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고학적으로 평양 지역에는 전한 시대 유물은 거의 안나옵니다.(전혀 안나올수는 없고 몇개는 나오겠죠.)
그러므로 전한이 평양에 낙랑군을 설치했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후한시대 유물이 제법 나오는데 그것은 아마도 황해도와 평양 지역이 주요 중심지던 최씨 낙랑국(그 유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최리왕이 다스리던 우리민족의 열국중의 하나로 한나라 한사군과는 전혀 무관합니다)이 고구려에 대항하여 후한과 긴밀한 교류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후한 광무제 유수가, 고구려에 대항하다가 결국 망하고 다시 재건국을 원하는 최씨낙랑국의 요구로 어떤 식으로든 평양 지역에 세력을 뻗쳤을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나 각종 사서에 보면 고구려가 중국을 침략해서 포로를 잡아오면 주로 평양지역에 집중 배치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평양 지역에 중국 유물들이 있다고 봐야지 특정 지역에 어떤 나라의 유물이 나온다고 닥치고 지배했던 증거라고 한다면 인천 화교타운도 훗날 중국이 지배했던 곳으로 둔갑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