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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30 22:06
[기타] 단재 신채호의 독사신론(讀史新論) 3/3
 글쓴이 : 청실홍실
조회 : 2,399  

8장 삼국 흥망의 異轍

 

삼국 초엽에는 신라가 가장 약하였고 그 중엽에 이르러서는 매우 빨리 강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기세가 고구려 백제만은 오히려 못하였더니 그 말엽에 이르러서는 영광이 빛나던 백제는 먼저 기울어서 넘어지며 무력이 땅을 울리던 고구려는 후에 무너져 엎어지고 오직 홀로 신라만이 흥함은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이 때에 다른 민족이 바야흐로 강성하여 침략이 그칠 새가 없었는데 마침 그 때 고구려는 남생 형제가 불화하였으며 백제는 의자왕대에 군신이 매우 교만하였는데 신라만이 상하가 마음을 합하여 외교에 근신하였으니 이것이 그 원인이다.

고구려는 비록 망하였으나 대조영이 돌이켜 일어나 옛 강토를 모두 수복하였으니 망한 것은 그 왕통뿐이요 인민과 토지는 탈이 없었다. 백제는 의자왕이 당나라로 끌려간 뒤에 의병들이 봉기하여 몇 년을 신라 당에 반항하였으나 마침내 다시 일어날 힘이 없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구려는 사면을 적국을 둘러싸여 그 국민이 항상 피비린내 나는 싸움 속에서 생활한 결과로 백절불굴의 용기를 가졌으며 또 7백여 년을 어떠한 동맹국도 애초에 없어 그 국민이 명예로운 독립심이 아주 많았던 것이다. 이 대문이 이적이 평양을 함락한 다음날에 읍루산 동쪽에서 자국의 왕을 높이고 침략군을 격퇴할 군사가 즉시 일어나 옛 강토를 광복하였거니와 백제는 남쪽에 신라가 있으나 약하다 하여 이를 업신여겼으며 북쪽으로 고구려가 있으나 멀다고 하여 이를 대비하지 않고 해외의 하찮은 섬나라 일본의 구원에 항상 의존하여 그 결과 그 마음이 항상 교만하며 그 의기가 쉽게 허물어졌다. 이 까닭에 탄현(炭峴) 백강(白江)과 같은 천연의 요새를 지키지 않아 성충(成忠)의 유한(遺恨)이 공중에 배회하며 소정방 유인원의 뭇 악마들이 살아서 돌아가 역사의 남긴 수치를 갈아 없애지 못하였으니, 고구려 백제가 하나는 부흥하고 하나는 영원히 망했던 원인이 어찌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아아, 비록 고대에 민권이 없던 시대에도 그 백성의 기운이 죽지 않았던 나라라면 그 남은 싹이 다시 자라남은 속일 수 없는 이치인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외국의 도움을 빌려 주위의 적을 방어한 것은 신라와 백제가 같은데 신라는 이것으로써 일어나고 백제는 이로써 망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신라는 중국의 도움이 있었으나 이를 오로지 믿지 않고 자강의 방책을 강구한 연후에 이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흥왕 진흥왕의 재위 중에 수나라에 도움을 청하는 사신이 끊이지 않았으나 국경의 경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까닭에 바보 온달 같은 백전명장으로도 남한산주를 수복하지 못하였다. 선덕왕 진덕왕의 재위 중에 비밀국서가 당나라에 빈번히 오갔으나 내치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연개소문과 같은 절대의 웅략을 가지고도 5백리의 빼앗긴 땅을 회복할 수 없었다. 마침내 신라 당이 힘을 합하여 백제를 없앤 뒤에 한편으로 친목의 정을 나타내면서 한편으로 경계와 방어를 매우 엄하게 하여 소정방의 흉측한 계책을 중지하게 하였으며 또 소정방의 군사가 돌아간 뒤에 즉시 당나라 사람이 설치한 웅진도독부를 격파하여 백제의 옛 영토를 모두 수복하였다. 이것으로 보건대 신라 외교는 단지 한때 이용하기 위하여 나온 것임이 명백하거니와 백제는 그렇지 못하여 항상 다른 나라의 도움을 얻어 국방을 하려고 하였고 그들이 일본을 가르친 공덕에 의지하여 항상 일본 군사를 이용하여 이웃의 적을 방어하니 나라를 위한 그들의 계책이 정말 어리석었다. 개로왕이 이 때문에 한번 패하여도 깨닫지 못하고 전지왕(腆支王)이 이 때문에 다시 패하여도 깨닫지 못하고 의자왕 대에 이르러서는 일본이 피폐가 아주 심한 때였다.

신라 태종대왕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대판(大阪)을 곧바로 공격하여 질펀한 피 속에서 항복을 받은 뒤에 패가대(覇家臺)에 되돌아가 백제상의 충혼을 조상하며, 월산성(月山城)에 가서 석우로(昔于老)의 억울한 혼백을 위로하고, 일본 전국의 용사 역사 모사 책사의 간담과 뼈를 부수며 그들의 군신 상하를 몰아세워 신라 임금의 동정(東征) 의로운 깃발 아래서 엎드려 기게 하였으니 이 때 일본의 무력이 타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신라 군사의 위력 앞에 혼이 달아났음을 상상할 수 있거늘 백제 사람들은 오히려 귀를 막고 있었던지 신라 군사가 북침하여 당나라 군사가 동범하여 그들이 위기 일발의 위급한 때를 당하였는데 충성과 지략을 겸비한 대신 성충을 가두며 5천의 잔약한 군사로 계백을 보내어 싸우게 하고 성이 포위되어 있는 가운데 군왕이 궁녀들의 술잔 앞에서 취하여 꺼꾸러지고 시문을 읊는 놀이판을 차리고 한가로이 앉아서 태평무사한 자와 같았으니 그가 무엇을 믿고 이와 같이 하였는가? 그것은 그가 일본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아, 자강의 방책을 닦지 않고 다른 나라의 도움만을 믿는 것은 반드시 패망하는 길이다.

어떤 사람은 망령되게 말하되 신라는 강대한 중국의 도움을 빌린 까닭에 흥하고 백제는 약한 일본의 도움을 빌린 까닭에 망하였다고 하나 그것이 어찌 그렇겠는가? 나는 백제가 중국의 도움을 빌렸을지라도 반드시 망하였을 것이라고 말하겠다. 어째서 그런가? 그것은 외국의 도움을 이용하는 것은 옳거니와 외국의 도움을 의지하고 믿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저 신라도 만일 중국을 의지하고 믿었더라면 결코 고구려를 뒤엎고 백제를 멸망시킨 큰 공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며 설혹 그 공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후에 소정방의 음모에 빠져서 나라가 폐허가 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또한 혹 이러한 음모에 빠져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백제의 옛 땅은 당나라에 끝내 양보하고 영남의 한 모퉁이에서 약한 나라가 됨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아, 동맹을 체결하는 것은 이익 때문에 서로 합하는 것이다. 이익이 다하게 되면 반드시 흩어지며 반드시 서로를 해치게 되는 것은 명백한 이치다. 그러므로 외국의 도움을 이용하는 것은 옳으나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 의지하고 믿으면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이다.

 

9장 김춘추의 功罪

 

다른 종족을 불러들여 같은 종족을 없애는 것은 도적을 끌어들여 형제를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뜻이 매우 명백하여 비록 삼척동자도 가히 깨달을 수 있는데, 애석하다, 우리나라 역사가들이여, 이러한 뜻을 아는 자가 적구나.

앞의 각 장에서 이미 기술했던 것과 같이 신라 역대 여러 왕들이 항상 외국의 도움을 이용하여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자 하였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혹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은 없었으며 그러한 사실은 있었으나 그것이 성공한 일은 없었으니 이것은 오히려 죽이려 꾀했으나 미수에 그친 것에 속하는 것이므로 1등을 감할 수 있겠으나 태종대왕 김춘추에 이르러서는 이 일을 위하여 마음과 힘을 다하여 솜씨를 다 쓰고 끝내 이 일을 성취한 뒤에 의기양양 외쳤던 것이다. 혈기가 반 정도라도 있는 자이면 그를 매도함이 옳으며 책망하여 배척함도 옳겠거늘 오늘날 본말을 따지지 않고 단지 우리나라 통일의 단서를 연 임금이라 말하니, 아 그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도 통일하며 일본도 통일하며 기타 동서 여러 나라를 남김없이 통일하였다 하더라도 그 공으로 그의 죄를 가리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우리나라를 통일한 공으로 그 죄를 가릴 수 있겠는가?

또 우리나라가 단군 이후에는 한 사람도 통일한 사람이 없다고 함이 옳으니 무슨 까닭인가? 부여 중엽에 나라의 기강이 점차 쇠한 후로 북한 일대에는 기씨 위씨 및 말갈 예맥 등이 세력을 떨쳤으며 남한 일대에는 허다한 토착 추장들이 자립해 있었으니 이것은 단군의 옛 영토가 분열되어 수십 나라가 패권을 다투었던 시대이다. 그 다음에 고구려가 한강 이북에 나라를 세우며 신라 백제는 한강 이남에 나란히 서 있었으니 이것은 수십 나라가 합하여 세 나라로 된 시대이다. 또 그 다음에는 고구려가 멸망하여 발해가 되고 백제가 멸망하여 신라에 병합되었으니 이것은 세 나라가 합하여 두 나라로 된 시대이다. 그 다음에 발해가 이미 멸망하매 압록강 서쪽의 토지는 드디어 거란 몽고 등의 다른 민족에게 넘겨주어 우리 단군 조선의 옛 영토의 반은 지금까지 9백여 년 동안 잃어버렸으니, 아 고려 태조가 우리나라를 통일하였다 하며, 조선의 개국도 또한 우리나라를 통일하였다고 하나 이것은 반쪼가리 통일이요 전체적인 통일은 아니다. 만일 이와 같은 반쪼가리 통일을 통일이라 한다면 동명성왕 역시 통일하였으며 온조와 혁거세도 또한 통일하였으니 하필 김춘추 이후에야 비로소 통일이 되었다 하겠으며 만일 전체적 통일을 찾는다면 단군 이후에 다시 보이지 아니한 것이니 어찌 김춘추를 통일한 자라 하겠는가?

그런즉 김춘추 일생에는 죄만 있고 공이 없거늘 이에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부분노가 있음도 알지 못하며 바보 온달이 있음도 알지 못하며 을지문덕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첫째도 김춘추라 하고 둘째도 김춘추라고 하여 그를 불세출의 임금이라 하며 이것을 크게 유위(有爲)한 뜻이라 하니 아아 그 망령되고 어그러짐이 어찌 여기에까지 이르렀는가? 오직 김춘추를 찬미하여 오직 김춘추를 숭배한 까닭에 한 나라의 인심이 매우 빨리 악마의 경지에 떨어져 도적들을 이끌어 들여 형제를 없애는 것을 떳떳한 일로 인정한 까닭에 신라가 당나라를 후원하기 위하여 발해를 쳐서 정벌하는 것을 사양하지 않았고, 왕건 견훤이 서로 다투매 저 중국의 강남의 한 도적에 지나지 않는 오월왕 전목(錢木)의 힘을 빌려 그 허세로 서로 협박 공갈을 하며, 최영이 북벌의 대사를 일으킬 때에 그 병력이 목적지의 반에도 이르기 전에 조준 정도전 등이 무기를 거꾸로 잡아 고려왕조를 넘어뜨리고 개국 공신의 자리를 차지하였으니, 국가가 축소되고 약하게 되는 근원을 미루어 보건대 어찌 이 동족이 서로 원수로 생각하는데 있지 아니한가?

“콩을 콩대로 태워 삶으니 콩이 가마솥 속에서 우는구나.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서로 지짐이 어찌 그리 각박한가?”라고 한 이 4구의 시는 위나라 사람 조식이 자기 가정의 불행을 스스로 슬퍼한 말이다. 내가 우리 조국역사를 읽어보니 곧바로 이와 같은 감정이 갑자기 부딪쳐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목우(木偶)를 처음으로 만든 자가 누가냐 하면 바로 김춘추이며 물결을 흔들어 큰 파도를 만든 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여러 역사가들이다. 이와 같은 망령된 생각을 내어 다른 민족으로 하여금 동족을 멸망시킨 김춘추여 이러한 주의를 고취하여 우리나라를 깎아 약하게 한 역사가들이여.

 

10장 발해국의 존망

 

아아, 우리나라가 압록강 서쪽을 포기하여 적국에 내준 것이 어느 때부터 비롯하였는가? 그것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던 때부터였다고 하겠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발해의 대씨의 전해 내려오는 혈통을 미루어 보면 곧 그들은 우리 단군의 자손이며 그들이 통치했던 인민을 물어보면 곧 우리 부여의 종족이요 그들이 차지했던 강토는 곧 고구려의 옛 강토이니 대씨를 우리 역사에 기록하지 않으면 마땅히 누구를 기록할 것이며 대씨를 우리 역사에 기록하지 않으면 마땅히 어느 나라 역사에 기록하겠는가?

아아, 저 한 임금 한 조정을 위하여 하찮은 작은 절개를 기록한 것도 길가는 나그네의 입에 뻔질나게 오르내리며 역사가의 칭찬이 분분하여 수천 년 이후 사람들의 숭배를 받거늘, 우리 발해의 선왕은 고구려 멸망 후에 남은 수백 명의 군사로 백두산 동쪽에 우뚝 솟아 동쪽으로 신라를 적대하고 서쪽으로 중국을 적대하며 그 외에 또한 흑수말갈 거란 유연(柔然) 등을 적대하여 피나는 싸움 10여 년 끝내 허다한 적국을 물리치고 독립의 공을 이루고 면면한 역사를 3백 년이나 전하였으니 대중상 대조영 대무예의 그 인격과 그 역사가 과연 어떠한가? 그러나 우리나라 역대는 세는 자가 발해의 역대를 세지 않으며 문헌을 전하는 자가 발해의 문헌을 전하지 아니하여 발해국이라 말하면 흉노 거란 선비 몽고와 같은 종류로 보며, 대중상 대조영이라 부르면 묵돌 야율아보기 모용수 징기스칸과 동렬로 보아 분명한 우리 단군 후예의 한 영웅을 저들 오랑캐 족속 가운데의 영웅으로 아울러 웃으니 아깝다 저 대씨의 여러 왕들이 당시 조국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헌신할 때 어찌 죽은 후의 명예를 구하였겠으리요마는 단지 발해의 역사가 전하지 않으므로 첫째는 국민들의 영웅 숭배하는 마음을 없애버리며 둘째는 후세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왔던 강토를 망각하여 이로부터 대국이 소국으로 되고 대국민이 소국민으로 되어버렸다.

안정복이 우리나라 역사를 읽다가 태조 이성계가 동녕부(東寧府)를 공격하여 둘러 뺄 때 멀리 나아가 요동과 만주를 병합치 못하고 그 후에 원나라 평장사(平章事) 유익(劉益)이 요양 지방 13주를 가지고 우리나라에 귀화하거늘 이것을 받지 않아 명나라에 귀화하게 했던 까닭에 압록강이 드디어 굳은 경계가 되어 천하의 약국이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니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것이다.

대저 한 나라의 성하고 쇠하고 흥하고 망하는 일이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요 그 유래한 바가 반드시 먼 곳에 있으니, 결과만 보고 원인을 거슬러올라가 살펴보지 않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태조 이성계 때에 유익의 귀화를 받아들이지 않음은 그 후에 압록강 서쪽을 잃게 된 결과이거니와 “이러한 결과를 낳은 원인은 무엇인가”하면 김부식이 역사를 편찬함에 발해국을 우리나라 역사에 싣지 않았음이 그 원인이라 하겠다.

당당한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 옛 당에 자립한 발해국을 우리 역사에 기술하지 않고 압록강 서쪽의 천지는 누가 점령하든지 우리가 묻지 않았던 까닭에 수백년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이나 눈에도 자기네 국토를 오직 압록강 동쪽의 당만이 우리 땅이라 하며, 우리 민족도 오직 압록강 동쪽 민족만이 우리 민족이라 하며, 우리 역사도 오직 압록강 동쪽 역사만이 우리 역사라 하며, 사업도 오직 압록강 동쪽의 사업만을 우리 사업이라 하였다. 이에 사상이 압록강 바깥에 한 발자국을 넘을까 경계하며, 자나깨나 압록강 바깥에 한 발자국 넘어설까 두려워하여 우리의 선조인 단군 부루 동명성왕 대무신왕 부분노 광개토왕 장수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대중상 대조영 등 여러 성인 철인 영웅 호걸들이 마음을 다하고 피를 흘려 만세에 서로 전할 터전으로 우리 자손들에게 준 큰 토지를 남의 것으로 보아 그 아픔과 가려움을 상관하지 않았다.

이 대문에 고려 혜종 때에 거란이 대씨를 격파하여 전 만주를 점거하매 우리 단군의 발상지가 슬그머니 다른 민족의 손에 들어가니 무릇 우리 부여 민족이 각기 칼을 뽑아 들고 일어날 시대인데도 오히려 압록강 동쪽만 고수하여 조상들의 원수를 묻지 않으며 민족의 억울함을 생각하지 않으니, 그 까닭이 어디 있는가 하면 곧 김부식이 발해를 우리 역사에 기록하지 아니하여 그 땅이 우리 민족의 소유임을 알지 못한 때문이다.

그 후에 강감찬 강민첨이 거란과 싸워 그들의 20만 대군을 쳐부수고 추격하여 압록강을 쫓아가 이르렀을 때에 발해 유민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일제히 분발하여 뛰면서 말하기를 “우리 조국의 병력이 이와 같으니, 우리들이 마땅히 이 때를 틈타 우리 조국의 마지막 힘으로써 거란을 격파하고 대씨의 사직을 재건함이 이 때가 아니겠는가?”하고 즉시 발해의 동경을 다시 수복하여 국호를 재건하며 전후 수십 번이나 사신을 보내어 고려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이 때야말로 우리 부여 민족이 승승장구하고 나라 안과 밖이 하나로 되어 단군의 옛 영토를 회복할 시대인데, 이 때도 오히려 압록강 동쪽만 고수하여 진취적인 사상이 없었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하면 곧 김부식이 발해를 우리 역사에 기록하지 않아 압록강 바깥쪽의 민족이 우리 민족과 같은 민족임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

또 고려 말년에 이르러 우리 수륙군도통제 최영이 백전백승의 큰 위세로 요동과 심양을 함께 토벌코자 할 때가 곧 우리 부여 민족의 수백 년간이나 잃었던 옛 영토를 회복할 시대이거늘, 이 때에는 또한 국내의 권력다툼에 급급하여 압록강 바깥을 한 발자국도 찾아내 돌려받지 못했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하면 곧 김부식이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하지 않아 압록강 바깥 수십만 리 땅이 본래 우리의 땅인 줄을 알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김부식은 역사에 대한 식견이나 재주가 전혀 없어 지리가 어떠한지도 알지 못하며 역사의 관례가 어떠한지도 알지 못하며 자기나라의 높일만한 것도 알지 못하며 영웅이 귀중함도 알지 못하고 단지 허무맹랑하고 비열하며 전혀 생각해 볼 가치가 없는 얘기를 끌어 모아 몇 권을 만들고 이것을 역사라 하고 또한 삼국사라 한 사람이니, 역사여, 역사여, 이러한 역사도 역사인가?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김부식이 우리 역사를 저술할 때 발해를 빼버린 것은 과연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가 중국 역사의 예를 모방하여 우리나라의 정통 비정통을 분별할 때 그가 살았던 시대가 바로 고려 중엽이므로 압록강 서북 부여 옛 땅은 모두 거란이 점유한 바가 되었으니 만일 부여의 옛 강토를 모두 가진 자를 정통으로 시인하게 되면 고려도 또한 비정통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압록강 바깥은 우리 민족이 차지하였던지, 다른 민족이 차지하였던지 이것은 모두 다른 나라로 보고 오직 압록강 동쪽만 오로지 차지했으면 이것을 정통군주로 받들어 당시 임금에게 아첨했으니 애석하구나, 애석하구나.

그런즉 고구려도 곧 우리 역사에서 배척하여 싣지 않음이 옳은데 무슨 까닭으로 삼국이라 불렀겠는가? 이것은 또 그 까닭이 있으니 고구려가 평양에 도읍하였던 때문이다.

그런즉 발해도 일찍이 우리나라 서북쪽 일대를 차지하였으니, 만일 그 도읍만이라도 이 서북쪽 지방에 옮겼더라면 우리 역사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이것 또한 그렇지 않다. 저 김부식의 마음은 오직 자기 조정(즉 고려)에 정통을 부여함이니 만일 발해의 도읍이 압록강 동쪽에 있었더라면 그는 또한 고구려까지 아울러 우리 역사에 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부식 혼자만을 또한 어떻게 책할 수 있겠으리요만 내가 가만히 탄식하는 바는 수백 년 동안 우리 역사가들이 모두 김부식의 감추고 속임으로 말미암아 발해 역대가 우리 역사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미완)

 

(대한매일신보 1908. 08. 27. ~ 09. 15., 10.29. ~ 12.13.; 50회 연재)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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