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전투에서 패배한 망정 전쟁에서는, 그리고 외교에서는 나름 이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일본의 사쓰에이 전쟁의 결과를 보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93%B0%EC%97%90%EC%9D%B4_%EC%A0%84%EC%9F%81
사실 나마무기 사건같은 걸 보고 아, 일본도 별 수 없구나 생각했는데
교전비를 보니 뭐.......그렇게 촌스러운(?) 대처를 한 일개 번이 그정도의 무력을 갖춘 줄은 몰랐네요. 잘하면 당시 조선을 점령할 거 같은 느낌마저 들더군요.
아니, 수백명이 전사하고도 적군을 1명도 제대로 사살하지 못한 신미양요같은 걸 보니 전쟁에서의 승리? 그래도 정치에선 이겼다?
라고 자부하던 제 자신이 부끄럽더군요.
거기다 전쟁 결과를 보고 양 수뇌부가 대처한 방안도 서로 다른 게 참.....
그렇게 무참하게 박살나고도 쇄국을 강조하는 측하고, 의외로 선전했음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개항으로 선회한 측을 보니...(솔직히 가장 무서운 게 이거인 거 같더군요.)
뭐, 동학 농민운동 당시 일본군이 경복궁을 습격할 당시 조선군의 무장 수준을 보고 일본 측에서 경악했다는 말을 얼핏 듣긴 했습니다만...줄루 전쟁이나 이런 걸 보고 전쟁이 무조건 무기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 걸 알지만...그래도 솔직히 좀 비교되긴 하네요.
참고로 위키 백과에 나온 신미양요 전적
신미양요 |
전멸한 광성보의 조선군. |
날짜 |
1871년 6월 1일 ~ 1871년 6월 11일 |
장소 |
강화도 일대 |
결과 |
미국의 전술적 승리 미국의 목표인 조선의 개방을 이루지 못해 전략적 패배 미국의 외교 실패 조선의 통상수교거부정책 강화 |
교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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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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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불명 |
군함 5척, 대포 90문, 병력 800명 | |
피해 규모 |
243명 전사, 100명 익사, 20명 포로 |
3명 전사, 10명 부상 | |
병인양요는 그래도 좀 양호한 거 같네요
출러: http://www.fancug.com/bbs/board.php?bo_table=freeboard2&wr_id=25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