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시기에 徐夢莘이 지은『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3권에 따르면, "女眞古肅愼國也. 本高麗朱蒙之遺", 즉, "여진은 옛 숙신의 나라이고,
원래 고구려 주몽의 후예이다"라고 명기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나라는 지금의 북경에 대규모 도시를 건설했다.
그 도시 건설 책임자의 이름은 '장호'였다. 《금사》에는 그를 '장호는 요양 발해인이다. 본래 성은 고씨로 동명왕의 후손이다(張浩遼陽渤海人本性高氏東明王之後).'라고
하였다.
장호뿐 아니라 수 많은 발해인들이 금나라의 고위 관료층을 형성하였다.
그것은 여진족과 발해인의 친연관계 뿐 아니라 대제국을 경영하였던 발해사람들의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대금국지大金國志』나 『흠정만주원류고』등이 “여진은 숙신의 후예이고 삼한의 진한辰韓에서 발원했다. 발해의 별족別族이다”
《고려사》예종 4년,
일찍이 저희 여진의 선조가 대방(고려)로부터 나왔으니...이 오아속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옛 땅을 돌려주시면 기왓장 한 장
던지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죠.
1115년 금황제가 된 완안 아골타는
《고려사》예종 12년,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겨 조심스럽게 섬겨왔고…
라는 서신을 고려에 보내기도 합니다.
전조(前朝)의 옛 능(陵)과 단군(檀君)·기자(箕子)·신라·고구려·백제의
시조(始祖)의 능을 수축(修築)하라고 명하였다.
-영조실록, 39년 4월 22일
《송막기문》에는 '여진추장은 신라사람(女眞酋長乃 新羅人)'이라는 기록이 있고, 《금사(金史)》에는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함보이며 고려에서 왔다.(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라는 기록이 있다.
《흠정 만주원류고》에는 '사서를 보니 신라왕실인 김씨가 수십세 이어왔고 금이 신라로부터 온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금나라 국호 또한 김씨 성을 취한 것이다.'
왕우량교수(중국다렌대학):"(고려와 여진은) 동일한
언어, 동일한 지역, 동일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다시말해여진인과 신라인(나중 고려인)은 민족공동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