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의 국경선을 분석해보면 특이사항을 알 수 있다. 의주, 삭주, 창성, 벽동의 영토가 압록강 바깥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이산, 강계 자성, 여연, 우예 등은 현재 혼강 부근에 있었는데, 당시에 혼강이 압록강이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확인된 지리정보를 고려사에 대입해보면 요녕성 번시시 북쪽에 압록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존의 인식과는 매우 상반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기록들이 고려사에 나온다.
고려왕이 원나라까지 가는데 여행길을 도와줄 수 있게 역참을 설치했다. 고려사 병지 참역편에는 이리간이라는 역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요양과 심양 사이에 한 곳을 설치했고 명칭을 영성(營城)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압록강 안쪽에 두 곳을 설치했다. 압록강 안쪽 두 곳이 어딘지 설명은 없는데, 충숙왕 15년 7월 9일자 기록을 보면 한 곳의 명칭이 나와있다. 그 곳은 바로 선성(宣城)이다.
그런데 선성(宣城)을 고려사에서 찾아보면 현재 요녕성 펑청시에 있었다. 압록강의 위치가 현재의 지리정보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를 살펴보면 조선의 영토가 요녕성 단둥시에도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대입해보면 고려의 영토도 요녕성 단둥시에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파사부를 분석해보면 이를 반증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