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균형외교라고 말할 수 있는 외교전략을 구사한 나라는 헤게모니, 즉 패권국만이 할 수 있는 외교임.
나폴레옹 이후의 빈체제를 주도한건 영국이었고 유럽에서 영국을 능가할 강대한 세력의 등장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는 20세기까지 영국의 비동맹외교정책에서 대변됨.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를 줄곧 견제한 세력이 영국이었고 (크림전쟁, 아프간전쟁, 러일전쟁) 독일, 미국에 비해 국력이 밀리면서 그떄서야 아시아에서 일본, 유럽에서 프랑스과 협력하고자하는 자세를 취함.
미국 역시도 적극적으로 국력과시용 팽창정책보다는 자기네 달러패권을 유지하고 이를 위협하는 국제분란에 개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역내 균형을 강조하는 외교를 취했음. 예를 들면 앞마당인 남미분쟁사태에서 미국의 CIA가 개입하지 않은 곳은 없고 노골적인 아프간, 이라크 전쟁.
실제로 균형외교라고 말할 수 있는 외교의 전형은 패권국의 외교이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패권국의 외교가 무조건 대외팽창외교라고 생각하는건 오산이라고 보임. 균형외교는 자기네 이익구조를 지키기 위해서 상대국에 군사, 정치외교적인 영향력을 투사할 정도의 역량을 보유해야 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생각하는 균형외교와는 전혀 다른 식임. 한국이 생각하는 균형외교는 일종의 비간섭, 불편이외교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버릇이 있고 이는 중립외교라는 이름과 동급으로 치부됨.
이런 중립외교를 좋게 포장한 사례가 광해군이었고 이런 역사적 과거를 마치 신주단지처럼 지금도 따라야 할 규범인것처럼 현대에 선전하고 있음.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해서 조선을 살린게 아니라 후금이 조선에 야욕이 없었다라는 것에 안도를 표해야 할 정도로 근본적인 정세를 왜곡하여 현대에 교훈을 알려준다고 보임. 인조가 실패한건 후금과 명 사이에서 명을 과대평가했다라는 점이었고 만약 인조가 좀더 현명했다면 역사는 다르게 바뀔수가 있음. 조선후기에는 조선이 아무리 중립, 균형을 외쳐도 조선에 관심있어 하는 열강들의 사이에서 벗어날수가 없음. 근본적으로 중립외교에서의 제일 악질은 '내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라는 희귀한 사고가 지배적인데 한국사에서 이런 패착으로 의한 국가위기는 수도없이 나왔지만 아직도 중립, 균형이라는 낡은 틀을 붙잡고 헤롱헤롱 거리고 있음.
명치유신 이후의 일본이 어째서 근대화에 성공했는가의 이유는 중립외교와 균형외교를 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영미편에 서서 한쪽 세력과 대결할 각오를 늘 하고 있었다라는 것임. 한국으로서는 혹은 한국사 내내 이런 양자택일의 선택을 자꾸 악몽으로 취급하면서 잘못된 길로 세뇌시켰다라는 점이 가장 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