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갔다 들어와, 댓글이 꽤 많이 달렸길래 보니.
끝까지 우기는 분이 계시네요-.-
대략난감;;;
주원장의 어릴시절 기록이 없다는데;; 그래서 고려인이다?
주원장은 원나라 말기(元末) 천력 원년(1328년) 안휘성 봉양현 출신이고,
가난한 농부 부친 주세진과 그의 처 진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태어났을 무렵의 이름은 주중팔(朱重八), 후에 주흥종(朱興宗)으로 개명했다가 주덕유(朱德裕)로, 홍건군에 참가하는 무렵에는 주원장(朱元璋)으로 개명했습니다.
부친이 죽고, 연달아 형제들도 먹을게 없어 연이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둘째와 셋째 형수, 그리고 둘째 형의 아이들과 어머니마저 전염병에 일가족 몰살.
너무 가난해서, 장사를 지낼 돈이 없어, 같은 마을에 살던 이웃이 자신의 땅을 제공하여 낡은 옷에다가 시신을 감싸서 겨우 매장했다고 합니다.
뒤에 황제가 된 뒤, 부친 주세진을 인조 순황제로, 모친 진씨를을 순황후로 추존하고
황릉비를 쓸 때 이 일을 기억하며 통곡한 것으로 유명하죠.
그뒤, 외가로 갔으나, 외조부마저 돌아가시자, 진짜 혈혈단신의 고아가 되어,
할수없이 황각사 (皇覺寺)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탁발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주원장 본인에게는 흑역사라고 생각했는지, 훗날, 승려의 僧(승)자를 비롯해,
그와 비슷하게 생긴 한자도 못쓰게 하고,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서 문자의 옥(쓰지 말아야 할 한자쓰면,
그자의 목이 댕강;;;떨어지는 공포정치를 실시했죠)
그는, 여러 지방을 떠돌아 다녔는데 당시 중국의 중부와 북부 지방에서는 기근과 가뭄으로 700만 명 이상이 굶어죽게 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였고, 원나라 조정도 내부싸움에 골몰하느라, 이러한 상황은 민중봉기를 촉진시켜 1325년경부터는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그때, 그는 곽자흥(郭子興)이란 자를 만나게되어, 그의 휘하에 들어갑니다.
일반 쫄병으로 들어갔지만, 곧 실력으로 관군을 상대로 이기면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곽자흥의 오른팔이 되었고, 곽자흥의 양녀인 마씨와 정식으로 혼인하죠.
1355년, 곽자흥이 병으로 죽자 주원장은 곽자흥의 군벌을 흡수해 자기 세력으로 키웠고,
,원말 군벌세력 중 하나로 크게 성장합니다.
그뒤, 진우량, 장사성 다른 군벌들을 차례로 격파한뒤, 사실상 남경을 중심으로 원나라 남부지방을 손아귀에 넣었고
스스로 남경에서 즉위해 스스로 황제라고 칭제하며, 홍무제가 되었죠.
그뒤, 태양이 두개일순 없다고, 북쪽으로 진격을 하죠.
원순제(기황후 남편)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옛 고토인 몽골초원으로 옮겨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뒤, 북경까지 손아귀에 얻은 주원장은 명실상부한 새나라(명)의 황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