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되는 소리좀 하지 마시길...
임금이 도성 버리고 토끼고...가토의 대군이 코앞까지 몰려오니까 당연히 전쟁 의지를 잃어서 왕자 갖다 바치고 목숨 부지하려고 한 것이지...뭔 놈의 해방군? 아니...해방군이란 단어 자체가 근대에 만들어진 말인데...어디다 갖다 붙이는지요?
분명히 임란 초기라고 한정지었고, 일부계층이나 지역에서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언급한 것 뿐인데.. 왜 이리 발끈하시는지...^^
선조와 조선조정이 궁지에 몰린 절정기이자 임란이 발발한지 수 개월 정도 지난
1592년 하반기 무렵 당시에 "이제는 조선천지에 가왜(가짜 일본군-다시말해 조선인으로
일본군에 동조하는 세력)가 진왜(진짜 일본군)보다 많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만.....???
물론 저 표현에는 다소의 과장이 섞였다 할지라도 당시 수 백만~천만의 조선인구 가운데
일본군의 점령지를 중심으로 작게는 수 만에서 많게는 수 십만에 이르는 동조자 및
일본군의 점령에 순응하는 인구가 존재했다는 반증일텐데요....!!!
해방군이 뭔 뜻인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당최...
일부 계층에서 일본군 오니까 만세라도 외침? ㅉㅉ
그냥 살려고 부역한 것이지...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왜케 하는지?
가왜가 일본군에 동조한다고? 허허 가왜가 뭔지도 모르나?
전쟁중에 먹고 살기 힘드니까...왜군으로 위장해서 털어먹었던 사람들을 가왜라고 하는구만...
걍 실언했으면 실언했다고 하지 참나...
이 사람 일본인이라고 제가 1년전부터 말해왔는데 아무도 안 믿어요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수만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사람 죽이러 오는데 해방군 이라니요 무사의 자랑이라고 사람 귀 하나 잘라서 가져가는게 해방군일까요
역적이죠 말 그대로 그냥 반란군. 백제가 망하니까 반란을 일으킨 나라요.
"평소 신분제의 질곡에 시달리던 노비들은 임금 일행이 도주하자 대궐에 난입해 형조와 장예원에 불을 지른 것이다. 나아가 노비들은 일본군에 적극 가담했다. 선조 25년(1592년) 5월4일 개성까지 도주한 선조는 윤두수에게 “적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데 사실인가?”(<선조실록> 25년 5월4일)라고 물었다. 노비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한 것이었다. 그래서 선조는 조선은 망했다는 생각에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도주하려 한 것이다.....
결국 임진왜란·정유재란이란 7년 전쟁을 진두에서 이끈 류성룡은 전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포상을 받기는커녕 선조 31년(1598년) 11월19일 파직당했다. 류성룡을 쫓아내고 그가 주도했던 각종 개혁 입법을 폐기시키고, 다시 ‘양반천국, 백성지옥’의 구체제로 돌아갔다.....
감사 윤훤이 병사들에게 나가서 싸우자고 말하자 병사들은 거꾸로 서얼·상민·노비라고 써놓은 호패를 성 위에 쌓아놓고 ‘너희들(양반들)이나 나가서 싸우라’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안주성이 무너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각종 신분제로 백성을 옭아맸던 나라가 위기에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40174
"김백선 처형은 당시 의병 내부에서 종종 발생하던 양반 유생과 평민천민 간의 신분 갈등이 표출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김백선의 처형은 의병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를 따르던 지평의 포수들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 참여했던 포수들마저 군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http://www.ziksir.com/ziksir/view/6137
조선 북쪽을 명나라 영토로 표현했는데,
당시 북쪽지역은 청태조 누르하치가 활약하던 시기입니다.
누르하치는 임진왜란때 조선에 파병을 제안했고 조선은 거절했습니다.
이게 뜻하는것은 당시 조선 북쪽의 여진은 명나라와 별개로 외교를 진행할수 있었고, 명나라와 별개로 군사를 동원할수 있었다는게 되는거죠.
단순히 명나라의 관직을 줘서 명나라 땅이라면, 조선에서도 관직을 주며 회유했으니 조선땅도 되는게 아닐까요?
당시 실세 누르하치의 선조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때 종군했고,
조선 초기 여진은 명보다 조선을 따랐습니다.
이후 명이 침투하며 자기쪽으로 끌여들이는 공작을 폈고,
그래서 조선쪽에서 명쪽으로 돌아서는 여진을 조선이 군사를 동원해 정벌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북쪽이 명나라 영토라면 조선은 수차례 명나라 변방을 군사를 동원해 공격했다는게 되는걸까요?
당시 임진왜란에 명나라 측으로 참전한 장수중에 이여송이란 장수가 있습니다.
이 이여송의 가문이 요동쪽 군벌으로, 세습하며 직위를 이어온 집안입니다.
중앙에서 사람을 보내서 통치한게 아니라,
실제 그곳의 실권을 갖고있는 사람에게 관직을 주며 임명한것이죠.
이 이여송의 집안이 조선인 집안입니다.
명나라에 속한 조선계 사람들이 요동의 실권을 갖고 있었다는거죠.
이부분에서 주류사학의 오류가 또 나오는데 이여송의 고향이 철령이라는 겁니다.
주류사학에서는 철령을 한반도내 지명이라고 비정했지요?
주류사학의 위치비정 대로라면 요동의 실권을 잡고 명나라 작위를 세습하던 가문의 이여송이 지금의 북한땅에서 태어났다는게 되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