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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20 22:00
[기타] 카이로 회담에서의 장제스는 대한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3,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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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자료에 한국 관련 부분이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인도차이나, 
다른 식민지역의 장래 지위에 대한 상호 이해를 같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장제스 총통은 동의하면서 한국에 독립을 허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蔣謂朝鮮應豫獨立).” 

=>루스벨트가 먼저 한국독립론을 제시

중국 기록도 
“한국 독립문제에 대하여 총통은 특별한 노력을 경주했고 
루스벨트에게 우리 주장을 찬조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강조한다(張其<5441>, 開羅會談紀實). 

그 기록들은 진실인가, 과장인가, 일부만 사실인가-. 
카이로 회담의 미국 국무부 기록 (FRUS·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은 
1960년대부터 비밀이 해제되었다. 나는 두 나라 기록을 비교했다. 상당한 차이가 난다.

FRUS의 11월 24일 기록은 충격적이다. 
루스벨트는 24일 오전 11시 빌라에서 처칠과 만난다. 
그리고 전날 밤 장제스와의 요담 내용을 이렇게 설명한다.

“총통(장제스)은 전날 있었던 토의 내용에 대해 매우 만족한 듯하다. 
 중국이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한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
(There was no doubt that China had wide aspirations which included the re-occupation of Manchuria and Korea).”

=>루스벨트의 증언:  "장제스가  만주, 한국 먹고 싶데요~ 처칠 씨"

한국 재점령에 대한 광범위한 야심-. 그것은 치명적인 의문을 던진다. 
"장제스가 한국독립조항을 이끌었다”는 믿음과 상식을 무너뜨린다. 

그것은 김구의 임정(臨政)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야심은 청일전쟁 이전 질서로의 복귀다. 
청일전쟁 이전까지 중국은 수천 년 한반도를 속령(屬領)으로 취급했다.

엘리엇의 증언은 결정적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해 일본 점령 지역에 대한 전후 배치에 대해 물었다. 
장제스는 한국 운명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엘리엇 회고록, As He Saw It, 1974년).

=>회담에 동석한 엘리엇 중령의 증언: 
   "루즈벨트가 한국 등 일본점령지역 전후배치(독립)에 관심가짐. 반면 장제스는 전혀 관심없음.."

미국 연구서들은 거의 장제스 역할을 평가절하한다. 
카이로 회담의 최고 전문가는 
하이퍼만(Ronald I. Heiferman·퀴닉피악 대학 아시아연구소장) 교수다. 
그의 2011년 저서(The Cairo Conference of 1943)는 이렇게 분석한다.

“카이로 선언에 한국의 전후 운명에 대한 언급이 포함된 것은 부가물(addendum)이다. 
삼인 회담에서 별달리 자세히 거론되지 않았다. 
다만 루스벨트와 장제스의 사적 대화에서 논의되었다. 
처칠은 한국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장제스는 당연히 처칠보다 관심이 많았어야 한다. 
하지만 이웃나라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더 많이 표명하지 않았다.

=>처칠 한국에 관심없음. 
   장제스도 관심없음.(=한국독립에 관심없음. 즉 언급안함.)

” 루스벨트의 판단, 엘리엇의 증언, 하이퍼만의 분석은 설득과 파괴력이 있다. 
  (카이로 회담 최고 전문가) 하이퍼만은 장제스 행태를 위선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장제스 정부는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그는 윤봉길 의거를 찬탄했다. 
하지만 후원은 제한적이고 흔쾌히 하지 않았다. 

국민당은 임정 내부의 분열상을 과장했다. 
장제스는 임시정부를 공식 망명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일본 패전 때까지 주석 김구의 염원을 끝내 외면했다
이에 대해 임정 외교부장 조소앙(趙素昻)은 불만과 한탄을 했다.

고스(Clarence E. Gauss) 중국 주재 미국 대사의 이런 비밀 전문이 있다(FRUS 1942.2.12.).
 
“나 (고스 대사)는 임시정부 외교부장의 요청으로 비공식적으로 그(조소앙)를 만났다. 
중국 정부가 왜 한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느냐고 그(조소앙)에게 물었다. 

그(조소앙)는 귀엣말로 (고스대사에게) 말했다. 
"일본 패전 후 한국을 중국의 종주권(宗主權·Suzerainty) 아래 두려는 
 중국의 욕망(desire)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상해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이 
상해임시정부를 인정안하는 이유를..중국 주재 미국대사한테 설명함..

=>조소앙: '중국이 일본 패망 후 한국을 먹어치울 생각이라 임정을 인정안하는듯.'

종주권 욕망과 광범위한 야심-. 그것은 같은 맥락이다.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장제스의 우선 관심은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 복귀였다. 
장제스의 한국 독립 거론은 원론적, 표면적이었다. (겉만 독립 찬성)
한국 독립 조항은 루스벨트가 오랫동안 구상한 일반 원칙과 전략의 실천이다.” 
(=> 실제론 루즈벨트가 독립시켜줌)

나는 루스벨트 빌라를 살폈다. 파라오 미라 그림도 있다. 
빌라 어디에 회담 사연이 미라로 남겨져 있지 않을까. 
역사에서 사라진 건물이다. 그 사연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우울했다. 결론은 내려야 했다. 

장제스는 동북아에서 중화대국의 부활에 초점을 맞췄다. 
 그 틀에서 한국 독립 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다. 
 한국 독립 보장을 주도했다는 장제스 역할론의 대만기록은 일방적이다. 
 심한 과장이다. 역할론 신화의 오랜 수명은 끝났다.”

=>장제스의 한국독립 운운은 개구라.. 과장됨

11월 26일 4박5일의 카이로 회담이 끝났다. 
세 정상은 제국 일본의 해체와 식민지 해방 문제를 정리했다. 
장제스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27일 테헤란으로 갔다. 
소련 원수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을 만났다. 
스탈린은 카이로 회담 내용에 동의한다. 12월 1일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다. 

한국 독립 보장은 삼국 정상의 결의다. 

“앞의 세 강대국은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념하고
적당한 절차를 거쳐 한국은 자유롭고 독립할 것임을 결의한다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중략)

루스벨트의 한국 관심은 언제부터인가? 
태평양 전쟁 70여 일 뒤(1942년 2월 23일) 그는 한국을 처음 언급했다. 

라디오 연설문(워싱턴 생일기념)에서 
“한국 국민이 당하는 일본의 가혹한 압제” 에 동정을 표시했다.  (1942년 2월 23일)
그(루즈벨트)는 식민지 한국의 처리 문제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이승만 독립 외교는 활기를 띤다. 
1941년 6월 그는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를 냈다. 
그 책은 일본의 미국 공격을 예측했다. 
미국 오피니언 그룹에서 주목했다. 

=>이승만의 일본 공격 예언이 들어맞아, 미국 언론, 여론의 관심을 얻기 시작함..

이승만은 미 국무부에 임시정부 승인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국무부는 이승만을 외면한다. 

카이로 회담은 루스벨트 뉴딜의 국제판이다. 
뉴딜은 개혁과 공동 번영이다. 
그리고 대서양 헌장(1941년 8월 처칠과의 공동선언) 정신의 반영이다. 
그 핵심 정신은 강탈된 주권과 자치의 회복이다. 

영국 식민주의에 대한 루스벨트의 불신은 깊었다. 
뉴딜의 세계 신질서 구축 수단은 식민지 해체였다. 

그(루즈벨트)는 속도를 조절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인도·버마는 건드리지 않았다. 
일본의 점령지 중국, 식민지 한국에 초점을 맞췄다.

신탁통치는 식민지 퇴출의 루스벨트 방식이다. 
여기에 완전 독립으로 가는 중간에 후견(後見·tutelage)체제를 둔다는 것이다. 
그의 신탁통치 구상은 배타적 독점의 견제 목적도 있다.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루스벨트는 한반도에 대한 중국·소련 등
 열강의 상충하는 야심을 중화시키기 위한  국제관리 방식이 긴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를 혼자 꿀꺽하려는(=배타적 독점)을 꾀하려는 
   열강의 야망을 견제하기 위해, 립정부 수립을 후견하는 국제적 공동관리를 채택..
   (=신탁통치=루즈벨트 방식)

이승만과 김구의 독립 열정과 전략은 감동적이고 치열했다. 
1943년 7월 김구는 장제스를 면담했다. 
장제스는 한국 독립의 관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그해 5월 이승만은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일본 팽창주의를 저지할 민족은 한국뿐”이라고 역설했다. 

장제스는 김구의 염원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이승만 염원에 대해 루스벨트는 제대로 반응을 표출하지 않았다.
국제정치는 강대국의 국익 경연무대다.
(말은 안했지만, 결론은 루즈벨트가 주장해 한국 독립이 이뤄짐.. 장제스는 한게 없음. 오히려 한반도를 탐냄)

http://lif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150385&ctg=12&sid=6692
[박보균의 현장속으로] '한국 자유·독립조항' 루스벨트가 주연 … '장제스 역할론' 은 과장된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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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장제스의 한국 독립 주장썰은 구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구 선생이 장제스에게 거듭 한국독립을 요청해서, 장제스가 카이로 회담에서 이를 주장하였다고 하는데..

현실은 장제스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중화뽕과 야망은 장제스도 마찬가지였슴..) 

카이로 회담 미국 기밀서류와 참석자(루즈벨트와 엘리엇 중령)의 증언에 의하면.. 
오히려 한국을 중국 속령으로 두려는 강한 야심을 표출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승만이 일본 제국주의를 억제할 한국 독립의 중요성을 루즈벨트에게 어필했고,
구시대적인 처칠의 식민주의적 발상에 불만을 가졌던 
루즈벨트가 한국 독립에 결정적인 의견표출을 한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한국 독립은 장제스도 아니요. 처칠도 아니요..
루즈벨트의 몫이었던 셈..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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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타파 15-05-20 22:42
   
'박보균의 현장속으로' 저자 박보균은 정치학 학사출신이고 중앙일보 기자 생활도 국제정치에 관해서
활동한 기간은 1년 정도 밖에 안되는데요. 대한민국 기자들 사실과 관련 없이 소설만 써대는데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연구해서 보도할 능력이 없죠. 아마 제대로 연구한 기사가 아닐겁니다
     
Centurion 15-05-20 22:52
   
이 사람이 언급한 자료의 출처와 교수들 이름을 확인하고 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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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카이로 회담 관련 기밀문서(FRUS·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카이로 회담 최고전문가 하이퍼만(Ronald I. Heiferman·퀴닉피악 대학 아시아연구소장) 교수
클라렌스 E. 고스 당시 중국 주재 미국대사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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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자가 학사고 학부생이고 간에..
내용이 제대로 된 내용이면 된거지. 그런 요상한 잣대로 깍아내릴 게 안됩니다.

초등학생이 2x2=4 하면 틀렸다고 하실래요?
          
미신타파 15-05-20 23:04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여자들 대학교에서 정치학 가르치는데요
여자들을 상대로 무슨 깊이 있는 연구를 하겠습니까? 여대에 있는걸로 봐서
아마 깊이 있는 연구할 능력이 없어서 그냥 교수 자리 하나 꿰차고 있는거 같네요
               
Centurion 15-05-20 23:15
   
근데요. 인문-사회과학 쪽은 본래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아요. ㅋㅋ
대부분의 4년제 대학들 사회과학대가 그런 모양새임..
그리고 저서 찾아보니, 국제관계학, 정치학, 외교 쪽으로 책도 여러권 쓴 사람임.

저자 구대열(具?列)

1945년에 태어나서,
1968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사학과 부전공)하고
1968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일보사 기자로 재직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외교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외교안보 연구원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Korea under Colonialism?The March First Movement and Anglo-Japanese Relations (Seoul:Royal Asiatic Society, 1985),
제국주의와 언론:배설? 대한매일신보 및 한ㆍ영ㆍ일 관계(서울:이화여대 출판부, 1986),
한국 국제관계사 연구 1, 2(서울:역사비평사, 1995)가 있다.

흠~ 외교안보 연구원 교수를 역임한 외교 전문가를 까셨네. ㅋㅋㅋㅋ
                    
미신타파 15-05-20 23:26
   
1968년에 서울대 영문과 졸업했으면 1964년에 입학한건데 6.25전쟁후에
서울대 영문과 실력없는 사람들도 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에서 외교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정치경제에 관한걸 연구하는 대학에서
외교사로 박사학위 받는거도 결국 정치경제 쪽으로 연구할 실력이 없어서
쉬운 역사쪽으로 학위 받은거 같고 1981-1983 외교안보 연구원 교수 역임 한거도
연구 실력이라기 보다 서울대 영문과와 런던 박사학위 같은 스펙에 치중한 자리 꿰 차기
산물일겁니다. 한국은 실력보다 스펙이죠ㅋㅋㅋ
                         
Centurion 15-05-2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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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정치경제대학교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London school of economics logo with name.svg

표어 Rerum Cognoscere Causas

설립 1895년

종류 공립대학교

총장 Anne, Princess Royal (Chancellor of LSE)
학장 Professor Craig Calhoun (Director of LSE)

국가 영국

위치 런던 중심부

학생 수
학  부: 3,860
대학원: 4,950

런던정치경제대학교(영어: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는
영국 잉글랜드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사회과학 특화 공립대학교이다.

1895년 페이비언 협회의 시드니 웨브과 버나드 쇼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900년 런던대학 시스템 내의 독립적 단과대학이 되었다.
1902년부터 졸업장을 수여하기 시작하였다.
영국 사회정치과학 도서관으로 불리는 런던정경대 부속 도서관은
47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사회과학 도서관이기도 하다.

영국 내에서 가장 학부 경쟁률이 높은 대학이며,
UN회원국보다 많은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 전체 재학생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2011년까지 16명의 문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1990년 이후 현재까지 8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해내는 기록을 세웠다.
가장 최근의 노벨 경제상은 2010년의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교수가 수상한 것이다.[1]

그 외 존 F. 케네디, 일본 총리 아소 타로, 이탈리아 총리 로마노 프로디를 비롯한
34명의 국가정상을 배출하였다.

또한 현 미국 버락 오바마 정권 내에서
미국외 대학중 가장 많은 각료를 배출한 대학도 런던정경대이다.[2]

학과

런던정치경제대학교는 다음의 학과들로 이루어져 있다.

회계학, 인류학, 개발학
경제역사학, 경제학, 유럽연구소, 재무회계
성연구소, 지리와 환경
정치, 세계사, 국제법학,
국제관계학
법학, 경영학, 수학, 언론, 철학
사회심리학, 사회정책, 사회학, 통계학

http://ko.wikipedia.org/wiki/%EB%9F%B0%EB%8D%98_%EC%A0%95%EC%B9%98%EA%B2%BD%EC%A0%9C%EB%8C%80%ED%95%99%EA%B5%90

Department of Accounting
Department of Anthropology
Department of Economic History
Department of Economics
Department of Finance
Department of Geography and Environment
Department of Government
Department of International History
Depart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
Department of Law
Department of Management
Department of Mathematics
Department of Media and Communications
Department of Methodology
Department of Philosophy, Logic and Scientific Method
Department of Social Policy
Department of Social Psychology
Department of Sociology
Department of Statistics
Department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European Institute
Gender Institute
Language Centre

1. 개요 ¶

영국의 수도 런던에 위치한 1895년 개교한 명문교.
영국의 양대 명문 대학교 옥스포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비교하면 매우 짧은 역사이나,
개교 이래 100년 남짓이라는 영국치고는 단기간 안에
한국의 SKY처럼 영국 상위 명문 대학교 5곳을 일컫는 말인 G5[1]에 이름을 올린 대학교다.

명문 대학교 중에선 특이하게도 경제학, 정치학을 필두로한 단과대학이다.
영국내 대학 평가 중 가장 신용 있는 평가 중 하나로 평가 받는 가디언지 조사에서는
2014년 기준 종합 3위[2], 정치학 2위[3], 경제학 2위[4]를 차지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영미권 등 해외에서는 매우 유명한 대학이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도 LSE의 석사 과정을 수학했고,
그 외에도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다.
그 중 13개가 노벨 경제학상인걸 보면 가디언 랭킹도 그렇고 대학 이름값 제대로.

특히 2000년대 들어 여러 정치인사를 배출했는데
일본의 총리인 아소 타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탈리아의 총리인 로마노 프로디로 국가정상결전을 찍어 주곤
버락 오바마의 1기 행정부에서 미국외 대학 출신자 비중이 가장 많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다.

2. 입학 및 학비 ¶

입학에는 보통 영국의 공인 시험인
GCE A-level과 GCSE 성적, 혹은 IB 성적, IELTS나 토플같은 영어 능력 검정 시험 [5]
그리고 띄어쓰기를 포함한 4000글자 이내의 자기 소개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 받는다.

몇 달전부터 머리 싸매고 끙끙거리게 된다. [6][7]
일반적으로 각 학과별 최소[8] 지원 조건이 IB 38점,
A-level 3과목 A이니 성적 관리를 잘 하도록 하자. [9]

경제학, 정치학, 법학, 국제관계학과는 매년 합격률 10% 미만을 유지한다.
다른 과들도 대부분 비슷한 수준.

https://mirror.enha.kr/wiki/%EB%9F%B0%EB%8D%98%20%EC%A0%95%EC%B9%98%EA%B2%BD%EC%A0%9C%EB%8C%80%ED%95%99%EA%B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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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겁니다만... 

Department of International History
Depart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

아마도 국제사, 혹은 국제관계학과에서 외교사로 박사학위 받았다는 소리겠죠.

대학교 이름이 정치경제대학교라는 소리고..

그리고 이 대학은 영국내에서 5위권 이내의 명문대학이며..
가디언지 평가로는 영국 3위 대학이네요. 학생수도 많지 않고 입학이 쉽지 않은 명문대군요.
게다가 노벨상 수상자와 각국 정상 및 관료들을 배출하는 대학이네요.
그냥 스펙 타령으로 끝날 학교는 아닌것으로 보여집니다. ㅋㅋ
                         
미신타파 15-05-20 23:57
   
그러니까 이 대학교는 정치경제를 연구하는 대학입니다
노벨상도 전부 경제학 쪽에서 수상한거고요
정치경제학으로 명문대학이지 '외교사' 명문이 아닙니다
정치경제학 명문대학에서 '외교사' 박사학위를 받은거 자체가
실력 보단 단순히 명문대 간판에만 치중한 박사학위란거죠
한국은 실력 보다 명문대 간판이죠ㅋㅋㅋ
이상한 사고방식입니다ㅋㅋㅋ
                         
Centurion 15-05-21 00:43
   
노벨상 18개 중에 13개가 노벨경제학상이라는데요. 5개는 어딘지 모릅니다.

그리고 실력보다 간판 타령하시는데.. ㅋㅋ~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포항공대-카이스트급 대학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실력보다 스펙이라고 하시네요

아.. 물론 외교안보원이라는 국가 외교관 교육시설 겸
외교부장관 보조기관의 교수를 까시면서..  수준 타령하셨네요..
대한민국 최고레벨의 외교 전문가를 말이죠 ㅎㅎ

그리고 님이 말하는 그 외교사 전문대학이 어디며,
그 순위나 평판에 대한 자료를 갖고 와서 님의 주장을 증명해 보시길.. ㅋㅋㅋ

보통 대학 간판값이 학과의 명성과 순위랑 정비례하는 경우가 많은뎁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좀 있지만,
보통 상위권대학이 하위권대학보다 학과가 수준이 많이 쳐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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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연구원
[ 外交安保硏究院 ]

외교안보연구원 [外交安保硏究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법>의 첫 조항에는 그 설치목적에 관하여 “국가안보와 외교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 발전시켜 정부의 중·장기 외교정책 입안에 기여하게 하고, 외무부 소속 공무원의 자질향상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게 하기 위하여 외무부장관 소속하에 둔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1962년 미국 아세아재단과 외교관 훈련을 위한 지원협정을 맺고 1963년 9월 3일 외무공무원교육원으로 처음 발족되어, 1965년 1월 5일 대통령령에 의거 외교연구원으로 발전, 개편되었다.

그 뒤 10년 만인 1975년 10월 청와대안보대책회의에서 국가안보전략분야의 연구기관 설립에 관한 대통령 특별지시에 따라 기구의 확대개편을 추진, 이듬해인 1976년 12월 31일 대통령령에 의거 오늘날의 외교안보연구원으로 모습을 갖추었다.

1980년 4월 대지 3,002평, 임야 841평, 건물 1,063평의 현청사를 마련하였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9025&cid=46627&categoryId=4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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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15-05-21 04:32
   
무논리로 여대 까대는 거 보소;; 이화여대에서 연구 잘하는 사람 있는데요? 그런 논리적 허점을 가진 분이 이화여대급이라도 될지 의심이 되네. 더군다나 여성비하까지.... 미개한 부류로 사료되네요
Centurion 15-05-21 00:52
   
그리고 솔직히 저 정도로도 출처와 근거가  뻔하게 견적 나오는
신뢰성 있는 주장을 고작 기자의 정치학 학사 학위나,
구대열 교수의 학력 따위로 되도 안하는 폄하를 하는게 더 웃긴 일이죠. ㅋㅋ
(미신타파: "한국은 실력 보다 명문대 간판이죠ㅋㅋㅋ 이상한 사고방식입니다ㅋㅋㅋ"
 님이 학벌 타령하는 그게 오히려 실력보다 스펙 타령하는 거에 가까운 행동이구요 ㅋㅋ)

근거자료가 뻔히 미국무부 카이로회담 기록에 있는것인데.

그렇게 주장의 신빙성을 따지기 위해 학벌 타령하시는 님 학력은 뭡니까?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캠브리지대 정치외교학 박사 이상되시나요? ㅋㅋㅋ
님 학력이 설사 그렇다쳐도 그러면 없는 일이 사실이 되고, 있는 일이 없는 게 됩니까?
Banff 15-05-21 07:12
   
미신타파같은 사람을 위해 진중권이 명언을 하나 했음.

"말을해도 못알아 들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 - 진중권
두부국 15-11-15 05:13
   
장제스나 모택동이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꼬꼬동아리 18-10-12 20:58
   
장제스는 한국 독립지지 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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