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 7대 불가사이 이종호 지음
세계 최초의 철기시대 시작은 기원전 25세기이고 주변지역 전파는 기원전 12세기부터이다
고고학사에 다르면 기원전 25세기경 수메르에서 철기를 만들었고 강철은 기원전 20세기경에 아르메니아 지역의 하티이트족이 개발했다
하지만 강철을 용광로가 아니라 연철의 표면을 침탄법(용광로 온도를 높이지 못해 연철을 두드린 후 숯에 넣어 탄소를 투입시키는 방법으로 표면에만 탄소가 함유되어 잘 부러짐)이어서 질이 낮았다
주변지역으로 퍼진시기는 기원전 12세기~10세기에야 이란,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동부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철은 탄소함량에 따라 주철(무쇠, 선철이라고 하면 탄소함량 1.7~4.5%), 강철(탄소함량 0.035~1.7%), 연철(탄소함량 0.035%이하)로 나뉜다
중국의 철기 사용은 기원전 7세기이고 강철제작은 기원전 1세기이다
중국의 철기사용은 기원전 11세기 연철사용이 시작되지만 주철의 주조는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7세기에야 가능했다.
하지만 고온의 용광로를 만들지 못해 침탄법을 사용하는 등 작업방식의 낙후성으로 고가이고 잘 부러져서 진나라의 통일제국 이후에도 청동제 무기를 사용했다
초강법(주철에 고운 흙등의 탈탄제를 넣어 주철의 탄소를 제거)으로 만드는 강철은 한나라 초기인 기원전 1세기에야 비로소 나타나며 문화혁명기까지도 동일한 방식으로 생산했다다
한반도 철기시대시작의 통설은 기원전 4세기이다
우리나라의 철기시대는 언제인가?
지금까지 학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전국시대 명도전(기원전 475~221년)과 함께 시작되었다거나 기원전 108년 한무제의 침입때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주류엿다
한국은 강철을 기원전 12세기부터 생산햇다
하지만 전국시대 유적지 가운데 철기가 출토된 지방은 대부분 고조선 영역이므로 오히려 이들 유물이 고조선인에 만들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평양시 강동군 송석리 1호 석관묘에서 발견된 쇠거울(지름 15 센티, 두께 0.5센티)의 절대연도가 무려 3104년+179년(기원전 10세기~기원전 12세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쇠거울의 화학 조성은 탄소 0.06%, 규소 0.18%, 유황 0.01%의 저탄소강이었다. 저탄소강은 섭씨 1500도 이상되는 용광로에서 얻은 쇳물로 주조를 해야 얻을 수 있다
평양시 강동군 항목리에서 출토된 쇠줄칼은 기원전 7세기경에 만들어 졌는데 탄소 1%, 규소 0.15%, 유황 0.0007%이며 높은 온도에서만 형성되는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쇠를 완전히 녹였다는 뜻이다
고조선은 초강법뿐만 아니라 더 발전되고 탄소함량의 조절이 쉬운 관강법을 사용해서 강철을 만들엇다
한국은 기원전 10세기부터 질좋은 강철을 생산했다
고조선 지역에서의 강철이 주목받는 이유는 고온의 용광로를 이용하여 질이 좋기 때문이다
기원전 10세기에 서아시아에서도 강철이 생산되기도 했지만 낮은 용광로에서 저급품이었다
유럽은 오랫동안 초강법으로 단조작업으로 강철을 만들었기 때문에 대규모 중장기병을 운용하지 못했다
철을 완전히 녹여 강철을 만드는 방식은 14세기 이후에나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유럽의 중세기사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강철갑옷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역사드라마 [주몽]에서 기원전 12세기부터 질좋은 강철을 생산할 수 있었던 고조선, 부여가
부여가 초강법을 터득하지 못할때 중국의 한나라가 철기군을 운용했다는 모습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고 볼수 있다
개마무사의 시작은 고구려다
개마무사의 기원을 강단사학계는 중국, 유목민족에서 찾는데 오히려 중국은 제철능력의 한계로 고구려처럼 5천명까지의 대규모 개마무사(갑옷을 입힌 말을 타는 무사란 뜻으로 최소 70kg의 철이 필요)를 운용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몇백필 수준이었고(관도대전에서 원소군 개마 200필, 조조군 10필) 등자도 없었다
이때가 3세기 초이고 동천왕이 3세기 중엽이므로 거의 동시대인 것이다
4세기(312년) 초에는 선비족의 단부가 개마 5000필을 보유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때 선비족은 고구려의 부용세력에 불과했다
유리왕 11년(기원전 9년에) 선비족을 격파해 속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한 개마규모를 운영할려면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어야 하므로 유목민족인 선비가 자체적으로 철갑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고구려가 선비족에게 공급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