스와 일전을 해결하고 러시아와 싸울 것으로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사실 프랑스를 꺾어 놓으면 러시아는 쉽게 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제국은 프러시아가 중심이 되어서 세운 국가로 황제도 프러시안 기타 귀족도 프러시안인 상태로 프러시안의 입김이 상당했던 시기 였습니다. 그리고 프러시아의 귀족들은 저 계획이 정말 맘에 들어 하지 않았죠. 프러시아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던 당시의 귀족집단은 자신들의 재산이 러시아의 공격에 위협 받게 되자 군대의 일부를 돌려서 프러시아의 방위를 하라고 압력을 가합니다.

그리고 이에 굴복한 독일 군부는 병력을 돌려 결국 프러시아에 보내게 되죠. 그래서 결국은 프랑스는 군대를 재 정비 할 시간을 벌게 되고 영국이 온전히 참전 할 시간을 갖게되어 독일이 전쟁에 지게되는 이유가 되게 됩니다.

임진왜란도 같은 경우죠. 임진왜란 시에 조선군이 참패를 당하게 된 이유는 주력군이 북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쳐들어 오자 급하게 일부 군대를 움직이나 소수였고 좀 더 많은 군대가 소집 되기를 기다려야 했으나 선조 (과연 선조의 의지 일까요?)가 군대를 움직여 막을 것을 요구 하죠. 결국 무모한 축차 투입으로 군대만 소진 되고 참패를 맞게 되는 것 입니다.

후일 일본군이 북쪽으로 진군 하지만 북쪽에는 조선의 정예병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진군이 힘든 상황이었고 거기다가 명군이 참전 하였기에 밀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 아니고 농성을 해야 함이 옳은 결정 이었죠. 하지만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이는 빨리 경상도를 회복하려는 무모한 생각에서 나온 실책이죠.

이순신 장군이 탄핵당하고 백의 종군 하게된 원인도 같은 이유죠. 당시의 지배층은 경상도을 기반으로 자들이 많았기에 빨리 경상도을 회복하려고 압박을 가했던 것이죠. 하지만 명나라는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웠기에 여유로운 전략을 세웠던 반면에 조선의 장수들은 심각한 압박에 놓이게 되었던 것 입니다.

선조 시대의 사대부 들은 소위 대지주로 사실 부패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 때문에 전쟁에 패했던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왜곡을 하기 시작 한거죠. 조선이 노비들이 불탔다고 하는 것도 자신들의 실책을 감추고 조선이 전쟁에 불리 했던 것은 민심의 이반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버섹 16-10-22 06:37
   
이상한 관점으로 보시네요...
왜놈들이 진군이 힘들었던 건 북쪽에 정예병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순신장군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보급로가 끊겨 그랬던 겁니다.
그리고 경상도를 빨리 회복하려고 운운하는 것도 정말 어이가 없는 발상이네요...
당시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고 무모한 작전을 펼쳤다고요?
당시 사대부들은 당파가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여서 님이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힘이 있지 않았습니다.
선조의 입김에 걸핏하면 좌천, 파직 당하고 죽음을 당했어요...
그들이 힘을 얻게 되는 건 인조반정 이후에요...역사를 너무 님의 생각에 끼워맞추려고 하시네요...
          
옥토29 16-10-22 13:57
   
사대부들이 자기네 땅 지키려고 무모한 짓을 했다는건 마냥 틀린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게 경상도에서만 이루어진것은 절대 아니고.
삼남지방 거의 전역에서 그랬습니다.
의병에 속하게 되면 징병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탓에 양반들이 가장 앞장서서 의병활동을 했다고 하지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기록을 보면 규모에 비해 활약이나 전과가 솔직히 형편없는데. 어떤 분들은 마냥 선조가 땡깡부려서 그랬다고만 하는데, 그거 말고 실제로 썩은 양반들이 종이나 주변 백성들 데려가서 의병활동 한다고 보고해서 징병을 피하고는 고향이나 뒷산 여기저기에 일본군에 도망다니면서 죽치고 숨어있었던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디바2 16-10-22 15:11
   
쪽본이 북쪽으로 전진을못한건 여진족에게쫄아서그런거죠.
막대기들고 동네패쌈질하다 숭악하기이럴데없는 여진족보고 쫄아서 전의를상실했다고 들어서요.
조선은 그런여진과 매날하는짖이쌈박질이니
     
비좀와라 16-10-22 07:18
   
선조는 힘이 없던 군주 중의 하나 였습니다.

근세조선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는 사실 얼마 되지 않고 거의 다가 자신의 무력을 기반으로 힘을 과시 했지만 숙종은 예외의 경우에 속하지요.

근세조선의 거의 모든 왕들이 정통성에 문제를 가진 왕들이 많았지만 숙종은 누구도 정통성에 시비를 걸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거의 유일한 근세조선의 왕 이었죠. 궁전의 소생에다 장남이고 동궁인 왕이 근세조선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근세조선의 왕들은 언제나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는 반면에 숙종만이 예외로 경우로 그래서 숙종 때에 많은 개혁도 이루어지고 사대부의 견제도 이루어 지는 것이죠. 영 정조 시기의 번성은 숙종의 교통정리로 인한 부산물로 영 정조 보단 숙종이 훨씬 뛰어난 군주 입니다.

오히려 영 정조 시기에는 숙종이 견제에 성공한 사대부 들에게 끌려 다녀서 조선의 멸망을 불러오게 하는 것이죠.

선조 역시 왕권의 정통성 에서 자유로웠던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조는 언제나 신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 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조는 언제나 반란의 두려움에 자신의 권력에 도전 하려는 의심만 보이면 제거를 했지만 역시 힘이 약했기에 언제나 끌려 다녔죠.

왜군이 진군이 힘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의병이라 하는데 의병은 현대로 말하면 게릴라에 속합니다. 전쟁은 게릴라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병이 하는 것 입니다. 게릴라는 당시로는 별동대 인데 별동대로 인해서 전쟁이 결정 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본대의 싸움으로 결정되는 것 이고요.

이순신 장군의 공도 크지만 이순신 장군의 가장 큰 공은 진주성 싸움과 같이 전라도의 진입을 막은 것이지 왜군의 진군을 막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왜군의 진군을 막은 것은 북쪽에 있었던 정규병들 이에요.

북관대첩에서 보는 봐와 같이 아직 까지 북쪽에는 정규병이 남아 있었던 상황이란 말이죠. 신립이 탄금대에 데리고 온 병력은 정예 엘리트 병 일부만을 데리고 왔었던 것이란 말입니다. 처음에 탄금대에서 싸우질 않고 어는 지역에서 수성을 하면서 북쪽의 병력이 모아지길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평가 입니다.

초기 조선의 병력 대다수가 북쪽에 있었단 말입니다. 조선의 국방정책은 대규모의 상비군들 운용 유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방어의 개념으로 바꾸어서 외적이 쳐들어 오면 일단 방어를 하면서 중앙의 상비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이 중앙의 상비군이 오면 같이 전투를 벌이는 정책이란 말이죠.

이런 정책이 사실 반란을 막는데에는 유리 하지만 역시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는 불리한 정책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저런 정책을 세운 것이 사대부란 말이죠. 중앙의 상비군이 강력 해 지면 왕권이 강화되고 신권이 견제 받게 되기 때문이죠. 결국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 강력한 상비군을 만들지 않은 것 이라고요.

제가 역사를 임의 대로 해석 한다고 하는데 반대로 묻고 싶네요 님이 임의대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요.
          
촐라롱콘 16-10-22 08:17
   
임란초기 당시 그나마 조선의 최정예 병력이라 할 함경도 6진병력은 북병사 한극함과
더불어 함경도로 진출한 가토, 나베시마의 일본군에게 와해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당시 일본군이 조선 두만강변 최북단인 온성-회령까지 진출하여 조선왕자들을
사로잡고 일부부대는 현 간도지역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다만 여진부족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함경도 이북을 통해서는 요동으로 가는 루트가 멀고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격을 포기한 것입니다.

조금 지내고 보니 가토, 나베시마군의 대부분은 겨울에도 영하의 기온을 접하기 어려운
큐슈출신들이라.... 늦가을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조금이라도 따뜻한 함경남도지역으로 물러났고 함경북도지역은 국경인 같은 조선인부역자들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방법으로
컨트롤했습니다.   

정문부가 본격적으로 봉기할 당시 일본군 주둔부대의 최북단은 함경북도의 최남단이라 할
길주성이었으며 주둔병력은 1,500명 선이었습니다.

정문부의 북관대첩이라는 것은 사실 따지고보면 가토, 나베시마의 주력군과 싸운 것이
아니며....그나마 길주성의 1,500명도 정문부군에게 전멸당하거나 정문부군에게 길주성이
함락된 것이 아니라....조명연합군의 평양탈환소식을 들은 가토와 나베시마군이 철수하게
되면서 길주성의 일본군별동대도 스스로 물러난 것입니다.

물론 정문부군에게 함락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정도로 길주성의 일본군이 고립되어 있기는
했지만.....
               
꼬꼬동아리 16-10-22 13:08
   
니말은  아무도 신경도 안쓰는데  주구장창 댓글 다는 이유가 뭐고?
히키코모리 종특이가?  그냥  니 좋아하는 일베가서 놀아라 니 일베회원인거
가생이 유저들 다안다
                    
촐라롱콘 16-10-22 13:48
   
너 말고 다른 이들이 나를 알고 계신다니 정말 영광스럽네.....!!! ^^

그런데 이를 어쩐다냐~~~ 나는 일베 근처에는 가본적도 없는데.....

완존 헛다리 집고 삽질하고 자빠졌구나.... ㅋㅋㅋㅋ

글고 아무도 신경안쓰는데 넌 왜 주구장창 내 뒤만 졸졸 따라와서 댓글 달고

앉아있냐...??? 히키코모리 종특이가....???

남이야 콩으로 메주를 쑤던 말던 너하고 상관없으면 그냥 신경 꺼라~~
          
버섹 16-10-22 09:15
   
의병이 게릴라식 전투를 했다고 폄하하는 건가요? 북관대첩도 의병이 한 것입니다만...
의병 때문에 왜군 본대의 진격이 힘들었다는 게 아니라 식량보급이 힘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의병들은 진주대첩처럼 관군과 함께 작전을 펼친 것도 많은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공이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은 것이라는 것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이네요...
단순히 전라도를 막은 것이 아니라 왜군의 해상 진격로를 막은 겁니다. 왜군이 병력과 식량을 해로로 한양, 평양까지 보급했다면 조선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대부는 경상도를 탈환하려 되지도 않은 작전을 명령했고 이순신은 전라도를 지켰고...
나라가 위긴데 참 지역 구분하기 바쁘시네요...
          
그노스 16-10-22 10:01
   
독일이 양면전쟁을 피하고자 정밀한 슐리펜 계획을 세운건 맞지만, 프러시아 귀족들이 자신들의 토지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로 군대를 빼돌린 것이라는 말씀은 제가 처음 듣는데 가능하시다면 출처 부탁드립니다.
일단 정설은 참모총장 소 몰트케가 좌익진형과 동부전선의 취약함을 우려하여 계획을 수정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슐리펜 계획 자체가 프랑스의 저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무모한 계획이라며 기존 계획대로 작전이 실행되었어도 실패했을 것이라고 보시는 동서양 군사 관계자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신립이 농성전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사기가 떨어진 군졸들의 극심한 탈영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신립은 8천여명의 군대로 고니시의 2만대군과 교전해야할 처지였는데 상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에서 계속되는 병력 출혈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신 스스로를 가두는 배수진을 치고 어쩔수 없이 결전을 벌였다고 보기도 하더군요.
다수 지배층의 영지인 경상도를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라는건 처음 듣습니다.

경상도 운운하시며 또 다시 님의 지역차별적 해석이 나오셨는데, 님께서 말씀하신 시기는 왜군이 사실상 남해안으로 철수한 시기이며 조선이 공세를 편다면 당연히 왜군과 왜성들이 밀집해 있는 남해의 경상도 지역에 집중되는 것이 옳겠지요.
이순신 장군에게 사실상 난공불락인 왜성을 공략하라고 명령했던 조정이 무모했다고 비난은 할수 있어도, 조정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영지인 경상도를 우선적으로 회복하려 했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가기 어렵군요.

선조가 힘이 없었다는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태종이나 세조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정여립의 난 이후 서자출신이라는 약점을 넘어 왕권을 강화했다고 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하들의 허수아비는 분명 아니었다고 봅니다.
선조가 정말 신권에 휘둘리는 군주였다면, 왜군에게 도성을 뺏기고 북으로 도주하는 처지에, 민심수습을 위해 극악한 부정축재자였던 김공량(선조의 애첩인 김빈의 오빠)에게 책임을 지워 그를 참하라는 신하들의 상소가 빗발쳤는데도 강력한 왕권(?)을 발휘하여 김공량을 어떻게 끝까지 보호했는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선조가 민심수습보다 애첩을 소중히 여긴 뻘짓은 알아서 해석해주시길)

또 하나 있습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사노비 관노비 승려 포작(고기잡이 천민) 등 급하게 잡다한 군졸들을 동원해서 부족한 군량으로 옥포해전에서 승리를 이끌어 냅니다.
반면에 같은 날 선조는 개성을 떠나 이미 평양에 당도했는데, 그 다음 날에는 어선(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풍족히 하라는 전교를 내립니다.
'어선은 생물로 할 것이며 수량도 풍족하게 하라. 동궁 이하도 다 이 예에 따르도록 하라.'
집 뺏기고 쫓기는 와중에도 챙겨먹을 것 다 챙겨먹는 강력한 군주를 허약했다고 무시하시면 안됩니다.

조선의 북방 정규병을 말씀하시지만 가토 기요마사, 나베시마는 대군을 이끌고 함경도 남부까지 거의 무혈입성 하였고(조선 관리들 도주), 나베시마와 의견 충돌 끝에 가토 기요마사는 나베시마군을 함경도 남부에 남겨두고 단독으로 북진을 계속해서 해정창(운송기지)에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 군을 궤멸시킵니다.
기요마사는 여진과의 국경선을 넘어 일부 여진족과 전투를 치르고 함경도로 귀환했는데 그의 휘하 부대가 정문부의 군대와 길주 전투를 치릅니다. 왜군의 전세가 다급해서 제 2군의 철수를 촉진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정문부의 군대는 천여명의 소규모 군대로 알려져있고 북방 정규병이 아니라 의병군이었습니다.
더욱이 길주 전투후 불과 한달만에 이여송의 선발대가 들어오고, 그로부터 2주뒤에 명의 주력군 4만 3천여명이 의주에 도착합니다.
          
디바2 16-10-22 15:20
   
조선 사대대왕  세종 선조 영조 정조대왕이죠.
선조가 ㅂㅅ이었다. ㅋㅋㅋ.
억지해석같네오.
조선이ㅂㅅ이라 그런ㅂㅅ을 사대대왕중 한분으로추존했을라나.
님보단  저분이들 수백수천은 똑똑했을듯한데요
gaevew 16-10-22 14:04
   
임금은 서쪽으로 도망갔다고 하더군요
호랭이해 16-10-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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