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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30 22:33
[한국사] 해양 교류가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
 글쓴이 : 해달
조회 : 1,370  

(전략)

" 외형상으로 보면, 바스쿠 다가마가 희망봉을 돈 사건은 조선에서 발생한 무오사화보다 덜 중요하게 비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무오사화는 14세기 이래 세게의 중심이 된 동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중요한 나라인 조선의 정치적 운명에 영향을 준 사건인 데 비해, 희망봉 사건은 세계 변방인 포르투갈의 일개 상인 겸 모험가가 배를타고 아프리카 남단을 돈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스쿠 다가마의 희망봉 발견은 인류 문명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희망봉 발견이 갖는 문명사적 중요성은 무오사화가 근접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세계 각 지역이 바닷길을 통해 상호 교류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초원길이나 비단길 같은 육로를 통해 문명 교류가 주로 이루어진 인류사회에서 이것은 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런 흐름에 참여한 나라들은 당시로서는 후진국들이었다. 세계질서에서 2진급이었던 서유럽 국가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간결한 세계 경제사A concise economic history of the world>의 저자로 잘 알려진 경제사학자 론도 캐머린은 "16세기 이전만 해도 서유럽은 고립된 몇몇 지역의 하나에 불과했다"고 말했고, 경제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리오리엔트Reorient>에서 "유럽은 19세기에 유럽 중심적 세계관이 발명되어 전파되기 전, 그러니까 근세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2류에 불과했떤 서유럽은 희망봉 발견 이후, 바닷길을 통해 끊임없이 세력을 팽창하다가 1842년 아편전쟁 승리를 계기로 세계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물론 그 전에도 바닷길을 통한 교류는 있었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신라와 당나라에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바닷길을 통한 문명 교류는 16세기까지는 활발했다고 볼 수 없다. 바닷길을 통한 교류는 전체 문명 교류의 일부일 뿐 아니라 보편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유럽인들의 탐험을 계기로 바닷길을 16세기부터 종전의 초원길이나 비단길을 대신해 문명 교류의 첨단에 서게되었다.

 이런 현상과 함께 나타난 것은, 그동안 소외됐던 해양권 국가들의 성장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이다. 서유럽뿐 아니라 동아시아 해양권도 마찬가지였다. 대륙의 문명 교류로부터 소외되어 후진성을 면하지 못했던 동아시아 해양권이, 바닷길을 통해 서유럽과 교류하게 됨으로써 자기 문명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과 명나라를 강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 이때부터 동아시아에 나타난 것은, 해상 루트를 통한 문명 교류의 비중이 커졌다는 점이다.

 동아시아는 유라시아대륙 내부의 양대 루트인 초원길과 비단길의 동쪽 종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근에 있는 한민족과 중국은 바다보다는 육상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6세기 후반부터는 동아시아에서도 해양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일본이 바다를 통해 수입한 조총이란 신무기를 앞세워 대륙을 침략한 것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시기의 동아시아 해양권은 문명 교류에서 소외된 옛날의 동아시아 해양권이 아니었다.

 만약 이 시기의 조선과 중국이 대륙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했다면, 그래서 해양을 통한 교류의 중요성을 좀더 일찍 인식했다면 새로운 흐름을 타고 해양강국이 됐을 수도 있다. 어쩌면 19세기 중반에 서양 출신 해양국가들에게 당한 치욕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과 중국은 임진왜란이라는 충격을 겪고도 여전히 해양의 중요성을 무시했고, 이것은 두 나라가 세계 문명의 새로운 흐름에 둔감하도록 만들었다.

 에드워드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기존의 1류는 종래의 가치관에 얽매이는 탓에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2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것처럼, 동아시아의 두 대륙 국가는 바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해 다음 시대의 2류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다의 가치가 높아지고 해양이 문명 전파의 보격적인 무대가 된 시점이 16세기라는 점이다. 그 전만 해도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주 무대는 대륙이었다. 이것은 한국이 고대 일본의 문화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하고자 하는 일부 일본인들의 잘못된 태도를 깨우치기에 충분한 것이다."

(후략)

-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김종성) 중에서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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