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평양이 지금의 산서성에 있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一. 평양이 란하나 황하의 부근에 있으면 그 서쪽에 있을 遼東성, 안시성, 백암성, 신성, 남소성, 건안성, 목저성, 개모성, 오골성, 비사성은 어디서 찾겠는가가 문제다.
二. 비사성이 지금의 遼東 반도 끝자락의 대련시로 비정되지만 遼史에서 지금의 해성시인 해주로 직접 비정하여 소개하는 점으로 볼 때 遼東 반도의 서남이 아니라 서부에 위치했다. 그곳을 당나라의 수군이 공격해왔는데 평양이 비사성보다도 훨씬 서쪽에 산서성은 물론 하북성과 료녕성의 경계 부근에 있었다면 필요가 없는 공격이다. 지상군과의 협격을 하지 못하고 수군만 갔다가 후방의 고구려군에게 궤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三. 수나라가 침공해올 때 진군을 개시한 곳이 탁군인데 보통 북경에 비정하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지금의 산서성 이서에 비정한 이설은 찾을 수가 없다. 평양 운운은 물론이고 고구려의 강역이 산서성까지 미쳤다고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四.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서신에 고구려와 백제가 제, 로, 오, 월의 지역을 침공했다는 말이 있는데 고구려가 산서성까지 점령했으면 조나 위를 함께 언급해야 하는데 없다.
五. 통전에 '(장성이)동으로 遼水를 끊고 고려로 들어간다'라고 했는데 지금의 만리장성이 끊는 강이 란하이므로 고구려의 서쪽 경계인 遼水인 란하의 서쪽에 평양이 있었을 수가 없다.
六. 고구려는 평양이 함락되면서 망했는데 상식적으로 태왕을 비롯한 황족들이 산서성에 있는 평양에 웅크려있다가 죄다 잡히는게 비상식적이다.
七. 3차 고당 전쟁 때 설필하력과 리세적이 압록수를 건너고 나서 평양을 포위했다고 하는데 평양이 산서성에 있었으면 압록수는 어디인지가 설명이 안된다.
八. 遼史 지리지 이권에 '원위 태무제(太武帝)가 그들이 거주하는 평양성에 사신을 보냈다. 遼나라 동경이 이곳이다'라고 하였으니 평양이 곧 遼나라의 동경 료양부였다는 기록이다.
九. 또 '홀한주는 옛 평양성이다. 중경 현덕부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뒤에 '현주 봉선군이 설치되었으며 상등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현덕부 땅이다.'라고 하고서 '군의 일은 동경도부서사에 속하였다'라 하였으니 고구려의 평양이 대진의 중경 현덕부고 遼나라가 현주 봉선군을 거기다 설치했는데 동경도에 속했다는 말이므로 평양성이 동경이 있었던 지금의 遼陽 부근에서 멀지 않았다고 봄이 합당하다.
十. 고구려군이 당나라군과 싸운 곳 중 하나가 적봉진인데 지금의 적봉시로 추정된다. 산서성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떨어졌으니 평양이 산서성에 있었단 주장은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믿을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만 이러합니다. 이런 점들을 다 무시하고 씹으면서 굳이 평양성이 산서성에 있었다고 주장할려면 멍청하거나 요설을 그럴듯 하게 늘어놓는 천재여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불가능하고 평양성은 산서성은 커녕 하북성 북동부에도 위치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대릉하의 서쪽에서는 찾을 수가 없고 遼河의 동쪽 부근이라고 봄이 타당합니다.
고구려의 평양이 산서성에, 신라 강역이 중원 동부에 있었다는 정신나간 주장에 반박했다고 식민사관을 추종한다고 비난할려면 얼마나 낯짝이 두꺼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건도 그렇고 수XX님은 황당한 주장을 수 없이 해왔는데 진지하게 간첩으로 와서 분탕치는 사람이라고 의심해봅니다. 본인이 정말로 국사에 기여를 하고 싶다면 당장 입 다물고 떠나는게 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