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 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다, 즉
今王城在鴨緑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矣 其城周圍六十里 山形繚繞 雜以沙礫隨其地形而築之
해석을 하면, 지금의 왕성은 압록수(鴨緑水)의 동남쪽 1000여 리에 있는데 옛 평양(平壤)이 아니다. 그 성은 둘레가 60 리이고 산이 빙 둘러 있으며 모래와 자갈을 섞어 지형에 따라 성을 쌓았다 라는 구절이 있다.
즉, 위의 기사 중에서 今王城在鴨緑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矣, '지금의 왕성은 압록수(鴨緑水)의 동남쪽 1000여 리에 있는데 옛 평양(平壤)이 아니다' 라는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위 기사는 비록 간단한 문장이긴 하지만,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1. ‘今王城(지금의 왕성)’은 당연히 현 개성 이다.
이 본문 글은 당시 북쪽의 金나라에 의해서 남쪽으로 밀린 宋나라의 선화봉사 서긍이 고려로 사신을 가는데 흔히 다니던 북쪽의 육로길이 막혀서 남쪽의 양자강 하구에서 뱃길로 황해를 건너서 현, 전남해안에 도착하여 서해안을 타고서 북상하여 현, 개성의 고려도성에 왔을 때의 기록이므로
王城(지금의 왕성)은 현 개성인 것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2. 현, 개성에서 서북쪽으로 1,000여리에 있는 압록수(鴨緑水)는 현 평안북도 압록강이 아니다. 이 기록에서 王城(개성)이 압록수(鴨緑水)의 동남쪽 1000여 리에 있다(在鴨緑水之東南千餘里)’라고 했으므로, 이 구절은 당시의 압록수(鴨緑水)가 개성의 서북쪽 1,000여리에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연행록들을 살펴보면, 현,서울에서 현, 압록강변의 의주(灣府)까지가 24개 역참으로 1,050리였고, 현,서울(漢城)에서 현,개성까지가 약160리였으므로 현,개성(松都)에서 현,압록강변의 의주까지는 약890리 였다.
이 기록에서의 압록수(鴨緑水)는 현 압록강변의 의주보다 더 북쪽으로 최소한 110리 이상의 거리에 있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110리가 대략 조선시대의 청나라 책문에 해당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거리측정오차를 고려할 때, 개성에서 서북쪽으로 1,000여리(1,000리 이상의 거리)에 있는 강은, 현 평안북도의 압록강이 아니라, 현 요하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 언급된 압록수(鴨緑水)는 현 평안북도의 압록강이 아니라, 요하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즉 이 문장에서 언급한 옛 평양 곧 고구려의 평양(平壤之舊)은 현 요하(鴨緑水)에 가까이 있었다 라는 의미이다.
이 기록에서의 압록수(鴨緑水)가 요하라고 비정한다면, 이 기록은 곧 '옛 평양(平壤之舊)은 현 요하(鴨緑水)에 가까이 있었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이해되어야 한다.
4. 즉, 서긍이 말하는 ‘옛 평양(平壤之舊)’은 현 요양이다.
그러면 서긍은 ‘今王城(현,개성)’을 설명하면서 ‘鴨緑水(압록수)’와 ‘平壤之舊(옛,평양)’를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아야 이 문장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이
a. 서긍이 고려를 방문했을 당시(1123년)에는 고려땅에는 현 대동강에 평양(平壤)이라는 지명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긍이 말한 ‘平壤之舊(옛,평양)’은 현 대동강평양(平壤)이 아닌 다른 위치에 있는 ‘평양(平壤)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모처럼만에 고려에 사신을 온 서긍은 거의 수십년 동안 국교가 끊어졌던 중국의 송나라 사람들에게 고려의 도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인데, 고구려와 고려를 구분하지 못하는(더더욱 당시 대동강 인근의 평양과 요하인근의 고구려 평양을 구분 못하는), 송나라 사람들을 위하여, 고구려의 구 수도인 ‘平壤之舊(즉 현 요양, 요하인근)’를 설명하여, 고구려가 전에 도읍을 하였었던 ‘平壤之舊(대동강 평양과 다른 요하 유역의 평양)’와 개성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으면 않되었던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쉽게 말해서 고려가 현재 도읍하고 있는 곳 ‘今王城(개성)’은 옛날에 고구려가 도읍하고 있었던 平壤之舊(옛,평양)이 아니고, 또 고려가 대동강에 '신 평양'을 건설하였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라는 것이다.
b.그리고 고려의 새로운 도성인 개성이 ‘平壤之舊(옛 고구려의 평양)’와는 다르고, 그러기에 이 ‘今王城(개성)’이 도대체 어디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고려의 지리를 모르는 송나라 사람들에게는 역시 무용지물이 될 것이므로 서긍은 ‘今王城(지금의 개성)의 위치를 송나라 사람들도 비교적 잘 아는 지명인 ‘鴨緑水(압록수) 즉 현 요하를 기준으로 해서 설명한 것이 <今王城在鴨緑水之東南千餘里>이라는 구절에나타나 있다.
즉, 왕성은 압록수(鴨緑水)의 현 요하 동남쪽 1000여 리에 있다. 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긍이 대략 현 한반도와 만주, 요녕 지역에 수없이 많은 유명한 다른 지형지물의 이름들을 들어서 기준으로 하지 않고 굳이 ‘鴨緑水(압록수)’라는 지명을 기준으로해서 새로운 ‘今王城(지금의 왕성=현,개성)’의 위치를 설명하려고 하였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고구려가 전에 도읍을 하였던 곳이 바로 ‘압록수(鴨緑水)’라는 지명과 가까운 지역이었다는 것을 중국에 있는 ‘고려도경의 독자들(송나라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긍은 ‘압록수(鴨緑水)’를 기준으로해서 ‘今王城(지금의 왕성=현,개성)’의 위치를 설명하게 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c. 그런데, 서긍은 이 ‘압록수(鴨緑水)’라는 기준을 설명하면서 또 하나의 기준 지명을 추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옛 평양(平壤之舊)’이라는 지명인 것이다. 이 지명은 고려의 ‘今王城(개성)’이 현, 대동강 평양이 아닌 곳 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鴨緑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矣>압록수(鴨緑水)의 동남쪽 1000여 리에 있는데 옛, 평양(平壤)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사용함으로서 ‘압록수(鴨緑水)’가 있는 위치와 ‘옛,고구려의 평양(平壤之舊)’의 위치가 같은 위치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보더라도 ‘옛, 평양(平壤之舊=고구려의 평양)은 항상 ‘압록수(鴨緑水 현 요하)와 함께 따라 다니는 지명이었으므로 이 <今王城在鴨緑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矣>지금의 왕성은 압록수(鴨緑水)의 동남쪽 1000여 리에 있는데 옛,평양(平壤)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역으로 보아서 ‘今王城(현,개성)’의 서북 1,000여리에 ‘압록수(鴨緑水 현 요하)’와 ‘옛 고구려의 평양(平壤之舊)’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今王城(개성)의 위치를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성의 서북 1,000여리에 압록강 즉 요수가 있고 그 옆에 구 평양이 있다는 구절은
고려가 만든 신 평양인 대동강 인근과는 다르고, 그 지역은 송나라인 들에게 낯선 지명이었기에, 결국 고구려의 옛 수도인 구 평양(현 요양)과 요양 인근의 압록강이라 불리웠던 요하를 기준으로 개성의 위치를 설명하였다고 보는 것이 이 문장의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ps) 1. 현 집안(국내성)을 평양이라고 설정하였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평양의 조건은 일단은 평야지대에 위치해야 한다.
또한 대동강 지역의 평양에서는 이미 한성이라 적힌 성돌이 발견되었으므로 고구려의 삼경 중 하나였던, 한성으로 보는 것이 옳다
2.현 평안남도의 평양은 아무리 오차가 있다고 해도, 개성에서 1,000리가 떨어져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