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의 허허실실과 시시비비의 판가름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리고, 또 그러한 분위기를 일부러 조성하는 세력의 조장이 있지 않은가 의심이 되는, 우려스럽고 불만족스러운 흐름이 있어서 간단히 소개한다
1. 시티팝
일본의 버블경제 시대를 중심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 사이에 일본에서 유행한 가볍고, 밝고, 도회적이며 젊은이의 감성을 표현한, 음악의 한 경향, 혹은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 일본 시티팝을 먼저 접한 일본문화 애호 취향의 20대 한국 젊은이들이 '시티팝'이라는 개념과 그 범주에 대한민국의 동시대인 7090 시대 가요의 일부를를 선별해 집어넣어서 이해하려는 태도와 행동이 유튜브를 중심한 인터넷 공간에 조성돼 유세하고 있다.
즉
동시대 대한민국 가요의 한 경향을 일본 가요의 한 경향인 시티팝의 하위 범주로 만든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한 세대가 우리 대중음악과 그 역사와 그 깊이와 넓이에 무지한, 몰이해한 데에 따른 것이고 '역사감정'과 '문화애호'를 구분하여 대하는 것을 몹시 '쿨'한 것이라 여기는 정서, 나아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논리가 더해져 나타난 오류이다.
이 어린 세대는 대한민국의 과거를 피상적으로 못 산, 못 누린, 후진국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런 탓에 대중음악 역시 다양한 장르와 경향의 향유와 소화에 있어서 세계대중음악사적 추세에 발맞추지 못하였을 것이다ㅡ라고 역시 피상적으로, 더욱이 네거티브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본인은 1970년대 후반에 출생하여 본인 세대인 8090 시대의 대중음악과 그 이전 세대인 6070 시대의 대중음악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세대인 0010 시대의 대중음악을 접하고 즐기며 산 세대이며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19세기 말, 20 세기 초의 우리 대한과 일본의 대중음악의 경향을 청음으로써 공부하였고 세계대중음악사 및 각양의 장르 역시 청음으로써 공부한 바 있어서
ㅡ 우리의 과거 대중음악은 세계대중음악 추세에 있어서 후진국이었다
ㅡ 7090 한국대중음악의 한 경향은 일본 시티팝의 하위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는 1990년대 말 이후 출생한 세대의 견해와 주장에
'아니다', '그르다'
라고 말할 자격과 처지를 갖추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본인이 앎에 있어서 예전의 예리함과 정밀함을 여전히 지니고 있지는 못 하여서 정확하고 적합한 용어를 써서 유려하게 비평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인정한다.
각설하고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은 세계대중음악의 추세와 각양 장르의 전도와 유행을 거의 동시적으로 흡수하여 향유하고 있었으며
일본 시티팝의 경우 이는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경향이자 스타일일 뿐으로
도회적, 젊음, 가볍고 밝은ㅡ이라는 음악적 특색은
일본이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70년대부터 조성돼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추세의 한 가닥이다
이 시티팝의 특색은 장르적으로
ㅡ 신스
ㅡ 애시드
ㅡ 스무스
ㅡ 스윙
ㅡ 펑크
ㅡ 뉴 잭 스윙
등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7090의 세계사적 한 추세와 경향 위에 당시의 대한민국과 일본국의 대중음악적 형편이 나란히 놓여있었을 뿐이다
즉 일본 시티팝의 영향을 받아 당시 대한민국 음악이 발동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일본대중음악 용어인 '시티팝'으로 우리 대중음악의 한 경향을 개념하고 범주함으로써
마치 일본의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을 부여하고, 기계적으로 일본 대중음악의 하위범주에 우리 대중음악을 자리하게 하는 모양새를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2. 고려인
'고려인'을 한국인과 분리해서
고려인 스스로 대한민국이나 구소련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정체성 집단, 또는 유랑집단으로
그 정체성을 조각하려 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는 구소련 국가, 미국 등지에서 제작한 몇몇의 다큐멘터리에서 엿보이는데
이 문제는 더 유심히 지켜보며 분석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