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에서 나타난 유적의 수준에서는 이게 잘 처주워도 고대국가 단계 이전 성읍 국가 수준이라 ,,강력한 힘을 지닌 전제왕정식 국가 성립을 전제로 하는 문명 단위는 도저히 될수가 없죠,,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중국 대륙에서 3개의 초기 고대 문화가 나타난었는데 이 요하 상류 지역하고 추가로 장강 하류하고 지금 사천성 지역 였죠,,,
홍산문화는 홍산지역과 하가점등에 있었던 문화를 말하는 것으로 이미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를 이미 윤내현 교수등이 이미 확인한 상항입니다. 서기전 30세기전의 유물도 근처와 대동강 유역에서 발견보고 되고 있고 1974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 유적에서는 2325년의 유적도 발견 되었습니다. 영암에서도 역시 서기전 20세기의 유물이 발견되었고요.
강단사학과 일본놈들은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가 없고 석기와 철기를 병용해서 썼다고 해서 금석병용기 시대라는 해괴한 학설을 주장해 고조선은 신화고 고대국가라 볼 수 없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지금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확인 되고 있는 데도 수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어용 나팔수만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 슈메르와 이집트를 언급하며 문자를 언급 했는데 이들은 문잘 자신의 원 출발지에서 가지고 왔지 자신들이 정주 한 곳에서 발명한것이 아닙니다. 원 출발지가 슈메르는 파미르로 추정되고 이집트는 초기 왕국의 역사가 없어 확인이 안되나 부조에 나타나 얼굴등이 몽골이안이기에 이주민임을 알 수 있고 그들이 문자를 썼습니다. 문자 체계도에 보면 산스크리스트가 제일 위에 있습니다. 산스트리스트가 문자의 아버지라는 것 입니다. 홍산문화에서 출토되는 옥제기(옥인형)와 유사하고, 더크며, 흑색이며 더 오래된 흑피옥 유물이 내몽고, 사천북부와 감숙등지에서 발굴되고 있는데 이 인형에 심볼이 있고 이는 산스크리스트라고 강상원 선생이 고증 했습니다. 그리고 이 옥들은 화전옥으로 현지음으론 이든으로 불리우는 곳의 옥으로 역시 티벳지역입니다. 샨스크리스트 사용지역으로 옛날엔 천축의 일부로 불리던 지역입니다.
이들 문물이 출토되는 주 지역이 중국인데 중국이 철저히 통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흘린 것이 이정도로 저 불로그의 내용은 흑색선전 입니다.
인류가 소규모 씨족집단으로 돌도끼 들고 뛰어다니며 사냥하며 살던 원시시대가 있었고
어느 순간.. 성을 쌓고 규모를 갖춘 큰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계급사회, 전문직종등 사회분화가 이뤄지고.. 기술발전과 문자를 쓰기 시작하며 기록을 남기는데 .. 이걸 문명이라고 하지요.
인류가 정치집단으로 역사시대로 들어서는 태동기지요.
그럼 문화는?
원시집단에서 하루 아침에 큰 성을 쌓고 문자가 만들어지지는 않거든요.
따라서 문명을 이루기 이전 상태 과도기
혹은 뚜렷한 기술적 진보와 계급등 .. 문명에 준하는 발달 과정이 보이는 경우..
문명이라 하기엔 좀 그렇고 ..
이런 경우 문화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지요.
학문이 발전하면서 문명이란 단어와 구분할 필요성에서 따로 부르는 것뿐.
링크를 따라가서 읽어보니 문명이란 단어를 쓰려면 금속기를 써야한다는데..
우리가 핵교시험에서 문명을 상징하는 단어를 고르라는 문제가 나오면 문자와 금속기를 고르는게 정답인 경우가 많을테고.. 따라서 교과서를 딸딸 외우며 찰떡이라고 알고 있는 알라가 이걸 트집잡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명의 초기단계에선 금속기보단 문자가 훨 더 중요하지요.
어짜피 문명단계 초기의 금속기 사용은 악세사리 장식용이거든요.
또 금속기와 문자가 있으면 무조건 문명인가?
일단 그렇다고 보는게 상식이지만..
금속기와 문자 문명을 이루는데 유용한 도구이지 자체가 문명은 아니라는 것.
예를 들어서 아프리카 식인종 마을이 남았는데 그들에게 핸드폰을 쥐어주면 첨단문명을 가진 현대인인가? 핸드폰이 첨단문명을 상징하는 단어라 할 수가 있지만 자체가 현대문명은 아니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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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 조보구(趙寶溝), 흥륭와(興隆洼), 우하량(牛河梁) 및
- 은상문화(殷商文化)까지
동이문화는 봉황(鳳凰)을 토템으로 하였다.
통일된 문화체계는 아니지만
문헌에 기록된 이후의 생활은 이 지구(地區)의 조상들의 범칭(광범위한 동이문화)이다.
봉황을 모(母)토템으로 삼고
각종 새들을 자(子)토템으로 하는 북방 봉황토템 동이의 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연산산맥(燕山山脈)의 동이문화권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복희(伏羲)에서 하상(夏商) 2대까지 동이문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동이족 사람들은
- 깃털달린 활과 화살을 발명했으며,
- 문자를 창조했으며,
- 청동기를 제작하고,
- 철을 단련했으며,
-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었고,
- 농업을 발전시키고 치수(治水)를 하였다.
東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
"동해(서토 동해안)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다”
-산해경(춘추전국시절 편찬된 지리서)
<1968년 역사학자 천판(陳槃)이 펴낸 ‘춘추대사표열국작성급존멸선이(春秋大事表列國爵姓及存滅선異)’라는 책이었다. 기존 사서를 근거로 중국 중원에 산재했던 춘추시대 170여 소국의 역사를 비정한 역사책인데, 바로 선우라는 항목이 있다.
“선우는 일명 중산이라 한다. 회남자는 우(虞)는 혹 우(于)라 했다. 선우(鮮于)는 그 선조가 자성인데(其先子姓), 기자는 조선에 봉하고(以箕子封朝鮮), 기자의 둘째 아들은 우(于·핑산으로 추정)에 봉했다. 여기서 자손들은 조선의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따서 선우(鮮于)씨라 했다.(子孫因合 ‘鮮于’爲氏)”(천판)>
은나라의 후예 어쩌고 금석문이 발견되었고 여기에 기자의 후예
어쩌고로 이 선우씨의 유래가 참 재미있고 눈에 확띄는 대목이 선자가 조선의 선자와 봉지의 우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